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nberries
1 개요
U2와 더불어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얼터너티브 록 밴드[1]
1989년 아일랜드의 리머릭(Limerick)에서 구성되었다. 밴드의 구성 인원은 보컬리스트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Riordan), 기타리스트 노엘 호건(Noel Hogan), 베이시스트 마이크 호건(Mike Hogan)[2] , 그리고 드러머 퍼걸 롤러(Fergal Lawler)로 이루어져 있다.
1993년 데뷔 앨범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 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은 것을 바탕으로 2집과 3집에서 연달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결혼과 출산을 계기로 5집 활동이 끝난 2003년 9월부터 휴식기에 접어들었다가, 2009년 1월 재결성 후 2012년 2월에 새 앨범 Roses를 내면서 조금씩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주로는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솔로 활동이 더 돋보인다.
2 역사
크랜베리스는 1989년 아일랜드에서 결성되었다. 초기에는 호건 형제들, 드러머 퍼갈 라울러와 함께 나이얼 퀸이라는 보컬리스트를 끌어들여 "크랜베리가 보고 있다(the Cranberry Saw Us)"라는 이름의 밴드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밴드의 주작곡자였던 퀸이 밴드를 떠나게 되고 밴드명을 The Cranberries로 고치고 음악 잡지에 새 멤버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내게된다. 독특한 음색을 가진 보컬리스트 돌로레스 오리어던이 이를 보고 밴드에 연락, 밴드가 보내온 아르페지오 데모에 특유의 샌스를 발휘하여 주멜로디와 가사를 붙여서 Linger라는 곡을 완성하여 다시 보냈고 이를 들은 밴드 멤버들이 돌로레스를 새 보컬리스트로 가입시킨다.
1992년 그들이 낸 싱글 <Linger>와 <Dream>은 많은 관심을 모았고 영국의 여러 대형 음반사들이 밴드에 접촉했으나, 정작 크랜베리스는 아일랜드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곧 밴드는 영국 락 그룹 더 스미스를 맡았던 제작자 스티븐 스트릿과 함께 1993년 데뷔앨범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남들 다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게 뭐람?여친 사귀는 거을 발표한다.
비록 데뷔 앨범은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많은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Dreams"가 미국에서 뒤늦게 싱글로 발표되어 스웨이드와 합동으로 미국 투어를 진행, 대박을 터뜨린 것을 발판으로 아예 미국에서 녹음까지 한 2집 No need to Argue에서 싱글커트된 "Zombie", "Ode to my Family"등이 연달아 성공하면서 밴드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들의 음악적 색채는 후속작들을 발표할수록 점차 무거워져 갔는데, 두번째 앨범인 "No Need to Argue"에서는 Zombie 등의 곡에서 반전의 이미지가 강하게 집어넣었으며, 세번째 앨범 "to the Faithful Departed는 애초에 제목부터가 추모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첫번째 싱글인 "Dreams"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비교해보면, 3번째 앨범의 타이틀인 "Salvation"은 더욱 거칠고 직접적으로 슬픈 느낌을 가져다준다.
1999년 발매된 네번째 앨범 "Bury the Hatchet"은 이전보다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을 주게 되었으나, 크랜베리스의 이전 앨범들에서 받은 무겁고 강렬한 이미지를 좋아하던 기존의 팬덤은 이에 실망하였고 이는 팬덤이 둘로 나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양상은 5번째 앨범 "Wake up and Smell the Coffee"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결국 2003년, 크랜베리스는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하였다.
활동 중단 이후에도 돌로레스 오리어던은 솔로 활동을 이어갔고, 밴드의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활동에 전념하였다. 이후 2009년 돌로레스 오리어던이 아일랜드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명예 학위를 받을 때 다시 모인 이들은 그녀의 두번째 싱글 앨범인 No Baggage를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활동을 재개하였고, 2012년 재결성 기념 앨범인 Roses를 발매했다.
3 특징
3.1 반전과 슬픔의 정서
같은 아일랜드 출신 얼터너티브 록 밴드로서 더 큰 팬덤과 영향력을 가진 U2에 비교해 보면, 크랜베리스가 가진 특색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U2가 보다 보편적인 정서에 영향을 두고,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면, 크랜베리스는 "아일랜드"라는 배경의 특수성이 명확하다.
널리 알려진대로, 아일랜드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결코 완전히 평화롭다고 말할 수 없는 곳이었다. 특히 아일랜드 공화국 군(IRA)으로 대표되는 강경파와 영국의 직접 통치하에 있는 북아일랜드와의 분쟁은 많은 테러와 반목을 낳았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초기 크랜베리스 음악은 그러한 싸움이 낳는 여러 비극에 대한 "슬픔"의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첫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Dreams"가 비교적 이러한 슬픔이 가장 덜 묻어나는 곡이라서 잘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Linger", "Not Sorry"같은 곡의 가사는 분명히 그러한 정서를 담고 있다.
보컬 발음에 아일랜드 특유의 억양이 묻어나서 듣기 어려운 감은 있지만 만약 크랜베리스의 곡을 듣는다면, 가사를 반드시 읽으면서 들어보자. 담고 있는 메시지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다.
크랜베리스의 슬픔을 대표하는 2집 수록곡 Zombie
또다른 조용한 슬픔의 대표곡 Twenty One. 역시 2집 수록곡이다.
추모곡의 성격이 강한 3집 수록곡 Cordell
3.2 앨범들 소개
크랜베리스를 소개할 때 첫 싱글 "Dreams"를 빼놓을 수 없다. 몽환적인 분위기와 아름다운 가사를 지닌 이 곡은 보컬리스트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이름을 널리 알린 곡이기도 하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의 테마곡으로 삽입되기도 하였으며, 이후에도 많은 보컬리스트들이 돌로레스의 특이한 창법에 반하여 이 곡을 리메이크해 왔다. 그러나 음악적 색깔에서 볼 때, "Dreams"는 크랜베리스의 색을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개중에는 아주 밝은 쪽에 들어간다고나 할까?
두 번째 앨범이자 앨범 전체에서 빠지는 곡이 하나도 없다는 평가를 받는 "No Need to Argue"는 아예 제목부터가 "싸울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크랜베리스의 모든 곡 중 2번째로 유명한 "Zombie"는 가사와 뮤직비디오에서 대놓고 전쟁과 테러를 비판한다. 이 곡 외에도 이 앨범의 모든 곡들이 슬픔의 정서를 강하게 표현한다. "Twenty One"같이 곡 자체가 슬픈 것도 있고, "Ode to my Family"처럼 곡은 그냥 아름다운데 가사가 시궁창 눈물을 뽑아내는 것도 있다.[3]
세 번째 앨범 "to the Faithful Departed" 역시 제목부터가 "죽은 이들을 추모한다"는 뜻이다. 이 앨범은 오히려 이전 앨범보다 더 무겁고 어둡다. "No Need to Argue"가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선을 지키고 있다면 이 앨범은 이것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제목부터가 "Bosnia"인 곡이 있는가 하면 "I just shot John Lennon"처럼 개인 대상의 테러리즘에 대한 노래도 있다. 특히 죽은 자, 다시는 못볼 사람에 대한 추모곡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꼭 "Cordell"을 들어보도록 하자.
네 번째 앨범 "Bury the Hatchet" 역시 "싸움을 그만두다"는 오래된 숙어이다. 이전 두 앨범에 비해서는 아주 밝아졌다고 볼 수 있는데, 그래도 여전히 가사는 시궁창 슬픔의 정서가 남아 있다. 멜로디에 비해서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면 더욱 그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Animal Instinct", "Promises"같은 타이틀곡에서도 그러한 느낌이 강하지만 "Desperate Andy" 같은 곡의 가사를 읽어보면 아직까지 크랜베리스가 슬픔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네 번째 앨범은 팬덤에서 상반된 반응을 끌어냈는데, 이들의 음악색이 밝아진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먼저, 아일랜드에 드리워진 테러와 반목의 그림자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1990년 중반부터 IRA는 공식적으로 해체 수순에 접어들었으며, 이로 인해 누군가가 슬픔을 대변해 줄 필요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아일랜드는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고, 슬픔은 너무 무거운 것이 되었다.
돌로레스 개인이 행복을 찾은 것 역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녀는 1994년 밴드의 매니저와 결혼하였고, 연달아 여러 아이들을 낳아 어머니가 되었다. 개인적인 행복과 "슬픔을 대변하는 것"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은 찾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잠정적 활동 중단 전 발매한 마지막 앨범인 "Wake up and Smell the Coffee"에 덧붙여진 인사말을 통해, 그녀는 "더이상 누군가가 슬픔을 대변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우리 음악은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Wake up and Smell the Coffee"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이어진 월드 그랜드 투어 이후 발매된 앨범으로, 각각의 곡들은 나름대로 세련된 얼터너티브 록이지만 이전 앨범들이 담고 있는 특유의 정서는 상당히 희석되어 있었다. 당연히 열광적인 팬들의 지지도 약해졌고, 새로운 팬들이 생각만큼 강한 성원을 보내지 않은 것도 있어서 인기는 지금까지 중 가장 낮은 쪽에 속한다.
6년간의 공백기 동안, 밴드 멤버 각각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활동을 펼쳐왔는데, 특히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솔로 싱글들은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재결성을 기념해 발매된 앨범 "Roses"는 생각만큼의 반향을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순항하고 있다.
크랜베리스 4집의 타이틀곡인 Promises
4 여담
4.1 보컬의 특색
보컬리스트 돌로레스의 음색이 아주 특이하여 몇번만 들으면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다. 비음과 경음을 같이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이 창법은 "꺾는" 것과는 또 다르다. "Dreams"와 "Zombie"에서 이러한 목소리가 가진 매력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돌로레스는 한국에서 몇몇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데뷔할 때 흔히 비교되곤 가수 중 하나이기도 하다. 분명 많은 매력이 있는 보컬리스트이긴 하지만, 라이브 공연에서는 그 특색이 너무 강해서인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녀 자신이 그리 완벽하게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편이 아니다. 파리 공연 등은 유투브 실황이 남아 있는데, 이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2 한국에서의 크랜베리스
밴드 자체는 한국에서 그다지 지명도가 있는 편이 아니지만, 몇몇 곡의 경우 굉장히 유명하다. 특히 젊은이의 양지와 개그콘서트의 두근두근 코너에서 사용된 "Ode to my Family"는 도입부만 들어도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외에도 "Dream", "Zombie" 등,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몇몇 곡들은 알아듣는 사람이 꽤 있다.
다만 특유의 "슬픔의 정서"에 공감하는 측은 한국에서도 작지만 꽤 단단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울고 싶을 때 들으면 효과가 짱이라 카더라
뚜 뚜두뚜 뚜 뚜두뚜 뚜 뚜두뚜 2집 수록곡인 Ode to my Family. Does anyone care? 라는 가사가 특히 강렬하다.
크랜베리스는 2001년 그랜드 투어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5 디스코그래피
연도 | 앨범명 | 대표곡 |
1993 |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 | Dreams, Linger, Pretty |
1994 | No Need to Argue | Zombie, Ode to My Family ,I Can't be With You, Empty |
1996 | to the Faithful Departed | Salvation, Hollywood, Cordell |
1999 | Bury the Hatchet | Promises, Animal Instinct, Just My imagination |
2001 | Wake up and Smell the Coffee | Analyse, Time is ticking out, This is the Day |
2002 | Stars | 1989~2002년 베스트 앨범 |
2012 | Roses | Tomorr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