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가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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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Anthony Gamow
러시아어 : Гео́ргий Анто́нович Га́мов
게오르기 안토노비치 가모프

1904년 3월 4일 ~ 1968년 8월 19일

1 개요

출생 당시 러시아 제국의 현 우크라이나 오데사 출신의 소련에서 미국으로 귀순한 러시아계 미국인 천문학자.

20세기 중반 우주론의 핫 이슈였던 팽창 우주론의 대표자. 이지만 동구권 출신인지라 유명하지 않다. 어느정도인가 하면 빅뱅 우주론은 고교 과학 교과서에 반드시 포함되나 '조지 가모프'라는 그의 이름이 실린 과학 교과서는 생각보다 드문 편이다.덤으로 나무위키에도 빅뱅항목에 창시자로 일단 먼저 하긴 했지만 더 나중에 알려진 르메트르의 이름만 적혀있다.

다 쓰고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가모프의 적이자 빅뱅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프레드 호일의 항목은 이미 작성되어 있었다.[1]

2 업적

빅뱅 이론의 창시자이다.[2]

3 그는 빅뱅이라고 한적이 없었다

가모프는 빅뱅이론이라는 이름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 이름이 나온 경위는 이렇다.

  • 정상 우주론을 주장하던 프레드 호일이 라디오 방송에 출현했다.
  • 어떤 경위로 팽창 우주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 호일은 "팽창 우주론이 맞다면 우주는 콰과광!!(Big Bang)하면서 태어났겠네요?" 라면서 조롱.
  • ...그럴싸한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어이없게도 빅뱅이란 이름은 정상 우주론을 주장하던 사람이 지어준 이름이다.

4 엔리코 페르미와의 비교?

아내가 유대인이었던 탓에 무솔리니의 지배 하에서 살기 힘들었던 페르미와 마찬가지로 가모프 역시 사회주의 체제인 소련에서 살기를 거부했던 아내 탓에 미국으로 귀순한다.

  • 시도 1. 보트로 흑해를 건너 도망가기로 결정. 하지만 몇 시간 뒤 아내가 팔이 아프다며 칭얼대자 다시 노를 저어 집으로 돌아감.
  • 시도 2. 동독에 거주하던 친척에게 간다는 핑계로 서독에 가려 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취소.

이 외에도 몇번의 탈출을 도전했으나 매번 실패하게 되고 포기하고 그냥 살기로 마음을 잡았으나 마침 그 물리학계의 전설 코펜하겐 학회 초청장이 날아오게 되고, 가모프는 이를 계기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으로 가게 된다.

페르미가 노벨상 수상을 위해 스톡홀름으로 가면서 탈출 한 것과는 유사하면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5 논문 이름에 집착하다

가모프가 저지른 대표적인 악업. 교수가 절대 제자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의 모범 사례.

가모프에게는 랄프 앨퍼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가모프는 이 제자와 연구를 하면서 앨퍼(알파)와 가모프(감마)라는 이름을 제대로 맞추겠다는 참 부질없는(...) 이유로 한스 베테(베타)를 영입하기로 한다. 여기서 베테는 후에 항성의 에너지원에 대한 연구 외 다수로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는 그 한스 베테이다.

문제는 한스 베테와 가모프는 당시에도 유명한 과학자였고, 베테의 이론 일부를 가져오긴 했지만 베테는 실질적으로 저자에 쓰여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고 그냥 레퍼런스를 쓸 정도였으나 가모프는 베테를 이름을 위해서 공동 저자로 이름을 싣겠다고 했고 베테는 흔퀘히 승락. 두 뛰어난 과학자들이 논문의 공동저자가 되면 보통 사람들은 유명하지 않은 쪽이 그냥 이름을 위해 탑승했다고 생각할 것이고 이를 알게 된 앨퍼는 자신이 쓴 논문에 베테의 이름을 적는 것을 거부했지만 가모프는 강행하게 되고 논문의 이름은 알파-베타-감마의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앨퍼는 완벽하게 무명이 된다. 이 항목 작성자도 이름을 자꾸 까먹어서 한참 고민을 했다고 한다.

앨퍼의 저주라기보단 출신지의 문제지만 가모프도 그에 준하는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6 기타

학창시절 교사의 영향으로 수학을 거의 못 했다고 한다. 계산이란 계산은 전부 제자들에게 맡겼다고.. 수학을 못 해도 훌륭한 천문학자가 될 수 있다는 본보기로 종종 다뤄지기도 한다.

인성이 굉장히 나빴다고 한다. 가모프의 추측이 검증된 것이 상당히 시간이 지나서긴 하지만 훌륭한 업적을 세웠음에도 노벨상을 받지 못 한 이유가 아마 출신지 외에도 이런 점이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1. 순서가 무슨 관계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승자와 패자의 관계이다! 승자보다 더 많이 기억되는 패자.
  2. 아주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탈리아의 신부 였던 "조르주 르메트르"라는 사람이 빅뱅 우주론을 가장 먼저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먼저 알려지게 된 쪽이 조지 가모프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