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주의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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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do Justicialista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 정당 연합체이다.
흔히 페론당이라고도 한다.

한국의 정의당과는 연관이 없다

다음은 페론주의를 표방하는 페론주의 계열의 정당들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페론주의를 표방한다는점만 같지 각 정당들의 성향은 천차만별이라는 점에서 유의.

  • 승리를 위한 전선[1]
  • 페론주의 연방[2]
  • 혁신전선[3]

역사

본래 후안 페론은 1945년에 노동당을 창당하였지만 당내에서 의견대립이 일자 1947년에 노동당을 해산하고 페론당을 새로 창당하였고 곧 집권당이 되었다. 이 시기에 압도적인 집권당이 되면서 페론주의의 틀을 이루는 정책들을 시행했지만 언론탄압이나 나치 인사를 받아들이는 문제때문에 욕을 먹기도 하였다.

여하튼 여성참정권 도입이나 노동자 권익 확충으로 지지기반은 탄탄했으나 에비타가 사망하고 후안 페론이 이혼 합법화 문제로 가톨릭 교회와 척을 지게 되면서 점차 인기를 잃게 되고 1955년의 쿠데타로 후안 페론이 실각하면서 정의주의자당도 불법정당이 되었다. 그러나 페론당의 지지기반이 위낙에 탄탄했던탓에 페론당의 재합법화 여론이 다시 일기시작하였고 1962년에 페론당원 중 일부가 그러나 페론당의 세가 다시 확장되어나가자 쿠데타가 벌어져서 1966년에 페론당은 다시 해산되었지만 게릴라전이 벌어지는 등 혼란이 이어져서 결국 협상을 통해 1973년에 페론당은 다시 합법화 되었고 1973년 캄포라 대통령이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임시 대통령직에 취임하면서 페론당도 다시 집권당이 되었고, 후안 페론은 그 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을 거둠으로써 화려한 부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후안 페론은 얼마 안가 사망하였고, 오일쇼크의 여파로 경제마저 어려워지고 후안 페론이 사망함으로써 구페론파 내의 계파갈등도 중재자가 사라지면서 극심해지는 등의 혼돈이 빚어졌고 후안 페론의 세번째 아내였던 이사벨 페론은 이 사태를 되려 악화시켰다. 그리고 1976년의 쿠데타로 페론당은 다시 불법정당이 되었고 페론당의 당원들 중 상당수가 군사독재정권이 행한 더러운 전쟁으로 수백-수천명가량이 사망한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민주화 이후에 급진시민연합이란 양당체제를 구축했지만 1983년 대선에서 리올 알폰신에 밀려 제1야당정도의 자리를 차지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라올 알폰신 정권이 임기 말에 경제위기로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조기 퇴진하였고 1989년 대통령 선거에서 시리아 아랍인 출신인 카를로스 메넴이 당선되었고 이후 10년간 보수적인 정책을 펴서 보수정당으로 이름을 날릴듯 싶었는데... 1990년대 후반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경제도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였고 결국 1999년 대선에서 패배하여 야당으로 전락하는듯 싶었다. 그러나 2001년 경제위기로 급진시민연합이 몰락하고 대통령이 여러번 바뀌는 혼란이 펼쳐졌고 이 와중에 페론당은 다시 집권당이 되기는 했지만 정국의 혼란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두 알데가 취임하고 나서 겨우 진정세를 보였다. 그리고 2003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페론당에서 3명의 후보가 따로 출마하면서 예상을 뒤엎고 카를로스 메넴이 1위를 차지하였지만 결선투표를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70%를 넘어서자 그대로 사퇴하였고 키르치네르가 단독출마한 형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여하튼 이때를 기점으로해서 페론당은 여러개의 정당으로 분당되었다. 그 이후로는 야당들의 이합집산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승리를 위한 전선이 IMF 조기극복의 공으로 10여년간 집권을 하게 되었다가 2015년 대선에서 경기침체의 여파로 근소한 표차이로 비 페론주의자 후보(마크리)가 당선되었다. 사실 1차 투표에서는 페론주의자 후보가 과반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페론당이라고 해도 각 정당에 따라 성향이 다르기때문에 별 의미는 없다.
  1. 중도좌파, 페론주의 좌파 정당으로 키르치네르주의를 표방한다
  2. 정통 페론주의, 페론주의 우파정당,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제3의 위치등을 표방한다.
  3. 중도우파, 자유주의적 페론주의 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