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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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의 상징, 육망성.(다윗의 별이라고도 하고 다윗의 방패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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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전통의 모자 '키파'를 쓴 유대인. 유대인 남성들만 쓰며 흘러내리지 않게 핀으로 고정해서 쓴다. 하레디들은 키파 위에 모자를 쓰기도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통곡의 벽’이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추모관 같은 성소를 방문하는 남성들은 이 전통모자인 키파를 반드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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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 달아야 했던 노란 별.

1 개요

יהודי (Yehudi, 예후디) - 히브리어[1]
ייִד (Yid, 이드) - 이디시어[2]
ג׳ודיו (Djudio, 주디오) - 라디노어[3]
猶太人(유태인) - 한자
The Jews (더 주스) - 영어
Die Juden (디 유덴) - 독일어
Gli Ebrei (리 에브레이)[4] - 이탈리아어
Les Juifs (레 쥐프) - 프랑스어
Los judíos (로스 후디오스) - 스페인어
Евре́и (예브레이) - 러시아어
ユダヤ人 (유다야 진) - 일본어
유대인, 혹은 유태인, 혹은 유다인(가톨릭 성경) - 한국어[5]
Judo - 에스페란토

고대 근동이스라엘인들로부터 기원한 민족. 유다인, 한자로는 유태인(猶太人)이라고도 한다. 유대인은 연합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이후 건국된 유다 왕국의 후손이다. 가장 가까운 민족으로 연합 왕국 분열 이후 형성된 이스라엘 왕국의 후손인 사마리아인이 있다. 조롱 섞인 별명으로 멸칭으로 Kike라고 부르곤 한다.[6]

민족이나 문화로 유대인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유대인 집단에서도 스스로를 다른 민족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준은 다름아닌 유대교를 믿는지의 여부 즉, 유대공동체에 살며 Shul 혹은 시나고그등지에서 모여 정기적으로 안식일과 기타 유대휴일에 예배를 드리고 유대 율법(보통 코셔가 가장 중요하다)을 따르면 유대교를 믿는다고 본다. 남자의 경우에는 포경수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한국은 유대교도 아닌데... 보통의 경우 랍비에게서 유대인 증명서를 받거나 혈연(특히 모계쪽이 유대인인 경우)이 있는 경우 두 가지 뿐이다.

애초에 유럽계 유대인이 고대 유대인의 후손이라면 이들도 고대 유대인들처럼 아랍인의 모습과 가까워야 하지만 피가 섞일 대로 섞여 중동인의 피는 희석되어버렸고 오늘날의 유럽계 유대인은 전형적인 유럽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7] 유럽계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건국한 명분이 바로 자기들 조상의 땅이라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 건국의 명분도 사라져 버린다. 아랍인들이 괜히 이스라엘을 중동에 남은 마지막 유럽인의 식민지라고 일컫는 게 아니다. 그러나 밑에 나오다시피 염색체를 통해 부계혈통을 추적할 수 있는 지금, 많은 유대인들이 그 외양이 어떻다 한들 자신들에게 고대 유대인의 피가 어느 정도는 섞여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바로 '유대 국가'로서 세워진 현대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조국이었던 유다 왕국의 옛 영토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땅이 아니었던 사마리아나 갈릴리, 심지어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아랍 베두인 유목민들의 땅인 네게브 사막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건국 이전이나 이스라엘 초반 중심지나 세력, 실질적 영토는 텔아비브와 하이파 등 가나안 북쪽 해안가가 거의 사실상 진짜 영토나 다름없었으며, 현재도 이 지방들에 이스라엘계 유대인들이 많다.(더군다나 1937년에는 현재 텔아비브, 하이파 등을 비롯한 가나안 북부에 세우려고 했었다. 하지만 1947년 계획이 변경되면서 남부의 네게브 사막까지 가져가게 된 것.) 예루살렘 서쪽과 네게브 사막 너머 홍해 회랑의 에일라트 등은 1967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이스라엘화되었기 때문이다. 텔아비브가 사실상 이스라엘의 진짜 수도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갈릴리의 경우는 이스라엘 건국 전에 (이스라엘을 세우게 될) 이스라엘계 유대인들이 거주했지만 중심지나 실질적 영토 등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으며 중심지였던 텔아비브와도 거리가 멀었다.

물론 사마리아는 하스모니안 왕조 때 유대인들이 잠깐 유다의 다른 주변 지역들과 함께 침략해서 지배한 적이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유대인의 사마리아에 대한 식민지배였고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계속해서 저항했으며 유다의 사마리아 통치도 로마제국이 유다를 정복한 뒤 유다 치하의 피지배 지역들을 독립시킴으로써 짧게 끝났다.

유대인들 간에 피부색 같은 특징으로 인한 차별이나 배척이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유대교로 개종하는 순간 민족이나 혈통같은 건 무시하고 '우리는 한 조상을 모시는 가족'이라는 개념으로써 받아들여준다고 한다. 속인주의속지주의에 비할 만한 속교(敎)주의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의 외모가 로스차일드 가문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의 예와 같은 백인의 모습으로써 대변되기에 그냥 백인계열의 한 민족으로만 알려졌을 뿐 유대인이라는 민족은 어디까지나 중동족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중국황인종[8][9]이나, 흑인 중에서도 유대인이 소수 존재한다. 아래 항목 참고.

유대인 중에서도 우리가 제사도 지내고 점도 보고 교회에도 가고 하듯이 근본주의적인 전통을 고수하며 살지 않고 적당히 다른 종교나 문화도 누리며 평범하게 살거나 혹은 개종하여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긴 한데, 이들도 편의상 유대인으로 분류하고는 있지만 일부 수구꼴통랍비들은 인정 못하는 것 같다. 유대인 하면 키파에 히브리어를 쓰고 이상한 복장에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복장에 다른 민족들처럼 살고 히브리어가 아닌 자국어로 대화한다.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 자식은 유대인으로 인정이 된다. 즉 모계사회이다. 그러나 모계사회라고 해서 여성의 지위가 딱히 높은 것은 아니다. 물론 지금은 현대사회인 만큼 여성의 권리도 남자 못지 않다.[10] 유명한 유대인 농담 중 하나로 이런 것이 있다. 어느 유대인 여성이 세계적인 업적을 세워 상을 받는 자리에서 객석에 앉아 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옆사람에게 말했다. "참 자랑스러워요. 저 애의 오라비가 의사이거든요." '사'자 직업의 위엄......[11]

아버지가 유대인, 어머니가 타민족이라면, 유대사회의 심사를 받아 유대인인가 아닌가 판단하게 된다. 보통 랍비를 통해 심사를 받는다. 유대인이 같은 유대인인 누군가에 대해 험담을 할 때의 단골 레퍼토리가 어머니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소문이나 (남성의 경우) 비유대인 여성[12]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다.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유대민족에도 갈라져 서로 구분되는 다수의 분파가 존재한다. 이중 다수의 구성비율 혹은 정통성을 유대인을 대표하는 분파는 아슈케나짐(אשכנזים, 뜻은 "독일 사람들"), 세파르딤(ספרדים, 뜻은 "스페인 사람들"), 미즈라힘(מזרחים, 뜻은 "동방 사람들")의 셋인데, 이중 세파르딤과 미즈라힘은 같은 계열로 간주하는 시각도 있다. 아슈케나짐은 주로 중유럽 및 동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들로, 유대인 중 백인과 가장 유사하며 흔히 우리가 유대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파르딤은 이베리아 반도(스페인포르투갈)을 중심으로 북아프리카 등지에 퍼져있는 유대인들을 말한다. 미즈라힘은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일대에 사는 유대인들을 말한다.

1492년 스페인 왕국에 의한 알함브라 함락후 소위 "알함브라 칙령"이 내려지게 되는데, 이때 대다수 세파르딤이 북아프리카 및 레반트 지방으로 쫓겨나 미즈라힘과 혼합되었다. 세파르딤 중 핵심 세력 일부는 당시 가장 자유로웠던 네덜란드로, 나중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신흥 해양 세력의 자본을 대면서 번영하였다. 영국의 총리 대신을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그 후손.

이중 아슈케나짐의 기원에 대해서는 팔레스티나에서 살던 민족이 아니라는 설이 있다. 다만 이는 반유대주의자들이 물고 늘어지던 설로 뻥으로 판명났다. 참고로 하자르족은 백인계가 아닌 튀르크계 민족이며 이들의 진짜 후손으로 추정되는 건 아슈케나짐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에서 리투아니아에 걸쳐 극소수로 존재하는 [카라이트(Karaites)] 유대인이다. 또한 이들이 믿는 유대교 교파는 아슈케나짐이나 세파르딤이 믿는 유대교와는 교리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2 유대인의 역사

고대 이스라엘의 구성 민족인 '헤브라이(히브리)'인은 이집트 국내에 거주중이던 외부 유입민들의 집합에서 시작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시조는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다가 능력을 발휘해 고위직에 오른 요셉이 이후 친지들을 불러들인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는데, 이후 모세에 의해 이탈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구성 변화가 있었으리라고 추측 가능하다.

이들이 집단 의식을 발전시키는 것과 함께 수가 지나치게 팽창하자 이집트 당국에서도 억제 정책을 펼치게 되고, 이에 대한 돌파구로서 집단 이탈을 제시한 것이 이집트 왕족이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헤브라이 인에서 찾은 인물인 모세. 유태인들에게 아브라함이 단군 수준의 위인이라면 모세의 위치는 가히 세종대왕이순신을 합친 것 쯤은 된다. 이들에게 최초로 집단적 주권의식을 주입시키고 자립의 길을 처음으로 이끈 인물이기 때문. 이들은 모세의 지휘 하에 이집트에서 이탈하여 자신들이 정착할 만한 지역을 탐색하는 것과 동시에 이동 경로에 있는 토착 세력들과 경쟁을 펼치며 수십 년 정도 떠돌게 된다. 그러니까 성인 남성만 수십만명 규모의 전투난민집단

여호수아모세 사후에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지휘하여 가나안 일대를 침략해 정복했고 기원전 10세기경엔 익히 아는 다윗 왕과 솔로몬왕의 시대로 이스라엘의 전성기였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고대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만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오해하는데 팔레스타인은 고대부터 다민족 지역이었다. 성경에만 기록된 것이라 확실성이 부족하지만 유태인 자체가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이주민족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주하기 이전에 이미 가나안족, 헷족, 히위족, 브리스족, 기르가스족, 아모리족, 여부스족 등 원주민 일곱 부족이 살았으며, 전쟁을 통해 원주민을 복속시키고 유태인들이 지배민족으로써 팔레스타인에 자리잡은 내용이 씌여져 있다. 원래 부터 유태인들이 땅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 유태인의 도래 이전에 이미 선주민이 있었다는 것이다.

구약을 보면 블레셋인과 히브리인들이 싸우는 영토 다툼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로 비유되어 나온다. 구약에는 여러 이민족들을 유태인들이 절멸시키고 땅의 주인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일종의 신화이자 과장된 표현으로 보이며, 실제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보면 사마리아인, 블레셋인, 암몬인, 모압인 등 여러 민족들이 계속해서 유대인들과 섞여 살고 있었다.

당시의 군장국가체제에서 민족개념이라는 것은 지역에 따른 부족개념이었다. 당시의 가나안(Canaan) 지역은 오늘날의 이스라엘, 레바논, 시나이반도, 요르단 서부를 통칭하는 개념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민족들의 이름은 단순한 가나안 민족의 여러 부족개념으로 봐야한다. 한국 고대국가 시대에 부여, 고구려, 예맥, 신라, 백제, 가야 등의 수많은 부족국가들이 혼재했던 개념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언어들은 북서셈어계에 속하는 언어로써 모두다 친연관계에 있었다. 가나안 지역과 페니키아 지역은 서로 많은 지역을 문화적 교집합으로 갖고 있는데, 히브리어와 페니키아어, 사마리아어, 모압어는 서로 매우 가깝고, 아프리카아시아어족 가나안어파의 하위 어군으로 상호 방언관계를 이룬다.

자신이 유대인이기도 했던 《블랙 아테나》의 저자, 마틴 버낼 교수는 유대민족과 주변민족과의 관계사를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히브리인과 페니키아인이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으며, 진지한 언어학자라면 두 언어를 가나안어의 방언으로 함께 취급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라웠다"라고 '블랙 아테나'에서 이야기한다. 즉, 언어학적으로 히브리어와 페니키아어는 알파벳의 표기가 다를 뿐, 한 쌍으로 묶인다는 것이다. 세르보크로아티아어의 관계를 연상해보면 된다.

또한 팔레스타인은 지리적인 교통 중심지이다. 그래서 문화적으로도 아주 이른 시기부터 수메르 문화, 이집트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았으며,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그리스), 히타이트, 앗시리아, 로마, 아랍제국, 여러 투르크제국 및 유럽 십자군 등의 지배를 받았다. 오랫동안 지배를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의 혈연적 관계도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애초부터 여러 민족들이 어울려 살았을 뿐만 아니라 역내외의 다양한 문화들이 오고가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던 문화적 교통로이기도 했던 다민족-다문화 지역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고대 이스라엘 왕국은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열하여 쇠락과 부흥을 거듭하던 중 아시리아(이스라엘)와 신바빌로니아(유다)에 패망당하기도 했다. 이후 로마에 의해 합병되어 서기의 기점(실제 연도는 역산상의 오류로 조금 차이가 있지만)인 예수 그리스도의 시기에는 로마의 식민지 상태였다. 예수를 처형할 때 예수에게 붙은 죄목 역시 명목상의 '로마 제국에 대한 반체제 책동(반역)'이었으며 실질적으로는 로마에 대해 독립을 요구하는 자주세력과 로마에 협력하는 기득권층 사이의 갈등 사이에서 상대에게 타격을 주려는 기득권층의 고발에 의한 것이었음을 고려하면[13] 당시 유대인 사회 내에서 독립에 관하여 사회적 갈등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로마를 상대로 두 번째로 독립전쟁을 벌였다가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개털리고 마지막 보루였던 마사다 요새에서 저항하다가 로마군이 총공세를 펼치자 함락위기에 몰려 독립군 전원이 자결하였다.[14] 이후 로마는 유대인들의 독립운동을 막기 위해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였다. 이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로마 지배하에서 디아스포라를 당해서 전세계로 흩어졌다는 상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문화평론가 김갑수 교수의 견해에 따르자면 실제로 디아스포라가 이루어져서 유대인이 전세계에 흩어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강제적으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난 문헌기록은 전혀 없다. 오직 그에 근접한 기록으로는 AD 135년에 반란전쟁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전역도 아니고) 단지 예루살렘에서만 쫓겨났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다. 그 기록도 아주 소략하다. 그 기록이 맞다는 전제 하에서 이야기를 풀어본다면 여러 차례 유대인 반란에 진절머리를 앓던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중심지이자 반란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을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예루살렘은 지금과는 달리 매우 작은 성곽도시였다. 성곽만 보면 불과 1~2㎢에 불과하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반란전쟁이 일어났다. 그래서 반란의 중심지였던 성이 진압군에게 파괴됐다. 전쟁터였던 성이 불바다가 되고, 폐허가 되는 일은 다반사이지 않은가? 유대인들은 폐허가 된 도시에 살 수 없고, 학살도 피할 겸 시골로 피난갔을 것이다. 반란의 중심지였기에 로마 정부가 당분간 접근금지 봉금령 따위를 내리는 것도 상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봉금령이 과연 영원히 지속될까?

그 어디에도 봉금령이 언제까지 유지되었다는 것도 밝혀져 있지 않다. 시간이 흘러 몇 년이 지난 후, 복구된 다음엔 인근의 유대인이 또 들어와 살았을 것이며, 그리고 설령 그 봉금령이 있었다고해도 고작 작은 읍성 수준의 도시 하나만 폐쇄되었다고해서, 유대인들이 갑자기 전세계로 퍼질 수는 없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전인 BC 1세기부터 큰 규모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을 벗어나서 다른 지역 곳곳에서 여러 언어를 사용하며 살았다는 기록은 무척 많다.

또한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원래 '그리스인이 전세계에 흩어져 사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고, 유대인들도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으니까 그것도 함께 포함해서 '한 민족이 여러 장소에 흩어져서 사는 것'을 가리키게 된 단어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강제적인 디아스포라는 낭설이자 신화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 강제적인 디아스포라가 없었는데, 유대인들이 이렇게 전세계 곳곳에 흩어져서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유대인들에겐 애초에 디아스포라가 없이 그냥 자발적인 이민만이 있었다. BC 1세기경에 벌써 이집트 등에 유대인 공동체들이 존재했다. 특히 당시 세계의 문화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는 유대인 공동체가 무척 커서 인구의 40%가 유대인이었다. 기독교가 퍼지기 시작했던 AD 2~3세기에 로마시내 곳곳엔 유대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게토가 존재했다. 또한 유태인들 외에 유대교에서 개종한 기독교인들도 집단 거주지가 있었다. 또한 앞서 짚었듯이 신약성경의 각 기록에 의하면 레반트(레바논, 시리아), 갈라티아, 에페소스(터키), 테살로니카(그리스) 등에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집단에게 전도하는 기록이 자주 나온다. 참고로 초기의 기독교는 유대교의 새로운 한 분파로써 시작했기에 유대인들에 대한 전도부터 시작했으며, 특히 국제어였던 그리스어를 이미 사용하고 있는 유태인 집단이 지중해 권역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전파가 용이했다는 점이 기독교를 세계종교로 만든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왜 유태인들이 이른 시기에 그렇게 다양한 장소에 살았을까? 그동안 팔레스타인을 지배했던 앗시리아, 히타이트,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그리고 그뒤를 이은 로마제국까지 다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는 다민족국가들이었다. 또한 유태인들은 당시 중근동의 공용어였던 아람어와 그리스어를 사용했기에 다른 지역의 정착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붕괴후 잠시 들어섰던 유대독립국가는 BC 66~61년에 폼페이우스의 동방원정으로 무너지고, 팔레스타인은 새로운 패자인 로마제국으로 편입되었다. 그들이 로마를 싫어해서 유태인 독립국가를 열망했건 어쨌건 간에 그들은 로마제국의 국민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주할 수 있었다. 또한 로마제국의 특징 때문이기도 했다. 로마는 다민족국가로써 민족을 차별하지 않았다. 심지어 비로마인이 황제가 된 경우가 더러 있을 정도였다.

현대의 미국이나 브라질같은 거대한 다민족국가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드넓은 미국 곳곳에 한국인들이, 흑인들이, 백인들이 퍼져서 살아간다. 특히 백인들은 아예 혼혈이 되어서 원래의 민족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 불과 200여년 동안 벌어졌다. 로스앤젤레스에는 한국인들의 거대한 디아스포라가 존재할 정도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섞이고 섞여서 그렇게 유태인들이 로마라는 자기 나라의 곳곳에 시나브로 이주하게된 것이다. 476년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했고, 동로마제국은 1453년에야 멸망했다. 400~1000여년이면 충분히 유태인들이 그렇게 많은 곳에 퍼져 살 수 있다. 유태인들만이 곳곳에 이주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고대의 그리스인이나 페니키아인, 카르타고인들도 그렇게 지중해 전역에 퍼져살았다. 고대의 지중해는 하나의 커다란 경제적 권역을 이루고 있어서 권역내에서 교류가 잦았던 점도 큰 요인이다.

또한 유대인과 페니키아인의 동질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히브리어와 페니키아어는 방언 수준의 차이밖에 없다. 히브리 문자는 BC 2세기에 사라졌고, 페니키아 문자는 BC 1세기경에 사라졌다. 두 문자가 사라진후 두 언어는 각각 같은 계통인 아람어에 흡수되었다. 페니키아인들은 일찌기 이집트 제4왕조인 BC 26세기~BC 24세기때부터 이집트와 상거래를 한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일찍부터 동지중해권역의 무역중개인이었고, 스페인, 튀니지, 아나톨리아 등 지중해 연안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유대인과 페니키아인 사이에는 언어적 차이가 거의 없었고, 서로가 비슷한 지역을 점유하고 있었다. 페니키아인은 북서부 해안가 가나안인으로 보고, 히브리인은 남동부 산악지대 가나안인으로 보면 쉬운 비유가 될 것이다.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은 무역에 따라 하나의 거대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고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 권역에 많이 진출했고, 히브리인들도 페니키아인으로서 간주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이후 많은 유대인이 중동이나 유럽으로 퍼졌는데, 대부분 이주한 사회에 녹아들어가지 않고 자신들 고유의 전통과 종교를 지키면서 살아갔기 때문에 유럽인들과 무슬림들에게 미움받아 배척을 당했다. 제대로 된 일조차 구하지 못했기에 대부분 금융업에 종사했고 이는 고리대금업을 금하는 기독교 사회 안에서는 더욱 배척받고 미움받는 원인이 되었다. 기독교 사회였던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은 토지를 소유할수 없기에 농사도 지을 수 없었고 조합에 가입할 수 없어 상업도 공업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유대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리대금업밖에 없었다.

중세 유럽의 유대인. 유대인들은 저렇게 뾰족한 모자를 유대인이라는 징표로 쓰고 다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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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과 돈 갚으라고 하는 유대인, 그리고 짜증내는 기사(...)
사실 여기서 부터 민족 특성이 보인다

더욱이 기독교인들은 (주로 배타적인) 유대인들을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증오하고 멸시했다. 성경에서 예수의 사형이 결정될 때 유대인들이 외친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15]가 가장 유명하고 악랄한 구절. 십자군 전쟁 때도 지나가는 길에 유대인들이 있으면 그냥 쳐죽이고 재산 빼앗는 일은 예사였다. 셰익스피어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사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또한 이런 증오가 투영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예수와 열두 사도들은 유대인들이었으며,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도 유대인이었다는 성경의 고증을 아예 몰랐던 거...[16]

다만 이것도 전부 그런건 아니고 지역에 따라서 나름대로 기독교인들과 공존하며 지내거나 높으신 분들에게 종용되기도 했다. 특히 폴란드는 유대인에 대한 관대한 대우로 유명해서 상당수가 그쪽으로 피난갔다.

현재 재정적인 문제로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지원하는 단체의 상당수가 개신교 계열이다.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분리시킨 신약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할 것과 그들을 향한 신의 사랑과 계획이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교리적으로나 성서적으로나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적대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차라리 경제적, 정치적인 이유에서 그 답을 찾는 것이 빠르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고리대금은 오히려 기독교가 더 심했다. 기록에 의하면 유대인기독교인보다 [너그러웠다고 할 정도]이니.[17] 근데 뭐 당시 기준으로 말하자면 '기독교'란 한국에서 '검은머리'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표현이다. 극소수 유대인이나 기타 종교인이 있는 거고 기독교는 그냥 '일반 국민 기본값'인 셈. 결국 '고리대금업자는 종교 가릴 것 없이 대부분 독한 놈' 이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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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에서 태어나 이집트에서 활동한 유대인 철학자, 랍비이자 살라흐 앗 딘의 주치의였던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이슬람권에서는 기독교권에 비해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덜한 편이었다.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아주 없던건 아니고 사실 이슬람 초기에는 무함마드와 껄끄러운일도 있고 여러번 피를 보기도 했지만, 이슬람 제국의 황금기가 왔기 때문에 사실 세금을 걷을 일만 제외하면 딱히 족칠 이유가 없기도 했고 이슬람 제국과 강력하게 대립했던 하자르가 유대교를 받아들였다고는 하지만 이슬람이 창시되고도 100년 후의 일인데다가 중동지역은 이미 이슬람이 절대적인 우위라서 탄압할 일도 없었고 특히 팔레스타인에 남아있던 유대인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아랍에 동화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족칠일은 없기는 했다, 사실 집시라든지 쿠르드족의 예를 보듯 단지 나라없는 떠돌이 민족에다가 거주하는 지역사회에 동화되는 것에 거부감을 보였기 때문에 박해당한 것이지 예수를 죽였다던가 하는 건 일종의 핑계일 뿐이다. 게다가 중세의 유대인 학살과 탄압은 유대인들한테 금전적인 빚을 많이 지다보니 빚갚기 싫어서 저지른 것이다.

18, 19세기 들어 소위 '이성의 시대'가 열리자 유대교와 유대인에 대한 탄압은 감소하였으며 동시에 유대인들의 사회적 지위는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18세기 들어서 유대인들도 지역사회에 활발하게 융화되어 참여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금도 여러 음모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금융 재벌이 된것도 19세기 초반이며, 19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성공회로 개종한 유대인 정치인인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수상의 자리에까지 오를 정도였다. 딱히 따로 말하지 않아도 당시 전분야에 걸쳤던 유럽계 유대인들의 눈부신 활약은 충분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는 살아남아 결국 홀로코스트가 일어났고, 5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었다고 추산된다.


2.1 홀로코스트

홀로코스트에 대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19세기에 대두한 유럽 각국의 민족주의가 기독교로부터 반유대주의의 바통을 물려받았다는 데에 있다. 순혈을 국가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시대에 자국내의 유대인들의 성공을 고깝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것. 겉으로는 다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소련이나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에서도 유대인들에 대한 대접은 '전세계를 주무르는 무자비한 자본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다지 좋지 않았다. 웃기게도 자본주의의 수뇌부인 거대 자본가들도 유대인들을 사회주의자라고 여겨서 좋은 눈으로 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18].

원인이 어쩌든, 홀로코스트를 보면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한 건 나치는 유대인이 수전노에 고리대금업자라는 이미지로 선전했는데 나치 집권 후 그런 소리 들을 만큼 부자인 유대인들은 유럽을 떠났지만[19], 돈도 부족하고 힘없던 유대인들은 남아서 다 수용소로 끌려갔다. 돈이 웬수다

20세기초 영국시오니즘의 대두를 지켜보고 유대인들에게 영국령 우간다 땅을 내줄 테니 거기서 나라 만들어라고 제안한 바가 있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영국령 우간다 계획 참고.

홀로코스트가 유대인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이유는, 이 경험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대인"이라는 공통된 아이덴티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위 항목에서도 설명되었듯이, 수백 수천년간 세계를 떠돌면서 유대인들은 다양한 분파로 나뉘어 있었고, 그 다양한 분파의 일원들은 서로를 닭 소보듯이 하며 동질감을 느끼지 않곤 했다. 아니, 아예 본인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았다. 유럽에서, 활약했던 유대인의 면면을 보자. 혈통외에 이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단순히 업적의 차이가 아니라, 철학적인 지향점이나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판이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애시당초 홀로코스트는 제국주의에서 없어선 안될 방해파와 장애물 숙청, 제거의 목적이 있는 한 현상이고 이에 총통의 정신 나간 사상이 결합되어 유태인이 목표가 된 것이다.

정치적인 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테오도르 헤르츨같은 이들은 시오니즘운동을 통해 유대인 국가의 건설을 주장했지만, 유럽 사회에서 성공한 많은 수의 사람들은 "우리가 왜?" 라는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다. 본인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유대인이라는 핸디캡을 벗어날수 있다는 믿음때문. 실제로 철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소위 "유대인 계몽운동" (Jewish Enlightenment)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모제스 멘델스존의[20] 후손들은 은행업, 면직산업, 음악가로서 성공했고 모제스 멘델스존의 아들대 부터는 아예 전부 기독교로 개종했다. 거기다가 못사는 동유럽 유대인들을 깔보는 인종적인 태도는 덤.[21]

하지만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총통 께서 등장해서 종교 개종, 사회적 성공의 여부와 상관 없이 모조리 잡아 죽이겠다고 날뛰었으니 유대인들 입장에선 큰 충격이었다.[22] 따라서 홀로코스트는 "우리가 남이가" 내지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식의 공통된 유대인 아이덴티티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렇게 형성된 아이덴티티가 바로 오늘날 이스라엘을 통해서 발현된 것이다. 다만, 홀로코스트 항목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전쟁 이후 역시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던 동성애자, 집시들을 무시하고 유대인만을 피해자로 주장하는 일부 우월주의 유대인들의 행동때문에 차별 때문에 피해자로서 호소하였던 자들임에도 본인들이 차별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는 없게 되었다. 미국의 유태인들이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박물관의 추모비가 유태인뿐 아니라 집시, 폴란드 등 동유럽인, 동성애자, 나치에 반항한 정치범 등 모든 희생자를 기리는 것을 거부하고 오직 유태인만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인데, 다행히도 2016년 현재 모든 희생자를 언급하고 명시되어있기는 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진 뒤로 지금까지 유대인의 이중 잣대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기는 하다.


3 현대 이스라엘

유럽계 유대인들이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 특유의 생명력으로 나름대로 상업과 금융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등, 좀 불편한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유럽 사회에 붙어 살던 중, 아돌프 히틀러가 등장해 다수[23] 의 유럽계 유대인을 학살하게 되자 결국 유럽계 유대인들.. 정확히는 아슈케나짐은 자신의 나라를 강하게 원하게 되고 결국 1948년, 고대 유대인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국을 건국하게 된다.

그 때문인지 오늘날 이스라엘 역사 교과서의 400쪽 중에서 세파르딤과 미즈라힘의 역사에 할당된 페이지는 단 9쪽 뿐이라고 한다. 아랍세계의 일원으로 평화롭게 살았던 중동 유대인들의 역사는 지우고 유럽에서 박해받은 아슈케나짐의 역사만 가르치는 것. 아랍인에 대한 증오의 이데올로기를 국민 통합의 바탕으로 삼는 이스라엘 지배층에는, 아랍권에서 유럽과 달리 반유대주의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만큼 껄끄러운 사실이 없었다. 시오니즘이 팔레스타인을 정복하기 이전에 유대인들을 언제나 반기고 관대하게 대해주었던 아랍인들에 대한 그들의 ‘배은망덕’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세파르디들로부터 갓난아이들을 빼앗아가 ‘선진적인’ 유럽 출신의 시온주의자의에게 입양시키는 ‘2세 동화 작전’도 있었으니..

아랍권에 집을 짓기 시작하고 그 과정으로 중동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팔레스타인 정착에 성공하자 아랍인들의 원수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주변 아랍국가들뿐만 아니라 이슬람권 전체에서 이스라엘에 비협조적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받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국가들(특히 독일[24])만큼은 이스라엘과의 수교 관계를 맺으며 이스라엘을 지지하고는 있으나 프랑스의 경우 외교 정책에서 종종 이스라엘보다 아랍 국가들의 편을 들기도 하고(대표적으로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과의 평화협상을 중재할 때 사실상 아랍국가 쪽으로 유리하게 협상을 중재하는 경우가 있다.) 독일이나 다른 유럽권 국가들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간 분쟁에 비판적,적대적인 태도를 어느 정도 취하면서 미국과 달리 좀 아니꼽게 보기도 한다. 자세한 사항은 이스라엘 항목을 참고하기 바람.

현대에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유대인들 자체가 인종차별의 광기에 물든 상황이다. 특히 나치스와 다를거없는 이스라엘 정부와 그것을 당연시여기고 옹호해주는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막장성 때문에 전세계 사람들에게서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이 다시 등장했다. 얼마나 심하면 차라리 해외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유대인들보다 정상에다 개념인일 정도. 심지어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유대교를 믿는 백인 유대인 아슈케나짐만을 유대인으로 생각하고 나머지는 동족 취급도 안하며 멸시하고 차별한다. 2014년 7월 가자지구 폭격 당시만 해도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크면서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다시 급격히 성장하고 있고 거기에 네오 나치들과 각종 이슬람 극단주의 파벌, 친ISIL 파벌들이 편승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있다. 그러다보니 죄없는 해외 유대인들마저 피해를 보고 있다. 해외 유대인들도 갈수록 막장이 되가는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들을 보는 시선이 좋지 않으며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해외 유대인들은 친이스라엘을 제외하곤 자신들은 이스라엘과 아무 상관이 없다며 철저하게 선을 긋는다.


4 현대의 유대인

유대인은 수천년간에 걸쳐 혼혈화가 진행됐기 때문에 인종이나 혈통은 의미가 없으며 풍습과 유대교로 유대인의 여부를 가린다. 오히려 인종과 혈통으로 유대인을 구분하는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잘못된 것이라 볼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합산해봤자 1,400만 명을 넘는 이 작은 민족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역시 미국에 사는 백인계 유대인들 때문일 것이다. 미국 인구의 약 1.5%(미국 거주 유대인은 약 500만 명)를 차지하는 유대인들은 그들 특유의 수완으로 경제, 언론, 문화, 예술. 스포츠[25][26] 등의 분야들을 차례로 접수하였다. 유대인들이 영화산업을 가치있게 눈여겨본 이유가 평상시에 하도 도망가고 튀어다니다 보니 무형적인 가치에 대해 관심이 컸었다. 그라고 설립자 전부 동유럽계 유대인이고 [27] 각계에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htm_20150309162448741.jpg
실리콘 밸리만 때놓고 봐도 이 정도.

비유대계 백인들, 특히 WASP 계층의 멸시와 증오를 받기도 하고 각종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래도 엄청난 부와 명예,권력때문에 함부로 욕을 못하는 것 뿐. 극단적 사례는 역시 유대인 배후자본설. 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그런 것과는 별 관계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교육열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 자본가,기업가,영화업계에 종사하며, 박해받은 역사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성향이 진보적이다. 까놓고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하니 이런 소리 때문에 피해를 받은 적이 많아서 유대인 음모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장 유대인 음모론을 활용한 나치가 유명하고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다른 나라들도 주요 계층이 유대인 음모론과 비슷한 논리로 유대인들이 얻은 권력과 돈을 빼앗았지만 특히 프랑스가 나폴레옹, 조제프 푸셰 등 유명인들로 많이 알려졌다. 그리고 솔직히 세계를 지배하는 유대인 논리를 적용하기에는 박해받는 일이 너무 많아서 세계를 지배하는 계층이라고 볼 수 없었다. 미국의 역사에서도 WASP의 주요 인사들이 했던 짓을 보면 유대인들을 죽이거나 경제적으로 짓밟아야 한다고 설치고 다녔는데 세계를 지배하는 계층이 당할 짓으로 보이는가? 헨리 포드 반유대주의는 꽤 최근까지의 역사이며 실제로 주류 민족의 실력자들이 유대인에게 가졌던 생각과 그들에게 했던 행동을 보면 아무리 좋게 봐도 중세 때부터 받던 박해의 연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정말 중세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진 것들을 어이없는 이유로 빼앗기며 히틀러와 같은 악당들에게도 정말 많이 멸시와 박해를 당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민족주의적인 인식과 다르게 유대인들은 저런 음모론을 퍼뜨리는 사람들에게 전혀 고마움을 갖지 않으니 주의하는 게 좋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경우,민주당버락 오바마를 찍은 유대인은 80% 이상이었다. 이게 굉장히 독특한 현상인데 전체인구의 2%밖에 안되는 인구인데 전체 GDP 20%를 장악하고 있는 부자,엘리트 집단들로 모여 있는데도 증세,강한 정부,빈부격차 완화같은 정책을 내놓는 민주당에게 표를 준다는 것이다.[28][29] 이렇게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흔한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유대인 랍비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 대한 군사행동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기득권은 이와 정반대이며 이스라엘 내 양심적인 유대인들은 좌파로 몰려 탄압받기도 한다. 팔레스타인과 공존을 추구하는 샬롬 악타브(히브리어로 안녕 평화여라는 뜻)같은 단체들은 극우 유대인 민병대들에게 허구헌날 두들겨 맞는 현실이다. 게다가 이 극우 유대인들을 극우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정부가 제대로 단속할 생각도 안 하고 똑같이 양심적인 유대인들을 탄압하고 불이익주는 판국이다. .

물론 뉴욕 같은 데 가면 진짜로 검은 옷 입고 수염은 허리에 닿고 안식일에는 불도 안 켜는 골수 유대인들이 있긴 하지만[30], 어디까지나 일부고 대부분은 평범하고 튀지 않게 살고 있으며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태반이다. 말이 유대인이지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고 기독교 풍습을 따라 크리스마스에 트리를 세우기도 한다. 다만 미국같은 경우엔 메리 크리스마스가 특정종교 상징이라고 하여 해피 홀리데이라는 말로 대신하는 인삿말이 퍼지고 있는데 이 말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기여했다는 말도 있다. 사실 극소수 인구임에도 유대인들의 명절인 욤 키푸르(속죄일)는 여러 주에선 국경일인 것도 유대인들의 힘이 그만큼 크기 때문.

대부분의 대중매체에서는 십 원짜리 하나만 던져도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는 수전노들이나 미친 듯이 공부만 하는 범생이로 묘사된다. 전자야 인종차별에 가까운 편견인데 후자는 뭐 어느 정도 사실. 미국 유명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유대인 비율은 인구대비 압도적이다. 현재 미국 유명대학 재학 유대인 비율은 하버드 대학교 30%, 예일 대학교 28%, 보스턴 대학교 24%로 엄청나다. 단 명문대 입학은 학업 성적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학교 재정에 기여가 가능한 학생을 선호하는 것과도 관련있다. 그럼에도 유대인 학생들은 많은 학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거두며 졸업한다. 이렇다 보니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학에서 너무 유대인이 많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해야 쫓아낼 수 있을까, 입학을 막을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고 한다. "나 유대인이오"라고 하지 않으면 쉽게 알기 힘드니, 이는 사실 유대인이라고 볼 수 없는 사람들도 꽤 있기 때문이다. 혈통적으로도 피가 일부만 있고 유대인으로 분류하는 기준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며, 유대인으로 등록하지 않은 사람을 유대인으로 찾을 방법은 없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기반도 부족한 점도 있어서 딱히 아시아계 학생들을 위해 기부를 하지도 않는 반면, 유대계는 그 자체도 부유층이 많은데다가 유대계가 많은 학교에는 별도로 기부를 하는 편이다. 이래서 요즘에는 재미교포사회에도 돈 버는 데만 신경쓰지말고, 시민권을 따서 선거에도 참가하고 지역사회에 기부도 하고 잔소리도 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아무리 소득은 히스패닉이나 흑인보다 높아도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니 정치인들에게 찬밥 취급이고, 중국인들처럼 같은 중국인을 띄워주지 않고 대신에 어떻게든 같은 한인이나 부려먹고 착취할 요행만 바라니 어느 정도 자리잡고 나면 한인을 피하려고 한다는 말도 있다.

그외에도 아무래도 먹고 살 만한 중산층과 상류층들이 많아서 그런지 예술과 문화 쪽에도 수많은 유대인들이 종사하고 있다. 예술가하면 가난한 예술가가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지만 실제로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중에는 집이 넉넉해서 생업에 종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마음 놓고 예술에 전념해서 예술가가 된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미국에서 유대인들은 주로 대도시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으로 보면 북동부와 캘리포니아 플로리다에 많이 거주한다. 뉴욕주의 경우 유대계인구[31]가 1,757,270명에 달한다. 보스턴-뉴욕-필라델피아-워싱턴d.c로 이어지는 메갈로폴리스에 300만명 가량의 유대인이 거주한다. 뉴욕시의 경우 여느나라 대도시가 그렇듯 흑인 백인 가릴것 없이 출산율이 낮은편인데, 정통파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출산율은 독보적으로 높다고 한다. 이는 유럽의 정통파 유대인 거주지역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에 있는 유대인들은 유럽과 미국의 유대인들과 문화적으로 꽤 큰 차이가 있다. 대다수의 유럽계 유대인들은 다른 유럽인들과 문화적으로는 그냥 동질감이 있는 편이라서 서구화된 한국인들은 딱히 대하는데 어려움이 없는데 이스라엘계 유대인들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고 한다. 대표적인게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회사에서 회의할때 말단 사원이 거침없이 질문을 하고 솔직한 코멘트를 말하는 등 서양의 문화라고 해도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거침없다. 게다가 발성도 우렁차게 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말할때 굉장히 거칠고 크게 말한다. 이정도면 성격이 직설적이고 우렁차게 말하는거 좋아하는 아랍인과 비슷하다.위치가 중동이라서 그렇게 됐나[32] 유대계 미국인과 유럽인들도 이스라엘인들의 이 거침없음이라면 학을 뗀다. 모 위키러가 회사에서 회의 도중에 이스라엘 협력업체의 직원들한테 미국 유대인 매니저가 거침없는 질문과 코멘트에 크게 데이고 나서 차에 타자마자 "FXXXing rude assholes!"라고 소리치는 것을 봤다(...)

5 베타 이스라엘(흑인 유대인)의 이민 역사와 현황

한편 아프리카에도 베타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흑인 유대인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이다.

원래 에티오피아 왕조의 탄생 자체가 에티오피아의 시바 여왕이 솔로몬 왕을 만나 동침한 뒤 임신하여 낳은 아들을 시조로 보고 있다. 이 아들의 이름이 메넬리크 1세다. 이 아들이 이후 장성하여 아버지를 찾아갔고 유리왕? 아버지인 솔로몬 왕은 아들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7개 직능 부족에서 각 1000명씩을 징발하여 아들에게 데려가라고 내주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에티오피아에 살던 유대인들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인들은 농담조로 "다른 데서 찾을 필요 없이 우리도 다 유대인의 자손이다." 라고 말한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10장 1절에 보면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라는 구절이 있다. 참고하길 바란다.

일단 이러한 내용은 사실적인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고 설화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제국헌법은 이러한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여 메넬리크 1세부터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1892.7.23 ~ 1975.8.28)까지 왕통이 연면했음을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에티오피아 내에 거주할 때 다른 흑인들과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을 고수하며 이스라엘 족이라 자처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희생을 바쳐 제사를 지내는 등 유대인 고유의 풍습을 지켜온 것으로 전해진다.(1991. 5. 26 경향신문)

때에 맞춰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 내에 팔레스타인인 인구증가에 불안을 느끼고 인구 확충을 위해 해외 각지의 다양한 유태인들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에티오피아 유대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었다. 문제는 이를 눈치 챈 당시 에티오피아 공산 정권이 이스라엘의 도움을 받기 위해 걸핏하면 이들을 볼모로 이스라엘에 같잖은 협박을 해댔다는 것. 결국 빡친 이스라엘이 직접 대형 수송기를 보내서 세 차례에 걸쳐 해당 흑인 유대인들을 전부 본국으로 수송하여 이민시켰다. 에티오피아에서 유대인들이 거주하던 마을은 그 독특한 문화 때문에 온 세계에 관광지로 유명했으나, 정작 거주자인 흑인 유대인들이 전부 떠나버리고 난 뒤에는 거의 그냥 폐허로 전락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1984년에 있었던 모세 작전에서 약 8000여명을 옮기는 것을 시작으로 직접 엄청난 인구를 들어 옮겼다. 그리고 직접 정부 관계자들이 마중 나가 엄청 환영하는 했지만... 실제로는 말도 다르고 피부빛이 다른 그들은 시간이 지나자 아랍계만큼 심한 차별을 받는다.

특히 1996년에는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이 헌혈을 하면 [정부가 그 헌혈한 피를 전량 폐기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항의하는 에티오피아게 흑인 유대인들은 인종차별이 아니냐며 대대적으로 시위를 벌였지만 사실 이스라엘 보건당국의 공식적인 발표에 의하면 에티오피아 출신자들 중에 에이즈 환자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실제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에이즈 감염율과 보건 실태를 감안하면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해서 일단 흑인 유대인들이 시위를 중단하기는 했다. 하지만 평소 이스라엘 사회에서 차별 받고 살던 흑인 유대인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느낀 좌절감과 박탈감을 표출하며 각종 사회 운동에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은 에이즈가 확산된 이후에 에티오피아에 산 적이 있는 경우에 헌혈 배제를 하고 있는데, '영유아 시기에 이스라엘로 입국한 경우'까지 에이즈 음성으로 판정되어도 헌혈 배제 대상으로 삼고 있어서 인종 차별 논란이 남아있다.

2013년 현재 이들 흑인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약 10만명이 좀 넘는 인구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래도 이들이 대거 거주하는 지역의 2개 의석에선 반드시 이들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출신이 의원으로 꼬박 꼬박 뽑힌다. 그리고 또한 전통적으로 하층민을 형성하며 먹고 살기 위해 군에 말뚝을 박거나 군복무 경력을 통해 경찰이 되곤 하던 흑인 유대인들이 요근래 자체적으로 학력을 높이려 노력하여 IT 관련 업종에 진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도 한다.하지만 여전히 가난과 인종차별에 시달려서 그들의 삶은 아직까지도 험난하기만 하다.

2013년에는 흑인 유대인 여성이 미스 이스라엘에 뽑혀 극심한 반대에 시달리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미스 이스라엘 역사 최고의 몸매와 미모를 가진 여성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그놈의 피부색은 여전히 벽으로 다가오는 듯.


6 유명한 유대인들

6.1 성경 인물[33]

6.2 그 외

* 빌 게이츠 - 유대인으로 오해받는 대표적 인물이나 사실은 영국계이다. 이전 버전에 누가 헝가리계 유대인이라 써놓았는데 근거없는 헛소리. 빌 게이츠는 잉글랜드계+독일계+스카치 아이리시 혈통이다.

7 유대인 캐릭터

이와 같이 꽤 독특한 민족이기 때문에 각종 픽션 창작물에서 자주 등장하는 민족, 특히 서유럽이나 북미권에서는 집시와 함께 꼭 한번씩은 나온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유대인들의 영향력 덕분인지 인구수에 비해서는 자주 나오는 듯하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이 생각하는 유대인 외모의 클리셰진저 타입에 곱슬머리인 것 같다. 진짜 진저타입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많은데 왜 설정이 이리 잡혔는지는... 실제로도 이런 유대인들이 많다. 마크 저커버그라든지...

헌데 동양에서는 오덕물이든 아니든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동양인 입장에서야 다 똑같이 백인으로 보이니까. 《블랙 라군》의 베니정도가 그나마 동양 오덕물에서 등장하는 유대인중 한명. 한국에서는 그나마 기독교가 흥해서 라이트 노벨에이나 웹툰에서 간간히 등장하고는 하고는 한다.

※ 이스라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는 제외한다.

  •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삼은 작품의 주인공, 등장인물 대부분
  1. 국가로서는 "예후다(Yehuda)"이므로 한국어식으로 하면 "예후다인"이 맞다.
  2. 아슈케나짐 유대인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언어로 히브리어의 기반 위에 주로 독일어, 슬라브어의 영향을 받았다.
  3. 세파르딤 유대인의 언어로 이쪽은 스페인어의 영향이 특히 짙다.
  4. 독특하게도 '유다'가 아닌 '히브리'에서 나온 말이다.
  5. 표준어는 유대인이지만 나이든 분 중심으로 위의 한자에서 유래한 유인이 더 흔히 쓰인다.
  6. 단순히 "조롱 섞인 별명"이라고 하기엔 어마어마한 멸칭이다. 흑인을 "Nigger", 동양인을 "Chink"라고 부르는 것과 동급.
  7. 아주 보수적인 유대인 사회의 유대인들은 아랍인처럼 머리가 까만 등 상당부분 아브라함의 종교 계열의 민족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일본에 맥도날드를 들여오고 《유태인의 상술》이란 책을 쓴 후지타 덴에 의하면 유대인들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외모상의 가장 큰 특징은 매부리코라고 한다.
  8. 카이펑의 유대교도 항목 참고.
  9. 중국계인 Von Zon 이병이 이스라엘 방위군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된 바도 있다. http://www.idfblog.com/2012/04/01/3-inspi 참고.
  10. 정통파 유대교의 가정은 조선의 양반가와 비슷하다.
  11. '사'자 직업에 목숨을 거는 전형적인 유대인 어머니 (Jewish Mother)상을 비꼬는 농담이기도 하다. 주로 미국계 유대인 사회에서 회자되는 어머니상인데, 우디 앨런 영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12. 이디시어로 "Shiksa".
  13. 그리고 예수는 그 추종세력을 정치적으로 이끌기를 바라던 독립파의 기대와는 정 반대로 뜬구름 잡는(?) 회개와 구원 이야기만을 주구장창 주장했으므로 고발 당시 독립파의 옹호도 얻지 못했다.
  14. 다만 마사대 요새가 하도 방어가 잘되는 지역에 위치했던 지라 로마군은 함락한다고 고생했다.
  15. 마태복음 24장 25절
  16. 하지만 유대인들이 하나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까 그런거다.
  17. 다만 십자군 때까지만 해도 기독교인끼리 사채는 금지였다. 그래서 십자군이 이동하다가 돈이 부족하면 유대인한테 빌리던지 뺏던지 했었다.
  18. 자본가들중에서도 유대인이 많았지만 사회주의 운동가들중에도 유대인이 매우 많았다. 애초에 사회주의 교조였던 카를 마르크스부터가 유대인이었고, 나치당 같은 파시스트들은 사회주의를 유대인이 만든 몹쓸놈의 사상이라고 해서 매우 탄압하였고 이러한 사회주의에 대한 증오는 반유대주의와 시너지를 이루었고 독소전쟁으로 이어진다.
  19. 부자들은 다 살았다는 건 아니다. 설마 나치가 그 정도로 악랄할까, 설마 나치가 전쟁을 벌일까, 설마 나치가 폴란드와 프랑스를 각각 한달만에 처바르고 점령할까(...) 등 여러가지 이유로 상황을 낙관하다 변고를 당한 사람도 있다.
  20. 유명한 음악가 펠릭스 멘젤스존의 조부였다.
  21. 1920년대 독일의 유대계 신문을 보면 "요즘 폴란드나 리투아니아 등지에서 검은 모자쓰고 수염기른 (정통파 유대인의 복장) 애들 자꾸 건너 오는데 아놔 걔네 땜에 쪽팔려서 못살겠다 진짜 ㅡㅡ" 라는 투의 기사들을 어렵잖게 찾을수 있다.
  22. 물론 나치들도 사람인지라 뒷돈을 받고 눈감아주는 경우도 있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일가가 유명한 예.
  23.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600만의 수치는 이스라엘 측이 피해자란 면을 내세우기 위해 심하게 부풀려졌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수십만 단위 이하로 내려간다는 홀로코스트 부인론은 반유대주의 극우파에서나 내놓는 주장이며 최소 200만 이상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아우슈비츠등 절멸 수용소의 능력으로는 수백만은 불가능하다며 썰을 풀기도 하는데, 애초에 절멸 수용소 외에도 동유럽과 러시아 거주 유대인에 대한 일방적 총격사살, 학살용 차량 운용, 게토 몰아넣고 방치하기, 게토 자체에 대한 포격 등 유대인을 죽인 방법은 다양했다.
  24. 사실 이것도 그럴것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시대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 때문이니..
  25. NBA를 돈다발로 만든 데이비드 스턴 현 총재도 유대인이며 그를 이을 부총재 또한 유대인이듯이 정작 NBA 보면 알겠지만 선수층이 흑인이 과반수임에도정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이라 스포츠 쪽 행정이나 투자에서도 유대인들 힘이 거세다. NBA 스폰서 중인 유태계 자본인 시먼스 은행 같은 기업때문에 이란이나 아랍권에선 NBA 중계가 난항을 겪고 있기도 하다.
  26. 워너브라더스파라마운트 픽처스 등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 다수가 유대인이 설립한 회사다.과거에는 유대인이 아니었다가 유대인 관리로 들아간 월트 디즈니 컴퍼니,그 반대인 소니 픽쳐스도 있다.
  27.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 뉴욕 타임스 같은 언론사도 전부 유대인의 세력범위에 있다.
  28. 애매한 부분도 있다. 셸던 애덜슨 같은 공화당 지지 유대인들도 있어서. 중상류층으로 자리잡은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민주당에 표를 던지고, 정말 정말 돈 많은 최상류층 유대인들은 갈린다고 보면 될듯.카지노 재벌인 애덜슨은 2012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들 지지를 위해 9200만 달러를 지출했다.
  29. 요 근래들어 공화당이 전폭적인 친-이스라엘, 반-이란 노선을 걷고 있는게 애덜슨을 필두로한 부유한 유대인의 선거자금을 노린 것이라는 평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언젠 안그랬냐만. 애덜슨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도 친해서 그가 창간한 이스라엘 제1일간지인 "이스라엘 하욤"은 친-네타냐후 논조로 유명하다. 참고로 "이스라엘 하욤"은 무가지이다. 말 그대로 이스라엘과 미국 양국에서 돈 뿌리고 다니는 갑부.
  30. 이런 유대인들은 당연히 보수적인 성향이다. 2008년 대선 당시 정통파 유대인 중 오바마를 찍은 비율은 13%에 불과했다.
  31. 넓은 범위의 유대인으로 유대교를 실천하면서 믿지는 않지만 부모가 유대인인 경우 등도 포함, 미국 전체에 약6,800,000명
  32. 실제로 아랍인과 이스라엘 유대인도 은근히 성격에서 죽이 맞는 부분이 많다.
  33. 당연히 대다수가 유대인이다.
  34. 므낫세 지파 출신
  35. 유다지파 출신이자 이스라엘을 부흥케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간 인물.
  36. 에스더의 사촌오빠
  37. 레위지파 출신이자 출애굽 사건에 빠질수 없는 주역.
  38. 베냐민 지파 출신이자 이방인의 사도.
  39.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스불론, 잇사갈, 단, 납달리, 갓, 아셀, 요셉, 베냐민 등 덤으로 요셉의 아들들 므낫세, 에브라임까지 합하면 14명되는 듯
  40. 이들은 최초의 유대인 지파의 조상이자 유대인을 형성한 중시조들이다.
  41. 에브라임 지파 출신
  42. 요제프 멩겔레의 조수이자 노예였던 인물
  43. 의류 브랜드인 폴로 회사의 창업주
  44. 이 사람은 나치 치하에서 홀로코스트까지 겪었으며, 어머니가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
  45. 어린시절엔 유대인 공동체에 있었던 적도 있지만, 이후엔 저커버그처럼 가계만 유대인이고 무신론자이다.
  46. 본인은 무신론자이지만, 일단 집안의 가계가 유대인 집안이다.
  47. 이쪽은 집안이 유대계긴 하지만 아버지대에 이미 개신교로 개종했으며, 큐브릭 본인은 유대교와 유대인에게 관심조차 없었고, 일부 유대인들이 막강한 자본력으로 언론 및 문화산업을 더럽힌다며 혐오했다. 이외로 본인의 독일-오스트리아계 혈통에 대한 애착은 깊었다.
  48. 그의 작품엔 항상 유대인을 티내는 요소들이 들어가 있다.
  49. 나치의 유대인 탄압 및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부모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 쥐: 한 생존자의 이야기의 작가.
  50. 유대인으로는 처음으로 가톨릭 성인품에 올랐다.
  51. 아버지대에 이미 개신교로 개종해서 유대인이란 자각이 없었다. 펠릭스 멘델스존의 아버지는 자신의 먼 조상중 한명이 유대인이라고 생각했지 자신을 게르만계 독일인으로 봤으며 아들인 펠릭스 멘델스존도 그리 생각했다.
  52. 본인은 유대인이란 자각이 없었으나, 나치의 기준에서는 훌륭한 유대인이었다.
  53. 서양인+한국 혼혈이지만 종교는 유대인의 민족 종교인 유대교이니 유대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긴 한듯.
  54. 제101공수사단과 두 번째로 조우할 때 독일군 포로들을 향해 다비드의 별을 보여주면서 '유대인이야', '이거 잘봐 나 유대인이라고'하면서 포로들을 약올렸다.
  55. 3편에서 유대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56. 실제로 유대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블을 맡은 데이비드 슈위머는 《프렌즈》에서도 유대인인 로스 겔러를 연기했다.
  57. 종종 유대인임이 언급되긴 하지만, 나중엔 사실상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게 된다.
  58. 세계관 자체는 현실의 국가개념과는 다르지만 살리아의 이름은 히브리어이다.
  59. 겔러 일가는 작중 명백히 유대인임이 언급되고 하누카 등도 언급하지만 레이첼은 설정상으로만 유대인 혈통이라고 한다.
  60. 특이하게도 얘는 멕시코계 유대인이다.
  61. 폴란드인 아버지와 유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폴란드계 이민1세대 미국인.
  62. 집안이웃들하고 사이가 험악하다. 누나를 마개조로 공포에 몰아넣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