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법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해상강도 문서를, 한국 영화에 대해서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개요

해적선을 타고 바다에서 지나가는 를 공격해 화물을 약탈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자들을 일컫는 말. 쉽게 말해 강도. 에는 산적, 초원에는 초적, 말타고 다니면 마적, 바다에는 해적이다. 하늘에는 공적[1] 날아라 슈퍼보드에서는 초적이 들적이라 나온다. "산에 살면 산적, 바다에 살면 해적, 들에 살면 들적."

2 역사

2.1 고대

해적이 언제부터 나타난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대체로 인류가 해상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나타난 종자들이 아닐까...하고 추측할 뿐이다. 고대 이집트 나일강 하구에서 징세관이 탄 배를 습격한 이들이 기록상 최초의 해적. 이들의 역사는 고대의 해양민족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는데 이 해양민족들은 이집트를 습격하고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를 박살냈으며(…) 여하튼 고대세계의 문명들의 흥망을 좌지우지 했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바다 민족을 참고.

역사상 처음으로 해적 소탕이라고 할 만한 일이 벌어진 것은 로마 공화정 시대로 해적들이 증가하여 지중해의 평화가 위협받자 로마 공화정은 당대의 명장 폼페이우스에게 파격적인 대권을 주고 해적을 소탕하게 했다. 폼페이우스는 적극적인 초토화 작전으로 법률상 정해진 기한을 단 몇달 쓰지도 않고서 해적을 몽땅 소탕해버렸다. 그리고 이후 동방을 정복해 나갔으니 결국 해적들이 로마 제국의 확장에 기여한 셈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쨌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는 딱히 해적들이 번창하지는 않았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중세에는 유명한 바이킹들이 서유럽을, 이슬람 해적들이 남유럽을 휘젓고 다녔다. 특히 이슬람 해적들은 기독교인들을 습격하여 돈도 뺐고 성전도 치르고 겸사겸사 노예로도 부려먹고 몸값도 받아내는 등 그 피해가 극심했다. 동로마 제국은 상대적으로 강한 해군력으로 해적들을 억누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3세기경 동로마 제국의 세력이 약해짐과 더불어 해군력 또한 바닥을 드러내자 오히려 해적들이 동로마 제국에 중용되어 해군 전력으로 사용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2.2 중세 이후

13세기에 이르자 레반트에서 쫓겨난 구호기사단은 중앙집권체제여서 수도가 털린 후 정신을 못 차리는 동로마의 영토인 로도스 섬을 점령하여 로도스 기사단으로 개명하고는 이슬람 해적들이 하던 짓을 똑같이 하였다. 이슬람 해적을 섬멸하고 거기 잡힌 기독교도 노예 노꾼들은 해방해주는 식. 당연히 12세기 이후 동지중해를 석권한 베네치아와 연관이 깊을 수 밖에 없었으나 베네치아는 어디까지나 장사꾼 근성(원래 이집트로 가게 되어있던 4차 십자군을 콘스탄티노플로 돌려버린 것도 이집트와의 통상조약에 불침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이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대의를 중시하는 구호기사단과는 마찰이 잦았다.

1561 년 3월 15일에는 '성 스테파노 기사단 (Order of Saint Stephen) 이 창설되었는데, 이들은 구호 기사단보다 한발 더 나아가 이슬람 상선 약탈뿐만 아니라 레반트 지역에 상륙해 지상 약탈까지 벌였다. 토스카나 공국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고.

15세기에 이르러 지중해 무역이 번창하면서 북아프리카 해안에 거점을 둔 바르바리 해적들 역시 더욱 번창했다. 이들은 지브롤터 해협부터 팔레스타인 근해, 심지어 유럽의 북쪽 변방인 아이슬란드까지 휩쓸고 다니며 선박들과 해안 마을들을 습격해 인신매매와 약탈을 일삼았다. 해군의 전통이 없는 오스만 제국은 이들을 적절히 지원하며 국력을 늘려나갔고, 아예 해군의 주요인사로 잘 써먹기도 했다.

지리상의 발견과 스페인아즈텍, 잉카 정복 이후 해적들의 눈길은 소위 스페인 대해라 불리는 곳으로 쏠리게 되었다. 스페인 대해란 스페인이 정복한 카리브해의 섬들과 멕시코만까지를 일컫는 말로, 각종 귀금속을 싣고 본토로 향하는 스페인의 선박들은 해적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특히 영국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이러한 스페인의 선박들을 습격해서 쏠쏠한 수입을 얻었는데 그 뒤에는 엘리자베스 1세의 묵인이 있었고 결국 이는 무적함대의 영국침공을 부르는 한 요소로 작용하기까지 했다.

2.3 캐리비안의 해적

해적역사상 최대의 리즈시절

17세기 말, 대양 무역이 활성화되고 해양 노동자로 전락한 하층민들 중 일부가 상선에서의 열악한 처우에 반발하여 선상 반란을 일으키거나 해적으로 변하기 시작했으나, 결정적으로 이 시기에 해적이 번창한 이유는 유럽이 난장판이 되면서 스페인에게 좀 엿도 먹여 보고 미 대륙에서의 스페인의 영향력도 줄여보고자 한 영국프랑스의 사주로 사략선 허가가 남발되어서였다. 게다가 해적들의 활동 지역이 된 카리브해는 해적질에도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정부에서 관리하기 힘든 작은 섬들이 무수히 많아서 해적들이 임시 기항지로 삼아 숨어 지내거나 매복하기 쉬웠고, 해적질로 털어먹기 좋은 선박들의 항로도 어느 정도 압축해서 추적이 가능했기 때문. 이는 현대 해적들이 주로 출몰하는 말라카 해협 등도 비슷한 조건인데, 카리브 해는 거기 더해서 기후도 따뜻하고 날씨도 나쁘지 않으며 각 섬에서 열대과일 등의 식료품 조달도 쉬웠다. 해적 창궐에 최고의 지역이었던 셈. 똑같은 이유로 제2차 세계대전독일미국에 선전포고한 이후로 크릭스마리네유보트들이 여기로 몰려왔다. 미 동부 해안에서 미 해군미 해안경비대의 대잠초계가 심해지자, 경계가 허술한 데다 숨어서 간단한 정비나 식재료 조달, 휴식 등도 취할 섬도 많고 기후도 따뜻한 카리브 해는 대서양의 추위와 영국 해군 대잠 세력에게 시달리던 독일 해군들에겐 거의 천국으로 여겨졌다.

이 시기인 1690년부터 1740년대까지를 해적의 황금시대 라 부르는데 시기가 유명한 해적들이 많이 나타났고 대중들에게 해적에 대한 로망을 심어준 시기이기도 했다. 대중들의 시선에서 해적은 배 위에서 만큼은 어떠한 국가나 귀족에게서도 자유롭고, 위험한 항해와 함상전투를 벌이며 부자들도 털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인생역전을 꿈꿔보는 사람들로 보였던 것이다. 물론 해적들에게 습격당해서 목숨을 잃고 화물을 빼앗긴 사람들에겐 황금시대란 말이 가당치가 않겠지만...

카리브 근해에서 활동했던 해적들은 보통 슬루프 계열의 2~3마스트 소형선을 타고 다녔다. 이런 배로는 정부의 거대한 전열함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에 잘 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포문은 보통 2~4개로 매우 적은 편이었는데, 그 이유는 해적들은 적재화물을 약탈하기 때문에 포로 인해 화물이 손상되면 손해를 볼 수 있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일화를 들어보자면 보통 여러 척으로 가는 상선대가 아닌 바다를 방황하거나 무풍지대에 갇힌 선박을 약탈했다고 하며 느리고 거대한 상선이 약탈 대상으로써 선호되었다고 한다. 그때 드레이크는 '졸리 로져'등과 같이 해적을 상징하는 깃발을 달고 다녔는데, 그 이유는 상선이 해적 깃발을 보고 저항을 포기하고 소형 보트로 적재 화물을 실어서 해적 쪽으로 보내주라고 요구하는 일종의 표지(?)였다고 한다. 그 후에는 자신이 이 상선을 약탈했고 이 선장은 화물을 횡령한게 아니며 다른 영국 해적이 약탈하려고 하면 이 종이로 약탈을 회피할 수 있다는 내용의 약서를 내주었다고도 한다. 보통 저항하지 않는다면 양측 다 인명 피해는 없겠지만 만약 저항했다면 선장을 포함한 모든 선원을 노예로 팔거나 처형하고 상선은 해적선으로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스페인과 휴전하여 일자리를 잃은 사략선들이 그대로 해적이 되어 버린다. 정확히는 카를로스 3세의 개혁으로 스페인 신대륙 영토의 수입을 본국으로 운반하는 업무를 타국의 상선대에게도 개방한 것이 사략선들에게 치명적이었다. 과거엔 영 / 불의 상업계가 스페인 신대륙 영토의 수익에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략행위에 가담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스페인 정부가 식민지에 기항하는 선박들을 철저히 스페인 국적선만으로 한정했기때문이다. 그런데 개혁으로 인해 안전하게 스페인 식민지의 부에 접근하는 길이 열리게 되자 '하이 리스크 / 로우 리턴'인 사략행위에 투자할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중간에 끼인 사략선들만 물 먹은 셈.

이 시대의 유명한 해적으로 검은 수염이라 불린 에드워드 티치, 막대한 보물을 가졌을 거라고 관심의 대상이 된 캡틴 키드 등이 있다. 이 시기의 해적이 크게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사략선 활동에 따른 해적 소탕의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했던 점과, 식민지 관련 문제로 각국이 해적 토벌에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의 제해권을 장악한 영국해군의 소탕으로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데이비드 코딩리는 이에 대해서, "어디까지나 해적이라는 것은 국가가 인정할 때 활동이 가능하며, 아무리 강해져도 국가에게 필요없어진다면 반드시 소탕된다." 라고 지적했다. 또한 정확하게 말하면 유명한 해적들의 활동은 사략선에서 얻은 경험과 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2.4 현대의 해적

항공기의 출현으로 해상 수송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또한 레이더나 무선 통신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는 해적이 실존하기 힘들 것 같으나, 현대에도 해적은 존재한다. 사실 이전과 비하자면 기술의 발달로 '항공 수송'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비중만 조금 줄어들었다 뿐이지, 여전히 해운이 항운보다 압도적으로 싸게 먹히기 때문에 해상 수송은 아직까지도 절대적인 중요성을 자랑한다. 현대 사회가 이룩한 부와 물질의 총량증가를 생각하면 현대 사회에서 해상 수송은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졌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 해적의 화력과 기동성도 기술 발전에 따라 개선되어, 현대의 해적들은 고속 보트에 AK소총이나 RPG등으로 무장하고 기습공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해적질을 하고있다. 이러면 대형 상선이라도 쉽사리 점거당하기 때문에 여전히 해볼 만한 도박. 특히 해적들이 있을 줄 알면서도 들어가야만 하는 아라비아 만이나 말라카 해협등의 지역은 지금도 해적들이 들끓고 있다. 특히 말라카 해협은 중동의 석유와 동아시아 국가의 무역상품이 반드시 지나갈 수 밖에 없는 요충지로 언제나 상선들이 바글바글한 곳이다. 따라서 이들을 노리는 해적들도 바글바글.

그러나 21세기 들어서 역시 해적질로 가장 유명한 곳은 소말리아. 완전 헬게이트 가 열린 상황이다. 일단 이들의 거점인 소말리아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서 처벌을 받지 않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려면 싫든 좋든 배들이 위대한 항로이 지역을 지나가야만 하는 까닭에 해적이 들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선들도 무장한 보안요원을 싣고 간다든지 하였으나 무장 상선은 입항을 허가하지 않는 항구들이 많아서 간단한 총기로 무장하지도 못하는 비무장 상선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궁여지책으로 물대포 등의 비살상 방어장치를 배에 설치하기도 하지만 해적들을 막기에는 역부족. 결국 해적들의 위협이 점점 커지면서 일반 상선은 이들에 대적하기가 힘들어졌고, 마침내 계속되는 해적질에 열받은 각국이 자기들 해군을 끌고 토벌작전을 벌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다만 최근에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들끓는 소말리아 해역을 피해 수에즈 운하를 통하지 않고 다른 방면을 통해서 지나가는 배들도 늘어났다고 한다. 예를 들면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기 전처럼 희망봉을 돌아서 간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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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망했어요

소말리아/해적 참고.

오늘날에는 해운이 번창한 말라카 해협과 남중국해 일대에서 해적들이 자주 출몰하곤 하며, 악명 높은 소말리아 근해 역시 해적들이 날뛰는 지역이다. 말라카 해협의 해적은 싱가포르 해군이 엔듀런스급 상륙함 갑판에 MLRS들을 방열해 놓고 해적 기지를 그냥 쓸어버린 적도 있을 만큼 골칫거리이다.

그 수는 적지만 하와이 등 태평양의 유명 관광지에서는 폴리네시아계의 태평양 해적도 꾸준히 활동하여 골칫거리다. 미국 태평양 함대의 본진에서 활동(?)하는 해적의 위엄(...) 이들의 목표는 경비의 사각지대에 들어선 관광객의 요트이다. 미 해군이나 해경이 코앞에 있는 연안 해적인데다가 주로 부유한 관광객이 요트를 타니만큼 굳이 몸값을 요구하기보다는 현장에서 바로 장신구 등 관광객이 소지한 귀중품이라거나 고급 주류, 장식품 등 요트에 실린 고가의 화물을 쓸어담고 곧바로 튀고 간혹 아예 요트 자체를 탈취하는 간 큰 짓을 벌이기도 한다. 항해 기술이 없는 관광객이 현지에서 항해사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 위장한 해적을 고용한다면 그대로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직행. 필요하면 일부러 저항하는 척 하다가 부상을 입는 자해까지 하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철저히 하기때문에 적발이 굉장히 어렵다고. 고래 관찰 등을 이유로 먼 바다까지 나온 유람선도 항로가 뻔하기때문에 보안이 취약한 작은 유람선을 나포하여 관광객의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태평양의 망망대해에서 원양 어선은 해적 대비가 없다시피하여 위치만 정확하면 아주 쉬운 목표가 되는데, 선원의 금품이나 몸값보다는 주로 장비나 아예 선박 자체를 노리는 경우가 많다.

2.5 한국 역사 속 해적

한국 역사에도 해적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통일신라 말 ~ 후삼국시대에 존재했던 신라구의 약탈과 왜구의 약탈이 있다.

신라구는 신라 말과 후삼국시대의 혼란기를 틈타 신라 유민으로 구성된 해적 집단으로 일본 측 기록에서는 일본큐슈쓰시마 섬 등을 약탈하였고, 한국 측 기록에도 드라마 태조 왕건 덕에 별명 수달이 더 유명한 능창 등 후삼국시대의 근해 해적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후삼국시대 이후에는 고려에 편입되었다.

왜구는 고려말까지 국가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침략을 벌였으며,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은 조선 초까지 이어졌다. 이에 고려와 조선은 해군력을 키우고 무기개발에 힘써 왜구의 침략을 막아냈다. 덕분에 조선의 해군력은 연안전력으로만 봤을 때는 당대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주력선인 맹선의 경우 원해로도 나아가는게 가능해, 버마, 타이에서 사신이 방문했을때 왜구로부터 보호를 요청해 일정거리까지 호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맹선은 함대함 포격전에 취약했고, 명종 기에 판옥선이 개발되면서 빠르게 포격전 중심의 판옥선으로 교체되었다.

뿐만 아니라 명-청 교체기 때 가도에 주둔한 모문룡군과 명나라 유민들이 사실상 해적 행위를 하여 조선의 골치를 만들게 했다.#

이렇게 보면 해적의 역사가 길고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해적은 떼강도이며, 매우 흉악하고 잔인한 무리라는 점은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덕분에 해적이 날뛰는 지역은 해안가에 사람도 없고 마을도 없는 황무지가 되기 일쑤며,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도 해안가에서 털어먹을 것이 없는 해적들이 상륙해서 몸소 찾아갈 정도였으니 사실상 피해를 안 입은 지역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행동을 단편적인 역사책만 보고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3 해적의 구분

서구권 해적은 버캐니(프랑스 식으로 부카니에(boucanier). '부랑자'라는 뜻도 있다고 함), 파이러츠, 커세어(프랑스 식으로는 코르세르(corsaire)) 등으로 불리우며 각기 다른 점이 있다.

'파이러츠'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사략선들이 사략선 활동이 중지되자 해적화 된 것으로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일부는 아프리카 서해안까지 활동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버캐니어'는 프랑스계열 개척민들이 주축이 된 해적으로 북미 식민지에 근거지를 갖고 있었고, 원래는 강에서 활동하던 수적이었으나 활동 범위가 바다로 확대된 것. 이들은 주로 정글에서 돼지를 사냥하며 Boucan부칸이라는 이름의 보존방식을 지켜왔는데 이 이름에서 버카니어가 나오게 되었다. 이들은 또한 총신이 긴 라이플로 저격을 잘 하는 것으로 악명높았다고. 사략선이 해적화된 파이러츠와는 달리 기반이 되는 배가 없었기에 이들의 주 전략은 작은 배나 뗏목(...)을 가지고 해안가 연안에 정박한 상선에 몰래 다가가서 저격으로 주요인물들을 암살한 뒤 총알로 돛줄을 끊어서 배를 무력화 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점점 더 좋은 배를 탈취해나간 뒤에 바다의 버카니어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

'커세어'는 지중해에서 활동한 알제리, 모로코, 리비아 등지의 이슬람계 해적으로 이슬람 왕조들의 지원을 받았으며, 전시에는 오스만 제국 등의 이슬람 왕조 해군의 주축이 되었다. 이슬람 해적만이 아니라 똑같이 이슬람 선박을 습격하는 성 요한 기사단(몰타 기사단)과 같은 기독교도 해적도 커세어라고 불렀다. 미 해군 전투기 F4U(2차대전), A-7(현대) 및 프로토스 제공함선 커세어의 유래.

버캐니어와 파이러츠는 배위에서 당대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평등사회를 이뤘고 인종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약탈행위 후 공정한 분배를 하고 선장을 투표로 임명/교체하는 등 민주적인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커세어는 선장 자신이 이슬람의 토호였고, 부하들을 거의 노예다루듯이 다뤘다고 하며, 수입의 일정부분을 자신을 후원하는 이슬람 왕조에게 바치는 일종의 사략선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프랑스어 사전에서 커세어(코르세르)를 찾으면 사략선이라는 뜻도 있다.

한반도 인근의 해적은 대부분 왜구였다. 왜구의 악명이 워낙 높아서 중국인 해적 등이 스스로 왜구로 위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부 왜구가 아닌 해적 중에도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친 경우가 있는데, 일단 신라 말에 국가 혼란 속에서 등장한 신라구가 있었고, 또한 고려시대에는 여진족이 해적질을 많이 해 울릉도 등지는 완전히 초토화되었다고 한다.

동양에서 왜구 이외의 해적이라 하면 단연 베트남/중국 계열 해적. 베트남~중국 광동성 국경의 치안 공백지역에 거주하며 열심히 양국의 민간인과 상인들을 약탈했던 부류로 특히 베트남 남북조를 통일한 떠이선 당은 이 해적들을 이용하여 청나라을 견제하기도 했다. 그러다 청나라에서 해적들에게 해적행위를 관두는 조건으로 신변과 재산 보장 및 관직을 수여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근데 얘들이 동료를 모으는 방식은 다름아닌 미트스핀 이었다고(...)

4 현실은 시궁창

창작물에서와는 달리 실제 해적들의 생활은 당연히 낭만적이지 않았다. 이들은 잡히면 처형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잡히지 않더라도 해적끼리의 싸움으로 죽는 경우가 많아 평균 수명은 50대를 넘기지 못했다. 게다가 이들은 엄청난 보물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무역선의 화물, 심지어는 고기잡이 배를 털기까지 했었다. 거기에다가 캡틴 키드의 경우 살기 위해 항복했다가 교수형당하기도 했다. 현시창의 대표적인 예랄까...

아무튼 그나마 풍요롭고 명예로운 삶을 살다 간 해적의 예는 헨리 모건, 프랜시스 드레이크 정도가 있고, 그나마 이 드레이크도 열병으로 5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게다가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잉글랜드 정부가 인정한 사략선의 해적이자 동시에 해군 장성이기도 했다. 그러니 인정을 받지못한 해적의 수명은 말할 필요가 없다. 깔끔하게 은퇴해서 죽은 유명한 해적의 예는 '존 보웬'이 유일하지만 이 사람도 풍토병으로 사망했다. 이슬람권 해적으로는 하이르 앗 딘이 최고의 성공 사례. 이쪽도 프랜시스 드레이크처럼 그냥 해적이 아니라 오스만 제국의 해군 총사령관(카푸단 파샤) 겸 북아프리카 대총독이라는 위엄찬 관직을 가지고 있었으며, 죽을 때는 문상객으로 집이 미어터질 지경이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터키 해군의 아버지' 로서 국가적인 추앙을 받고 있기도 하고. 그러나 자기 자신은 천수를 누렸지만, 형과 동생들이 스페인이나 성 요한 기사단 등과 싸우다 전사하는 등의 아픔을 겪었으니 삶이 마냥 장밋빛이었다고만은 볼 수 없겠다. 그밖에도 동아시아에서 정일수가 깔끔하게 항복해서 오래오래 잘 살았다.

특히나 바다 한가운데서 식량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땐 가죽신발을 삶아먹거나 하며 처절하게 보냈으며, 심할 경우엔 인육을 먹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만 표류시 인육을 먹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건 국내 인터넷에 와전되어 알려진 사실인데, 또한 보름이상 표류시 식인이 허용된다는 것은 출처없는 루머에 불과하다. 18~19세기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해양법이란 없었고, "Law of the Sea"는 뱃사람들간의 관습법이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뱃사람들이 우리끼리 일 처리할때는 이렇게 하자!하는 규격화되지 않은 암묵적인 동의인 것이다. 또한 "인육을 먹어도 살인으로 처벌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사하거나 병사한, 즉 자연사한 시체의 인육을 먹어도 긴급피난상 살인으로 처벌받지 않는 것이다. 만약 같이 굶고 있지만 멀쩡히 살아있는 동료 여행자나 뱃사람을 살해하고 그 인육을 먹은 경우 여전히 살인죄로 기소가 되고 해당하는 벌을 받았으며, 해적들의 무법자적 성향을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들이 처벌받는 이유는 동료를 먹을 목적으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당장 해적들이 누군가가 아사하기를 기다리거나 자발적으로 날 먹으시오 하고 나서지는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었으며, 다시 말하지만 식인 자체가 처벌대상인 것은 아니다.

해적은 배당금이 모이면 배를 떠날 수 있게 되는데 계급에 따라 받는 배당금이 다르다. 규칙 또한 엄격하여 취침 시간은 정확히 지켜야 되며(밤늦게 술 마시고 싶으면 혼자 갑판에서 불도 키지 말고 마셔야 된다.) 다른 것보다 여자는 배에 절대 있을 수 없으며, 배에서 발견 즉시 사형이었다. 여자가 해적이 된 예는 있지만 남장여자가 아니고서야 불가능.

그럼에도 "캘리코" 잭 래컴(Calico Jack Rackham)으로 알려진 존 래컴이라는 해적은 메리 리드(Mary Read)와 앤 보니(Anne Bonny)라는 두 명의 여해적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물론 잡혀서 교수형. 두 여자 해적은 임신중이라 집형이 미뤄졌다. 그 후 메리는 1721년 감옥에서 사망하였으나 앤의 마지막 운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체포될 때 두 여해적은 끝까지 싸웠지만 래컴은 선창 구석에 짱박혀서 벌벌 떨었다고 한다. 물론 부하들의 반응은 "아놔 저런 ㅄ이 대장이었나염?", 메리와 앤도 사형장에서 "남자답게 싸웠더라면 교수형은 피했을 거야!"라고 외쳤다카더라.

이들은 모두 해적의 규율(Pirate Code)에서 비롯된 전통들이다. 사실 해적의 황금시대(17-18세기)의 해적들은 그 당시 기준으로 어마어마한 복지와 보험, 보상으로 유명했다. 전투중 신체의 일부를 잃었을 경우 얼마를 보상해주는 가에 대한 규율까지도 세세히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신체를 잃은 선원은 은퇴를 하던지 자기가 원하는 만큼 얼마던지 해적선에 머물며 동등한 배당금을 받았다.

이렇게 혁신적인 규율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뱃사람들이 겪었던 열악한 대우와 처분에 있었다. 해군이나 사략선에서 싸우다가 부상을 당할 경우 아무런 보상 못받고 버려졌으며 그렇게 길거리에서 구걸하다 죽어가는 동료들을 너무나도 많이 봐왔던 것. 여기에 더해 한번 해적으로 찍힌 이상 다시는 문명을 밟지 못할 운명까지 더해져 결국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게 되고 이에 따라 자율적으로 지키게 된 해적의 규율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이들 고유만의 사회가 등장하면서 나소의 배규모 무허가 항구와 마다가스카의 '리베테리아'라는 해적공화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4.1 형법상의 해적

형법상에서는 형법 제340조(해상강도)에서 해적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해상강도 참고.

또한 해적은 인류의 공적이므로, 어느 나라 군경이든 이를 나포하여 처벌할 수 있다. 이는 유엔해양법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105조에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On the high seas, or in any other place outside the jurisdiction of any State, every State may seize a pirate ship or aircraft, or a ship or aircraft taken by piracy and under the control of pirates, and arrest the persons and seize the property on board. The courts of the State which carried out the seizure may decide upon the penalties to be imposed, and may also determine the action to be taken with regard to the ships, aircraft or property, subject to the rights of third parties acting in good faith."

"모든 국가는 공해 또는 국가 관할권 밖의 어떠한 곳에서라도 해적선, 해적 항공기, 또는 해적 행위에 의해 탈취되어 해적의 지배 하에 있는 선박, 항공기를 나포하고 그 선박과 항공기 내에 있는 사람을 체포하고 재산을 압수할 수 있다. 또한 나포를 행한 국가의 법원은 해당 해적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결정할 수 있으며, 선의의 목적에서 행동한 제3자의 권리를 존중할 것을 조건으로 그 선박, 항공기 또는 재산에 대하여 취할 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

5 실존한 유명 해적

6 문화 컨텐츠로서의 해적

7 기타

양식장에 침입하여 양식 어패류에 피해를 입히는 생물을 해적 생물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해적 생물로 불가사리가 있다.

중국 어선들이 한국 영해에서 불법 조업을 할 뿐만 아니라 한국 어선이 설치한 어구를 훔쳐가고 잡힌 고기를 털어가는 등의 행위를 하며, 한국 해경의 단속에 대해 흉기를 들고 대항하기 때문에 이들을 해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니, 사실상 해적과 다름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심지어 한국 영해만 털어가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다만 아무래도 한국이 가장 가까운 나라중 하나이니 불법 조업도 많이 일어나는 듯.

MLB피츠버그 파이리츠NFL 탬파베이 버커니어스가 해적을 모티브로 한 스포츠팀이다.

8 관련 문서

  1. 취소선은 그어놨지만,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에서는 직업의 하나로 나오고, 만화 엘르멘탈 제라드와 애니메이션 라스트 엑자일 은빛 날개의 팜의 주인공은 공적단 출신이다. 즉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창작물에서는 가끔씩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