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FC

16-17시즌 중 발생한 이슈에 대해서는 리버풀 FC/16-17시즌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2016-17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레스터리버풀맨시티맨유
미들즈브러번리본머스사우스햄튼
선덜랜드스완지스토크아스날
에버튼왓포드웨스트 브롬웨스트 햄
첼시크리스탈 팰리스토트넘


리버풀 F.C.
Liverpool F.C.
정식 명칭Liverpool Football Club
별칭더 레즈 (The Reds)
창단1892년 6월 3일
소속 리그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English Premier League)
연고지리버풀 (Liverpool)
홈 구장안필드 (Anfield Stadium)
(54,000명 수용 가능)
라이벌에버튼 FC - 머지사이드 더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노스웨스트 더비[1]
구단주펜웨이 스포츠 그룹 (Fenway Sports Group)[2]
감독위르겐 클롭 (Jürgen Klopp)
주장조던 헨더슨 (Jordan Henderson)
부주장제임스 밀너 (James Milner)
공식 웹 사이트[1]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앤디 캐롤(Andy Carroll)
(2011년, From 뉴캐슬 유나이티드, 3500만 파운드)
최고 이적료 방출루이스 수아레스(Luis Alberto Suarez Diaz)
(2014년, To FC 바르셀로나, 6500만 파운드)[3]
최다 출장이안 캘러핸 (Ian Callaghan) - 640경기 (1960-1978)
최다 득점이안 러쉬 (Ian Rush) - 346골 (1980–1996)
우승 기록
프리미어 리그 (1부)
(18회)
1900-01, 1905-06, 1921-22, 1922-23, 1946-47, 1963-64, 1965-66, 1972-73, 1975-76,
1976-77, 1978-79, 1979-80, 1981-82, 1982-83, 1983-84, 1985-86, 1987-88, 1989-90
챔피언십 리그 (2부)
(4회)
1893-94, 1895-96, 1904-05, 1961-62
FA컵
(7회)
1965, 1974, 1986, 1989, 1992, 2001, 2006
풋볼 리그 컵
(8회)
1981, 1982, 1983, 1984, 1995, 2001, 2003, 2012
FA 커뮤니티 실드
(15회)
1964, 1965, 1966, 1974, 1976, 1977, 1979, 1980,
1982, 1986, 1988, 1989, 1990, 2001, 2006
UEFA 챔피언스리그
(5회)
1977, 1978, 1981, 1984, 2005
UEFA컵
(3회)
1973, 1976, 2001
UEFA 슈퍼컵
(3회)
1977, 2001, 2005
2016-17 시즌 유니폼
HOMEAWAYGK
메인 스폰서유니폼 메이커

잉글랜드 클럽 중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우승 클럽이자 유일한 빅이어 영구 소장 클럽[4]

1부 리그 18회 우승 기록을 가진 명가[5][6]


1 소개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주 리버풀을 연고지로 둔 프리미어 리그 소속 축구 클럽.


2 역사

리버풀 FC/역사 문서 참조.
현재 시즌에 대해서는 리버풀 FC/16-17시즌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이전 시즌에 대해서는 리버풀 FC/15-16시즌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역대 로고 변천사. 리버버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3 상징

구단의 상징, 리버버드와 붉은색.

지금이야 리버풀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클럽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색이고, 100년이 넘는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러했으나, 19세기 말 갓 창단한 리버풀의 유니폼은 초창기 에버튼의 그것과 유사한 파랑-하양 디자인을 따랐다.[7] 물론 이 유니폼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폐기되었으며, 1894년에 리버풀 시의 상징색이기도 한 빨강을 처음으로 유니폼 디자인에 채용하였다. 이때부터 1964년까지, 오늘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는 빨강(상의)-하양(하의) 디자인을 고수하던 리버풀은 당시 감독이던 빌 샹클리의 제안으로 하의와 스타킹까지 붉은색으로 물들인다.

"그(샹클리)는 온몸을 붉은색으로 불들이는 것이 상대에게 위압감을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어느 날 드레싱 룸으로 들어와서 로니 예츠에게 빨간색 하의 한 벌을 건네더니, "이거 한 번 입어보고 어떤지 좀 보자" 라고 했다. 그리곤 "오, 로니, 장난 아니게 멋진데? 놀라워. 키가 2미터는 돼 보이는군." 그 모습을 본 내가 제안하길, "아예 양말도 빨간색으로 해 버리죠? 모두 빨간색으로 하고 나가요." 샹클리는 찬성했고, 그것이 리버풀의 새로운 상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이안 세인트 존.[8] 그의 자저선에서.

리버풀은 유니폼 상의에 메인 스폰서 로고를 부착하고 경기에 나선 잉글랜드 최초의 클럽이라는 독특한 기록도 보유하고 있는데, 1979년 히타치와 계약을 맺으면서였다. 그 후 리버풀은 크라운 페인트, 칼스버그 등을 거쳐 현재는 가슴에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로고를 새기고 있다. 한편 칼스버그와의 스폰서십 계약은 1992년부터 2011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이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계약이라고 한다.

공식 구단 엠블럼 윗면에는 그 유명한 YNWA 문구가, 방패 안에는 리버풀 시의 문장인 리버버드가 자리해 있으며, 양쪽의 불꽃은 안필드 밖에 위치한 힐스보로 참사 기념비에 있는 성화를 표현한 것이다.

그 유명한 샹클리 게이트. 상단에 리버버드 문양이 보인다.


3.1 You'll Never Walk Alone

본래 1945년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회전목마'에 등장한 곡. 그 후 여러 가수, 기획사들에 의해 불리고 팔렸지만, 영국 내 가장 유명한 버전은 1963년 발매된 Gerry and the Peacemakers의 You'll Never Walk Alone이다. 제목과 가사가 어떤 어려울 때라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감동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발매된 후 리버풀 팬에게 많이 불리다 보니 리버풀의 응원가겸 슬로건(!)이 되었다.

또한, 상기 해놓은 바처럼 다른 응원가와 달리 대중 음악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에 지역성이 없어 다른 클럽들이 쓰기에도 가사가 전혀 문제가 없다. 실제로 리버풀에 한정된 응원가가 아니라는 꽤나 흥미로운 점이 있다.[9] 이웃 리그의 한국에선 차두리랑 기성용이 있었던 클럽으로 유명한 셀틱 FC부터 독일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마인츠 05, 호펜하임를 넘어 심지어 FC 도쿄(!!!)를 포함한 다수의 클럽들이 YNWA를 응원가로서 쓰고 있다. 실제로 이런 클럽들과 프리시즌에 경기를 가질 때에는 사이좋게 YNWA 문구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고, 팬들도 별로 마주 볼 일이 없는 타국 리그 뿐인지라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15-16시즌 유로파리그 8강전 리버풀과 도르트문트의 경기에서 양팀팬들이 YNWA를 합창하는 훈훈한 진푼경의 펼쳐졌다. 역사에 남을 명경기가 펼쳐진 것은 덤.


4 특징

2000년대 중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FC, 아스날 FC과 함께 빅4로 불리었지만 우승권과는 거리가 꽤 먼 3-4위를 주로 전전했고 알론소의 이적 이후 6-8위권을 맴돌며 유로파리그도 확실히 나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1989/90 시즌 리그 우승을 마지막으로 리그 우승이 없고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에는 최다 우승 기록까지 맨유에게 빼앗겼다. 과거에 통합 20년 정도를 2부리그에서 놀았는데 이것 때문에 빅4에 5번 강등된 팀이랑 같이 있는게 창피하다고 디스당하기도 했다.

2009/10 시즌부터는 유로파권에도 턱 없는 경기력을 보여서 한국 온라인 상에서 우승후보가 아니라 웃음후보라고 까였었다. 리버풀은 승점 얻기가 힘드니 웃음 한 번 주면 승점 1점 준다는 개드립도 가끔 나왔다.

이런 상황 때문에 예능풀이라고 까였었다가 2013/14 시즌 들어 갑자기 챔스권을 넘어서 우승경쟁을 치열하게 하고있는 이변을 보여줬다. 13/14 시즌 34라운드가 끝난 현재까지, 팀의 공격수인 루이스 수아레스다니엘 스터리지는 득점수가 리그 1, 2위를 나란히 달리고 있으며 우승경쟁팀 첼시 FC의 의적질(...)과 34라운드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안필드에서 때려잡은 결과 잔여 4경기를 남겨둔 현재 유력한 우승후보로 리그를 마무리하고 있는 등 이번 시즌 확연히 달라진 경기력과 공격력으로 엄청난 팬을 확보하는 중. 현재까지 10연승을 기록함과 동시에 역대 득점 기록들을 모두 갈아치우고 있다. 특히나 당시 리그 1위 아스날을 5:1로 이긴 25라운드,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를 3:0으로 때려 잡은 29라운드(스터리지가 다이빙으로 얻은 PK를 실축하며 비겁하게 얻은 골은 넣지 않는다는 오글 시리즈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토트넘 핫스퍼를 상대로 합계 9:0 더블, 전반기 3:3 명경기를 연출했던 옆동네 에버튼 FC를 4:0으로 떡실신 시키는 등 이번 시즌 안필드는 그야말로 충공깽. 하지만 리버풀은 첼시전에서 스티븐 제라드가 치명적인 실책을 범하면서 결국 맨시티가 우승을 거머쥐었다. 비기기만 해도 우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던 경기에서 진게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2014/15 시즌이 시작되었다. 지난 13/14 시즌 돌풍을 일으켰던 믿고 쓰는 소튼산 데얀 로브렌, 아담 랄라나, 리키 램버트를 야심차게 영입하고, AC 밀란에서 마리오 발로텔리를 세비야에서 알베르토 모레노를 그리고 레버쿠젠에서 엠레 찬(칸)을 벤피카에서 라자르 마르코비치를 영입하는 등 13/14 시즌을 끝으로 저 멀리 까딸루냐로 떠난 루이스 수아레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많은 전력보강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2014년 11월 23일 기준 리그에서 11위로 심각한 부진을 겪고있다. 1차적으로는 수아레스의 공백을 채우지 못한 공격진들의 문제가 있으나 수아레스가 없으니 마땅한 전술을 꺼내지 못하는 로저스 감독 역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스터리지의 부상만을 운운하기에는 아스날이나 맨유는 그보다 부상 상황이 더 심하고 아예 팀이 재개편된 소튼 등, 리버풀보다 더 심한 상황에 처한 팀은 여럿 있다. 흡사 알론소를 팔고 몰락하던 그 시절처럼 끝없는 부진을 겪고 있다.

2015/16 시즌, 로저스 감독이 8라운드만에 해임됐다. 독일 출신 위르겐 클롭이 지휘봉을 잡았다. 최종 리그순위 8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4.1 부진의 원인 : 이적 시장에서의 실패

정통 스트라이커가 없어서 괜찮은 정통 스트라이커를 데려와도 리버풀에만 오면 조용해진다
헤이젤 참사와 힐스브로참사가 연이어 터지게 되고 그레이엄 수네스, 로이 에반스 감독 채제에서 리빌딩역시 실패한 리버풀이지만, 제라르 울리에감독이 공동 감독으로 부임하고, 단독감독이 되면서 부진이 어느정도 수습이 되는듯했다. 그것이 바로 00/01시즌 FA컵, 리그컵, UEFA컵[10]], 커뮤니티 실드, UEFA 슈퍼컵의 5관왕으로 증명이 되었다. 프랜차이즈 스타 마이클 오언은 이때 발롱도르까지 수상했다. 리그에서도 3위를 기록했지만, 오언과 에밀 헤스키투톱은 30골을 합작하며 스트라이커가 약하다는 평가는 받는 팀이 아니었다. 오언은 다음시즌에도 19골을 터뜨리며 팀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지만, 헤스키가 부진했고, 2위임에도 팀득점 67점으로 1위 아스날의 79득점, 3위 맨유의 87득점에 비하면 매우 저조한 득점력을 보이기 시작하며, 리버풀의 스트라이커 잔혹사가 시작이 되었다.

02/03 시즌을 앞두고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친 세네갈의 연쇄살인마라는 별명을 가진 공격수 엘 하지 디우프를 1000만 파운드에 영입을 했다. 전 소속팀인 리그앙의 RC 랑스에서도 두시즌동안 18골을 뽑아낸 검증된 공격수였고, 월드컵에서 세네갈을 8강으로 이끈 맹활약을 했기에, 기대를 모은 영입이었으나, 두시즌동안 리그 55경기에 나와서 3골, 리그컵 7경기 나와서 3골 총 79경기에 출전해서 6골을 넣는 최악의 부진을 선보이며,[11] 결국 04/05시즌에 볼튼 원더러스로 임대를 떠났고, 거기서는 리그 9골을 터뜨리며 완전이적을 해버린다. 400만 파운드에...리버풀은 5위로 추락하여 챔스도 못나갔으며, 이듬해 간신히 4위를 기록하며 챔스복귀에는 성공한다. 유스출신인 오언 꾸준히 19골, 16골을 기록해주고 있었고, 01/02시즌에 320만 파운드에 영입했던 밀란 바로시가 02/03시즌 총 12골을 넣어주었다. 그런데,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마저도 시즌 종료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퇴물 취급받던 에밀 헤스키마저 버밍엄 시티로 이적하게 되면서 리버풀의 공격진은 그야말로 멸망하게 되었다.

오언과 디우프가 사라진 04/05시즌 리버풀은 드디어 라파엘 베니테스가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이미 공격진이 멸망된 상황. 바로시 혼자 분투한 시즌이었다. 지브릴 시세를 당시 리버풀 클럽 레코드인 1450만 파운드에 영입은 했지만, 영입한지 얼마안되 다리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게 되었고, 두시즌동안 리그 13골의 그냥 그런 활약을 보였다. 유로 2004에서 맹활약하며 득점왕에 오른 바로시가 간신히 9득점을 올렸을뿐. 이스탄불의 기적이 아니었으면 진짜 멸망한 시즌이었다. 그러나 밀란 바로시 조차 다음시즌인 05/06시즌을 부상으로 통채로 날려버렸다. 04/05때 닐 멜러라는 반짝 스타가 갑툭튀 하긴 했지만, 그야말로 반짝 스타였을분.

2006-07 시즌 팀의 득점력 강화를 위해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서 한창 물이 올랐던 상태의 디르크 카윗을 1500만 파운드의 거금으로 영입했는데, 카윗의 활동량이나 팀 플레이는 수준급이었으나 정작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리그 12골로, 득점랭킹 9위에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이후 오랜기간동안 리버풀에 헌신하긴 했기에 돈날린 영입이라고는 볼 수 없다. 같은 시즌 6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뉴캐슬에서 크레이그 벨라미도 영입했지만 리그 7골로 빈곤한 득점력은 해결해주지 못했다대신 리세를 골프채로 두들겨패고, 다음 경기인 바르셀로나와의 챔스경기에서 맹활약하며 바르셀로나를 탈락시키긴 했다그도 결국 다음시즌 바로 팀을 떠났다.

결국 07.08 시즌 이적시장에서 2000만 파운드라는 클럽 레코드를 기록하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페르난도 토레스를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토레스의 이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크레이그 벨라미, 지브릴 시세, 마르크 곤살레스, 루이스 가르시아, 플로랑 시나마-퐁골 등 주전급 자원 여러 명을 이적시켜야 했고, 이는 가뜩이나 당시 선두권 경쟁을 벌이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FC, 아스날 FC에 비해 얇은 스쿼드를 갖고 있던 팀의 전력을 한층 더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토트넘 핫스퍼에서 로비 킨을 데려왔으나 6개월만에 반송 처리했고, 이외에 알베르트 리에라, 안드레아 도세나 등의 영입도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 뒤 사비 알론소하비에르 마스체라노때의 이적 이후 리버풀은 미드필더 보강을 위해 대체자로 크리스티안 폴센과 하울 메이렐레스, 알베르토 아퀼라니 등을 영입했으나 모두 장렬히 시망(...) 그나마 메이렐레스는 적절하게 밥값은 했으나 1년만에 첼시로 이적했다.

이후 토레스가 5000만 파운드라는 기록적인 이적료로 떠난 뒤, 리버풀의 선택은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앤디 캐롤에게 3500만 파운드를 쏟는 것이었으나 바로 실패했고, 덩달아 이 때 같이 영입했던 찰리 아담이나 스튜어트 다우닝 또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조기에 방출되었다. 그나마 이 때 영입했던 조던 헨더슨이 뒤늦게 기량을 만개했고, AFC 아약스에서 2650만 파운드로 사온 루이스 수아레스가 월드 클래스의 기량을 보여주면서 파비오 보리니이아고 아스파스 등의 영입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부활하는 듯 했지만...

그 뒤 그 수아레스가 7500만 유로로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을 때, 대체자로 영입한 마리오 발로텔리 역시 폭망... 그래도 대체자라고 볼수는 없지만 아담 랄라나가 적절히 밥값을 해주면서 위의 두 상황보다는 나은 모습인 듯 하지만, 데얀 로브렌이나 라자르 마르코비치 등이 이적료에 걸맞는 역할을 해주지 못하면서 역시 지지부진한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다른 중소팀 에이스를 영입해서 월드클래스로 만들어내서 성적을 올리지만, 그 에이스가 레알, 바르샤, 첼시 등의 구단에게 수많은 이적료로 뺏긴 뒤, 대체자로 사온 선수들은 하나같이 영 좋지 않은 기량으로 팀과 선수 모두 공동 폭망을 하게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매시즌 시작 후 10라운드 정도가 지나면, 리그의 이적생들의 초기 성적표가 각 언론별로 발표되는데 (보통 이적생 베스트 11, 워스트 11 와 같은 제목으로), 리버풀은 워스트 11에 한두명은 항상 포함 되어 있었다.

최근 15-16시즌 초반에는 피르미누가 워스트 11에 다수 언론으로 부터 선택 되었다. 물론 후반기에 (정확히 말하면 클롭 감독 부임 후), 각성하며 맹활약 하였고 위에 상술된 로브렌도 완전히 적응을 마치며 수비진의 핵심이 되었지만 리버풀 공격진의 희망이 되어야 했던 벤테케가 기대한 만큼의 활약을 보이진 못했고, 서브 키퍼로 밥값은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데려온 보그단이 폭망하는 등 이적생들의 부적응 문제는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었다.

토트넘과 비슷한 딜레마라고 할 수도 있겠다. 토트넘 역시 가레스 베일의 이적료로 엄청난 돈을 받았지만 토트넘 역시 어중간한 자원들로 그 자리를 대체하려다가 실패하고 돈만 날려먹었다. 그나마 토트넘보다 나은 점이라면 잉여 정리한다는 정도?

게다가 과거 구단주였던 조지 질레트 & 톰 힉스 듀오가 구단 운영에서 거하게 삽질을 해 먹튀로 끝난 것이 구단의 몰락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16-17 시즌에는 그루이치, 마팁에 이은 카리우스의 영입과 스크르텔의 이적을 시작으로 클롭의 게겐 프레싱 전략에 맞게 대대적으로 팀을 리빌딩 할 것으로 보인다.

5 THE KOP

콥(KOP)이라고 불리우는 열정적인 서포터즈로 안필드를 가득 메운 콥들의 열정적인 응원은 리버풀에겐 큰 힘을, 상대편에겐 상당한 부담감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리버풀 입장에선 든든한 서포터즈이지만 영국에선 헤이젤 참사의 주범들이자 그후 몇년간 잉글랜드 클럽의 유럽대항전 참가 금지 크리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다.

콥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1906년 리버풀이 두 번째 1부 리그 우승을 한 후 구단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경기장 골대 뒤에 새로운 관중석의 이름이 스파이언 콥(Spion kop)으로부터 유래됐다. 스파이언 콥은 보어 전쟁 때 많은 리버풀 출신 병사들이 전사한 지명인데, 당시 관중석을 만들 때 스파이언 콥이라는 이름으로 전사한 리버풀 출신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 지금의 콥이 되는 것이다.
그럼 관중석 이름이 어째서 서포터즈를 지칭하게 되었느냐는 의문점이 생긴다. 그 이유는 61-62시즌 2부리그로 강등되었던 리버풀이 우승을 하며 1부리그로 승격된 후 62-63 시즌 블랙풀과의 시즌 첫 경기를 치렀는데, 이때 안필드에 최고 관중이였던 5만여명의 팬들 중 절반이 넘게 골대 뒤의 스탠드(Kop)모여서 리버풀을 외쳤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당시 최고의 인기인 비틀즈[12]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덩달아 옆에 있던 다른 팬들도 같이 노래를 부르며 열정적으로 응원했고, 이것이 지금의 콥의 시작점이 된 것이다.

6 인기

자국 인기도 많지만 해외에서 인기도 많다. 동남아 쪽엔 폭발적으로 인기가 많다. 타이 전직 총리이던 탁신 치나왓이 이 리버풀 구단을 사려다가 실패하여 맨체스터 시티를 대신 샀던 것도 유명하다. 사실 당시만 해도 아시아, 동남아 구단주에 대한 거부감도 서포터들이나 주주들에게도 있었으나 탁신이 국고금 및 꽤 더러운 돈으로 리버풀을 산다는 소식이 잉글랜드 언론을 통해 알려졌던 점도 컸었다.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를 여행한 이의 경험을 봐도 맨유보다 리버풀 서포터를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이슬람이 상당수인 서포터들은 불만인게 하필 칼스버그가 유니폼 스폰서라서 두 나라에선 맥주 관련 광고로 규정한 탓에 판매제한이 되어 옛날 칼스버그 이전 유니폼이 아직도 나와 팔리고 있다며 투덜거리던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프리 시즌에 동남아 친선경기를 자주 가진다.

6.1 콥으로 유명한 사람들


6.2 별명

리버풀이 전성기였을때는 붉은제국이라고 불려졌으며 최근에는 한국 팬들 사이에서 의적풀, 행복풀, 리빅아[13]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또한, 지나치게 과도한 팬질[14]을 하는 팬들을 비하할 때 콥등이[15]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우승을 할 "뻔"한 시즌인 13-14시즌엔 타팀 비하가 지나칠 정도로 심했으나 스티븐 제라드의 불운한 사고로 2위로 시즌을 마치게 되자 그간 했던 조롱을 배로 돌려받았다
.

7 우승 기록

리그 우승횟수는 18회로 리그 최다였으나 2010-11 시즌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19번째 리그 우승을 하면서 최다 우승이라는 명예는 라이벌인 맨유에게 빼앗겼다. 리버풀이 18번째 우승을 했을 때 맨유의 우승기록은 7회에 불과했으나 그후로 리버풀은 계속 우승에 실패하고 맨유는 알렉스 퍼거슨의 지휘아래 리그를 지배하며 기어코 리버풀을 역전했다.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하고 장기간 동안 리그 타이틀 컨텐더로 취급을 받았으나 아쉽게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그타이틀 무관 기록인 9493일을 깨고 9494일을 달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UEFA 챔피언스 리그는 3번째로 우승을 많이 한 팀 (5회) [16]으로 잉글랜드 내에서는 1위이다. 09/10시즌 이후로 연이어 챔스 진출에 실패했지만 2013/14 시즌은 챔스 진출 확정은 물론 24년만의 리그 우승까지 노렸으나 아쉽게 리그 2위로 끝마쳐야 했다.

8 유소년 아카데미

오웬-제라드-캐러거가 한번에 나온 영향인지 유소년 아카데미 시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걸로 유명하다.[17][18][19]

2013년 6월에 UEFA에서 선정한 최고의 유소년 아카데미를 보유한 클럽에 리버풀이 Top5, 잉글랜드 클럽중에선 1위로 선정되었다.(1위는 아약스, 2위는 바르셀로나, 3위는 도르트문트, 4위는 레알마드리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버풀 FC/하부기관 참고.


9 스태프

리버풀 FC 16-17시즌 스태프 명단
직책이름영문이름국적
감독위르겐 클롭Jürgen Klopp
일등 수석 코치젤리코 부바치Zeljko Buvac
이등 수석 코치피터 크라비에츠Peter Krawietz
1군 골키퍼 코치존 악터버그John Achterberg
1군 발전 코치페핀 린데르스Pepijn Lijnders
피트니스 및 컨디셔닝 총괄안드레아스 콘마이어Andreas Kornmayer
의료 서비스 총괄앤드류 매시Andrew Massey
재활 피트니스 코치조던 밀섬Jordan Milsom
재활 피트니스 보조코치데이비드 라이딩스David Rydings
장비 관리자그래엄 카터Graham Carter
장비 관리 코디네이터리 래드클리프Lee Radcliffe
스포츠과학 컨설턴트배리 드러스트Barry Drust
영양사모나 넴머[20]Mona Nemmer
1군 경기 후 분석관마크 릴랜드Mark Leyland
상대 기술 분석관그렉 매티슨Greg Mathieson
상대 분석관제임스 프렌치James French
마사지사폴 스몰Paul Small
물리 치료 총괄앤디 렌쇼Andy Renshaw
물리 치료사후벤 폰스Ruben Pons
물리 치료사스콧 매콜리Scott McAuley
물리 치료사리치 파트리지Richie Partridge
물리 치료사조 루이스Joe Lewis
물리 치료사맷 코노핀스키Matt Konopinski
21세 이하 팀 피트니스 총괄앤디 오보일Andy O'Boyle
틀 정보
출처 : [리버풀 FC 공식 홈페이지] / 마지막 수정 일자 : 2016년 9월 17일

10 스쿼드

리버풀 FC 2016-17 시즌 스쿼드
등 번호이름영문 이름포지션국적생년월일체중이적료비고
1로리스 카리우스Loris KariusGK30px-Flag_of_Germany.svg.png1993년 6월 22일189cm75kg£4.7M
2나다니엘 클라인Nathaniel ClyneDF30px-Flag_of_the_United_Kingdom.svg.png1991년 4월 5일175cm67kg£12.5M
5헤오르히니오 베이날뒴Georginio WijnaldumMF30px-Flag_of_the_Netherlands.svg.png1990년 11월 11일175cm74kg£25M
6데얀 로브렌Dejan LovrenDF30px-Flag_of_Croatia.svg.png1989년 7월 5일188cm84kg£20M
7제임스 밀너James MilnerDF30px-Flag_of_the_United_Kingdom.svg.png1986년 1월 4일176cm70kgFree부주장
10필리피 코치뉴Philippe CoutinhoMF30px-Flag_of_Brazil.svg.png1992년 6월 12일171cm68kg£8.5M
11호베르투 피르미누Roberto FirminoFW30px-Flag_of_Brazil.svg.png1991년 10월 2일181cm76kg£29M
12조 고메스Joe GomezDF30px-Flag_of_the_United_Kingdom.svg.png1997년 5월 23일188cm77kg£3.5M
13알렉산더 마닝거Alex ManningerGK30px-Flag_of_Austria.svg.png1977년 6월 4일188cm85kgFree
14조던 헨더슨Jordan HendersonMF30px-Flag_of_the_United_Kingdom.svg.png1990년 6월 17일182cm67kg£18M주장
15다니엘 스터리지Daniel SturridgeFW30px-Flag_of_the_United_Kingdom.svg.png1989년 9월 1일178cm76kg£12M
16마르코 그루이치Marko GrujićMF30px-Flag_of_Serbia.svg.png1996년 4월 13일191cm75kg£5M
17라그나르 클라반Ragnar KlavanDF30px-Flag_of_Estonia.svg.png1985년 10월 30일186cm78kg£4.2M
18알베르토 모레노Alberto MorenoDF30px-Flag_of_Spain.svg.png1992년 7월 5일171cm65kg£12M
19사디오 마네Sadio ManéFW30px-Flag_of_Senegal.svg.png1992년 4월 10일175cm69kg£34M
20아담 랄라나Adam LallanaMF30px-Flag_of_the_United_Kingdom.svg.png1988년 5월 10일172cm73kg£25M
21루카스 레이바Lucas LeivaDF30px-Flag_of_Brazil.svg.png1987년 1월 9일179cm73kg£5M3주장
22시몽 미뇰레Simon MignoletGK30px-Flag_of_Belgium.svg.png1988년 3월 6일193cm87kg£9M
23엠레 찬Emre CanMF30px-Flag_of_Germany.svg.png1994년 1월 12일184cm82kg£9.75M
27디보크 오리기Divock OrigiFW30px-Flag_of_Belgium.svg.png1995년 4월 18일185cm75kg£10M
28대니 잉스Danny IngsFW30px-Flag_of_the_United_Kingdom.svg.png1992년 7월 23일178cm73kgFree
32조엘 마티프Joël MatipDF30px-Flag_of_Cameroon.svg.png1991년 8월 8일195cm90kgFree
35케빈 스튜어트Kevin StewartMF30px-Flag_of_the_United_Kingdom.svg.png1993년 9월 7일182cm73kg-
54셰이 오조Sheyi OjoMF30px-Flag_of_the_United_Kingdom.svg.png1997년 7월 19일186cm74kg£2M
56코너 랜들Connor RandallDF30px-Flag_of_the_United_Kingdom.svg.png1995년 10월 21일180cm76kg-
틀 정보
출처 : 리버풀 FC 공식 홈페이지 / 마지막 수정 일자 : 2017년 1월 8일
* 이적료의 경우 언론사에서 나온 정보 참조. * 이중국적의 경우 국가대표 선택을 기준으로 표기.


11 그 외

의도적으로 리버풀의 슬럼화를 조장, 방치했다는 의혹이 있다. [관련 기사], [관련 글], [요약 글]


12 같이 보기

순서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국가첫 우승연도우승 횟수
1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1956년11회
2 벤피카
(Benfica)
1961년2회
3 밀란
(Milan)
1963년7회
4 인테르나치오날레
(Internazionale)
1964년3회
5 셀틱
(Celtic)
1967년1회
6 맨유
(Manchester Utd.)
1968년3회
7 페예노르트
(Feyernoord)
1970년1회
8 아약스
(Ajax)
1971년4회
9 바이에른 뮌헨
(Bayern)
1974년5회
10 리버풀
(Liverpool)
1977년5회
11 노팅엄 포레스트
(Nottingham Forrest)
1979년2회
12 애스턴 빌라
(Aston Villa)
1982년1회
13 함부르크
(Hamburg)
1983년1회
14 유벤투스
(Juventus)
1985년2회
15 스테아우아
(Steaua)
1986년1회
16 포르투
(Porto)
1987년2회
17 PSV
(Eindhoven)
1988년1회
18 츠르베나 즈베즈다
(Crvena Zvezda)
1991년1회
19 바르셀로나
(Barcelona)
1992년5회
20 마르세유
(Marseille)
1993년1회
21 도르트문트
(Dortmund)
1997년1회
22 첼시
(Chelsea)
2012년1회
  1. 국내언론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인 레즈 더비(Reds Derby)는 잘못된 표현이다. 두 팀 다 붉은 색 유니폼을 입는 건 맞지만 레즈는 리버풀만을 지칭하는 단어이고 맨유는 레드데블즈이다.
  2. 존 헨리(John William Henry II)가 소유한 기업으로, FSG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보스턴 레드삭스(2002년 인수), 나스카 러쉬 펜웨이 레이싱팀(2007년 인수), 리버풀 FC(2010년 인수) 등이 FSG 소속이다.
  3. 원래는 7500만 파운드로 알려졌으나, 계약서가 유출 되면서 바르사측 주장이었던 6500만 파운드가 맞는것으로 확인되었다.
  4. 과거 UEFA 챔피언스 리그를 5번 이상 우승하거나 3번 연속 우승을 한 팀은 빅이어를 영구 소장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었다. 그러나 이후 UEFA에서 빅이어를 영구소장을 할 수 없도록 규정을 바꿈으로서 이 규정이 바뀌지않는 한 이후 다른 클럽들이 조건을 충족해도 더 이상 빅이어를 영구 소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리버풀이 마지막으로 소유하게 된 클럽인 것은 아니다.
  5. 잉글랜드에서 맨유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리그 우승 기록이다.
  6. 다만 프리미어 리그로 개편 이후 26년동안 우승 경력이 없는데다 근 6년 간 중위권 성적에 정체되었기 때문에 최근에는 리버풀이 빅클럽으로서의 위상을 잃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리빅아 항목 참조
  7. 사실 설립 초창기 구단의 공식 명칭도 Everton F.C. and Athletic Grounds Ltd였을 만큼, 아직 리버풀로서의 정체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고 볼 수 있겠다.
  8. 리버풀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다.
  9. 단, 리버풀이 응원가로 사용한 사례의 원조이다.
  10. 지금의 유로파 리그
  11. 선수 항목에도 작성되어있지만, 매우 사생활문제도 있는 문제가 많은 선수였다.
  12. 비틀즈의 멤버 모두 리버풀 출신이다.
  13. 카림 벤제마가 리버풀 이적설에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버풀 클럽 니야라고 대답한 것에서 유래. 리버풀을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별명
  14. 타 팀이나 타 팀 선수 비하등의 행위
  15. 리버풀 팬을 뜻하는 콥+벌레 꼽등이
  16. 1위 레알 마드리드 CF(11회), 2위 AC 밀란(7회), 3위 바이에른 뮌헨, FC 바르셀로나와 공동 (5회)
  17. 단 저 셋이 혜성처럼 등장한 이후 한동안 재미를 못봐서 결국 전임자였던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이 한차례 개혁을 하였다. 현재의 유소년 아카데미는 그 산물.
  18. 사실 제라드 이후에도 유스가 배출하는 유망주의 양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세계정상급이긴 했는데, 이상하게도 세계적인 선수까지는 성장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프리미어리그 중하위권에는 정작 리버풀에는 드문 리버풀 유스 출신 주전선수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전체적으로 잉글랜드 자원들이 빈약해진 탓도 있지만 상위권에 위치한 빅클럽에서 뛸만한 A급 재능들이 흔한 것이 아닌 것이 이유기도 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리버풀 주전층의 두께가 얇아진 것도 원인중 하나라고 봐야 할 것이다. 1군 선수가 부족하다보니 유스선수들이 빨리 1군에 빨리 데뷔하게 되고, 리그에서 뛸만한 선수들은 많이 배출하게 되지만, 세계구급 재능은 단순히 많이 뛴다고 생겨나는 것은 아니니...
  19. 결국 2015/16시즌 라힘 스털링이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면서 주전급 선수중에 리버풀 유스출신은 한명도 없게 되었다.
  20. 콘마이어 코치와 함께 바이에른 뮌헨에서 재직하다 옮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