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é Pires
(1465? ~ 1524? 또는 1540?)
포르투갈의 탐험가, 외교관, 약종상(藥種商).
리스본의 약종상이었지만 포르투갈의 식민 총독인 친구의 부탁으로 중국에 외교 사절단으로 떠났다.
아프리카에서는 중국인들을 발견하여 그들이 있다는 기록을 하였으며 인도, 동인도에서 힘든 경험을 하다가 말라카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는 <동양 개요>라는 저서를 쓰기 시작하는데 1512년부터 1515년까지 말라카에 머무르면서 인도네시아 군도를 비롯한 말레이 반도의 많은 지역의 정보를 수집하였으며 말라카에 대해서는 이 도시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은 카이로, 메카, 아덴, 아비시니아, 킬와, 말린디, 오르무즈, 터키, 아르메니아, 구자라트, 말라바르, 실론, 벵골, 시암, 파타니, 캄보디아, 참파, 코친차이나, 중국, 티모르, 마두라, 자바, 순다, 몰디브 출신들의 사람이라고 기록하여 그 당시 동남아시아에 국제화가 이루어졌음을 알려준다.
또한 그 지역의 이슬람인들에 대해 아쩨 북부에서 말라카 해협을 따라 팔렘방에 이르는 동쪽 해안 지역의 통치자들은 무슬림으로 왕이나 귀족이 무슬림이라 해도 서민들은 힌두교와 불교를 고집하였다고 묘사했다.
인도네시아 동부 아라푸라 해에 있는 섬인 아루 제도에서 화려한 깃털을 가진 새들을 보고 이에 대해 묘사하기를 그 새들은 극락조(풍조)라 불렸고 이 새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어떻게 자라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묘사했다.
말라카가 포르투갈에게 정복당하자 말라카에서 포르투갈 본국에 말라카를 돌려달라는 편지를 쓰라는 강요를 거부하여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
1516년에는 중국의 황제에게 외교를 하기 위해 페르난 피레스 데 안드레데의 함대가 있는 광동으로 갔는데 주강 삼각주에서 광주로 가려고 하였을 때 늦어져서 허가없이 광주로 떠난데다가 예복, 연회 등을 베풀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인들의 눈 밖에 나게 된다.
반다 제도에 대한 기록을 1520년에 적었는데 그 곳의 대모갑, 말린 해삼, 비둘기집, 진주, 상어 지느러미 등에 대한 기록을 하였다.
중국에서 1524년에 질병으로 죽었다고 하지만 일부에서는 강소에서 1540년까지 살다가 중국의 허가없이 떠났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