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놀란

레이튼 오리엔트 FC No.44
케빈 앤서니 잰스 놀란 (Kevin Anthony Jance Nolan)
생년월일1982년 6월 24일
국적잉글랜드
출신지리버풀
포지션미드필더
소속팀볼턴 원더러스 FC (1999~2009)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09~2011)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2011~2015)
레이튼 오리엔트 FC (2016~)
지도자레이튼 오리엔트 FC 감독 (2016~)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감독.

세컨볼의 장인알고도 못막는다는 빅샘 득점루트의 빠질수없는 에이스중의 에이스

1 소개와 플레이스타일

Scared kevin
중앙 미드필더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특별한 장점이 없다. 스피드와 활동량도 평범한 수준이고, 태클이 좋은 것도 아니고, 패싱게임도 깔끔하긴 하지만 날카롭다거나 경기를 조율한다는 수식어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주워먹기에 있어서는 신급이다. 필리포 인자기가 어린 시절 잘못된 길에 빠져서 포지션을 미드필더로 잡았으면 아마 이런 선수가 되었을지도.[1] 박스에 뒤늦게 도착해서 순간적으로 위치선정하는 능력이 정말로 탁월하고, 특히 경합상황에서 굴러떨어지는 세컨드볼에 엄청난 속도로 달라붙어서 골대에 밀어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골 잘 넣는다고 스트라이커 위치에 집어넣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일부에서는 보급형 람파드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또 경기 외적으로는 상당히 건실한 멘탈과 리더쉽의 소유자로, 그가 소속되었던 클럽에서 그는 모두 주장을 역임해왔다. 그 말썽쟁이 앤디 캐롤도 사고를 친 후 놀란의 집에서 동거하는 처분을 받아 한결 품행이 나아지는 등, 선수단 융화에도 큰 몫을 하는 선수.

2 커리어

볼턴 원더러스 시절 샘 알라다이스 감독의 전술적 핵은 수비수를 끌고 다니는 타겟맨 케빈 데이비스와 그 뒤에 숨어있다가(...) 슬쩍 받아먹는 놀란이었고, 이 때의 맹활약(...)으로 볼턴의 UEFA컵 진출을 일구어내며 잉글랜드 대표팀의 문턱까지 갔지만 경기에 뛰지는 못했다. 볼턴의 주장이었으나 앨러다이스 감독이 떠난 이후 감독들과 불화를 겪으며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

뉴캐슬 유나이티드 이적 직후에는 팀 전술이 자신에게 특화되지 않아 크게 활약하지 못하지만, 팀 강등 이후 부임한 휴튼이 캐롤과 놀런의 활용법을 찾아내어, 그가 잘 뛸 수 있게 팀이 조성되면서 크게 활약하기 시작한다. [2] 2009-2010시즌 44경기 17골이라는 미드필더로서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2부리그 올해의 선수가 된다.

2010-2011 시즌에는 만개한 유망주 앤디 캐롤이 볼턴 시절의 데이비스 이상으로 잘 떨구어주기 시작하면서 득점력이 폭발한다. 한때 15경기 8골로, 분명히 중앙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잘넣는 스트라이커 수준인 2경기당 1골을 넘어서며 한때 리그 득점선두에 오르기도 했다. 모종의 사정으로 캐롤을 하숙생으로 맞이한 이후부터는 둘의 콤비플레이가 더욱 물이 올랐다.

하지만 2010-2011시즌 중간 앤디 캐롤이 뜬금없이 리버풀로 이적하면서 득점력이 대폭 감소하였고, 설상가상으로 부상까지 찾아와 시즌 전반만은 못한 활약으로 후반을 마감하게 되었으며, 시즌 종료 후 돌연 강등팀인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면서 이슈를 일으켰다.

이는 뉴캐슬 구단과의 재계약 과정에서 일어난 마찰이 원인으로 보이는데, 구단측에서는 놀란의 나이(29)를 고려해 조금 더 향상된 비교적 단기간의 계약(3년)을 제의하였지만, 놀란측에서는 급료의 인상보다는 안정적인 생활을 보낼 수 있는 장기간의 계약(5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웨스트 햄 측에서 놀란의 이러한 요구(5년의 계약)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주었기 때문에 1부 리그에 대한 미련보다는 가정의 안정적인 수입을 선택한 지극히 현실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웨스트 햄의 신임감독이 볼턴 시절 그를 사실상 키워낸 축빠들의 공공의 적샘 알라다이스여서 그렇다는 면도 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같이 뛰던 동갑내기 조이 바튼역시 이러한 딜레마를 겪다 결국 장기계약을 제시한 QPR로 이적했다. 가정이 있는 선수라면 누구라도 겪을 수 밖에 없는 딜레마인 것이다.

뉴캐슬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믿음직한 주장을 2부 리그로 보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는 한편, 나이도 있고 어차피 자리도 없었으니 차라리 잘 되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

이적하자 마자 웨스트햄의 주장으로 임명됐다.

그런데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가 또 다시 EPL로 승격했기에 2부 리그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미 묻혔다. 그리고 팀 내에서 골을 가장 많이 넣은 선수가 케빈 놀란이다. 그의 활약도 2012-13 시즌 14라운드 현재 14경기 5골 2어시스트의 아주 준수한 수준으로, 놀란의 활약에 힘입어 팀이 EPL 중위권 랭킹을 유지하고 있다. 뉴캐슬 원정을 가서 결승골을 박아주고 왔지만 세리머니는 하지 않으면서 친정팀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반면 뉴캐슬은... 결국 시즌 최종전 레딩 FC전에서 해트트릭으로 시즌 10골을 채우며, 4년 연속 리그 두 자리 득점을 기록하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중하위권 구단에서 매 시즌 10골 이상을 득점하는 미드필더의 가치는 말할 수 없이 크다. 웨스트 햄이 별다른 위기 없이 잔류에 성공했음은 물론이고.

13/14 시즌에는 7골 7어시의 준수한 성적을 내었다.

14/15 시즌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3개월 부상을 끊고 말았다.

2015년 8월 17일부로 웨스트 햄과의 계약을 상호 합의 하에 해지했다. 그 후로 소속팀을 찾지 못하다가 2016년 1월 21일부로 풋볼 리그 2 소속팀 레이튼 오리엔트의 선수 겸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3 그외

평소에 아무것도 안하다가 찔끔찔끔 나타나서 골만 넣는다는 이유로 뉴캐슬 팬들에게는 다소 애증의 존재다. 그러나 올해는 그 골의 숫자가 "찔끔찔끔" 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아서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는 많이 사라졌다. 시즌 전 놀란을 무시하던 한 해외 뉴캐슬 팬이 케빈 놀란이 이번 시즌 8골을 넣는다면 컵에 오줌을 싸서 원샷하겠다 라고 발언했는데, 2010년 12월 12일 현재 시즌이 채 반도 지나기 전에 정말로 넣어버렸고, 따라서 해외 포럼에서는 24시간 안에 영상 증거물을 찍어서 올리지 않으면 영구탈퇴시켜 버리겠다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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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원래 "Messi" 라는 아이디를 쓰던 해당 인물은 2011년 1월 아이디를 "Pissi" (소변을 뜻하는 영어인 Piss+Messi)로 바꾸고 위 그림으로 아바타를 바꾸는 것을 대가로 포럼에 잔류하게 되었다(...)

줏어먹는 것 외에도 리더십 능력이 뛰어나서 보이지 않는 음성적인 측면으로 팀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볼턴에서도 뉴캐슬에서도 주장 완장을 차고 있다. 경기 하는 걸 자세히 보면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동료들에게 끊임없이 소리치면서 지시를 내리고 있다. 필드 위에서 앨런 스미스와 조이 바튼 그리고 앤디 캐롤을 통제하는 사람이기에 멘탈이 '뉴캐슬의 예수'급 이던가 세기말 패왕, 둘 중 하나라는 농담이 있다.

2007 피스컵 개막전에서 몸개그를 보여주었다.(...) #

득점을 하면 언제나 팔을 접어서 닭날개처럼 흔드는 세레모니를 한다. 국내 해설진 등 대부분이 뉴캐슬의 상징인 "까치" 세레모니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냥 닭이라고(...) 매 시즌마다 친구들과 하는 "이 시즌의 세레모니" 행사에서 닭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이 세레모니가 마음에 들었는지 뉴캐슬을 떠나서도 종종 푸닥거리(...)를 하고 있다.
  1. 드립이고 사실 인자기보다는 피지컬이 훨씬 좋아서 주워먹기가 가능하다고 봐야된다.
  2. 알라다이스가 놀란의 사용설명서를 작성한다면 이런 사항이 들어갈 것이다. 전방에 강한 제공권을 가진 스트라이커가 적어도 한명 혹은 두명 이상 존재, 부족한 수비력을 보완해줄 미드필더 두명 이상 존재, 놀란은 박스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공격가담에 집중하게 할 것. 뉴캐슬 이적 직후의 스트라이커들 (비두카, 오웬, 마르틴스 등)은 이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고, 측면에 놓아도 중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이 바튼은 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