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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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퐁피두 | → |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 → | 프랑수아 미테랑 |
대통령 시절
현재
발레리 마리 르네 지스카르 데스탱(프랑스어: Valéry Marie René Giscard d'Estaing, 1926년 2월 2일 (90세) )은 1974년에서 1981년까지 제23대 프랑스의 대통령을 지낸 중도 우파 정치인이다.
독일 코블렌츠에서 프랑스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 졸업 후 프랑스 학술원의 연구원으로 있었고, 1956년 하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1962년에는 드골에 의해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되었으나 1966년 재정수지 흑자전환에도 불구하고 미국 수입품에 과다한 관세를 부과한 것과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노동자의 파업을 유발한 것이 문제가 되어 경질되었다.
이 후 드골과 결별하고 독립공화당을 창당했고, 1969년 조르주 퐁피두 내각에서 재무장관으로 다시 임명되었다. 1974년 퐁피두 대통령이 갑자기 사망하여 그 후임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에서 프랑스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과 격돌하여 1차 투표에서는 패하였지만 토론회에서 프랑수아 메테랑을 압도하면서 2차 투표에서 승리하여(간발의 차이였다.)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지지율이 나빠져서 1977년 지방선거에서 기록적인 참패를 거두었고, 덕택에 1978년 총선에서 실권을 빼았길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의외로 우파가 득표율에서 간발의 차이로 승리를 거두면서 예상과 다르게 실권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지방선거에서 계속해서 패배하는 악재도 있었다. 그럼에도 미테랑에게 여론조사상으로 상당히 앞서 있었기에 1980년까지만 해도 재선될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경기침체가 계속된데다가 2차 선거를 앞두고 토론회에서 미테랑에게 밀리는 바람에 발목을 잡혀 1981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게 되면서 결국 재선에 실패한다.
재임 중 유럽 경제공동체(EEC)를 강화하여 뒤에 유럽 연합(EU)으로 발전하게 하는 초석을 닦았으며, 서방 7개국 정상회담(G7) 창설에서도 주도적 구실을 맡았다. 1984년 프랑스의 전직 대통령으로써는 처음으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이력도 있다. ENA, EP, EN 세 학교 졸업장을 모두 다 가지고 있다.
자기 자신이 귀족 가문 출신임에도 프랑스는 공화국이란 이유로 귀족 가문 출신의 명사들에게 작위를 붙여서 공식호칭해주는 관례를 폐지한 바가 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