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로쿠(永禄) 13년(1570년)?, 오다니 성? ~ 간에이(寛永) 10년 8월 27일(1633년 9월 30일), 에도성내 교고쿠 저택
15~17세기 동아시아의 혼란기와 에도 바쿠후 성립과 이에미츠의 정치를 지켜본 여성, 언니 요도도노, 동생 스겐인이 있다. 아자이 3자매 중 오래 살던 여성.
법명이 죠코인(常高院, 상고원),교고쿠 씨(京極氏)의 당주인 교고쿠 다카츠구(京極高次, 경극고차)의 정실이다. 본명은 아자이 하쓰(浅井 初, 천정 초)이다. 하쓰(初)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아명은 오나베(御鐺, 어당) 또는 오나(於那, 어나)이다.
아버지는 오미 국(近江国) 고다니 성(小谷城)의 성주인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 천정장정)이며 어머니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직전신장)의 여동생인 이치(市, 시)이다. 언니인 차차(茶々, 요도도노), 동생 에요(江与, 스겐인)이다. 더불어 에도 바쿠후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에게는 백모(伯母)이다.
성격은 스겐인과 비슷해서... 야사에서는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어떻게 하면 마누라와 다툼을 피할 수 있나해서 그녀의 남편인 교코쿠 다카츠구의 예를 들어서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 사례이라는 것은 야샤에서는 히데타다 본인이 아내 스겐인 몰래 오시즈(お靜)이라는 시녀와 바람을 피웠는데 거기에서 난 자식이 호시나 마사유키이다. 교코쿠 다카츠구 히데타다와 마찬가지로 역시 바람 피웠다가 나중에 아이를 출산하는데 그게 바로 교코쿠 다다타카이었는데 정실인 하츠가 그 사실을 알게 되자 결국에는 스겐인 앞에서 울었다고 한다. 거기서 아이를 죽이는 동시에 다카츠구에게 이혼하겠다고 말하자 스겐인과 우연히 듣게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설득하게 된다. 이에야스는 다카츠구의 가신을 은밀히 불러서 이에야스의 경험을 살려서 은밀히 키울 것을 다카츠구에게 말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결국 이에야스의 말대로 다카츠구는 정실이 화를 가라앉기까지 가신에게 은밀히 키우라고 했다고 한다.
동생 에요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 덕천수충) 사이의 4녀인 하츠히메(初姫, 후에 興安院 여안인)가 양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히데타다가 입양 승인해준 것, 호시나 마사유키 존재를 스겐인 모르게 철저히 숨긴 것도 앞에서 말한 이런 배경이 있다고 한다.
남편인 교코쿠 다카츠구가 죽자 남편의 유언에 따라 에도에 인사차 드리고 오사카 성에 요도 도노, 센히메,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같이 살게 된다.
1615년 도요토미 가문이 오사카 성 여름 전투에서 도쿠가와 가문에게 패배, 센히메와 같이 오사카 성을 나가게 된다.
남편 다카츠구와의 사이에서 자녀가 없어, 다카쓰구의 여동생과 우지이에 유키히로(氏家行広, 씨가행광) 사이의 딸인 고나(古奈, 고차), 다카츠구와 측실 사이에서 태어난 다다타카(忠高, 생모는 야마다 씨山田氏, 산전씨), 다카마사(高政, 생모는 오구라 씨小倉氏), 이 외 1명 등을 양자, 양녀로 삼아 이들의 양육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후계자인 다다타카와 혼인시켰으나 둘 사이에서도 자녀는 없었다. 게다가 하츠히메와 다다타가와 혼인관계는 안 좋았다. 하츠 히메가 임종 직전인데 남편이라는 것은 저자 거리에서 스모 경기보고 있고 임종이라도 보라고 가신들이 설득하지만 무시하는데. 아내는 그 충격으로 죽고 그 소문이 황도(皇都)이었던 교토와 쇼군의 거점이었던 에도성까지 퍼지자 황실은 몰론이고 공가에서는 쑥덕거리고 오고쇼 히데타다와 쇼군 이메미츠가 불같이 화를 냈지만 바쿠후를 섬긴 가문이라 은거(隱居)하도록 하게 된다.[1]
후일 1633년 9월에 에도성 교고쿠 저택에서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과 가스가노 츠보네, 센히메 등이 그녀의 임종을 지켜보며 사망한다. 사망한 나이는 64세이며 쇼군에게 유언을 남겨 막부가 죠코지에 있는 남편 교고쿠 다카츠구와 같이 봉안되게 된다. 바쿠후가 특별히 조정에 부탁한 내린 시호는 죠코인덴에이쇼다이진(常高院殿松巖榮昌大姉, 상고원전송암영창대자)이다.- ↑ 영지 몰수 생각까지 했지만 섬긴 공로와 가스가노 츠보네(오후쿠) 체면과 죠코인이 오고우의 언니이라는 점을 고려한 탓도 있다. 하지만, 죠코인이 죽고나서 1634년에 전봉(영지 이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