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Laffite
(1780? ~ 1825?)
실존하는 해적들 중 한 명.
1780년경에 프랑스의 남부 도시인 바욘에서 태어나 1809년에 형제 피에르와 함께 대장간으로 위장해 노예와 밀수 사업을 했으며, 1810년부터 바러태리아 만에 근거지를 두고 해적으로 활동해 몇 년 동안 스페인 소속의 선박과 노예 무역선들을 주로 목표로 잡고 멕시코 만의 선박들을 급습했다.
노예무역이 루이지애나에서 불법화되면서 농장주들이 바러태리아 근처에서 비밀 경매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 곳에서 노예와 약탈품들을 거래해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1812년 12월에 루이지애나 주지사로 인해 해적 행위와 불법 거래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루이지애나 하구에 깊숙한 곳에서 비밀 경매를 했으며, 1812년에 해상을 두고 영국과 미국의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고 그 와중에 1813년에 500달러의 현상금이 걸리자 주지사의 목에 5천 달러의 현상금을 거는 것으로 대응했다.
1814년 9월에 뉴올리언스 공격을 도와주는 것으로 사면과 금전적 보상을 제안하자 라피트는 자신의 시장이 위협받을 것을 우려해 주 정부에게 그 사실을 알렸으며, 라피트는 미국 정부의 소규모 함대인 스쿠너 선 캐롤라이나 호, 루이지애나 호의 기습 공격에 협력했고 전함들이 바러태리아 만에서 진격해 해적 선단을 나포할 때 해군이 떠날 때까지 하구의 깊숙한 곳에 숨었다.
12월에 영국 해군으로부터 뉴올리언스의 방어 작전을 돕는다면 휴전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영국 해군은 1815년 1월 초에 상륙했다가 패했으며, 한 달 후에 제임스 매디슨에게 사면장을 받았지만 해적 행위를 계속 했고 배 한 척을 훔쳐 텍사스로 향했다. 1817년에 캠페체라는 코뮌을 만들고 새로운 항구를 보유해 해적 스쿠너 선 20척의 지원을 받아 1년 안에 노예와 밀수 시장이 번창했는데, 2년 동안 미국의 선박을 공격했다가 1820년에 브리그 선 USS 엔터프라이스 호의 선장인 비들의 공격을 받아 캠페체는 파괴되었고 잡히지 않았지만 그 행방은 알 수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