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프 카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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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눈이 좀 게슴츠레하게 생겼다.

조제프 카빌라(Joseph Kabila Kabange, 1971년 6월 4일 ~ )

조제프 카빌라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전임 대통령이였던 로랑 데지레 카빌라의 아들로 아버지가 암살당하고 약 8일 후인 2001년 1월 26일 과도정부 대통령에 취임한 뒤 두 차례 연속 대선에서 승리하며 현재까지도 독재자로 군림중인 인물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중국에서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귀국 후 고속승진을 거듭해 콩고 민주공화국 내전 발생 직후인 1998년 9월 합창의장에 올랐다. 카빌라는 외국에서 주로 자라서 콩고[1]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인 링갈라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등 국내 정치기반이 취약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집권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정치적 수완은 있는 인물이었다. 콩고 내전 당시 강경파였던 아버지의 노선에 끝까지 반대하며 타협안을 밀어붙인 게 이 인물이었고, 정국을 빠르게 수습하고 르완다와 우간다의 재개입 가능성을 차단. 전쟁을 동부 키부주 일대로 국한시키고 재빨리 전후 복구에 착수한 점 등은 높게 평가받는다. 물론 카빌라 본인도 이를 치적으로 내세워 집권 이후 두 차례 연속으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다만 콩고 국민들도 조제프 카빌라가 이끄는 부패한 정권과 대통령 재임을 싫어해서 정권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시위들을 반복했지만, 성과는 미미한 상황이며 오히려 강대국들이 조제프 카빌라를 지원하고 있다. 2011년 11월 28일 콩고공화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조제프 카빌라 당시 대통령을 포함해 총 11명의 후보가 선거에 나섰다. 그러나 미국, 프랑스, 벨기에 등은 지하자원을 지속적으로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그들과 결탁한 카빌라가 대통령직을 지속하기 바랐다. 콩고공화국 국민들은 이런 강대국과 국제사회를 비난하며 카빌라를 더 이상 대통령으로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각국에서 시위를 벌였다. 한국에 있는 콩고공화국 교민들도 주한 벨기에 대사관 앞에서 같은 시기에 시위를 벌였다. 당시 수도 킨샤샤에서는 150여 명이 시위 도중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후 콩고는 2016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인구 총조사 실시를 포함한 선거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킨 데 이어서 20일 상원에서 선거법안을 심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야권에서는 당초 예정된 2016년 말을 넘겨 대통령·의원 선거를 치르려는 것으로 카빌라 대통령의 집권 연장 기도라며 비난했고, 2015년부터는 콩고의 수도인 킨샤사에서 조세프 카빌라 대통령의 집권 연장 움직임에 항의하는 시위가 3일째 계속되어 이 과정에서 시민과 경찰이 충돌해 42명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시위에 참여했던 한 목격자는 도로에서 불타는 타이어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돌을 던지는 시위대에 경찰이 실탄을 발사했다고 전했지만, 정부 측에서는 사망자는 모두 15명이며 대부분 물건을 약탈하다 사설 경호원의 총에 맞아 숨졌다고 주장했다. 다만 아프리카 등 기본적으로 정부를 믿지 않는 지역의 시위대 대부분이 초기 시위를 하다가도 폭도로 변질되는 일이 흔함을 감안하면 둘 다 맞을 공산이 크다.

결국 카빌라는 2015년 2월 5일 두 번째 임기가 끝난 뒤 내년에 물러날 것이라고 램버트 멘데 정부 대변인이 말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멘데 대변인은 이날 민주콩고 수도 킨샤사에서 기자들에게 "카빌라 대통령은 2016년 그의 임기를 마칠 것"이라면서 "민주콩고는 다시는 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제는 많은 독재자들이 저렇게 다시는 국민들에게 불출마를 하겠다고 거짓말을 해댔다는 점이다.

이러한 선언은 2014년 5월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카빌라 대통령이 임기 후 재선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를 지원하고 정치적 안정을 위해 3천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던 점도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가 순순히 물러날 가능성은 없으며, 2016년에 또 다른 개헌(?)을 추진하거나, 아니면 원조는 원조대로 받으면서도 다음 대통령들의 능력을 못 믿겠다는 핑계를 들어 막후 실세로 행세할 가능성이 더 높다. 무엇보다 콩고 내에서 그를 대체할 대안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다. 3차 콩고 전쟁 당시 투치 반군들에게 탈탈 털리며 인구 100만의 고마시를 내주고 퇴각중이던 콩고군을 추스린 건 바로 카빌라 본인이었다.[2]

현재 콩고는 여전히 콩고 내전이 동부 국경지대 위주로 현재진행형이지만 2014년 들어서는 유엔 평화유지군한테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나가라고 요청하는 중이다. 그 이유는 2014년 10월 제이드 라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민주콩고가 청소년 폭력집단에 대한 경찰의 일제단속 과정에서 인권을 침해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던 것이 가장 유력한 이유로 보인다. 이후 정부는 스콧 캠벨 유엔 인권특사를 추방하고 유엔 직원들을 협박한 데 대해 유엔 당국이 비난하는 등 민주콩고와 유엔 사이의 갈등이 불거져서 일이 이렇게 됐다고 한다 물론 자신이 독재를 해먹기 더 쉬우니까 저러는 것도 있다. 기사 또한 콩고의 국력 자체가 르완다를 막지 못할 수준이 아니라는 계산도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3]

한편 2015년 3월 말루쿠 지역에 있는 무덤에서 사산한 아기 시신 300여 구와 강과 시내, 심지어 병원에서 버려진 태아들을 포함해 적어도 421구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는데 이게 학살 정황이 의심된다며 수사를 해달라는 말도 나왔다. 기사

일단 대체적인 평가는 그냥 평범한 독재자. 사실 나라가 전쟁터라 착복왕 모부투 시절처럼 아예 미쳐돌아가서는 권좌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적당히 독재를 하고, 적당히 국민을 달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인물의 치하에서 그나마 경제가 좀 나아지고 그나마 동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인 노력으로 먹고사는 게 가능해진[4] 것도 사실이라 콩고 국민들의 평가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 다만 비슷한 평가를 받던 독재자 피에르 은크룬지자도 결국 전면 내전이라는 대가를 받아든 것이나 경제성장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다시 심화되는 걸 보면 그가 장기집권을 끝까지 밀어붙일 경우 권좌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1. 편의상 이렇게 표기하지만, 콩고공화국이 아니라 콩고민주공화국이다. 사실 국제적으로도 듣보잡에 가까운 콩고 공화국보다는 수시로 국민들의 허리가 떨어졌다 붙었다 하는 콩고민주공화국이 안좋은 쪽으로 인지도가 높다.
  2. 이 때 이례적으로 동부에 바로 들어가 수습을 직접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가만히 있다가 털린 걸 봐서 그런지 일단 뭘 하려고는 하는 모양.
  3. 게다가 당시 우방이었던 부룬디는 지금 내전 상태이고, 우간다는 요웨리 무세베니의 통제력이 예전같지 않다.
  4. 아프리카에서 먹고산다는 건 중근세처럼 그냥 먹고사는 것이 보장되고 내전이나 분쟁 등으로 맞아죽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