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라손 아키노

역대 필리핀 대통령
10대11대12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코라손 아키노피델 라모스
1986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덩샤오핑
1985
코라손 아키노
1986
미하일 고르바초프
1987

1 개요

Corazon Aquino

생애 : 1933년 1월 25일 ~ 2009년 8월 1일
임기 기간 : 1986년 2월 25일 ~ 1992년 6월 30일.

필리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며, 베니그노 아키노의 부인이자 베니그노 아키노 3세의 어머니.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인물이다.

그녀는 사탕수수 농장을 소유한 유복한 가정의 딸로 태어나 미국 유학까지 마치고 정치인 남편을 맞았지만 남편의 급작스런 피살로 반정부 지도자로 변신한 그녀는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직까지 오른 입지 전적인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2 생애

1933년 필리핀의 명문 정치가문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아키노는 미국 뉴욕의 마운트 세인트 빈센트 대학에서 수학과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이후 로스쿨에 진학하려던 계획을 접고 귀국하였고 필리핀의 정치인이었던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와 결혼해 딸 넷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는 1983년 야당 지도자였던 베니그노 아키노가 미국에서 귀국하여 필리핀 국제공항에서 암살당하자 이후 정치에 뛰어들어 1986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정부를 무너뜨린 이른바 '피플 파워' 무혈 봉기를 이끌며 군부의 도움을 받아 집권에 성공했다.

'코리'라는 애칭으로 불린 아키노는 당시 남편의 암살이 마르코스 독재정부의 명령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지만 마르코스가 부정선거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면서 100만명에 가까운 군중을 모아 마르코스 독재정권를 무너뜨렸고 결국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그의 아내 이멜다 마르코스하와이로 도피해야 했다.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망명한 후 베니그노 아키노의 아내인 코라손 아키노가 6년을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1986년 2월 25일 집권한 아키노는 피플 파워 혁명을 상징하는 노란색 옷을 입고 단상에 올라서서 이렇게 연설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앞으로도 부디 정부와 관리들의 행동을 잘 감시해주세요.” 그녀의 연설에 민중들은 대통령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이러한 필리핀의 민주화는 한국과 남미 등을 바롯한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며 아키노는 비폭력 시위의 세계적인 선구자가 되어 아키노는 '현대의 잔 다르크'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키노는 대통령 재임 당시에는 수차례 군부의 쿠데타 기도에 시달리면서 그다지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는 받지 못했다. 실제로 1987년에 대통령궁이 반대파의 박격포 공격을 받기도 하는 등의 위협도 있었지만 피델 라모스 장군의 도움으로 군부의 쿠데타 기도를 막아내기도 했다.

한편 아키노는 필리핀의 민주화에 기여하여 반정부 인사들을 대거 사면시키고 상하 양원제 의회와 독립적인 대법원 등 정부 견제 정치기관을 계엄령 이전 상태로 복원시켜 민주적인 정치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그리고 자유 선거제를 부활시키고 독재정권의 재발을 막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의 임기를 6년 단임제로 제한하고 지방분권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지만 코라손 아키노를 지지한 계층의 이해관계가 엇갈렸기 때문에 개혁정책에 대해서 강경과 온건파 가운데서 어중간한 입장을 취할수밖에 입장이었던데다가 마르코스때부터 이어져온 경기침체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또한 정치경험이 부족해 필리핀 가톨릭 교회를 포함한 정치.경제적 기득권 세력에 휘둘렸다는 비판도 받기 때문에 필리핀 대통령으로써의 평가는 미묘한 수준이다.

그래도 민주화의 공은 인정받아서 1986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이 되기도 했다.

1992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복지재단을 설립해 여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2001년에는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의 하야를 이끈 시위에 참여했으며, 이후 한때 정치적 동지였던 글로리야 아로요 현 대통령이 부정선거와 부패 혐의를 받자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집회에도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퇴임후에도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2009년에 별세했다.

3 기타

한국과의 인연도 있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1980년대 초반 미국 하버드대에 체류하던 당시 아키노의 남편인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과 알게 된 이후 아키노 의원과 꽤나 친한 사이였다고 하며 이때의 인연으로 아키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취임식때도 참석했다.

2009년 8월 1일 아키노가 타계하자 김대중 전 대통령 측에서 조의를 표했고,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도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