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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11년 3월 25일 미국 뉴욕에 있던 트라이앵글 의류공장에서 일어난 화재사고. 이 사고로 146명이 사망했고, 71명이 부상했다. 희생자 대부분이 의류를 만들던 가난한 유대인들과 러시아, 이탈리아 출신의 가난한 이민 노동자라는 측면에서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사고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2 의류공장의 위치 및 화재 전 상황
의류공장이 위치한 곳은 워싱턴 플레이스(Washington Place)에 있는 애쉬 빌딩(Asch Building)[1]이었다. 이 빌딩은 10층 짜리였고, 의류 공장은 8,9,10층을 쓰고 있었다.
주로 만들던 품목은 당시 유행하던 여성용 블라우스였고, 주 5일제가 없던 시절이라 토요일도 7시간을 일해야 했다. 또한 노동자가 자리를 이탈하거나 물품이 도난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근무 시간에는 모든 문을 잠궜는데, 이게 대참사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3 화재
불은 4시 40분에 일어났다. 이날은 토요일이었는데, 근무시간이 끝나기 약 20분 전이었다. 불이 난 장소는 8층의 옷감를 재단하는 기계 밑에 있는, 잘라낸 천의 남은 부분을 담는 통이었다. 이 통에는 수백 파운드의 천이 담겨 있었고, 8층에는 이런 기계가 여러 대 있었기 때문에 8층에 쌓여 있는 천의 무게만도 수천 파운드에 달했다. 그야말로 가연성 물질이 가득했던 것이다.
불이 난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담배 꽁초로 인한 발화, 또는 옷감을 재단하는 기계의 과열로 인한 발화 두 가지로 추정되고 있다.
불이 나자 8층의 인원은 탈출했고, 8층에 있던 회계사는 10층에 전화를 걸어 불이 난 사실을 알렸지만, 9층에는 이 사실이 전달되지 않았다. 건물에는 2개의 화물 엘리베이터와 2개의 계단이 있었지만, 계단으로 통하는 각층 문은 잠겨 있었고, 공장 감독이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불은 대단히 빠르게 번졌고, 9,10층에 있던 직원들은 옥상으로 올라가 비상계단을 통해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비상계단이 부실하게 지어져 있었고,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무너져 내렸다. 계단이 무너지면서 20여명의 직원들이 추락사했고, 탈출구도 사라져 버렸다.
한편 9층에 있던 다른 노동자들은 화물 엘리베이터를 통해 탈출을 했다. 엘리베이터는 세 번까지는 움직였으나, 그 이후는 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의 레일이 뒤틀리면서 운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9,10층에 갇힌 많은 사람들은 불길을 피할 길이 없었고,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등의 무모한 행동도 서슴치 않았다. 당연히 소방차가 도착했으나, 당시 소방 사다리가 6층 이상은 닿지 못해서 화재 진화도 어려웠다. 결국 이 화재로 146명이 사망했고, 72명이 부상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여성이 차지했다.
4 화재 이후의 처리
공장의 공동 경영자였던 맥스 블랑크와 이삭 해리스는 불이 나자 직원들에게 알릴 생각은 하지도 않고, 누구보다도 빨리 옥상으로 뛰어올라가 목숨을 건졌다. 결국 살인에 준하는 죄목으로 재판정에 섰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민사 소송에서는 희생자 한 사람당 75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들 중 맥스 블랑크는 1913년 다른 공장을 운영하다 또 문을 잠근 것이 걸려서 20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이 사건으로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인권 및 안전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고, 1913년 뉴욕 주 의회에서는 64가지 조항으로 이루어진 관련 법안이 통과되었다. 화재에 대비한 각종 안전 시설의 도입을 의무화하고, 노동자들의 복지를 위한 각종 규제가 들어가 있는 법안이었다.- ↑ 후에 브라운 빌딩(Brown Building)으로 이름을 바꿨고, 지금까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