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산 왕조 역대 황제 | ||||
18대 발라시 | → | 19대 카바드 1세 | → | 20대 자마습 |
20대 자마습 | → | 21대 카바드 1세(복위) | → | 22대 호스로 1세 |
사산 왕조제 19, 21대 황제. 제위기간 1차 488 - 496년, 2차 498 - 531년
1 즉위 배경
당시의 페르시아는 에프탈이나 훈족에 의한 침입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페로즈 1세는 에프탈에게 패배하고 카바드 1세를 인질로 잡혀 2년 동안 무거운 몸값을 지불하고 있었다. 484년에 페로즈 1세가 전사하고 그의 부대가 궤멸하자, 크테시폰에 남아있던 페로즈 1세의 동생 발라시가 즉위하지만 호구인증만 하는 추태를 보였다. 유력자들과 고위 사제들은 카바드 1세를 적임자로 삼고 호구짓만 일삼던 발라시를 살해하고 카바드 1세를 황제로 추대한다.
2 제위 초반
에프탈의 도움으로 반역에 성공한 카바드 1세는, 공산주의적 시각을 가진 마즈다크교를 후원하였다. 그의 의도는 확실히 마즈다크교의 교리를 통해 유력자들의 개입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카바드 1세는 496년에 반대세력들에 의해 폐위되고 수사의 '망각의 성'이라고 불리는 곳에 유폐되었다. 그리고 카바드 1세의 동생인 자마습이 왕위를 차지했다.[1]
하지만 카바드 1세는 성에서 탈출하고, 에프탈의 공주와 혼인하여 에프탈을 배후세력으로 삼았다. 결국 카바드 1세는 498년에 페르시아로 돌아가 복위하였으며 반대세력을 숙청하였다. 카바드 1세는 집권 후 에프탈에게 공물을 보냈으며, 너님도 호구 인증[2] 예전에 페르시아에게 지급되었던 이민족 방어 보조금을 동로마 제국에 신청하였다. 하지만 로마의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그 제안을 거절하였으며, 동방의 두 나라가 전쟁으로 서로 쇠약해지길 기대하였다.
3 반전
그러나 카바드 1세는 에프탈과 연합하여 동로마 제국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502년에는 아르메니아의 에르주룸를, 503년에는 티그리스의 디야르바르크를 점령하였다. 하지만 505년에 캅카스 지역에 다시 훈족이 침략하여 휴전하였으며, 동로마는 페르시아에게 캅카스 지역 요새들의 유지비를 지원하였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유스티누스 1세가 새로운 동로마의 황제로 집권했을 때, 갈등은 다시 시작되었다. 페르시아의 봉신인 알문드히르 4세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도승과 수녀들을 살육했다. 그리고 531년 동로마의 벨리사리우스 장군을 칼리니쿰 전투에서 패배시켰다.
하지만 그해 9월 카바드 1세는 사망하고, 호스로 1세가 뒤를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