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1] 9월 29일 ~ 2012년 11월 2일 출생으로 1946년 월남하여 1947년 광복 후 특1기로 KBS(당시 서울중앙방송국) 방송극단 연구원 1기로 입사했다. 당시 동기로는 조남사, 황태수, 민구 등이 있다.
그 후 2기 연구원으로 이춘사, 구민,[2] 최무룡, 이혜경 등을 뽑았는데 이들이 현재 KBS 특기 성우로 분류된다.
원로연기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전문 성우 중 한명이다. 당시에도 성우라는 말은 없었다고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광복 이전에도 한국어 라디오 방송극은 존재했고 그 때 목소리 연기는 주로 복혜숙 등 기존 연극 배우들이 맡았다고 한다. 지금 같으면 연예인 더빙 논란으로 성우 커뮤니티가 부글부글 끓을 일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라디오극에 연극배우들이 출연하는 관례였고, 이는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백성희, 나옥주, 피세영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당시 자료 [1]
당시 중앙방송국 1기 연구원 중에서 성우로 왕성히 활동했던 이는 장민호 한 명뿐이다. 나머지는 연극배우, 프로듀서, 작가로 활동분야를 옮겼다.
또한 영화배우로서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이진석(원빈)의 노년기를 맡으셨다.
2011년에 이름을 딴 백성희장민호 극장이 개관했다고 한다. [2]
2012년 11월 2일 별세(향년 89세). 참고로 한국연극협회 초대 이사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