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회원국

포르투갈

브라질

앙골라

모잠비크

적도 기니

기니비사우

상투메 프린시페

카보베르데

동티모르

마카오


포르투갈 공화국
República Portuguesa
Portuguese Republic / Portugal
국기
국장
수도리스본(Lisboa, Lisbon)
면적92,090km²
인구10,341,330명(2015)
종족구성포르투갈인 96.8% 흑인 1.5%
공용어포르투갈어
종교기독교 84.3%(대부분이 가톨릭)
정치체제이원집정부제 (사실상 의원내각제)
대통령마르셀루 헤벨루 드 소자
(Marcelo Rebelo de Sousa)
총리안토니우 코스타
(António Costa)
GDP2010억$(2015)
1인당
GDP
명목 18,984$(2015)
PPP 27,630$(2015)
국가포르투갈의 노래
(포르투갈어: A Portuguesa)
독립868년
1차 독립 카스티야 왕국으로부터 독립 1140년
2차 독립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1640년
공화정 19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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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유럽의 국가 및 지역

안도라

산마리노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스페인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코소보

불가리아

포르투갈

바티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그리스

지브롤터
(영국)

몰타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터키

유럽연합의 회원국
그리스네덜란드덴마크독일라트비아루마니아룩셈부르크
리투아니아몰타벨기에불가리아스웨덴스페인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아일랜드에스토니아영국*오스트리아이탈리아체코
크로아티아키프로스포르투갈폴란드프랑스핀란드헝가리
* 영국의 경우 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7년 3월 29일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했다.
* 부속 규정에 의거하여 영국은 유럽연합과의 탈퇴 협상을 시작하며, 2년이 지난 2019년 3월 29일까지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연합에 가입한 27개 회원국들 중 한 나라라도 협상 연장을 거부할 경우, 2019년 3월 29일부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자동 확정된다.
* 탈퇴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은 유럽연합 회원국으로서의 지위는 유지된다. 다만 영국이 희망하면 유예기간 내에도 탈퇴는 가능하다.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
http://uman.tcatmon.com/image/파일:attachment/ALB_Flag.jpg_?width=50
알바니아

룩셈부르크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체코

덴마크

에스토니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그리스

헝가리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

폴란드

캐나다

터키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그리스네덜란드노르웨이
뉴질랜드대한민국덴마크
독일라트비아룩셈부르크
멕시코미국벨기에
스웨덴스위스스페인
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아이슬란드
아일랜드에스토니아영국
오스트리아이스라엘이탈리아
일본체코칠레
캐나다터키포르투갈
폴란드프랑스핀란드
헝가리호주


대항해시대를 주도하던 모험가들과 항해의 나라

남유럽 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에 위치한 국가. 음차로는 포도아(葡萄牙)라고 한다.[1] 왕년에는 나는 새도 뚝 떨어뜨릴 정도로 위세가 상당한 국가 중 하나였다.

포르투갈(Portugal)이라는 국명은 중세 포르투갈 형성의 중심지였던 포르투의 라틴어 명칭인 '포르투스 칼레(Portus Cale)'에서 유래되었다. 현지 발음은 푸르투갈에 가깝다. 이후 Portugalia(포르투갈리아)라고 표기되었으며, 로마시대에는 Lusitania(루시타니아, 1차 대전에 미국이 참전하는 계기가 된 배 루시타니아 호의 이름이 여기서 유래)라고 불렸다.

수도는 리스본(Lisbon). 리스본은 영어식 이름이며 포르투갈어로는 리스보아(Lisboa)라고 한다. 그 밖에 포르투, 브라가(Braga), 코임브라(Coimbra), 파루(Faro) 같은 주요 도시들이 있다. '포르투는 일하고, 코임브라는 공부하고, 브라가는 기도하고, 리스본에서 즐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시마다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포르투갈의 인구는 1천56만 명으로 세계 242개국의 국가 중 79위다.[2] 비슷한 인구 규모의 국가로 벨기에(1천1백13만 명), 스웨덴(9백55만 명), 그리스(1천78만 명), 헝가리(9백95만 명), 체코(1천53만 명) 등이 있다. 면적은 대한민국보다 약간 작은데, 인구는 대한민국 인구의 약 1/5 정도 되는 것으로 영남지방 인구보다도 더 적으며 서울과 비슷한 수준이다. 대한민국 영토의 달랑 0.6%밖에 안되는 서울이 얼마나 인구밀도가 높은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 유럽 국가 중에서 한국에서 이동거리가 가장 먼 나라이기도 하다. 아이슬란드, 영국, 아일랜드, 독일보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이 한국에서 이동거리가 더 멀다.

한국에는 유럽 축구의 강호 중 하나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사실 이런 인식은 2002년 월드컵 이후 축구를 보기 시작한 세대가 가지고 있는 인식이라 볼 수 있겠다.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이 국제무대에서 메이저 대회에 본격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부터다. 그 전에는 에우제비오 시대인 66년과 84~86년을 제외하면 월드컵이나 유로 본선에 오른 일이 없는 평범한 국가였다. 암튼 포르투갈 축구는 에우제비오, 루이스 피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날두국 등이 포르투갈 출신 유명 선수들로 잘 알려져 있으며, 포르투갈 1부리그SL 벤피카, FC 포르투 등이 강팀으로서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축구 외에 한국에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웃나라인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투우도 인기다. 단, 포르투갈 투우는 소를 죽이지 않는다. 주요 수출품에 포도주코르크 등이 있고 전통음악으로는 파두(Fado)가 유명. 여러모로 시끌벅적한 이미지의 이웃 스페인과는 달리 차분하고 소박한 맛이 있다.[3]

어찌보면 코에이 게임대항해시대 시리즈 때문에 더 유명하다.정확히는 항해자들의 클럽 리스본 덕택에

왠지 국내에서는 포르투로 많이 불리고 있다. 앞의 'ㅌ'가 유기음이라서 뒤의 'ㅋ'도 덩달아 유기음으로 바뀌는 것. 당장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포르투을 검색해도 포르투을 포르투로 쓰는 사람이 상당하다. 심지어 Portugal의 스펠링을 무시하고 발음상 편하게 부른 포투갈로 부르는 사례도 적지 않다. '투'에서 어느 쪽에 강조를 하면서 부르느냐에 따라 저리 불리게 되는 것. 하지만 2016년 현재 기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한글 표기명은 포르투갈이다. 이 문서는 포르투칼로 잘못 쓰는 사람을 위해 포르투로도 들어올 수 있지만, 되도록이면 평소에는 포르투로 쓰는 것을 권장한다.

2 자연

유럽의 중생대 지층들 중에서 쥐라기 지층이 광범위한 나라라서 그런지 알로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 스테고사우루스, 다켄트루루스 등 말기 쥐라기에 번성했던 공룡의 화석들이 발견 또는 출토되기도 한다.

지중해에 접해 있진 않지만 대체로 지중해에 가까이 위치해 있고 지중해성 기후를 띄며 유럽에서 가장 온화한 기후를 가진 곳 중 하나다. 여태까지 포르투갈 전국에서 기록된 최저기온은 영하 16도였는데 이 기온도 해발 1,500m가 넘는 산지에서 기록된 기온이다. 수도 리스본은 1월 평균기온 11.6도, 8월 평균기온 23.5의 온화한 기후로 강수량 774mm는 겨울 쪽에 비교적 집중되어 있다. 여름엔 일교차가 크고 낮에는 더우며 특히 남부 내륙 지역은 50도 가까이 올라가기도 한다. 역대 최고 기온은 공식 기록상으로는 2003년 폭염 때 아마렐레자에서 기록된 47.4도이나 50도가 넘는 비공식 기록도 있다.

3 역사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다가 본의 아니게 유럽인들의 대항해시대을 열었다. 이후 전세계를 누비면서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곳곳을 식민지로 집어삼키면서 제국주의의 서막을 열었다. 당시 교황의 중재아래 스페인과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해서 전세계를 양분할 정도의 강대국이었다.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아프리카의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중국의 마카오등이 포르투갈 식민지였다.

하지만 식민지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경제가 서서히 망해가기 시작했고, 주앙 6세 시절에 페드루 왕세자가 최대 식민지였던 브라질을 가지고 독립을 선언하면서 제대로 망했다.

이후 유럽의 2류국가로 전락해서 강대국들간의 패권경쟁에선 완전히 소외되었으며, 17세기 이후에는 거의 영국의 2중대로 추락했다. 그나마 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만을 근근히 유지하면서 20세기까지 흘러왔으며, 이 와중에 혁명과 군부 쿠데타, 살라자르와 카에타누 등의 독재정권을 겪었다. 2차대전 이후 기니비사우, 앙골라,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식민지의 독립운동을 무력으로 찍어누르고자 했으나, 오히려 현지 독립운동세력들의 무장투쟁이 거세게 불타오르면서 수렁에 빠진다. 식민지전쟁에 막대한 돈과 사람이 빨려 들어가면서 경제는 엉망이 되었고, 결국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군부독재가 무너지고 민주화되었다. 새로 들어선 민주정부는 식민지의 독립을 인정하고 철군하면서 1974년 기니비사우, 카보베르데, 상투메프린시페, 1975년 앙골라모잠비크가 분리독립하였다. 1999년 마지막 해외영토인 마카오를 중국에 반환하면서 포르투갈 영광의 항해 시대가 완전히 종료되었다.

4 정치

포르투갈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63점2012년, 세계33위[4]
언론자유지수16.752013년, 세계28위[5]

기본적으로 사회민주당과 사회당간의 양당이 정권을 주고받고, 인민당 (다만 사회민주당과 암묵적인 연합상태다) 과 공산당이나 좌파연합이 3, 4, 5당을 차지하는 구도다. 다만 보수정당의 이름도 사회민주당이라 얼핏보면 좌파양당제로 보이지만 사실 포르투갈 사회민주당이 1980년대 중반 이래 보수적인 정책을 펴면서 우경화되었기 때문에 세계 어디에나 흔히 있는 보혁양당제가 되었다.

여하튼 2015년 10월 4일에 열린 총선에서 당초에 사회민주당이 사회당에게 패배할걸로 보였지만 선거 중반에 인민당과 선거연합을 했고, 덕택에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인민당 연합이 107석으로 1당을 차지하면서[6] 긴축정책을 시행한 정당이 승리했다고 전세계적으로 뉴스가 났다. 하지만 과반수에 미달하는 의석수인데다가 사회당과 공산당, 좌파연합이 반긴축 연립정권을 구성하면서 판이 완전히 뒤엎어졌다.

사실 긴축정책을 시행한 정당이 승리했다고 표현했다는 것도 사회당과 좌파연합, 공산당의 성향이 제각각 다르다는 점을 감안했던건데 이를 완전히 뒤엎어버린 것이다.비슷한 사례로는 좌파당이 주도한 튀링겐주 의회 적적녹 대연정이 있지만, 현재는 우파 정당인 사회민주당과 아니발 카바쿠 실바가 대선에서 승리하여 좌파 정당인 사회당과 조제 소크라트스와 함께 좌우동거정부를 이룩하고, 2차 대선에서는 사회민주당과 아니발 카바쿠 실바가 승리하여 단독 정부를 구성하였으나, 지금은 신임 총리를 뽑는 총선에서 우파 정당인 사회민주당과 전 총리인 페드루 파수스 코엘류가 지면서 총리직을 좌파 정당인 사회당과 안토니오 코스타에게 넘겨줌으로써 또다시 좌우 동거 정부를 구성했지만, 올해 2016년 대선에서 무소속의 마르셀루 헤벨루 데 소자가 당선됨으로써 2016년 3월 9일에는 대통령에 현재 직무 중이지만, 안토니오 코스타와 사회당의 좌파 내각이 단독으로 구성을 하였다.

5 경제

6 사회

6.1 국민성

사우다드(saudade)는 포르투갈인의 대표 정서로 꼽힌다. 한국어로 최대한 비슷하게 번역해보자면 '향수'에 가깝다. 그렇지만 딱 떨어지게 번역되지는 않는다.

사우다드는 나홀로를 뜻하는 라틴어 'solum'에서 유래된 말이다. 우울하기 짝이 없다(...). 대충 한국인의 대표 정서가 '정'과 '한'으로 밀어주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밀어주고 있는듯.

또한 이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애국심이 강한 편이고 애향심도 상당히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 자체가 엉망인 건 어쩔 수 없는지 결국 해외로 줄줄이 떠나는 중. 반면 라틴아메리카 및 아프리카 국가들은 포르투갈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그야말로 황금 시대가 열렸다.

http://statisticstimes.com/population/european-countries-by-population.php 에 따르면 포르투갈의 인구는 2014년에 비해 오히려 늘었다. 290명 가량...

여담으로, 포르투갈인들은 유럽에서 평균 키가 가장 작다. 평균키가 남자 기준 173cm 여자 기준 162cm 정도로 한국인과 비슷하며 같은 라틴계인 스페인(176cm), 이탈리아(177cm)와 비교해도 현저히 작은 편. 정어리와 여자는 작으면 좋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키가작은 여자를 선호하는 경향의 영향인 듯도 싶다.

보일듯 보이지 않게 순혈주의가 강한 유럽 내에서도 유색인종이나 혼혈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나라 중 하나다. 대항해시대부터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안/못 돌아와서 귀했다보니 혼기가 차도록 짝을 구하지 못한 여자들이 남자 흑인 노예와 결혼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어왔고, 심지어 귀족 가문의 딸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밖으로 나간 남자들이라고 별반 다를 것 없이 그냥 아프리카, 동남아, 브라질, 인도, 중동등의 현지 여자와 만나 눌러 앉아버리는 일은 부재기수였고. 그러다보니 농담으로 포르투갈엔 백인은 없고 혼혈만 산다고 얘기를 할 정도다(...) 포르투갈의 주요 식민지이자 지금도 교류가 큰 브라질 역시 미국 등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인종을 넘나드는 혼혈이 많고 세계적으로 혼혈에 대한 차별의식이 희미한 나라 중 하나다.

영국홍콩을 중국에 되돌려줄 때 홍콩 주민들에게 영국 국적을 주지 않은 것과 달리, 포르투갈은 당시 합법적인 마카오 시민 43만명 전원에게 포르투갈 국적을 부여했다. 홍콩에 비해 마카오가 작다는 점 덕분에 가능하긴 했지만.

7 문화

유럽의 자유 진영 국가들[7] 중에서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가장 늦었던 나라이기도 하다. (1980년 3월 7일) 한국보다 9개월 정도 빨랐다(...)

밀어 닥치는 외세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인들은 고유 문화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다. 전통적인 포크 댄스는 여전히 포르투갈인의 자존심으로서 전수되고 있으며, 각 지방에서는 축제의 전통도 잘 지켜지고 있다. 16세기, 소극과 종교극에서 뛰어났던 질 비셍트(Gil Vicente)가 포르투갈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마련하였다. 16세기 후반에는 포르투갈 시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루이스 드 카몽이스 (Luis de Camões)가 오시 루시아다스(Os Lusiadas)라는 발견과 개척의 시대를 찬양한 서사시를 썼다. 19세기에는 알메이다 가헤트(Almeida Garrette)가 로맨틱 드라마를 많이 썼고,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도 이 시대에 드라마와 시작 활동을 하였는데, 포르투갈 현대 작가로는 드물게 외국까지 그의 작품이 널리 알려졌다. 가장 잘 알려진 포르투갈 음악은 16세기의 선원들의 갈망을 노래한 우수와 향수가 깊이 서린 파두(fado)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리스본에서 듣는 파두는 상업화되어 있고 비싼 곳에서 공연되고 있다. 아멜리아 호드리그스(Amélia Rodrigues)는 최고의 파도 여가수로 포르투갈 레코드 가게 어디서나 음반을 살 수 있다. 16세기 동안 건축에서는 마누엘 1세(Manuel I)의 이름을 따서 붙힌 매뉴린 양식이 유행했다. 이 양식은 이 시대를 풍미했던 개발과 개척 정신의 반영으로 장식에 있어서 트위스트와 소용돌이를 주제로 하는 것이 특색이다. 장식용타일인 아줄레조스(Azulejos)는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공예품이다. 원래 무어족에게서 전수받은 것으로 포르투갈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고, 리스본에는 아줄레조스 박물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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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로마 가톨릭이 압도적으로 99%를 차지하며, 21개의 교구가 있다. 개신교인은 1만 명 이하이고, 유대교인 수는 5천 이하다. 이 지역에 처음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것은 일찍이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있을 무렵부터였다. 7세기 사라센의 침입으로 한 때 이슬람교의 영향 아래 있기도 했으나 114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포르투갈 왕국을 세운 아폰수 엔히크스는 왕국을 교회에 봉헌하였다. 그의 뒤를 이은 산초 1세 때에는 시토회의 영향으로 반 교황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으나 13세기에 탁발수도회가 들어와 교황의 강한 지지세력을 형성하였다. 포르투갈은 15세기 이후부터 해외 진출을 시작하여 남아메리카의 일부, 인도, 아프리카 등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이들 지역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였다. 1536년 종교재판을 실시했고, 1540년 예수회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1580∼1640년의 시기는 포르투갈 교회사에 있어서 최악의 시기였다. 스페인 왕이 포르투갈 왕위를 겸하면서 주포르투갈 교황 사절과 예수회를 추방하고 해외 선교도 금하였다. 그러나 교황이 포르투갈의 독립전쟁을 도움으로써 관계는 다시 정상화되었다. 1820년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들은 다시 모든 남자수도회를 폐쇄시키고 교회 재산을 몰수했으며, 1910년 이후에는 초등교육에 있어서의 종교교육을 금했으나 1917년 정변으로 다시 관계가 정상화되어 교황청과의 외교관계도 재개되었다. 파티마의 성모 발현 이후 파티마는 포르투갈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술은 만 16세부터 마실 수 있다. 한국으로 치면 고1 때부터 음주가 가능하다는 뜻.

7.1 언어

살라자르 정권 당시의 우민화 정책으로 인해 1970년대 초반까지의 문해율은 30%대에 불과했지만 카네이션 혁명 이후로는 문맹률이 줄기 시작해 1980년대 초에는 문해율이 80~90%대로 늘어났다. 현재로도 포르투갈의 문해율은 생각보다 준수한 수준이다.[#] 주요 외국어는 영어(32%), 프랑스어(24%), 스페인어(9%)가 꼽힌다.

7.2 영화

최고령 영화 감독으로 유명했던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를 비롯해 1960년대 포르투갈 뉴웨이브 시네마가 유명했다. 1990년대부터는 페드로 코스타라는 감독이 등장해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7.3 스포츠

여타 유럽 국가들처럼 포르투갈 역시 축구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덕분에 인구가 1000만 수준이지만 축구 경기장 규모는 3~6만석 수준으로 엄청난 수준을 자랑한다.[8] 이러한 인프라를 갖춘 자국 리그인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는 유럽 리그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리그[9]로 리그의 대표적인 팀 벤피카FC 포르투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험이 있는 유럽의 명문팀들이며 2010~11 시즌에는 모처럼 유로파 리그에 4강에 3팀이나 진출했고 덕분에 결승전에서 포르투갈 팀끼리 맞붙게 되기도 했었다.[10] 2011~12 시즌에는 벤피카가 챔피언스리그 32강에서 맨유를 제치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해 8강까지, 스포르팅 CP가 유로파리그 4강까지 진출했으며 2012~13 시즌에는 FC 포르투가 챔피언스리그 16강, 벤피카가 유로파리그에서 준우승하며 여전히 무시못할 위력을 보여줬다.

이러한 탄탄한 자국 리그를 바탕으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또한 유럽의 강호 중 하나로 통한다. 과거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득점왕이자 1965년 발롱도르 수상자인 전설적인 선수 에우제비우와 함께 전성기를 맞은 바 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루이스 피구를 위시한 황금 세대의 등장으로 다시 세계적인 전력을 갖춘 팀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지금도 레알 마드리드의 스타이자 리오넬 메시와 세계 최고 타이틀을 두고 겨루는 라이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팀을 이끌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이 외에도 포르투갈 축구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데, 이 나라 출신의 또 다른 전설적인 축구 선수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도 했었다. 최근에는 석현준 선수가 2015-16 시즌 초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한국팀이 포르투갈 황금 세대팀을 꺾고 조별 예선 탈락 시켜주기도 했었다.

축구 외에도 야구도 아직 도입기 수준이지만 이 나라에서 자리잡고 있는 중이다. 2006년에 설립된 Liga Atlântica de Baseball라고 불리우는 야구리그가 있는데 11개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국의 사회인야구와 비슷한 정도인듯 보인다. 인프라를 비롯해 야구인구 수 등이 부족한 여러 이유로 국제대회 참가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축구 강국 이미지 때문에 다른 유럽의 축구 강국인 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처럼 각종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인 것처럼 보이지만, 충격적이게도 역대 올림픽 성적이 저조하다. 첫 참가한 1912 스톡홀름 올림픽 이래 2016 리우 올림픽 때까지 하계 올림픽에 빠짐없이 참가했으나, 금 4, 은 8, 동 12, 합계 24를 기록하고 있다. 이 성적은 대한민국을 물론, 이웃나라 스페인, 한 때 식민지였던 브라질보다 더 저조한 성적이다.


8 대외 관계

이웃한 스페인과는 라이벌, 앙숙 관계. 역사적으로 스페인의 지배와 간섭을 지속적으로 받아왔고 남아메리카 대륙을 놓고 스페인과 식민지 경쟁을 벌인적도 있었다. 결과는 북중미 대다수와 남미 절반 지역들을 스페인이 차지하였고 포르투갈은 나머지 남미 절반인 브라질을 집어먹었다.[11] 대신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스페인은 필리핀과 그 일대 정도만 먹고 나머지 인도, 말레이 반도,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해안의 무역 거점들은 죄다 포르투갈이 먹었다. 고아, 마카우 등지에 아직도 짙은 포르투갈 문화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스페인은 주로 한 대륙을 먹고 그 주변으로 지배지를 확장하는 전형적인 팽창형 제국주의적 정책을 펼친 반면, 포르투갈은 자국과 그 활동 무대의 여건 때문에[12] 핵심적인 무역 거점을 중심으로 띄엄 띄엄 제국을 건설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축구 경기만 하면 양국 응원단끼리 충돌도 벌어진다. 거기다 이웃한 국경 도시인 올리벤사를 두고 영유권 분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포르투갈이라고 당하고 산 것만은 아니고, 카스티야 왕위 계승 전쟁 등 스페인,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카스티야가 휘청 거릴 때 역습을 넣곤 했다. 게다가 두 나라의 국경은 워낙 역사가 오래 됐고, 레콘키스타 당시 부터 필요하면 종종 협력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워낙 문화적, 역사적으로 공유하는 점이 많기 때문에 서로 으르르 물어 뜯을 것 같은 악감정만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스페인 내의 카탈루냐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카스티야의 그늘에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기 때문에 뭔가 동질감과 동정이 섞인 미묘한 친밀감을 느끼고는 한다. 문화적, 언어적으로 포르투갈의 발상지이자 아직도 많은 뿌리를 공유하는 바로 윗동네 갈리시아와는 말 할것도 없고. 주로 스페인은 사실 중심부 카스티야에서 보면 포르투갈은 걍 수 많은 이베리아 반도를 공유하는 이웃들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에 "포르투갈? 그거 대구 (도시 말고 물고기) 많이 잡아 먹는 호날두 고향 아니여?" 정도의 의식에 그치는 반면(...) 육로로 나머지 유럽과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스페인을 통과 해야 하는 입장인 포르투갈 쪽에서 더 신경을 쓰고 감정이 많은 편이다.

브라질과의 관계는 매우 친한 사이인데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언어, 문화, 생활양식 모두 비슷하기 때문이다. 식민지 개척시대부터 아프리카나 아시아는 정복지 정도로 인식한 것에 비해 브라질은 자국 영토의 확장 정도로 인식했기 때문에 더욱 친밀하게 느끼는 것 같다. 브라질 입국 심사때 내국인 줄이랑 외국인 줄 중 어디에 서야 하냐고 물을 정도로. 최근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브라질에 의존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는 형국. 2016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있어서도 스페인 마드리드가 아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는 일설도 있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은데 그나마 라틴아메리카의 구 식민지 국가들을 상대로 주도권을 확고하게 유지하는 스페인과 달리 오히려 브라질에 복속될 처지라는 것이다.

또 두 차례나 독립에 도움을 주었고[13] 공식적인 관계로 성립한 것만 생각해도 700년이 넘어가는 동맹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과도 전통적으로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가져오고 있다. 이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확고했는지는 리즈시절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도 씹고 영국과 무역을 지속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대가로 스페인-프랑스 연합군에 본토가 침공당하고 왕가가 브라질로 피신해야 했지만, 이 피신 과정에서 영국 해군이 왕가의 피난을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포르투갈 영토를 되찾는데도 도움을 주었다. 양국의 왕가 사이 교류도 활발해 포르투갈 공주가 영국에 차를 전해주기도 했을 정도.[14] 또 이 공주가 혼수로 인도의 봄베이를 들고가며 영국의 인도 식민지화의 발판을 마련해주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북대서양 조약기구. 즉, NATO의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여 미국, 영국, 독일 등 다른 나토 국가들과도 군사적, 외교적인 협력도 한다.

더불어 영연방보단 못하지만 포르투갈어 상호교류를 하면서 옛 식민지 나라들인 모잠비크, 앙골라, 기니비사우, 상투메프린시페, 동티모르와 축구대회를 가지기도 한다.


8.1 중국과의 관계

중국과는 우호적인 관계도 유지하고 있다. 마카오는 예전에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있었다가 1999년에 중국에 반환되었다. 그리고 중국과 포르투갈은 마카오를 통해 교역을 하고 있으며 아소르스 제도에 [중국의 과학탐사용 기지를 개방]하기로 결정하는 등 중국과도 가까워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8.2 한국과의 관계

18세기~19세기 천주교 선교와 함께 알려진게 최초다. 중국어 독음 가차를 빌려 "박이도갈이아(博爾都噶爾雅; 보얼더우가얼야)"와 로대니아(路大尼亞; 루다니아. 위의 루시타니아의 오기.)라고 알려졌다. 그 이전 세스페데스라는 예수회 신부임진왜란고니시 유키나가와 함께 동행한 바 있으나 일본군내에서만 전도했다.

1961년한국과 수교하였으며 1975년북한과도 수교하였다. 유럽 국가 중에서 한국에서 이동거리가 가장 먼 나라이기도 하다. 지구가 평면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슬란드보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이 한국에서 이동거리가 더 멀다.

9 상징물

9.1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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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과 녹색으로 된 홍록기.

포르투갈의 국기는 2:3으로 분할된 초록과 빨강의 직사각형이 수직으로 배열되었고 분할선 중앙에 포르투갈 문장이 들어 있다. 초록은 희망을, 빨강은 1910년의 10월 혁명의 피를 나타내며, 혼천의는 대항해 시대의 천체관측 기구이자 항해 도구로, 포르투갈 선인들의 측량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항로의 발견으로 이룩한 포르투갈의 위대한 역사를 의미한다. 현 포르투갈 국기는 혁명으로 공화국이 된 이후의 색으로, [왕정시절에는 바탕이 흰색과 파란색이었다.] 포르투갈령 [아소르스 제도의 기]에는 그 흔적이 남아있다.

10 포르투갈 국적, 출신의 캐릭터

※ 해당국 작품 제외

어째 죄다 대항해시대 등장 캐릭터들이다


그만큼 포르투갈이 머나먼 나라라는 뜻
  1. 음차이므로 한자 뜻과는 상관없다지만, 실제로 포르투갈은 지중해성 기후라서 포도 농사가 잘 된다.
  2. [[1]]
  3. 스페인의 음악과 춤이 굉장히 흥겨운 반면 포르투갈의 민속음악이나 파두는 굉장히 우울하다. 대부분의 주제가 바다로 나간 남편이나 연인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노래다.
  4. [[2]]
  5.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점, 2013년 이전 자료는 수치가 넘어가는 것도 존재한다, [[3]]
  6. 2015년 포르투갈 의회의 총 의석수는 230석이다.
  7. 공산권에서는 루마니아. 1983년이다. 어? 남한보다 늦네?
  8. 단 이것은 유로 2004를 단독개최하면서 (잉글랜드, 프랑스 등도 하지 않은) 10개 경기장을 신축 및 증축하는 무리수를 뒀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으로, 실제로는 국내 빅3인 벤피카, 스포르팅, 포르투가 경기당 3만명이 넘는 대관중을 불러모으는 반면 다른 클럽은 경기장 대충 채우기도 어려워하는 양상을 나타낸다. 그나마 김동현이 있던 브라가나 정재권이 진출했던 비토리아 세투발 정도는 나은 편이다. 실제로 인구 수준이 비슷한 스코틀랜드나 그리스 등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으며, 보아비스타와 같이 유로 2004 당시 경기장 지출 때문에 잘나가던 클럽이 파탄난 사례도 있다.
  9. 2013/14년 UEFA리그에서 규모가 몇배 차이나는 프랑스리그앙을 누르고 랭킹 5위를 차지할 정도.
  10. 그동안 듣보잡이던 SC 브라가와 포르투의 결승전으로 FC 포르투가 우승했다. 그리고 감독 보아스는 첼시의 지휘봉을 잡기도했었으나 반 시즌만에 경질되고 시즌 종료 후 토튼햄 핫스퍼의 지휘봉을 잡는다.
  11. 브라질의 면적이 남미 대륙의 49% 정도 된다. 사실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당초 포르투갈이 보장받은 영토는 남미의 절반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동군연합 시기에 포르투갈 개척자들이 아마존 강을 따라 내륙으로 많이 진출해서 결과적으로 반반 나눠먹은 모양새가 됐다.
  12. 중남미의 원주민들이야 사실 이 당시 부터 콩키스타도르 몇명으로 무쌍을 찍을 말큼 이미 기술력에서 격차가 있었지만, 포르투갈이 주로 활동한 인도양과 동아시아 일대는 그 당시 군사력으로나, 기술력으로나 유럽에 비교해 큰 격차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포르투갈은 소규모 파병 병력으로도 충분히 감당 할 수 있는 작은 지역 토후국들을 중심으로 공략 했던 것.
  13. 처음은 12세기 레콩키스타 시절, 두번째로는 1640년까지의 왕정복고전쟁 기간 중
  14. 정작 포르투갈에서는 홍차보단 커피를 더 많이 마시는데, 인도양과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차례로 잃어버린 상황에서 남은 건 브라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가 차의 대체재로 떠오르면서 정치, 지리적인 이유로 들여오는 게 더 수월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15. 스페인측 주인공이지만 본래는 포르투갈 출신이다.
  16. 이 인물은 스페인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