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치정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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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2년 1월 23일 서울 창신동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남편이 자기 아내와 간통을 저지른 간부를 죽인 사건이다. 이런 사건은 여럿 있지만, 살해의 형태가 독특한 점이 눈에 띈다.

2 상세

1월 23일 오후 5시 경, 창신동에 사는 팥죽 장수 한복암(50)은 자기 집에 얹혀사는 지겟군 추복동(21)이 자신의 아내 정영옥(40)과 간통한 사실을 알고 그를 결박한 뒤 몹시 구타, 종국에는 그의 성기를 뽑아내어 절명케 했다. 내가 고자라니

그 후 경찰에 연행된 한복암의 진술에 따르면, 추복동은 부부의 팥죽집에 자주 들리는 단골손님이었고, 1개월여 전부터는 둘을 의부모로 모시겠다면서 집에 들락거리게끔 되었다는 것. 그리고 21일 새벽에 장사하러 나갈 준비를 하는 아내 정영옥을 옆방으로 데리고 가 처음 간통을 저질렀고, 23일 아침에도 역시 옆방에서 성교를 하고 있던 도중 수상한 낌새를 챈 남편 한복암에게 발각되었다는 것이다.
한복암이 추복동을 구타하는 동안, 아내 정영옥은 뒷산으로 도망가 숨어 있었다고.

하지만 나중에 경찰에 발견되어 출두한 정영옥은 21일에 간통을 저지른 사실은 없으며, 23일 아침 변소 앞에 잠복하였던 추복동이 자신을 강제로 끌고 가서 강간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한복암을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하고 [1], 아내인 정영옥 쪽은 죄질이 나쁘지만 어린 자식[2]들이 있고, 남편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탄원하였기 때문에 입건하지 않기로 했다.

(사건을 보도한 1962년 1월 25일 동아일보 기사)
  1. 한복암은 간부인 추복동이 기절한 줄만 알았고, 죽은 줄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2. 무려 7남매나 되었고, 자식들이 학교를 자퇴할 정도로 가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