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투라

Futura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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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활자체 디자이너 파울 레너가 1927년에 처음 발표해, 몇번의 업데이트를 거친 자족(字族)을 일컫는다. 20세기의 지오메트릭 산스를 대표하는 활자체이며 수많은 후대의 작품들이 이의 영향을 받았다. 레트로와 복고의 유행속에서 최근 들어서도 헬베티카와 함께 많이 사용되고 있다.

2 제작의 배경과 영향

2.1 안티크바-프락투어 논쟁

파울 레너의 제작 동기는 당시의 독일에 만연했던 안티크바체(로먼체)와 블랙 레터체 사용 논쟁에 기원했기에, 이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국가들은 15-16세기부터 르네상스 열풍과 인쇄술의 발전에 힘입어 로마의 유물들에 남아있던 로마자들을 근세적으로 개량하고 소문자를 추가한 이른바 로먼체들이 표준처럼 되어 사용하게 되었다.

(말이 개량이지, 사실 대문자는 그냥 갖다 쓴 거고, 소문자는 로먼체의 느낌에 맞게 당시 남유럽에서 많이 사용되던 로툰다체를 개선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로툰다체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둥글둥글한 블랙레터 서체로, 텍스투라에서 거의 벗어나 로먼에 가까운 서체였다.)

그런 반면 독일에서는 모를 이유로 [1] 19세기 전까지 블랙레터체 (프락투어)가 매우 오랫동안 사용되었고, 나폴레옹의 진군으로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사상 등이 널리 보급되면서 서/남유럽의 서체인 안티크바가 조금씩 사용되기 시작된다.

이런 배경으로 19세기초부터 논쟁이 시작되는데, "왜 우리만 프락투어를 사용하는가? 다른 국가들처럼 안티크바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세계주의적인 입장과 "프락투어는 독일 민족의 서체이며 독일어에 가장 적합한 서체이다." 라고 하는 민족주의적 입장, 이 두가지 입장이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2]

이런 사회역사적 배경이 그가 푸투라라는 서체를 만드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임은 그가 처음 스케치를 시작한 1924년 여름의 초기 버젼에서 매우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후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작품에서는 느끼기 힘든 블랙레터의 딱딱하고 우둔한 느낌이 강하게 살아있다. [3] 좀 더 자세한 것은 아래의 '푸투라의 종류와 변형 활자체들' 항목을 참조해 주기 바란다.

2.2 모더니즘의 부상

당시는 바우하우스 등 모더니즘과 산업예술을 기치로 한 수많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파울 레너는 바우하우스 운동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많은 용어를 공유했으며 이는 그가 바우하우스와 사상적으로 많은 부분 공감대를 형성했었던 것을 보여준다. 그의 바우하우스 디자인과 모더니즘에 대한 관심은 기하학적 서체를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바우하우스의 모듈 서체와 같이 푸투라도 기하학적인 성격이 강하다.)

3 본문 서체로서의 푸투라

레너는 위의 논쟁에서 알 수 있듯이 본문 서체에 가까운 활자체들을 만드려고 했으나 그 특유의 임팩트있는 모습때문에 본문 서체보다는 디스플레이 서체로 애용되는 측면이 있다. (본문 서체로 조판하면 기하학적 형상을 염두에 둔지라, 아무래도 들쭉날쭉해서 읽기가 힘들다. 푸투라의 느낌을 살리면서 읽기도 좋게 조판하는 방법은 자간이나 행간 등을 최적화하거나, 아브니어같은 비슷한 느낌의 타입페이스로 대체하는 방법 뿐이다)

4 디스플레이 서체로서의 푸투라

푸투라는 웨이트가 올라갈 수록 상당한 임팩트가 있는 서체이므로, 볼드는 디스플레이 서체로 매우 애용되었다. (폴아웃 시리즈의 그 굵은 서체가 바로 푸투라 볼드이다.) 또한 차후 발매된 푸투라로 푸투라 블랙이 있는데 이는 완전히 디스플레이용 서체로 개발된 물건으로, 바우어 주조소에서 독자적으로 디자인된 레너의 서체를 상업적인 이유로 푸투라로 개명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5 푸투라의 종류와 변형 활자체들

푸투라는 상당히 유행이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원래의 푸투라 자족에는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레너가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상업적 목적으로 푸투라의 이름이 붙은 작품들이 있다. 변형체인 Steile Futura도 존재하지만 이것이 레너에 의해 직접 디자인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4]

Architype Renner 위키피디아 항목 - 파울 레너의 첫 스케치를 바탕으로 후대에 만들어진 변형 활자체이다.
Tasse 위키피디아 항목 - Steile Futura를 후대에 리바이벌한 서체로 재현도는 높으나 이탤릭이 빠졌다는 부분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6 후대의 평가와 영향

푸투라는 2차대전 전후 유럽 타이포그래피의 중심이 스위스로 옮겨가고 헬베티카위니베르 등의 서체가 대유행하면서, 그 인기가 약간 사그라들며 디자인의 역사 뒤로 묻히는 듯 했다. 하지만 2010년 80년대의 그래픽 디자인계의 레트로 열풍과 함께 점진적으로 다시 부상해 현재는 상당한 유행을 이루고 있다.

아드리안 프루티거의 80년대 후반 개발된 서체 아브니어[5]와 수많은 리바이벌 디지털 서체들 등은 푸투라에 대한 후대의 인기를 잘 보여주는 서체라고 볼 수 있다.

7 여담

개인용 컴퓨터에서는 유일하게 OS X이 기본 서체로 Futura를 탑재하고 있다. 로마자 산세리프 서체만 근 열개 가까이 올려줘서 뭘 써야할지 1도 모르겠는 상황

  1. 사실 이유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새 활자체 (프락투어)를 만들게 지시하여 프레스 인쇄술을 독일어 문화권에 널리 보급한 데에 어느정도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왜 19세기 이전까지 블랙레터체가 독일어 문화권의 절대적인 표준으로 사용되었는지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2. 히틀러의 경우 노골적으로 독일이 블랙레터체를 사용하는 것을 싫어해 1920년대의 의회 연설에서 이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이런 점이 1941년의 '슈바바허체는 유대인의 글자이므로 사용을 금지하며 앞으로 표준은 안티크바체가 된다' 라는 요지의 공문 살포로 이어진다. 님이 싫으면 다 유대인 꺼임?!
  3. 하지만 그가 블랙레터체를 현대적으로 전승하려는 시도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블랙레터체가 더이상 사용될 이후가 없다며 블랙레터체의 사용을 비판하는 글들과 출판물들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는 로먼도 블랙레터도 아닌 현대적인 서체 즉 제 3의 시도를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4. 위키피디아에서는 레너가 디자인했다고 나와있으나 출처가 불분명.
  5. Avenir, 프랑스어로 '미래'라는 뜻으로 푸투라와 같은 뜻. 물론 푸투라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서체는 아니지만, 프루티거는 푸투라를 어느정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