장검(당나라)

張儉

생몰년도 미상

당나라의 인물. 자는 사약(師約).

신풍 사람으로 630년에 삭주자사를 지내고 사결 부락에 기근이 들고 가난해지자 그들을 불러 모았으며, 오지 않은 사람들은 적북에 거주하면서 친척들이 사사롭게 왕래했지만 이를 금지하지 않았다.

장검은 승주도독으로 옮겨졌고 사결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상소가 조정에 올라오자 장검은 조정의 명으로 사결을 살펴보러 가게 되었으며, 장검은 혼자서 말을 타고 사결의 부락으로 들어가 그들을 설득했다. 그들이 대주로 옮기자 검교대주도독에 임명되었으며, 사결 부락에서는 끝내 반란한 사람들이 없었으며, 장검은 사결 부락에 밭을 기를 것을 권고해 사결 부락에서 크게 풍년이 들었다.

장검은 그들이 축적된 것이 많으면 다른 뜻을 가질까봐 걱정해 곡식을 사들여 변경의 저축을 충실하게 하자는 상소를 올렸으며, 사결 부락에서는 기뻐해 밭을 경작하는 것에 힘을 더 쏟아 변방의 비축이 충실하게 되었다고 한다.

641년에 영주도독을 지내다가 당태종의 명으로 유주, 영주 도독의 병사와 거란, 해, 말갈 등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동쪽 경계를 압박했다. 642년에는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영양왕을 시해했다는 사실을 조정에 알렸으며, 644년에 유주, 영주의 군사, 거란, 해, 말갈을 인솔하고 요동을 공격해 고구려의 형세를 관찰했다.

장검은 요수의 물이 불어 오랫동안 건널 수 없어 당태종이 두려워하고 나약하다고 생각해 장검은 낙양으로 소환되었는데, 장검은 산천의 험한 곳, 물이나 풀이 좋고 나쁜 곳을 알렸다. 645년에 고구려를 공격하면서 장검은 흉노의 병사를 선봉으로 삼아 요수를 건너 건안성을 공격해 수 천 명을 죽이고 함락했다. 646년 6월 15일에는 이도종, 아사나사이, 집실사력, 글필하력, 설만철 등과 함께 설연타를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