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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법 외의 별도의 대한민국 법률로 출입이 금지된 지역 | |||||||
?width=70 북한 (국가보안법) | ?width=70 남극 (남극활동법) |
시리아 아랍 공화국 الجمهورية العربية السورية Al-Jumhūriyyah Al-‘Arabīyah As-Sūriyyah | ||
국기 | ||
국장 | ||
면적 | 185180㎢ | |
인구 | 17,185,170명 (2016년)[1] | |
수도 | 다마스쿠스(دِمَشقُ) | |
정치체제 | 대통령제 | |
대통령 | 바샤르 알 아사드 | |
총리 | 이마드 카미스 | |
시차 | UTC+2 | |
공용어 | 아랍어 | |
국교 | 이슬람 | |
민족구성 | 아랍인 90.3%, 쿠르드족 6.3%, 기타 3.4% | |
1인당 GDP | 명목 4600$(2009) | |
화폐 단위 | 시리아 파운드 (S£) | |
대한수교현황 | 북한 단독수교(북한 1966년) |
시리아의 국기.
이집트와 결성했던 아랍 연합 공화국(1958~1961)의 국기와 같으며, 아랍민족,사회주의를 중시했던 바트당의 이념을 나타낸다.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에는 아사드 지지자들과 시리아 정부군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시리아 반군이 사용하는 시리아 국기.
프랑스 위임통치령 시절에 재정된 이래 1963년 바트당의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 사용되었던 국기다. 시리아 내전 초기에 반 아사드 세력인 과도정부에서 아사드 정권을 부정하는 의미에서 채택한 깃발이며, 정권부정을 위한 상징으로 과거 국기를 다시 채용한 것은 리비아와 비슷하다. 현재는 반 아사드 반군의 상징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외에 북부의 쿠르드 지역에서는 시리아 쿠르디스탄기가, 동부의 IS점령 지역에서는 IS깃발이 각각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목차
1 개요
내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독재정권의 인권 탄압과 군사 쿠데타와 같은 정정 불안 정도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가난하되 살만한 국가였지만 2011년 내전 발발 이후에는 소말리아[2], 남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북한[3]과 더불어 현세에 강림한 지옥.
서아시아에 위치한 국가. 정식 국명은 '시리아 아랍 공화국(الجمهورية العربية السورية, Al-Jumhūriyyah Al-‘Arabīyah As-Sūriyyah)'. 친서방 반정부 단체 시리아 국민연합도 같은 국명을 사용. 아랍어로는 수리야(سوريا)술이야라고 불린다. 시리아(Syria)는 라틴어 표기[4]다.
면적 185,180km², 인구 약 2300만명 내외였으나 내전으로 인구 유출이 많기 때문에 이후 출생자를 합해 2,0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고 이 중에 거주지가 확실한 사람은 인구의 50% 정도로 이들은 수도 다마스쿠스와 라타키아, 타르투스 등 서부 해안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2011년부터 독재와 내전으로 유명해진(...) 나라이자,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알 카에다 등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목적지가 되어가고 있는 참으로 불쌍한 나라다. 자세한 것은 밑의 시리아 내전 문서 참고.
북쪽에는 터키, 동쪽-동남쪽에는 이라크, 남쪽-서남쪽에는 요르단, 서남쪽에 이스라엘, 서쪽에 레바논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고 서쪽에 지중해와도 접해 있어서 지중해를 건너면 키프로스와 남유럽 국가들이 나온다.
수도는 다마스쿠스(다마스커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며 기독교 신약 성경에서 사도 바오로가 회심했다는 도시이기도 하다.
인기있는 애완동물인 골든햄스터가 이 나라에서 포획되어 이후 실험, 애완용으로 널리 길러지게 된다.
어쌔신이 탄생한 곳이 바로 시리아다. 시리아 암살단의 근거지인 마시아프 성은 아직도 남아있으며 어쌔신 크리드에 등장하며 매우 유명해졌다.
레바논과 더불어 아랍권에서 미인이 많은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는데[5] 오스만 제국 시절에 파디샤(황제)들이 시리아 여인들을 데려왔을 정도였다고, 물론 실제로 가보면 실망할 기새도 없기도 하지만 총알과 폭탄이 돌아다니는 곳이라할수도 있겠지만 남유럽인들과 비슷하게 생긴 편이다. 애초에 북아프리카와 레반트 지역의 아랍인들은 남유럽 지역의 라틴계나 그리스인하고 외형적으로 어느정도 흡사한 편이다.
그리고 생각외로 중남미국가들과 관계가 깊다. 2016년 리우올림픽 개막식을 보면 알수있지만 19세기 중순부터 20세기 초까지 이민붐이 일어서 상당수 시리아인들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 중남미 국가로 대거 이주했으며[6]아르헨티나에서 대통령도 배출했을 정도이다(1989~99년 제 50대 대통령 카를로스 메넴[7]).[8] 다만 미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적었기에 미국과의 관계는 그리 깊지는 않지만 애초로 미국으로 대거 이민갔으면 미국이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이스라엘 편을 들어줄 일도 없겠지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가 시리아계다. 다만 스티브 잡스는 아주 어렸을때 미국인 가정으로 입양되었기 때문에 자기가 특별히 시리아계라는걸 인식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뭐 지금도 생존했으면 시리아 난민을 대대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거의 평행세계의 일인지라 여하튼 그 이후로는 이민은 비교적 적었지만 간헐적으로 학살사건이나 독재등의 문제로 이웃 아랍국가로 이민가는 경우는 있었으며 2010년대 와서는 내전이 벌어져서 터키나 레바논, 이라크, 요르단, EU, 캐나다 등 해외로 이민이 급증하여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시기를 훨씬 넘어서는 이민붐이 불고있다.
2 자연
중동에 위치한 사막 국가라고 생각하고 입국했다가 꽤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사막성 기후 지역도 많지만 은근히 남유럽 분위기가 나는 초원 지대부터 시작해 눈이 내리는 지역도 있고 특히 지중해와 맞닿는 곳도 풍광이 매우 아름답고 곡창지대도 풍요로웠기에 2000년대까지는 꽤 살 만한 나라라 여겨졌었다.[9]
그리고 뒤에 나오듯이 안타깝게도 이 기후가 시리아 난민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시리아의 북부는 남한과 비슷한 위도(수도인 다마스쿠스가 33°)에 위치한다. 남부는 제주도와 위도가 비슷하다. 위도만으로는 남한과 꽤 많이 겹친다. 그러나 대륙의 서부에 위치하므로 대륙의 동부에 위치하여 시베리아 기단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한국에 비해 기온은 넘사벽으로 높다. 해안 지방은 지중해성 기후 지대며, 내륙 지방은 스텝 기후와 사막 기후 지대에 속한다. 전반적으로 겨울철은 대륙 동부에 비해 기온이 상당히 높아 크게 춥지는 않고 강수량이 많은 편이고, 여름철은 사막의 영향으로 기온이 많이 올라가나 강수량이 매우 적어 건조하다.
북부에 있는 알레포는 대전광역시와 비슷한 위도[10]에 위치하나, 겨울철 평균기온은 제주도와 비슷하다. 참고로 대전의 1월 평균기온은 -1°C다.
7~8월의 평균최고기온은 35°C 이상으로 한국에서 가장 더운 것으로 알려진 대구광역시보다 훨씬 높다. 대구의 7~8월 평균최고기온은 30°C ~ 31°C 내외다. 수도인 다마스쿠스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제주시와 거의 비슷한 위도(정확하게는 다마스쿠스의 위도가 아주 약간 더 높다.)에 위치하고 해발 약 700m의 고지대에 있으나 제주도보다 기온이 훨씬 높다. 다마스쿠스의 겨울 평균기온은 제주도보다 약간 더 높고, 여름철에는 건조하여 최저기온은 낮지만 평균최고기온은 35°C 이상으로 상당히 덥다.
그런데 시리아의 위도가 대한민국과 비슷할 정도로 높은 편이기 때문에 북쪽의 찬 공기가 종종 내려오기도 하며 이럴 때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때때로 눈까지 내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마스쿠스나 알레포에 눈이 자주 오는 것은 아니다. 매년 오는 것은 아니며, 수년에 한차례씩 온다. 다만 지중해성 기후에 가까워 겨울철 강수량이 많고 가끔 폭설이 되어 내려 눈 때문에 큰 소동이 일어나고는 한다. 다마스쿠스에 폭설이 내렸다는 뉴스 보도
중동전쟁 중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골란 고원 일대를 빼앗고 이의 반환을 꺼리는 것은 군사적 요충지라는 문제 외에도 이 지역의 물과 곡창지대가 값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다 이 지역에 이미 10만이 넘는 유태인이 농장을 짓고 2만여 시리아인과 공존하는데(마즈엘 샴스 지역) 여기서도 이스라엘이 걸핏하면 시리아인들을 뭉개고 있다. 일단 자국민이 엄청나게 사는 만큼 그냥 돌려주긴 껄끄러울 것이다. 이 점을 노렸을 수도 있고.
그러나 이것도 옛날 얘기. 지금은 난민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함부로 뭉개기가 힘들 지경이 되었다. 이스라엘 극우들조차도 구경해야 할 정도다. 난민 숫자가 이스라엘인들이랑 맞먹을 정도고 계속 몰려들고 있는데 예전처럼 뭉개다가 난민들이 죽어라 덤벼들 수도 있거니와 안 그래도 다에시가 욕 먹던 걸 도로 이스라엘이 욕 먹게 될 일이니까. 여기 살던 이스라엘인들이 시리아인들을 피해 다닐 지경이다.
게다가 최근엔 중동의 급격한 사막화를 시리아도 피할수가 없어 극심한 가뭄까지 닥쳐 그동안 없었던 물부족까지 시작되었다. 이는 가뜩이나 내전으로 개막장이 된 시리아를 생지옥으로 만들고 있다.
3 역사
서아시아의 역사 | |||||
레바논 | 바레인 | 사우디아라비아 | 시리아 | 아랍에미리트 | |
예멘 | 오만 | 요르단 | 이라크 | 이란 | |
이스라엘 | 카타르 | 쿠웨이트 | 키프로스 | 터키 |
고대에는 시리아 동부를 중심으로 한 미탄니 왕국 등의 독립국가가 있었으나 대부분의 기간동안 독립국가가 없었다. 페르시아 제국, 알렉산드로스 제국, 셀레우코스 제국,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이슬람 제국, 십자군, 셀주크 투르크, 몽골 제국, 오스만 제국, 메흐메트 알리 치하의 이집트 왕국 등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강국들의 지배를 받았다고 해서 시리아가 깡촌이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게, 오히려 너무나 꿀땅이라서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강국들이 1순위로 노리는 타겟이었다고 보면 된다. 특히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가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페니키아를 포함하는 팔레스티나 지역, 시리아 지역을 통과해야 했다. 팔레스티나-시리아의 좁은 통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막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지리적 위치 때문에 정치적 독립과는 별개로, 다마스쿠스라던지 안티오키아 같은 수많은 고대 도시들이 발달했고, 비잔티움 제국 시절에는 '안티오키아 학파'가 신학계에서 명성을 얻기도 했다. 특히 다마스쿠스는 BC 1100년경에는 이미 아랍인들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명성을 날렸다. 또한 우가리트는 BC 6000년경 건설된 도시로, 수메르나 이집트와 비교해도 딱히 꿀리지 않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1920년 시리아아랍왕국을 선언하였으나 불과 몇 개월 뒤 마이살룬 전투 패배로 프랑스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프랑스는 시리아를 위임통치령으로 삼고 지배를 공고히 하였다. 현재의 시리아는 1944년에 프랑스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하였고, 1946년 프랑스는 군대를 철수시켰다. 1958년 이집트와 통합하여 아랍 연합 공화국을 결성한 적이 있었지만 시리아 측과 이집트 측의 견해차가 계속 커져 1961년 인민당의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탈퇴하였다. 1970년 알라위파(시아파의 분파) 출신의 하페즈 알 아사드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시리아에서는 알라위파 중심의 공고한 군사독재 체제가 자리 잡았으며, 이를 기반으로 2000년 바샤르 알 아사드가 대를 이어 시리아의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2011년 3월 아랍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받은 시민 저항이 격화되어 내전으로 치달았고, 5년이 지난 현재도 진행 중이다.
3.1 2011년 시리아 내전
2011년 아랍권을 뒤엎은 민중혁명 여파가 시리아에도 들이닥쳤다. 3월 15일 일부 도시에서 시작된 시민저항은 3월 24일까지 몇몇 시위가 추가로 벌어져 진압 과정에 5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때만 해도 시리아 민주화 운동은 아랍의 봄 가운데서 아주 작은 일이라서 이집트나 튀니지처럼 될 가능성은 여전히 적어보였다.
튀니지에서 벤 알리가 축출될 때 이집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가 내쫓기고 리비아가 뒤집힐 것으로 여겼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시리아는 세 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 시리아의 알라위파나 기독교 세력 등 소수 종파들이 아사드를 지지한다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11] 때문에 시리아 같은 경우에 세 나라처럼 될지 어찌될지 전망하기 어려웠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이런 문제에 부채질하며 시리아의 고민으로 떠오른 게 이라크 난민을 받아주면서 겪는 사회적 문제다. 이미 100만에 가까운 엄청난 난민을 받아주었더니만 이들이 저임금으로 일하면서 자국민의 실업률 증가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먹는 것 하나는 그리 걱정 없던 튀니지도 이런 실업 문제가 시발점이 되어 폭발했다. 리비아조차도 자원의 힘이긴 해도 일단 굶주리진 않았었다. 그러니 시리아의 이라크 난민 문제 역시 그 이상으로 심각했다.
게다가 굶주림과 실업은 종교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시리아 내 기독교인들은 아사드가 무너지면 이라크와 같은 참혹한 신세가 될 게 뻔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렵다 해도 아사드를 지지하는 점은 여전하다. 2012년 7월 18일자 한국어판 및 영어판 뉴스위크 지를 보면 다마스쿠스를 가서 취재했는데 알라위파 신도 및 기독교 신도들은 정말로 아사드를 굳게 지지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이들은 반군이 자신들을 따르지 않으면 가게를 불태우고 약탈한다면서 폭도라고 이를 갈고 '민병대를 조직해서라도 아사드를 지키겠다. 시리아에서 쫓겨나면 우린 파멸' 이라고 강조했다. 반군에게 공격받아 팔과 다리를 잃은 기독교 군인이 이 상태라도 반군이 온다면 자폭해서라도 그들을 죽이고 아사드를 지키겠다고 당당하게 인터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2013년 이후 다에시의 출현으로 뒤바뀐다.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면서 시리아가 100만여명의 이라크 난민들을 걱정하던 게 되려 주변 나라들 전부가 1000만명의 시리아 난민들을 걱정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12]
2012년에 들어서도 사태는 날이 갈수록 악화, 결국 7월 19일에는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반군과 교전이 벌여지고 국가보안기구 건물에 폭탄 테러가 발생, 국방장관이 살해되는 등 소말리아 못지않은 헬게이트가 열렸다.
[13]
정부는 반군의 공격을 격퇴했다고 주장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수천 명이 죽고 반군의 공격으로 국방장관이 살해되는 상황은 확실히 정부군이 수세에 몰렸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
10월 들어서도 상황은 여전하다. 이미 리비아나 다름없는, 아니 오히려 리비아보다 더한 상황이지만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리비아와 같은 국제 사회의 군사 개입 가능성은 요원한 상태. 최악의 경우 티토 대통령 사후 연방구성국가들간 내전과 종교, 민족 집단간 폭력, 학살 등으로 인해 6개의 슬라브인 소국들로 공중분해된 동유럽의 유고슬라비아처럼 종교와 종파, 민족별로 사분오열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실질적으로 이스라엘 등 서방측에서는 이미 2002년 무렵부터 시리아가 붕괴될 경우, 아사드 일족을 중심으로 한 알라위파 및 소수 종파들 vs 수니파로 국가가 분열될 가능성이 있고, 그 경우 알라위파를 도와서 시리아 내부의 분리 독립을 막고 영토 통합과 안정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류들도 나타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불과 10여 년만에 현실화 될 것이라고는 당사자들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세력 균형이 존재하기에 이대로 느슨한 영역으로 분리된 채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리비아처럼 서방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리비아 전쟁 이후 리비아 제2도시 벵가지에서 반(反)서방, 반미국 테러가 발생해 미국 대사가 사망하는 사건과 같이 미국이 우려하는 사태가 현실화되었기에 서방과 미국이 몸을 사릴 수 밖에 없고, 시리아의 정치지형상 패하면 일족의 멸망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라 리비아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리비아의 경우 카다피의 부족인 카다파 부족은 카다피가 없어도 생존 가능할 정도의 세력 있는 부족이지만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알라위파와 기독교도 등 친아사드 정파의 경우 정권이 붕괴되면 시리아를 탈출하지 않는 한 생존을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아사드 지지 세력, 특히 알라위파와 정교회는 살기 위해서 수니파 무슬림 집단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며 그 절박함은 외계인의 침략을 받은 인류와 같은 급일 정도다. 그 결과 사망자만 무려 14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게다가 시리아 정부군(아사드측)에서 생화학무기를 사용하여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2015년 현재, 시리아는 정부군, 반군, 극단주의자들이 난립하면서 20만명이 넘게 사망하고 인구의 절반이 난민이 되는 등, 그야말로 옆나라 이라크와 아랫 먼나라 예멘, 팔레스타인과 더불어서 중동의 헬게이트가 되고 말았다.
다만 시리아도 리비아나 이라크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에시 토벌과 축출은 어느 정도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 또한 심해서 반군vs정부군의 상황은 어떻게 해결될지 알 수 없는 상황... [14]
4 정치
시리아의 지도자는 40년 넘게 세습 독재를 펼치고 있는 알 아사드 부자. 아랍권에서 왕조가 아닌 나라로선 자식에게 권좌를 물려준 것은 시리아가 유일하다. 이건 호스니 무바라크나 무아마르 알 카다피도 실패한 것이다.
아랍 독재자가 다 그렇듯 상당히 세속적인 정권이다. 아들인 바샤르 알 아사드(1965 ~ ،بشار الأسد)는 영국 유학파로 개방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로 서구 대중 문화의 유입을 특별히 제재하지 않고 있다. 아버지인 하페즈 알 아사드(1930 ~ 2000 ،حافظ الأسد) 또한 종교적으로 꽤나 관대한 편이었다.
원래 아랍의 세속 독재자들은 다 이렇다. 무바라크, 카다피, 후세인도 종교적으론 소수파에게 관대했다. 오히려 정권에 위협되는 다수파를 세속주의와 군사력으로 찍어눌렀다. 이들에 대한 불만으로 1980년 6월 26일, 이슬람 과격파의 암살 미수 사건까지 벌어졌다. 하페즈는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의 친구이자 2인자인 국방장관이 대신 희생되어버렸다.
분노한 하페즈는 동생 리파아트 장군으로 하여금 1980년 이들의 거점 지역인 하마 시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로 인하여 시리아 내 이슬람 극단주의 강경파는 큰 타격을 입었으며, 아버지인 하페즈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은 바샤르는 정쟁 끝에 숙부인 부통령 리파아트 알 아사드(رفعت الأسد, 1937~ )를 필두로 한 보수파를 숙청하며 세속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리파아트는 영국으로 망명하여 2013년 이후 런던에서 거주하며 현 시리아를 비난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2014년 기준 시리아는 취약국가지수에서 15위를 기록하였다. 그 15위도 '인구 구성상의 압박' 6.0(시리아에 대규모 AIDS가 있다거나 한 건 아니니까) '경기침체' 6.7(1인당 GDP는 그리 낮지 않으니까) 탓에 그나마 좋게 나온 거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10위 안에 들었을 나라였다. 이 15위는 26위를 기록한 북한보다도 높고, 북한에서조차 그때까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10.0 만점(산정 가능한 최악의 점수다)을 '난민과 국내실향민', '집단간의 갈등', '치안 유지력' 지수에서 무려 3개나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작년인 2014년 얘기. 이제는 10점 만점이 하나가 더 추가되어서[15] 지금은 10위권 안으로 진입해서 아예 아프가니스탄과 공동 8위를 기록했다. 4년 연속으로 가장 심각한 점수 악화를 기록한 국가 3위 안에 든 것.
4.1 군사
- 항목 참고 : 시리아군
5 경제
- 항목 참고 : 시리아/경제
6 사회
이곳에도 쿠르드족이 30~50만 정도로 꽤 많이 살고 있다. 하지만 터키나 이란, 이라크에 사는 수백만 쿠르드인들에 견주면 수가 적어서인지 이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며 그냥 사는 중. 하지만 차별은 이곳도 마찬가지라 경제적으로 어렵고 변변한 직업 구하기도 어려워서인지 소매치기 같은 일로 살아갈 지경이라고 한다. 공용어는 아랍어다. 쿠르드족들은 쿠르드어를 사용하며 아르메니아어, 아람어 사용자도 존재한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프랑스어 사용자도 소수가 존재하지만, 레바논에 비하면 사용이 적다.
6.1 종교
시리아의 종교 분포도. 연두색은 수니파 이슬람교, 녹색은 알라위파 및 시아파 이슬람교, 주황색은 기독교, 파란색은 드루즈교, 보라색은 야지디교 우세 지역이다.
내전 발발 직전인 2011년 집계 추산으로 이슬람교가 86% 이상이다. 가장 큰 종파는 수니파로 약 70% 정도를 차지하며, 다수를 차지하는 아랍계 수니파와 9% 남짓한 쿠르드족 수니파로 나뉜다. 또한 시아파 인구는 14%인데, 시아파 대다수인 12%가 이 나라의 기득권층인 알라위파이며, 주로 시리아 중부와 북부 해안가에 몰려 거주한다. 또한 이스마일파 같은 소수 시아파 분파들도 있다. 그외에 종교학적으로 일단은 이슬람 계통으로 분류되는 드루즈교 인구도 3%정도 있다.
또한 시리아는 아랍 지역에서도 유달리 기독교 신자[16]가 많은 나라다. 시리아 내전 이전(2011년) 집계로는 시리아 국민의 13%가 기독교인이었으며, 정체를 숨기고 있는 이들을 합치면 대략 2백만명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따라서 총 인구 비율이 약 25% 정도인 이 숫자를 모두 합치면 아랍권 제2의 기독교 국가다. 첫번째는 약 7백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콥트 기독교도가 사는 이집트로 인구의 8~9% 정도를 차지한다. 비율로 따지면 인구의 40% 가량이 기독교도(마론파 가톨릭, 정교회,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교회 등 다양한 종파가 있다)인 레바논이 중동 1위 기독교국가.
시리아는 초대 교회 시절부터 동방 기독교의 중심지 중 하나였으며, 수도 다마스쿠스는 사도 바오로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회심한 역사적인 기독교의 성지급 도시이기도 하다. 340년 안티오키아가 로마 제국의 다섯 총대주교좌 중 하나가 되면서 정교회가 크게 융성했다. 시리아 교회는 이집트 교회와 더불어 동방에서 가장 권위있는 교회 중 하나였으나 5세기경 단성론 논쟁으로 인해 단성론을 거부한 정교회와 단성론을 수용한 오리엔탈 정교회로 분열되었다. 기타 다른 기독교 종파로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있으며 이는 십자군 전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리아에는 추기경도 존재한다. 중동에서 추기경이 있는 나라는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등 총 3곳이다.
그래도 이웃 레바논과 달리 기독교도와 무슬림 간에 두드러지는 갈등은 보이지 않았고, 현재도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많은 반군이 장악한 곳에서는 소수종교 박해가 일상이지만, 수도 다마스쿠스 대부분 구역을 비롯해 아사드 정부군이 완전히 장악한 지역들에서는 내전 이전과 똑같은 종교 공존이 이뤄지고 있다. 시리아 지방의 기독교도들은 아랍 민족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다지는 데 적극 참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바트당의 초기 창립 멤버를 보면 정교회와 시리아 정교회 신자가 상당히 많다. 바트당 초기 이론가인 미셸 아프라크부터 다마스쿠스 출신 그리스 정교회 신자였다.
기독교도들이 많은 것도 아사드 정권의 영향이 크다. 아사드 일가는 이슬람에서도 극소수 종파인 알라위파이다. 시아파에 속하는 종파인데 전세계적으로 고작 3백만명이라는 극소수 종파로서 이슬람 대다수인 순니파(10억~14억 이상)와 알라위파를 제외한 나머지 시아파(1억 정도)에게도 절대적으로 밀린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시리아에서도 알라위파 신도 수는 전체 인구 2300여만 중 고작해야 1백만명 수준. 알라위파가 자기네 종파로만 정권을 다 장악하는 건 무력이나 선거로나 힘들다. 덕분에 아사드 정권은 종교적으로 세속적 정책을 취했고 다른 극소수 종교들도 인정하면서 그들의 지지를 받아냈고 이를 계기로 과격파들을 피로 응징하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터줏대감이지만 오랫동안 숨어서 믿어야 하던 오리엔트 기독교도들도 당당하게 나설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아랍권 나라와 견주면 기독교도들에겐 천국과 같은 나라라고 할 정도. 어느 정도냐면 2008년 8월호 내셔널 지오그래픽-아랍을 떠나는 기독교도-에 보도되길 시리아에서도 그래도 갈등이나 차별이 있긴 해도 시리아 기독교인들이 어찌 다른 아랍권 나라 다녀오면 그래도 시리아야말로 가장 기독교도들에게 천국이라고 뼈 저리게 느끼고 돌아온다고 할 정도. 군이나 정치인, 공무원 요직에도 오리엔트 정교회 기독교인들 수가 꽤 많으며, 공식적인 국법 상으로도 기독교와 이슬람을 동등하게 취급하며 특정 종교에 대한 우대와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물론 주류인 알라위파가 이슬람이라서 이슬람에 대한 실질적 우대가 주어지긴 하지만
또 비슷하게 세속적인 국가인 이웃 레바논과 더불어 아랍 지역 이슬람권 나라로 드물게 여군 장교를 두고 있다. 사실 여성들을 몸 수색하려면 여성이 해야 하기 때문에 이라크나 이란도 여군 특수부대가 있고 막장인 아프가니스탄도 여군 특수부대와 여경을 두고 있지만 시리아와 레바논은 일반 여군 장교를 인정하기에 상황이 꽤 다르다. 더불어 문화적으로 여성에게 매우 개방적이라 아랍권에선 드물게 교향악단까지 가지고 있으며 여성 연주자들도 얼마든지 받아들인다. 물론 히잡을 쓰던 말던 일절 상관하지 않으며 활동하여 서구적인 차림을 여성을 많이 볼수 있다. 그런데 대다수가 알라위파 및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위의 상황이 아랍의 봄 때도 작용했다. 이집트는 토착 기독교인 콥트 정교회 신도들이 온갖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 민주화 시위에 꽤 동참했었고, 튀니지는 원래 기독교도가 극소수라서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리고 리비아는 독재자 카다피가 꼴통 이슬람주의자라서 소수 기독교가 박해받았던 반면, 시리아는 기독교인 수가 상당하며 차별이 다른 이웃나라에 견주면 훨씬 적었다. 그래서 아사드 정권이 무너진다면 시리아 기독교인들에겐 이웃 강성 이슬람 국가들과 다를 바 없는 끔찍한 박해가 시작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에 아사드를 지지하게 된 것이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케이스나, 내전이 해를 거듭할수록 이슬람 극단주의화된 시리아 반군들이 들어찬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아예 인간취급 못받고 노예화되고 죽임당하는걸 보게 된 뒤로는 더더욱 그렇다.
여담으로 시리아는 이슬람 때문에 일요일은 그냥 평일이다. 주말은 금요일, 토요일.
7 문화
세계에서 가장 큰 식당이 바로 시리아에 있다. 다마스쿠스에 있는 바와벳 디마시크(بوابة دمشق, 다마스쿠스 문이라는 뜻을 가진 식당으로 2002년에 문을 열었는데 총 면적은 5만 4000㎡에 달하며 주방 면적만도 2500㎡, 좌석이 6014석에 이르며 성수기 때는 종업원이 무려 1800명, 주방 담당이 500명이 넘는다. 건립비만 4000만 달러라는 후덜덜한 식당으로 사실상 음식 공장에 가깝다라고 인정했다. 시리아 및 아랍과 아랍화된 인도와 중국 음식이 전문으로 30명이 먹을 후무스를 5분 안에 만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후무스는 콩을 으깨 마늘, 고기, 채소, 올리브유를 넣어 만드는 음식이다. 여긴 2008년 기네스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레스토랑으로 등록되어 있다. 방콕에 있는 5천명 좌석을 가진 식당 기록을 깼다. 그러나 밑에 나왔듯이 여행금지 때문에 한국인은 갈 수가 없다. 다마스쿠스의 경우 정부군 세력 내에 들어온 곳이라서 사실 파괴되진 않았을 것이다. 순전히 여행금지국가라 한국인의 방문이 불가능할 뿐. 물론 손님이 안 와서 영업이 중단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다마스쿠스의 호텔들은 내전 발발로 대부분 문을 닫았다.
7.1 스포츠
전북 현대 모터스가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 2차전 이 나라의 알 카라마와의 원정 경기에서 골득실차 우세로 우승했는데, 이때 시리아 관중의 열기가 대단했으며 아사드가 직접 관전해서 알 카라마팀을 격려했다. 전북이 결국 우승했지만 아사드는 직접 시상대를 찾아가 전북팀을 축하하며 박수를 치는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때 원정 응원을 간 몇명 안 되는 전북 서포터들은 이날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무용담 비슷하게 말한다고 한다. 참고로 알 카라마는 이후로 리그 랭킹 추락으로 AFC컵에 참가하고 있다. 참고로, 이 나라의 축구에 대한 자세한 것은 시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을 참조.
7.2 애니메이션
시리아의 첫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2005년에 나왔다. 전세계적으로 자국 극장 애니를 만들기라도 한 나라는 정말 얼마 안되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것. 세계에서 애니를 가장 많이 만드는 일본과 그 다음인 미국의 애니들이 많이 수입되고 마음껏(?) 볼 수 있는 한국에서 상상도 못하겠지만 아랍에서는 2000년대 와서야 생긴 일이다. 그동안 대중 문화를 금기시한 사우디아라비아까지도 자국 애니를 제작하고 있는 중. 제목은 The Thread of Life이며 2008년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8 외교
8.1 이스라엘 관계
중동전쟁 동안 4번 싸운 만큼 이스라엘과는 불구대천의 원수 지간이다. 코카콜라를 비롯한 유태인 기업 제품은 일절 수입 금지된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여러 유태인 헐리우드 감독 영화도 일절 수입 금지될 정도로 이스라엘과 유태인에 대하여 증오가 크다. 그런데 여기조차도 유태인이 일부 살고 있다. 물론 대대로 시리아에서 살아오던 이들이며 놀랍게도 이들은 그다지 핍박받지 않고 자유롭게 히브리어를 쓰며 살아간다. 이들은 중동 전쟁에 일절 끼어들지 않았다.
놀랍게도 전쟁 중 이스라엘 간첩이었던 엘리 코헨(אלי כהן)이 시리아 고위 정치인사(서열급으로 3위인 국방차관!)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물론 철저하게 아랍계로 위장하고 가명으로 활동하며 시리아군 정보를 철저하게 넘겨서 이스라엘의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실수로 정체가 드러나서 체포되었는데 이스라엘에선 그를 풀어주면 교환 조건으로 돈이나 포로 석방까지 제의했을 정도로 이스라엘에서 영웅으로 알아주었다. 물론 시리아에선 일절 응하지 않고 교수형 시킨 다음 시체도 돼지오줌과 똥을 가득 부었다. 이건 이슬람이든 유대교든 종교적으로 고인드립의 극치다. 더불어 코헨을 죽이기 전에 이를 말하자 코헨은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그리고는 미공개 상태로 다마스쿠스 어디에 파묻어버렸다. 흠좀무.
이스라엘의 후원국인 미국은 말이 필요없다... 조지 워커 부시가 악의 축으로 헐뜯은 걸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시리아는 하마스, 헤즈볼라와 가까운 것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게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어 있어 이 국가들한테서 심한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이 경제제재로 인해 시리아는 경제 성장을 할수가 없는 처지다.
그러나 실상은 좀 다르다. 이스라엘에겐 세속화된 현 시리아가 집권하는 동안에는 덜 시끄러울 수 있지만, 현 알라위파 정권이 붕괴될 경우 십중팔구 수니파가 집권하게 될 것이고, 극단주의 세력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이스라엘 북쪽에 헬게이트가 열린다는 이야기다. 지금보다 더 심한 충돌과 테러를 겪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수니파 집권보다는 지금의 아사드가 실질적으로는 유리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후견인인 미국도 그러한 이유에서 지금까지 아사드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리비아에서만큼 적극적이지 않은 편이다.
물론 리비아에서도 적극적이진 않았다. 리비아의 카다피나 시리아의 아사드 모두 국제정치적 현실을 인식하고 알 카에다 정보 제공 등 측면에서 미국과 협조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2015년까지 4년째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시리아 정부군이 이기는 듯 하지만 반대로 다에시라는 것들이 시리아 곳곳을 장악하기에 이스라엘로서도 마음을 놓을 형편이 아니다.
내전이 끝난 뒤 국내의 불만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아사드 정부가 이스라엘에 도발을 감행하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도 있긴 하다. 하지만 국지적 도발이나 국경지대의 무력 시위 정도라면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큰 위협은 되지 않기 때문에 전면전에서도 몇 번이나 깨부쉈으니 현재로선 아사드 정부군을 내심 응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8.2 중동 관계
다른 이웃 나라들과도 별로 사이가 좋진 않다. 터키와는 1998년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상류의 댐 건설 문제로 전쟁의 위기를 겪은 바 있다. 시리아에서는 터키가 이스라엘과 손 잡고 물을 빌미로 시리아를 통제하려고 한다고 분노하였고 댐 건설 현장으로 시리아군이 진격하는 통에 놀란 터키군이 국경에 재배치되면서 일촉즉발 위기를 겪었다.
역사적으로 터키와 이를 갈 일이 있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스만 제국 당시 시리아도 지배를 받았고 오스만 제국 내에서도 상당한 시리아 정교회 신도들이 살아가고 있었다(지금도 동부 쪽에 5만명이 넘게 거주 중이다). 그런데 1915년 오스만 제국군이 벌인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족 학살 때 시리아 정교도들도 덩달아 학살당했다. 정확한 수는 집계되지 않았으나 최저 몇 만에서 10만 이상이라고 한다. 아르메니아 학살과 달리 묻혀져버린 비극이라 시리아에선 두고두고 이를 간다.
프랑스 지배를 받던 시절 시리아 정교도들이 입지가 커지고 현 아사드 정권과 사이가 좋은 편이라 시리아 정교도 학살 문제로 마찬가지로 아르메니아와 같이 터키를 비난하고 있기에 더더욱 사이가 나쁠 수 밖에 없다.
요르단과는 1970년대 초반 4차 중동전 직전에 작은 전쟁도 했다(무승부).
이라크와의 관계 역시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1991년 걸프 전쟁 당시 이라크와 싸우고 있던 이란과 쿠웨이트를 지지하여 이라크의 심기를 건드려 양국 관계가 악화되어 실제 국교 단절로까지 간적이 있었다. 그러나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면서 후세인 실각 후 친미 돋는 양국 관계가 상당히 개선되었고 2006년 시리아와 이라크는 다시 관계를 복원했지만 여전히 이라크는 시리아를 이란 다음 가는 주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도 지금은 다에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같은 편.
레바논에선 시리아를 애증의 관계로 보고 있다. 레바논 기독교인들에서도 시리아를 두고 의견 차이가 다른데 가톨릭 계열인 마론 교도들은 친이스라엘 정책을 취했다. 애니와 실사 합성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에서 레바논 이슬람인들을 학살하던 게 마론 교도들로 이뤄진 군부 조직 팔랑헤[17]이다.
때문에 시리아는 무기를 지원하면서 레바논 내전을 부채질했기에 마론교도들은 시리아를 증오한다. 반대로 정교회 및 시아파들 같이 시리아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나 헤즈볼라는 시리아를 매우 옹호하는 편. 거기에 아예 시리아는 레바논으로 쳐들어가 주둔하면서 이스라엘과 레바논 안에서 전쟁을 벌이기까지 했으니 레바논에선 이스라엘 못지않게 싫어하는 이들도 꽤 된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미국를 지지하던 레바논 전 총리 히라리를 암살한 배후에도 시리아가 중요 용의자이기도 하다.
아랍 석유 수출 기구 가입국으로서 다른 산유국들과 사이는 기본적으로 우호국이지만 이스라엘 문제를 두고 튀니지 및 이집트, 미국 문제를 두고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와 외교적 갈등이 크다. 아랍 연맹에서의 축출도 그런 맥락. 그래서 같은 수출기구 가입국이자 반미, 반이스라엘 정책이 같은 리비아와 우호 관계를 크게 맺어왔다. 하지만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과 리비아 내전에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란과는 세속 정책을 취하며 사이가 좀 틀어졌지만 시리아에 시아파의 중요한 성지가 꽤 많아서 이란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고 미국의 경제 봉쇄로 막힌 돈줄이 이란을 통해 유지되고 있어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가까운 사이다.
아르메니아와도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닿지 않지만 20세기 초반, 오스만 제국에 의하여 아르메니아인들과 같이 자국민이 꽤 학살된 비극을 겪었고 반터키 감정으로 서로 뜻이 통하는 게 있어서 아르메니아 문제에 대하여 편을 들어주고 아르메니아에 대하여 꽤 긍정적으로 나선다. 이때문에 미국 내 아르메니아계 정치인들도 미국의 시리아 내전에 간섭하는 걸 매우 부정적으로 보면서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시리아는 아르메니아 학살을 두고 터키를 비난하며 아르메니아 학살 추모비도 여럿 자국에 세우고 아예 추모 교회까지 건립할 정도다. 물론 이 문제에 가장 민감한 터키를 빡치게 만들어 터키와의 관계가 매우 나쁘다.
시리아 때문에 터키의 외곽 일부 지역(시리아 국경지대)까지 싸잡아서 여행 금지 지역이 되었다.
8.3 대러시아 관계
러시아는 매우 우호적. 러시아제 무기로 군을 무장하고 친러시아 정책을 많이 취하기 때문이다. 2008년 8월에는 러시아와 회담으로 러시아군의 지대공 미사일 기지를 시리아에 설치하고 러시아군 주둔을 받아줄 수 있는 논의를 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을 충공깽에 빠뜨렸다. 일단 미국과 이스라엘이 반발하고 미국은 자꾸 그러면 경제제재 추가로 할거라고 협박하여 보류 상태이지만 언제라도 받아준다는 상태로 서로 합의 중이라고 한다. 90년대 후반에는 러시아와 관계 악화 및 다른 아랍 나라들과 관계 악화로[18] 제대로 군사 훈련을 가지지 못하여 북한과 더불어 매우 낮은 공군 훈련 비행시간으로 꼽히기도 했다. 석유는 꽤 많지만 정제 기술 부족과 같이 수입에 타격이 컸다. 덕분에 연료 부족으로 육해공군 훈련에 타격이 컸다. 하지만 이후 관계 개선으로 문제가 해결된 편이다. 최근 대러시아 관계는 2015년 9월 30일부터 시리아 내전에 러시아가 개입까지 하면서 군장류부터 최신 무기까지 실전에 배치까지 해버렸으니 말 다해버린셈...
8.4 중국과의 관계
시리아는 또한 중국과 매우 가까운 관계이기도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도 시리아에 원조, 군사훈련 등의 지원을 하기로 정하면서 중동문제에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8.5 한국과의 관계
시리아는 북한의 오랜 우호국으로 2015년 기준 쿠바, 마케도니아[19]와 함께 세 나라 뿐인 북한 단독 수교국이다. 북한과는 1966년에 수교한 이래 양국간 우호 친선 노선을 지향해왔다.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조기를 걸었다고 할 정도. 대한민국은 시리아와 외교 관계를 맺기 위해 오래전부터 노력해왔으나, 시리아는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하여 수교를 거부하고 있다. 또한 중동전쟁 당시 시리아가 이스라엘과 교전 중이었는데 이에 북한이 군사적 지원을 시리아와 이집트에 적극적으로 하게 된 것을 계기로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시리아도 현실적인 자세로 돌아서 경제, 문화 교류는 거부하지 않고 있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는 불참했으나, 1988년에 열렸던 서울올림픽에는 공식 참가하여 자국 선수단을 파견했으며, 이후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스포츠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팀과도 인연이 있어, 대한민국과 시리아 양국에서 국가대표팀 경기를 몇 차례 치르기도 했다. 경제적으도 대한민국과의 교류가 많이 늘어 대한민국은 시리아의 주요 수입 대상국의 하나이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현대-기아차)은 시리아 자동차 시장에서 3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고, LG전자와 삼성전자도 여러 제품에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2009년에는 코트라 무역관이 다마스쿠스에 문을 열었다. 한류 문화도 영향을 주고 있어 한국 드라마나 가요도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한국 제품도 진출해 있고 (아주 많이사용한다), 한국 문화까지 알려지고 있고, 특별히 한국이 싫어서 수교를 안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여 시리아를 방문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인 관광객에 대한 거부감은 그다지 없다고 한다.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고 북한과 단독 수교국이라 험악한 곳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조갑제 역시 친북 국가라고 안 좋게 여겼다가 시리아 여행을 직접 갔다 온 다음부터는 북한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넉넉한 편이며 반미를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원수 질 필요도 없고 어느 정도 친하게 지내면 좋겠단 의견을 글로 쓴 바 있었다. 이 사람의 사상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찬양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시리아에서 며칠만 있으면 이 나라를 북한과 비교하는 것은 모욕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북한 평양의 옥상에 위성TV용 접시의 숲이 있는가? 다마스쿠스 시장과 같은 시끌벅적한 시장이 있는가? 일반 국민들이 명랑하고 친절한가? 외국인 투자가 허용되는가? 시리아의 거리는 자동차 홍수다. 그 30%가 한국 자동차라고 한다. 굶는 사람이 없다.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 한 감옥에 가지 않는다. (중략) 시리아에 와서 여행해 보면 「그동안 많이 오해했구나」 하는 부분이 보인다. 한국인은 시리아를 주로 성경, 이스라엘, 미국의 시각에서 보아 왔다. 그런 시리아는 反기독교, 친북, 독재, 테러지원국가다. 그런 면이 있지만 과연 「악의 축」이라고 불릴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리아의 지난 100년 역사만 알아도 언론에서 얻은 선입관이 달라질 수 있다. (중략) 시리아를 여행해 보니 이 나라와 국민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품격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건축물, 음식, 옷차림, 상품, 태도 등을 통해서 드러나는 품격이야말로 문화와 역사의 축적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것이리라. 다양한 민족·종교·제도가 약 1만년의 역사 속에서 충돌, 융합하면서 빚어낸 33개의 문명, 그 후광을 받은 나라이고 사람들이기에 촌스럽지 않고 어른스러운 것이다. 역사는 흉기가 아니라 교양인 것이다. #
그런데 2011~12년 이후로는 저건 다 옛날 얘기일 뿐이고, 시리아의 정세가 내전으로 인하여 북한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매우 불안정하다. 또한 정부군이 자국민들을 학살하면서 정말 악의 축이 되었다. 외교통상부는 시리아 전역을 여행경보단계 4단계로 지정했다. 즉, 여행금지국가가 된 것이다. 시리아 방문을 금지하고 체류자는 즉시 대피를 권고한다. 더군다나 시리아에는 코트라 무역관만 있을 뿐, 대한민국의 외교 공관이 없으므로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더욱 곤란해진다. 주 레바논 대사관에서 시리아에 대한 업무를 관할하고 있으나, 외교 관계가 없으므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여담으로 일각에선 시리아 내전으로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고 시리아가 민주화되면 한국과 시리아의 국교 수립도 가능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9 출신 인물
알타이르 이븐-라 아하드
시라아의 유명 인물이라면 킹덤 오브 헤븐에서 살라흐 앗 딘 역을 맡았던 시리아 배우 겸 영화 제작자이신 가산 마수드가 알려져 있다. 더불어 이분은 10년간 시리아에서 무대 예술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하셨다고. 또 스티브 잡스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압둘파타존 잔달리가 이 나라 출신이다.
10 교육
- 이 나라는 중학교가 없이 초등학교를 9년 다니고 3년 동안 고등학교에 다닌다.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다. - 이 나라는 아직도 PBT TOEFL이 존재한다.
11 관광 정보(부제: 방문 정보)
이곳에 들어간 사람은 안전을 보장 못한다. 국가가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
다마스쿠스를 위시로 천혜의 자연 관광 자원과 옛 그리스, 로마 시대 유적, 기독교 유적지들도 많아 관광 대국의 가능성만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미국과 적대관계라 이걸 살리지 못하고 있을 뿐인 상황. 팔미라를 위시한 로마 유적지들도 규모가 크고 보존도 잘 된 게 많다. 그 밖에 중세 유적지인 마시아프 요새(어쌔신 크리드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 등 볼 만한 곳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유적들도 내전으로 인해 파괴 위기인 것들이 많다.
알 아사드 정권을 수호하기 위해 깔아놓은 비밀 경찰과 사복 경찰들이 쫙 깔려있어서 오히려 중동 국가 중에 치안이 좋기로 소문이 나있었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한국어로 말하더라도 아사드라는 단어 자체를 거론하지 않는 게 좋다. 알아듣고 사복 경찰이 따라온다. 그런데 지금 시리아 내전 때문에 치안이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급이 되고 말았다.
물가는 최근 물가 변동이 심하지만 요르단, 터키, 이집트에 비해 물가가 상당히 싼 편이다(그러나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고 있는 중). 거기다 바가지로 악명 높은 이집트에 비해 관광객 바가지도 적고 학생이면 입장 할인 폭도 크다. 시설 입장 요금이 150 시리아 파운드(한화 1000원)인데 학생증 지참시 10파운드(한화 70원가량)으로 할인해준다. 또 반미, 친북 국가라는 편견과 다르게 여행하기 좋았다. 동양인을 접할 기회가 흔치 않아서 관광하다 보면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건 기본이요 몰래 사진을 찍거나 아님 같이 찍자고 다가온다.
하지만 2011년 사태 이래 한국인이 절대 여행 가면 안 되는 곳이 되고 말았으니... 안습. 더 안습인 건, 툭하면 나대는 개새끼들 때문에 치안이 막장이라는 거다. 이로인해 에미레이트 항공, 카타르 항공 등 시리아 영공을 마음대로 지나다니던 항공사들도 이란 서부 ~ 터키 중부를 거쳐서 유럽, 미주로 향한다.그런데 들어간 한국인이 있다 한국 청소년 이슬람 국가 가담 사건 참조 국제망신,충공깽,아 씨바 할말을 잃었습니다
- ↑ 2200만이었으나 500만이 난민으로 해외 도피하면서 인구가 줄었다.
- ↑ 그래도 이쪽은 소말리아와 달리 해적은 없다.
해적 대신 도적떼 같은 시리아군과 ISIL이 있을 뿐이다 - ↑ 100% 닮은 건 아니지만 현재 시리아의 대통령인 바샤르 알 아사드가 콩고 카빌라 부자와 북한 김씨 3대처럼 아버지인 하페즈 알 아사드가 집권 중 사망하자 부자 세습을 하여 권력을 장악한 점은 비슷하다. 실제로 시리아의 하페즈 알 아사드와 바샤르 알 아사드 부자 역시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북한 정치를 모방한 적도 있었다.
- ↑ 본래 y는 라틴어에서 현재의 프랑스어의 u와 독일어의 ü 발음과 유사한 발음을 내는 문자였다. 때문에 아람어인 수리아를 옮기는 과정에서 Syria라는 표기가 생겼는데 중세 이후 y 발음이 i 발음으로 변하는 바람에 한글 표기 또한 이를 따라 시리아라고 표기를 하였다.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에서는 아예 Siria라고 표기한다. y의 /y/ 발음(불어 u나 독일어 ü)는 스웨덴어와 노르웨이어에 이러한 발음법이 남아있다.
- ↑ 모로코나 이라크도 경우에 따라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는 듯 하다.
- ↑ 남미에서는 이들을 투르코(torco)라고 불렀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서 왔기 때문. 이들은 주로 장사를 하면서 먹고살았는데 도심지와 오지를 오가며 몇배의 이득을 보면서 파는 식으로 장사를 했기 때문에 의외로 대성을 한 경우가 많다고 하며 중남미 정재계에서 아랍계의 영향력이 생각외로 센 편이다.
그래서 아랍인들이 남미가 아니라 북미로 갔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물론 그렇다고 모든 아랍인들이 잘사는건 아니고 빈민촌에서 어렵게 사는 아랍계 주민들도 있기는 하다. - ↑ 다만 메넴은 1995년 대통령 재선 직후에 이스라엘 지지로 틀어져서, 현지 아랍계 주민들로부터 불멘소리를 많이 듣는다. 물론 비 아랍계 주민들로부터도 비단 경제난으로 초래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기에 욕을 많이 먹기도 하지만
- ↑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에 아랍인계 주민들이 많이 살고있다는건 잘 알려져있지만 의외로 중남미에서 주거하는 아랍계 주민들이 상당하다는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여긴 애초에 빈부격차와 치안이 더 큰 문제라서 - ↑ 한국을 방문한 시리아 여자 대학교수가 한국에 눈이 오자 일절 신기해하지도 않았으며 시리아에도 눈이 오냐는 신문 기자에게 '내 고향은 눈이 자주 와서 신기해할 것도 없습니다' 라고 답변한 적도 있다. 한국인도 예전에는 유럽 가면 비슷한 소리 들을 수 있었다. 유럽인들은 한국도 눈이 오지 않는 나라이자 동남아처럼 더운 나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6.25 전쟁 당시 프랑스군이 한국을 베트남 같은 더운 나라로 알고 베트남 주둔군을 보냈다가 추위에 기겁하던 실화도 있었다.
- ↑ 알레포가 북위 36도 13분, 대전광역시가 북위 36도 21분이다.
- ↑ 튀니지와 리비아는 애초에 인구 거의 전체가 수니파 무슬림이고, 이집트의 경우 콥트교도들이 꽤 많이 있었지만 특별히 정부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 ↑ 다만 더 안습인 건 지금 이라크 역시 이라크 내전으로 난민이 80~300만이 생겨서...
- ↑ 사진에 보이는 노란 택시는 기아 프라이드 베타다. 중동 지역에서 인기가 많아 흔히 볼 수 있는 한국 차 중 하나다. 오죽하면 GTA 4 차 패치 파일 중 오래된 기아차가 보인다면 90% 확률로 번호판이 페르시아어다. 이는 차량 제작자가 이란인인 것으로 보인다. 이란에서는 아예 생산을 지금까지도(!) 하기 때문.
- ↑ 물론 다에시가 2015년에 진짜 설쳤을 때는 잠시 반군과 정부군이 손을 잡으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 ↑ 바로 "인권과 법률체계" 부문. 거기다가 10점 만점에 9.9점도 3개나 있다(정부의 정당성, 이기적인 지도층, 외부의 개입).
- ↑ 주로 정교회(아랍인)와 오리엔탈 정교회(시리아 정교회는 아시리아인,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아르메니아인)
- ↑ 그리고 이스라엘이 레바논 내의 이슬람 세력 약화를 위해 도왔다
- ↑ 다른 아랍국가들은 수니파다보니 시아파인 이란을 제외하곤 알라위파의 시리아에게 적대적이다.
- ↑ 마케도니아는 절대 친북이 아니고 친미 친서방 국가인데 그리스-한국 관계 때문에 남한과 미수교인 측면이 크다. 마케도니아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