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曄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장군(長君).
회계 산음 사람으로 젊어서 현리가 되어 격문을 받들고 독우를 영접했지만 이런 일을 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껴 벼슬을 떠났으며, 건위군 자중현에 가서 두무에게 한시를 배워 극진한 경지에 이르렀다. 20년이 되도록 소식을 끊자 집안에서는 그가 죽은 줄 알고 장례식을 치뤘는데, 조엽이 학문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주에서 종사에 임명했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유도로 천거되었지만 가지 않고 집에서 생을 마쳤으며, 오월춘추, 시세역선연 등을 저술해 채옹이 회계에서 시세를 읽고 탄식해 논형보다 낫다고 여겼다. 채옹이 낙양으로 돌아와 이를 전하자 학자들이 모두 외우고 다녔다고 전한다.
이 당시에는 조엽 뿐만 아니라 유도로 천거된 사람들이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의 저작인 오월춘추를 통해 보여진 것으로는 천문, 점복, 참위 등에 능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