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1 개요

북한 각지에 존재하는, 생필품을 사고파는 일종의 시장.

2 역사

북한에서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배급이 끊기면서 주민들은 그것이 생계에 위협이 되자 살아남기 위해 개인 농장을 운영한 것에서 시작했다. 생활에 필요한 돈과 여러가지 생필품을 이것저것 돈으로 거래하다보니, 이젠 규모가 커져서 북한의 유일한 자본주의식 시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국경선 근처로 보따리 상인들이 물건을 몰래 사와 팔기 시작했고, 여기에 지방 군부, 간부까지 가세해 그 세력이 커졌다.

하지만 그동안 배급제에 의존해 왔던 북한 정부는 자본주의식 시장이 들어오는것을 꺼려했다. 김정일 시대때는 장마당에 대한 정책이 오락가락 했는지 1990년대에는 뽀죡한 수가 없었기에 그냥 내비두는 쪽에 좀더 가까웠고, 2002년 경제개선조치로 한 동안 장마당에서의 활동을 장려했지만 2007년 이후로는 체제에 위협이 된다해서 탄압이 강화되었다. 하지만 배급은 안드로메다로 간 지 오래이고, 고난의 행군 이후로 사실상 정부의 배급보다는 알아서 살자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지 오래였기 때문에 효과는 없었다.[1]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이 정권을 잡고 사실상 장마당에 규제를 풀었는데 2009년 화폐개혁을 한 후유증을 겪고 난 뒤에는 장마당 활동을 사실상 장려하는 수준에 까지 다달았다. 물론 김정은 시대 이후 변화가 있지만 장마당 규제를 하면 반발이 심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북한 경제의 모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사회주의 국가체제는 붕괴된지 오래 됐고, 그 속에서 주민들이 살기 위해서 자기가 필요한 물건들을 서로 교환하거나 사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오히려 이것이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억압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행동이라 볼 수 있다.

장마당의 시초는 암시장이다. 북한 경제가 붕괴되기 전에도 간간이 외부 물품들은 몰래 반입 되었다.(주로 소련, 중국제) 하지만 1990년대 천재지변과 김일성의 사망, 김정일의 연속 삽질(향락)으로 북한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배급제 마저 중단됐다. 사실 전 국토가 한번에 배급제가 중단된건 아니며, 평양과 대한민국 국경선 지역은 계속 유지되고 있었지만 오히려 배급제가 더 필요한 내륙지방과 중국과의 국경 지대는 배급제가 중단되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식량도 군인들에게 지급 되자 북한에는 아사자가 대량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암시장의 세력은 커졌고 주민들은 암시장을 통해 물건을 사고 팔았다. 초기에는 단순히 식량 위주의 작은 규모로 거래가 이루어졌지만, 그 세력이 점점 커져 지금은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 (GDP)의 1%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장마당의 규모는 더 커질거라는 전망이 높다.
  1. 장마당 내 거래를 안 해 굶어죽는 것보다는 걸릴 때 걸리더라도 일단 먹고 사는 게 생존률이 높으니 당연한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