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혹시 태극기 펄럭이며을(를) 찾아오셨나요?

역대 대한민국 1000만 관객 영화
실미도
(2003, 11,081,000명)
태극기 휘날리며
(2004, 11,746,135명)
왕의 남자
(2005, 12,302,831명)
장르전쟁, 드라마러닝 타임145분
개봉일2004년 2월 5일
촬영 기간2003년 2월 10일 ~ 2003년 10월 31일
감독강제규
출연장동건, 원빈, 故 이은주, 공형진
등급국내: 15세 이상 관람가
싱가포르: M18
미국: R
독일: FSK 16
호주: MA15+
영국: 15
음악이동준

1 개요

한국전쟁 영화의 교과서이자 레전드
할리우드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있었다면 충무로에는 태극기 휘날리며가 있다.

강제규 감독. CG1, 2 장동건, 원빈 주연의 한국 전쟁영화.
영어제목은 태국기TaeGukGi : The Brotherhood of War

2004년 2월 5일에 개봉하여 1,174만 6,135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16년 4월 현재,역대 흥행 11위(한국영화론 역대 10위)에 오른 대흥행작. 더불어 한국 극장 개봉 전쟁영화 최고 흥행작 기록을 가지고 있다.[1]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급 전쟁영화이며 감독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노렸다고 했다.[2] 아주 세세하게 따지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뒤떨어지기는 하지만 그 때까지의 한국 영화들 중 최고 수준의 특수효과를 보여주었다.[3] 평론가들 중에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컴플렉스를 가진 영화"라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제작 스텝들의 인터뷰를 보면 미술과 촬영, 특수효과 등에서 오히려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 감독 장 자크 아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강제규는 이때의 못다 푼 한을 7년 뒤에 해소하지만 흥행은 망했어요.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만들어진 블록버스터급 전쟁영화지만, 전투씬의 화려함만을 중시하기보단 전쟁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진 한 형제의 삶에 대해 조명함으로써 전쟁의 비극을 잘 살리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개봉 전에는 한국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분들을 위한 특별시사회를 가졌는데, 시사회에 참석한 분들은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 전쟁 당시를 떠올리며 함께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조성모김재중[4], 최민식, 김수로가 엑스트라로 참여하기도 했는데, 조성모는 조선인민군 육군 하전사로 0.5초 정도 나오고 사라지고, 김재중은 자신이 카메라에 나온 장면을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최민식은 평양 전투 당시 인민군 육군 총좌로 잠시 얼굴을 비추었는데, 잠깐 비춘 것치곤 상당한 임팩트를 주었다. 이병헌이 등장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최근 한 인터뷰에서 출연한 적이 없다고 스스로 밝혔다. 김수로는 반공청년단장으로 1분정도 등장하는데 줄거리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5] 다만 김수로는 싸이코패스가 뭔지 아주 온몸으로 제대로 보여주며 악역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연기를 펼쳤다. 영화관에서 이 영화에 나오는 김수로를 보면 출연시간이 지극히 짧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소름끼침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이 작품에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 있는데 이 부분에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한국논단같은 곳이야 당연히(?) 용공영화이니 친북영화라고 비난했으나 이런 단체들의 비난 외에는 별다른 비난보도가 없었다. 영화상에 나오는 북한 육군이 악랄한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 주인공네 대한민국 육군이 비중이 많으니 더 나올 수밖에. 그리고 상대적으로 적다고 해도 북한 육군이 철수하며 학살한 민간인 시체가 쌓여있고 심지어 그 시체들을 이용한 부비트랩까지 설치되어 있었다.[6] 살려달라고 애원하곤 통수 까려던 인민군 육군 하전사들같이 인민군의 악랄한 모습이 국군보다 적게 나올뿐, 결코 좋게 나오지 않는다.[7] 한국 육군들이 북한 육군 포로들을 학대하지만 이걸 주인공이 막게하고 왜 막냐고 하던 아군에게 "우리가 이러면 빨갱이 색히들이랑 뭐가 다를 거 있어?"라는 말에 한국 육군이 주저하고 학대를 멈추는 것처럼 한국 육군도 생각하고 있다. 극중 "빨간 건 다 싫어한다. 특히 빨갱이 개새끼들"이라던 한국 육군 병사는 이북에 살다가 온 식구가 몰살당해 홀로 내려와 증오를 가지고 있던 뒷사정도 나온다.

반대로 민간인 학살 저지르고 안전한 후방에서나 행패부리는 반공 무장패거리야말로 한국전쟁 때 학살 및 약탈질이나 저지른 게 많은 걸 생각하면 얘들이나 북쪽 인민재판이라며 벌인 짓거리같이 전쟁보다 후방에서 비군인 패거리가 벌인 학살과 약탈이 더 했다. 되려 인터넷을 찾아보면 북한 유학생이 중국에서 이걸 보고 엄청 비난(남조선 찬양영화라며)하던 글이 퍼진 바 있다. 사실유무는 불명이지만. 뭘 보고 남조선 찬양영화인지는 모르지만 그 동네 사정만 보면 아마 한국전쟁을 남한이 다뤘다는 것만으로도 비판할 듯 싶다. 지네 나라에선 한국전쟁이 성전일테니. 북한 육군 죽는 장면이 한컷이라도 나오면 남조선 찬양영화일듯하다.[8]

전쟁기념관에 있는 '형제의 상'의 실화가 모티브가 되었다. 실제 형제였던 박규철 소위()과 박용철 하전사(동생)의 이야기로 형은 대한민국 육군, 동생은 조선인민군 육군으로 죽령 전투에서 만나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왠지 들을 때마다 가슴을 울리는 테마곡도 유명하다. 은행나무 침대, 유령, 퇴마록, 지구를 지켜라, 쉬리, 7번방의 선물, 포화속으로 같은 영화 음악으로 알려진 이동준이 음악을 맡았다. 현재도 뭔가 국민적 비극이 일어나는 상황이면 BGM으로 깔기도 한다. 그와 함께 관광열차 DMZ-train 차내에서 임진강역에서 도라산역으로 진입할 때 나레이션과 함께 BGM으로도 사용된다. 유튜브 자동재생

일본에서도 2004년 6월 26일에 원어판과 더빙판으로 개봉했었다. 일본에서는 Brotherhood로 소개되었다.

2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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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전쟁이 낳은 형제의 비극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나고 수십년이 흐른 어느 날,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의 유해발굴작업 도중 이름이 새겨진 만년필이 발견된다. 유해발굴단은 이 만년필의 주인이 아직 살아있는 참전용사임을 알아내 그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초로의 신사(장민호)가 된 만년필의 주인은 과거를 회상하며 발굴 현장으로 찾아간다.

이 유품 주인 찾는 과정이 영화 속에서는 정말 순식간인데, 그냥 이름 치면 나온다(...). 사실 이진석이란 이름이 엄청 흔한 걸 생각해보면 검색 범위가 육군 제1보병사단 내라고 해도 동명이인이 그렇게 없지는 않을텐데(...) 아마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온 동명이인 떡밥을 의식해서 쿨하게 원빈 이진석만 띄웠을지도? 또한 유품으로 참전용사를 찾아내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이름에 소속까지 새겨져 있는 수통을 찾은 적도 있는데 그건 끝내 주인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6월 21일자 진짜 사나이에서 6.25 특집으로 유해발굴단 편을 방영하였는데, 유해를 찾아 유족에게 전달하기까지 보통 3년은 걸린다고 나온다. 그냥 영화적 허용으로 봐야 할 듯하다.

1950년대. 이진태(장동건)와 그의 동생 이진석(원빈). 동생 진석은 공부에 소질이 있었던 학생으로 집안으로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고, 형인 진태는 동생 진석의 학업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꿈을 접고서 서울 종로에서 구두 닦는 일[10]을 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이들의 부모님은 대체 누구길래 장남이 장동건이고 차남이 원빈인 걸까?

하지만 갑자기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밀양의 외삼촌 집으로 피난을 가던 도중 대구역에서 진석이 경찰과 육군 헌병들에게 강제 징집되고, 진태가 진석을 구하기 위해 징집 열차에 올랐지만 휩쓸려서[11] 형제가 함께 전선으로 가게 된다. 이후 심장병이 있다는 사유로 진석의 전역을 위해 힘쓰던 진태는 대대장으로부터 어떤 병사가 무공훈장을 받고 같이 징병되었던 자신의 아들을 전역시켜 주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진태는 무공훈장을 받고 진석을 전역시키기 위해 전쟁터에 늘 앞장서서 나가고 동생 진석은 그런 진태를 걱정함과 동시에 자기 목숨을 챙기지 않는 행동에 매우 분노하게 된다.

진태는 진석을 전역시키기 위해 적과 싸우면서 사로잡힌 포로들을 학살하는 등 점점 잔인하고[12]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13] 마음 약한 진석은 그런 진태가 섭섭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결국 박무영인민군 육군 총좌[14]를 생포하면서 무공훈장을 얻는다. 문제는 생포 과정에서 진태의 무리한 작전 때문에 영화상 감초 역할이자 형제와 가까운 사이였던 영만(공형진)이 전사하게 되면서 진석과 진태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다. 이때부터 진석은 진태가 자신을 전역시키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명예욕과 승진욕 때문에 싸운다고 의심하게 된다.

이후 둘의 사이는 보도연맹 학살사건으로 진태의 약혼녀 영신(이은주)이 반공청년단(아마 서북청년단) 단장(김수로)에게 살해당하면서 완전하게 틀어진다. 형과의 불화로 형과 따로 떨어져 돌아온 진석은 영신을 만나서 식구들의 소식을 듣는데 영신이 전쟁 전에 보리쌀 준다는 말만 듣고 가입한 보도연맹 건이[15] 빌미가 되어 반공청년단과 방첩단원들이 몰려와서 영신을 체포해간다. 진석이 총을 겨누면서 막아서자 "이 새끼 빨갱이 첩자야, 탈영병이야?"라고 같이 끌려가게 된다. 한편 조금 늦게 돌아온 진태는 영신의 동생들이 울며불며 뛰쳐나오는 모습을 보고 사태를 알게 되어 방첩단으로 쫓아가고 총살 직전이던 영신을 구해내긴 한다. 이때 조사실로 끌려가던 진석도 형이 준 만년필로 방첩요원을 해치우고 권총을 탈취하여 진태와 합류한다. 이때 청년단원들이 영신을 "인민군들에게 아랫도리 돌린 년이 누군데?"하고 욕을 퍼부었고 영신은 먹고 살려고 부역하고 인민군 간부들 집안일 좀 해준 것 뿐이라고 울면서 항변하지만 진태는 정말로 영신이 인민군들과(자의건 타의건을 떠나서) 놀아난 것이 아닌가 의심하며 매우 갈등하게 된다. 진태의 머뭇거림 때문에 잡혀와 있던 사람들이 탈주를 하게 되고 그 소란 와중에 영신은 청년단장이 쏜 총에 맞아 죽고 만다.[16] 이때문에 진석은 완전히 빡돌게 되고 "영신이 누나가 그렇게 못 미더웠어? 네가 죽인거야!" 라며 완전히 형과 갈라서게 된다. 먼 훗날 진태와 반공청년단장(김수로)은 같은 회사에서 일하며 베프가 되었다.

체포된 진태는 신임 대대장에게 약속대로 무공훈장을 받았으니 진석을 제대시켜달라는 요구를 하지만 새 대대장은 군대가 무슨 장사치 소굴인줄 알아? 라고 묵살해버린다. 진태는 "흥정은 그쪽에서 먼저 한 겁니다"라고 싸늘하게 대꾸하지만 어떤 얼빠진 새끼가 그따위 소릴 했는지는 몰라도 나 한테 안 통해! 라고 거부한다. 대대장이 진태를 도로 창고에 처넣으라고 지시하는 순간 중공군의 공세가 시작된다. 대대장의 부하들이 포격으로 다 죽은 걸 확인한 진태는 죽은 부하 장교의 권총을 꺼내 대대장을 협박하여 창고의 포로들을 풀어주라고 무전기로 명령할 것을 지시하지만 대대장은 총구가 겨눠졌는데도 무전기 너머로 "한 가지 잊은 것이 있다. 포로들을 전원 소각해!"라고 악을 쓴다. 진태가 다시 지시하라고 소리지르지만 이미 포격으로 무전기가 망가진 후였고 진태는 혼비백산하여 대대장을 팽개치고 진석을 구하러 뛰쳐나간다. 하지만 포격에 휘말려서 쓰러지게 되고 깨어난 후엔 이미 창고는 잿더미로 변한 후였다. 진태는 진석의 만년필을 발견하고 진석이 창고안에서 불타 죽었다고 오해하고[17] 중공군에게 포로로 끌려가던 대대장을 돌로 쳐죽여 살해한다. 그 뒤 진태는 중공군에게 끌려가 인민군 육군 군관이 되어 붉은 깃발부대의 지휘를 맡아 유명세를 떨치고 국군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진석은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같이 싸우던 전우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국군대전병원에 입원해 의병 전역을 준비하고 있었고, 형의 소식을 듣고도 "거기서 이번엔 중대장, 대대장 시켜준다길래 갔나 보죠. 그 인간 죽든 말든 제 알바 아니에요."라고 싸늘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형이 집에 보낸 편지를 읽은 진석은 진태의 진심을 알고 자원하여 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원해서 전선으로 돌아간다.

이 장면에서 한 팔을 잃은 채 병원에 같이 있던 동료 임 하사의 모습이 진석이 처음에 보여주던 냉소적인 태도와 대조된다. 그는 공산당에게 처자식이 몰살당해서 월남한 뒤 한국 육군에 입대하여 빨갱이라면 철천지 원수로 여기던 사람이었지만 자신 역시 가족을 잃었기에 진태가 인민군 육군에 투항한 심정을 지레짐작으로나마 이해하고 있다.

원래 진석을 잠입시켜 진태를 다시 전향시키려던 계획은 미 해군 항공대의 요청으로 공습 시간이 앞당겨지는 바람에 시간이 없어서 취소되고 진석은 선전 방송을 하게 된다. 하지만 방송으로 형이 믿을리 없음을 안 진석은 붉은 깃발부대에 보내달라고 고집을 부리지만 대대장이 "작전을 위해선가 형을 구하기 위해선가?"라고 물으면서 일축한다.

그러자 진석은 혼란을 틈타 통신병들을 기절시킨 뒤 탈영하여 북한 육군 진지로 달려가 투항, 인민군 육군 대대장은 그를 정보대로 보내려 했으나, 이동 도중 미 해군의 F4U 편대의 공습을 받아 호송병이 전사해 홀로 형을 찾아 나선다. 이후 국군의 공세가 시작된 와중에 전장에서 두 형제는 재회한다. 이때 진석을 알아보지 못한 진태가 진석을 죽일 뻔하나 진석의 울부짖음에 겨우 제정신을 차린다.[18] 이후 진태는 동생을 도피시키고 총구를 돌려 북한군과 싸우다가 죽는다.

진태가 그대로 있었으면 살아남아 수십 년 후에 이산가족 상봉 때라도 만날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와 소설의 묘사를 볼 때 인민군 육군과 중공군의 탄환이 진석을 비롯해 퇴각하는 한국 육군 장병들에게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있으면 다리에 총상까지 입은 진석은 무사히 피하지 못하고 총에 맞아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기관총을 돌린 진태의 선택은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다.

돌아와서 구두 완성한다고 했잖아요.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돌아온다고 약속했잖아요. 왜 이러고 있어요?
말 좀 해요... 50년 동안이나 기다렸는데 이 동생한테 뭐라고 말 좀 해요..
그때 형 혼자 두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형... 형...!!!

그리고 시점은 현재로 돌아와서 유해 발굴 현장에서 진태의 유골이 발견되고 진석은 진태의 유골을 향해 오열한다.

진태와 헤어져 살아남은 진석이 폐허로 변해버린 서울에서 가족들과 재회하고 형이 만든 구두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3 평가

IMDB 8.1

로튼 토마토 80%
제40회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
제25회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기술상, 촬영상, 한국영화 최다 관객상 수상
제50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수상

한국 영화 사상 레전드가 된 전쟁 영화
스토리와 흥행을 모두 거머쥔 훌륭한 전쟁영화의 교과서

흥행과 비평 모두 대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한국 영화 중의 하나이고, 한국 전쟁 영화의 롤모델처럼 인식될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작품 이후로 개봉하는 한국 전쟁 영화들은 모두 태극기 휘날리며와 비교될 정도.

또한 강제규 감독은 이 작품을 계기로 '블록버스터의 규모와 스토리 모두를 다룰 줄 아는 명감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정확히는 마이웨이가 개봉되기 전까지만

다만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태극기 휘날리며 개봉 당시 여러 매체에서 이 영화를 맹비난하였지만 인민군을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해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싸우는' 군인으로, 주인공 형제를 '부르주아적 환상과 가부장적인 가치'에 매몰된 인물로 묘사하는 등 지나친 억측과 본인의 편향성이 매우 묻어나오는 터라...

정말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인가
천만이냐, 아니냐 그것만이 문제로다

반면, IMDB 평가에서 8.1 로튼토마토에서 평가지수 80을 받는 등 해외 팬들과 평론가들의 평가는 좋은 편. 잊힌 전쟁이라 할 정도로 한국 전쟁에 대해 잘 모르던 외국인들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비견하며 호평을 보냈고 영화의 배경이 된 한국 전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매우 바람직한 경우도 있었다.

4 고증 관련

군사전문 잡지 플래툰의 김세랑 기자가 고증을 담당[19]해 계급장이라든지 몇몇 부분[20]에 자잘한 오류가 있으나 한국 전쟁 영화치고는 전반적으로 소품고증이 잘 된 편이다. 다만 볼거리 외에 극중에서 묘사되는 전술 면에서는 적지 않은 문제를 보였다. 백병전 등의 여러 하이라이트 장면이 멋진 극적 연출과는 별개로 실제 군사 전술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비합리적이라 여겨질 장면이 상당히 많은데, 이런 전술 고증을 비판하는 관객이나 평론가들은 6.25식 장비를 걸치고 1차 대전식 전투를 하는 영화라고 깐다.

강제규 감독은 소품팀에게 배우들에게 M1 개런드를 비롯한 소총류만 지급할 것을 지시했지만, 소품팀이 밀덕이었는지 차마 그럴 수 없다!면서 평양 전투 씬에서 바주카, 기관단총 등 다양한 중화기를 지급했고 후에도 화염방사기 등이 등장한다. 감독은 소품팀의 항명에도 결과가 괜찮아서 만족스러워 했다고. 또 여담이지만 평양 전투 다 찍고 나오는 길에 엑스트라 한명이 감독의 표현대로 '예비군 정신'을 발휘하여, 촬영용 소총을 아무데나 짱박아두고 오는 바람에 모든 스텝들이 밤새도록 세트장을 돌아다녀서 간신히 찾았다고 한다.

양덕들이 이 영화에 나온 무기들을 철저하게 고증-분석해놨다. 심지어 진태가 진석에겐 건내준 허쉬 초콜릿이 1980년대에 나온 물건이라는 것[21]까지 찾아놨다. 역시 덕중덕은 양덕[22] 사진과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무기가 사용되었고 이 영화의 고증이 꽤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한국전쟁 관련물에서는 별 관심도 안두던 공산권 무기인 모신나강만 해도 3종류나 사용된 걸로 봐서 상당히 신경쓴 걸 알 수 있다.참고바람

여기에 쓰인 총기류 소품은 경로가 매우 다양한데 실물 프롭건, 국내에서 새로 제작된 더미건[23], 원래 쓰던 더미건, 일본제 모델건[24] 등이 다양하게 쓰여 당시 총덕들 사이에서 평가가 높았다. 그 외에도 옛날 교련 때 쓰였던 교련용 고무총도 등장하였는데, 서구권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카메라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사격을 안 하는 조연 등에게는 안전이나 비용 문제 등을 고려해 고무총을 쥐어주며, 이것만 전문적으로 대여해 주는 업체도 있다.

작중 진태가 인민군 포로들끼리 붙여 놓은 싸움에 진석이 스스로 뛰어들어 "어차피 게임이잖아"라는 대사를 읊는걸 고증오류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1940년대에도 스포츠 경기를 '게임'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니 전혀 문제가 없다. 옛날신문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1949년 경기여중[25] 학생들도 정구(테니스)대회를 두고 게임이라는 말을 쓴다. 성적 좋은 고등학생이었던 진석이 이정도 영단어를 모를 리는 없다. 사실 일상적으로 영단어를 쓰는 것은 20세기 후반부터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레디메이드 인생같은 1930년대 작품이나 당시 신문만 봐도 20세기 초중반부터 간단한 영단어가 꽤 흔하게 쓰였다. 물론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 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의 영향때문이다.

작중 몇몇 인민군 육군들의 머리카락이 긴 경우가 있는데,(대표적으로 인민군 육군 대위라든가, 포로라든가) 원칙적으로 당시 인민군 육군의 두발 규정이 빡빡 민 스타일인 건 맞다. 하지만, 전투가 지속되면 그깟 머리길이 따위 신경쓰는 지휘관도 별로 없고, 삭발은 육군 하전사에게만 적용되고 군관은 규정상 단정하게 기를 수 있었다. 포로야 관리가 잘 안되니 머리가 긴 경우도 수두룩한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인민군 육군이 빡빡이 스타일인건 맞지만 일당 몇 만원 받는 엑스트라 머리를 강제로 빡빡 밀수도 없는 일이고 머리가 길다고 무조건 고증오류는 아니다. 다음 사진을 보라.

김포에서 미 해병대에 잡힌 인민군 육군소좌 김친수(조수석)이 인민군 하전사의 머리도 꽤 길다.

극중 진석과 진태가 배치된 부대는 육군 제1보병사단이다. 영화 초반 유해발굴단이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하는 과정에서 진석의 소속부대가 1사단 제8보병연대[26]로 되어있는 장면이 잠시 지나간다. 이 장면을 보면 진석이 참전한 전투는 다부동, 평양, 운산, 장진호(!), 초산, 두밀령 전투다. 이 중에서 두밀령 전투를 제외하곤 모두 1사단이 참여했다. 두밀령 전투는 "피의 능선 전투"로 불리고, 제5보병사단이 참가했다. 하지만 옥의 티는 아닌 것이 이진석은 부상을 당해 대전으로 내려갔다가 원래 동료들과 두밀령 전투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자청하여 깃발부대장 이진태를 재전향시키기 위해 깃발부대가 있는 두밀령에 투입된 것이다. 1사단은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평양에 최초로 진입한 사단이기도 하다. 정확히 어느 부대가 주인공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리고 실제 주인공이 있었다고 한다. 前외교관 윤영엽씨의 실제 이야기라고 한다. 단지 영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영화속에서는 이진석의 형인 이진태가 죽었지만 실제로는 윤영엽씨의 동생이 폭사를 당했다고 한다. 해당링크 참조.

이런 대규모 전쟁 영화로서는 드물게 국방부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고 찍었다. 이유는 2가지인데, 첫번째는 보도연맹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것. 두번째는 형제가 자원입대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징집 당한다는 것이다. 본문 내용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이 2가지를 틀어버리면 흥행은 높은 확률로 망했을 것이고, 극 자체에 대한 평가도 역대급의 감동 대신 개쩌는 반공영화 같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실제로 국방부에서도 이 두 가지 요소를 빼는 것을 찌질하게 협조의 조건으로 내세웠으나 강제규 감독이 거부하고 국방부 협조 없이 찍었다. 허나 우습게도 국방부나 전쟁기념관에서는 만국 국방부 공통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대로 지원을 거부했으나 흥행한 영화의 장면이나 스토리를 적극적으로 언급한다. 몇몇 국방홍보영상에서는 영화의 장면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피난민들이 기차역에 몰려드는 장면의 증기기관차는 촬영 당시 직접 제작한 물건이다. 옛 곡성역에서 촬영했으며, 곡성 기차마을에 관광객용 열차로 남아 있다. 그런데 촬영 이후 폐기된 세트를 안 치우고 방치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나중에 부랴부랴 제작사에서 회수하여 폐기처분했다.

작중 딱 두번 나오는 공습 장면(개전 당일 조선인민군 공군의 서울 공습과 두밀령 전투 직전의 화력 지원) 중 두밀령 전투 때 나온 미 해군 콜세어 전투기는 CG인데, 재현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5 기타

영화의 제목은 1955년 작곡된 김동진 작곡의 곡 '조국찬가의 후렴구에서 따왔다. 장동건은 영화 흥행 이후 자기 휴대폰의 컬러링을 이 곡으로 바꾸기도 했단다.#

제작비화로 원래 이 영화를 국방부의 지원을 받아 촬영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일부 국방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반공청년단의 악행, 강제 징병과 보도연맹 사건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장면 때문에 국방부는 이 영화의 지원을 취소했다. 그러나 학사장교 후보생의 훈련 중 이론수업에 있는 전술학 과목에서 이 영화를 참고문헌으로 사용했다.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이에 해당되는 패러디가 존재하는데, 엘나스 필드의 히든스트리트 맵 중 왕관을휘날리며라는 맵이 존재한다. 특히 올드비라면 기억하기 쉬울 것이다. 맵 이름답게 몬스터 페페들이 빠르게 달리는게 마치 왕관을 휘날리면서 달린다해서 혹자는 이런 의미를 담지 않았나하는 추측. 관계는 없지만 2004년 당시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개봉 이후 메이플스토리에선 오르비스/엘나스를 첫 선보이게 되었다. 그 외에도 온게임넷(現 OGN)에서는 마우스 휘날리며라는 제목의 스타크래프트 1 명경기를 재방송해주는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도 했었다.

식객에서도 나온다. 성찬김진수가 데이트하러 갈때 이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 영화는 김수로가 맡은 배역 중 가장 악역이며 김수로는 비록 카메오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야말로 천하의 개쌍놈의 진수를 보여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에서 미남배우 하면 딱 떠오르는 원투펀치를 주연으로 내세웠다보니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낸 영화라는 드립이 나올 정도의 전무후무한 캐스팅이지만[27] 둘다 영화내내 전쟁터에서 흙탕물 피범벅이 되며 끝장나게 구르는지라 딱히 외모가 돋보일 장면은 없다. 검댕이 묻었을 때가 안 그럴때보다 많았으니... 뭔소리야 검댕이 묻어도 잘생겼구만 검댕이 원빈빨 장동건빨 그리고 이 두 배우는 훗날 같은 배우인 고소영, 이나영과 세기의 결혼을 했다.

또한 럭키짱으로 유명한 김성모는 이 영화와 비슷한 만화인 태극기 펄럭이며를 그렸다. 묘하게 재미있는 만화다. 그리고 이근이라는 만화가가 학습만화로 2편을 출판한 적이 있는데, 국산만화답게 비고증 투성이다.

등장인물의 이름 중 하나인 '이진석'은 마구마구2014에서 이만수 선수카드의 가명이다.(...)우연의 일치겠지..?

여담으로 조연이었던 공형진과 진석을 처형할 것을 명령하던 대대장 역의 김해곤은 같이 가문의 위기에 출연했다.

리버풀 FC크로아티아인 축구선수 데얀 로브렌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하여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

15세 관람가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잔혹한 장면이 많다.[28]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해 머리의 반이 날아가는 장면, 돌로 머리를 여러번 찍어 죽이는 장면, 팔이 총에 맞아 절단되는 장면들이 표현된다. 잔인한 장면 못 보는 사람들은 감안하기를 권한다.
  1. 여담으로 2위가 웰컴 투 동막골이 거둔 801만 관객. 1,108만 관객을 동원한 실미도도 있긴 하지만 남북 간의 대치가 배경이나 한국전쟁이 배경은 아니다.
  2. 실제로 영화의 스토리가 주인공의 회상으로 시작해서 회상으로 끝이 나는 등,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
  3. 이 영화의 제작 스텝들 중 일부는 중국에서 2008년 개봉된 전쟁영화 "집결호"의 제작에 참가해서 노하우를 전해주었다.
  4. 아직 동방신기로 데뷔하기 이전이었다고 한다.
  5. 진태의 약혼자 영신이 반공청년단 때문에 죽게 된다.
  6. 그래서 시체를 치우던 한국 육군 몇 명은 폭발에 휘말려 죽고 몇 명은 척 봐도 장애인이 될 부상을 입는다. 이를 본 국군들은 이 새퀴들! 이젠 이런 함정까지 설치해? 라고 분노로 흥분하고 다음 전투에서 항복하던 인민군을 마구 쏴죽일 정도로 분노했다.
  7. 씨네 21에서는 이게 친북영화? 극중 북한군 이미지는 80년대 반공영화에 나오던 이미지랑 차이가 없는데도? 영화나 보고 욕이나 하는 걸까?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8. 뭐 우리나라도 예왼 아니지라 남부군을 두고도 한국논단이 친북영화라고 징징거리거나 故 이만희 감독이 영화에서 인민군 멋지게 나왔다고 중앙정보부 끌려가 코렁탕 마시고 고생하던 바 있다.
  9. 노년의 진석은 이나가키 타카시가 맡았다.
  10. 진태는 그냥 구두만 닦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구두 장인으로 대성할 꿈을 가지고 있었다. 전차 정거장에서 하교하는 진석을 맞이하고 같이 돌아오는 장면에서 진석에게 구두의 종류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11. 진태가 진석을 징집 열차에서 끌어내려고 하다가 몸싸움으로 번지는데 이 때 진석이 헌병 중대장을 패고 엎치락뒤치락거리면서 싸우다가 진태에게 얻어터지고 쓰러진 중대장이 "너도 징집 대상이야!"라고 말하는 바람에(엄밀히 말하자면 때리기 전에 "동생이 기차를 잘못 탔어요. 우린 내릴 거요."라고 말하자 지휘봉으로 누르면서 한 말이다.) 형제가 같이 잡혀서 군복무를 하게 된다. 당시는 징병령이 정식으로 내려오기 전이었는데도 그 때문에 웬만한 젊은이들을 거의 사냥해가듯이 군대에 끌어갔다고 한다. 백선엽 장군 회고록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어느 청년이 길가다가 지나가던 군인들과 마주쳐서 즉석에서 징집당했는데 청년이 자랑스럽게 면제 증명서를 내밀자 육군 장교가 흘긋 보더니 부욱 찢어버리고 "닥치고 따라와!"를 시전했다는 오금이 저리는 일화도 있다.
  12. 사로잡은 인민군 포로들끼리 싸움을 시켜서 진 사람은 5일 동안 굶는 걸로 했는데 둘 다 싸울 의지가 없자 직접 내려가서 두 사람을 때려눕힌다. 이는 동생을 제대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진석이 결국 형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자신의 변한 모습을 보여주기로 하고 직접 내려가서 인민군 육군 포로들과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13. 진태의 구두닦이 조수이자 진태의 가족과 친했던 용석이 북한 의용군으로 강제 징집되어 참전하고 있었는데 중공군의 대 반격으로 후퇴 과정 중 포로 하나가 저항하자 구경만 하고 있던 용석까지 자기 손으로 죽인다. 양민 학살에 시체에 폭탄을 설치해 놓아서 동료들이 몇 죽어나간 상황이기는 했었지만 진석의 실드로 살려뒀었는데 후퇴 직전 정신 없는 틈을 타 포로 한명이 도주시도를 하고 이 포로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다른 포로 한 명이 아예 인질극을 벌였다. 그래도 도주 시도와 인질극을 한 포로들을 제외한 용석을 포함한 나머지 포로 3명은 저항 시도가 없었다.
  14. 진태가 이 총좌를 보고 대좌라 부르며, 이후 이 생포 작전을 보고받은 대대장도 계속 대좌라 부른다. 현재 인민군 군관 계급은 소-중-상-대 지만 한국전쟁 당시에는 소-중-대-총이었고, 따라서 영화 속 최민식처럼 좌관급인데 계급장에 별이 4개 붙어있으면 현재 인민군 기준으론 대좌지만 한국전쟁 기준으론 '총좌'이다. 진태가 전투 와중에 계급장을 잘못 읽었거나, 제대로 배우질 못해 구분을 못해서 총좌를 대좌라고 오인했고, 이게 보고서에도 계속 남아 오류가 생긴 거라면 고증에 틀린 것은 아니다.
  15. 이건 조금 어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는 공산주의 쪽에서 쌀을 주고 가입을 요구했다는 것. 다음이 그 사례이다. (...)또한 보도연맹 중앙본부 최고지도위원이었던 선우종원(鮮于宗源)도 탈당성명서를 낸 좌익전향자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개중에는 공산당 골수분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어 쩌다 한때 잘못 판단하여 당원이 된 사람과 무지몽매한 탓으로 저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입당한 사람들, 심지어는 무슨 배급을 준다기에 멋도 모르고 도장이나 지장을 찍어준 것 이 알고 보니 공산당 입당원서다는 웃지 못할 수렁으로 빠져 들어간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부지기수다”라고 밝혔다.(울산 국민보도연맹사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16. 첫 발은 어깨에, 두번째 발은 오른쪽 가슴에 맞아 쓰러진다. 이때 가슴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나오는데도 숨을 헐떡이며 영신은 마지막까지 진태에게 사랑한다 말하려다가 숨을 거둔다.
  17. 이때 진석의 만년필 바로 옆에 신원을 알아볼수 없을정도로 불에 탄 백골의 시체가 있었다. 즉, 진태는 그 백골의 시체를 진석의 시신으로 오해한 것
  18. 이때 진석은 전쟁터의 폭격과 총알들을 피하느라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서 얼굴에 흙이 잔뜩 묻어버려 잘 알아보기도 힘든데다가 진태는 동생을 잃은 분노 때문에 눈에 뵈는게 없었다.
  19. 단, 무기등 소품의 고증만 담당했고, 스토리 측면에서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20. 인민군 육군 소좌가 됐다던 이진태가 군복에 달고 있는 견장상위 계급이라거나, 사병이었던 이진석이 육군 보병 장교용 병과장을 달고 있다던가 등.
  21. 해당 크기의 초콜릿은 1980년대에 처음 출시되었고, 영양 성분 표시는 1990년에 의무적으로 표기하도록 법제화되었으며, 현재 쓰이는 바코드의 표준이 마련된 것은 1974년의 일이다. 따라서 1950년에 존재할 수 없다.
  22. 위에도 언급되었듯이 미국에서는 한국전쟁의 별칭이 잊혀진 전쟁일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지만, 참전규모나 전사자 숫자로만 보면 베트남 전쟁과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다. 참전병력 48만명 대 54만명, 전사자 수 36,516명 대 58,209명, 더군다나 베트남전은 십수년을 끌었지만 한국전은 단 3년만에 나온 전사자 수치다. 즉 규모에 비하면 관심이 안습하게 적어서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지만, 현실은 한국전 참전용사를 조상으로 둔 미국인들만 수백만명, 그 중에 할아버지의 무용담을 듣다가 관심을 가지고 파보다가 한국전에 대해서 전 국민이 한국전을 겪은 조상님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보다도 더 해박한 지식을 가진 밀/역덕후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23. 일일이 수제작으로 만드는 것이라 상당히 비쌌다. 제작자는 모 공방을 운영하는 사장이었으나 몇년 전 별세하였다.
  24. 일본 H사의 물건으로 발사 기능은 없고 클립 삽입과 배출, 그외 작동부 가동만 된다.
  25. 1971년 폐교되었고 지금은 경기여자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26. 그런데 전화에서는 12연대 소속 이진석 하사님 맞으십니까 하고 묻는다. 옥의 티이거나 사단 내에서 전쟁 중 재배치된 연대 기준인듯.
  27. 원빈은 당시 영화배우로서 검증된 상태는 아니였긴 하다.
  28.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서는 R등급을 받고, 그 외에도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나라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