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살비아티

Francesco Salviati
(1443 ~ 1478. 4. 26)

피사의 대주교로 이몰라 땅을 두고 메디치 가문과 교황 식스투스 4세가 대립할 때 피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지만 메디치 가문이 토스카나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하며, 피렌체의 대주교 자리를 노려 1477년 초에 로마에서 지롤라모 리아리오, 프란체스코 데 파찌 등과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를 죽이려는 쿠데타를 공모했다.

프란체스코 데 파찌가 교황 식스투스 4세와 그 조카인 지롤라모에게 고용된 장군 지안 바티스타 다 몬테세코에게 접근해 교황의 동의를 얻는다면 공모를 따르겠다는 대답을 받자 지롤라모, 몬테세코와 함께 교황 식스투스 4세에게 방문해 동의를 얻어 몬테세코를 공모에 가담시켰다.

자코포 디 메세르 안드레아 데 파찌도 가담시키기 위해 지롤라모와 함께 몬테세코를 통해 서신을 보냈으며, 이 서신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교황과의 면담 얘기로 자코포도 가담하게 된다. 암살 계획을 정해 시도했지만 자꾸 계획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면서 1478년 4월 26일에 로렌초와 동생인 줄리아노 디 피에로 데 메디치를 암살하기로 한다.

계획 당일에 나머지 인원들이 로렌초와 줄리아노를 암살하기 위해 성당에 있을 때 추기경 라파엘레 리아리오가 로렌초와 함께 성당으로 향하는데, 도중에 만났지만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성당에서 살해가 거행되면 자코포 디 포지오 브라치올리니와 수행원으로 위장한 페루자 출신의 용병들을 이끌고 시뇨리아 궁으로 행군해 정부를 장악하면서 저항하는 프리오리(유력 시민 중에서 선출된 시 행정관들)를 모두 죽이기로 한 계획에 따라 시뇨리아 궁으로 향했다.

시뇨리아 궁에 교황으로부터 급한 소식이 있다고 곤팔로니에레(집정관) 페트루치에게 알려 영접실로 들어갔으며, 페루자 출신의 용병인 수행원들은 사무실로 인도되어 들어가면서 문이 닫히게 된다. 그런데 페트루치가 식사를 마치고 오면서 영접하러 오는데, 그 사이에 긴장해 떨고 있다가 페트루치가 오자 교황의 급전에 대해 횡설수설 전하면서 때때로 문을 쳐다봤다.

페트루치가 이야기를 듣다가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겨 경비대를 부르자 살비아티는 문 밖으로 뛰쳐나가면서 때가 되었다고 소리치면서 자기 수행원들을 불렀지만 페트루치는 예전부터 곤팔로니에레로 선출될 때 안에서는 열 수 없는 특별 장치가 된 방들을 궁 안에 준비해둬 살비아티와 떨어진 수행원들은 사무실의 문에 갇혀서 살비아티를 도우러 갈 수 없었다.

복도 바깥에 있던 브라치올리니가 도우러 왔지만 도리어 제압당했으며, 페트루치가 프리올리를 시켜 돌진한데다가 무장한 50명 가량의 메디치 가문의 추종자들이 시뇨리아 궁으로 들어와 프리오리들과 협공하자 붙잡히면서 사람들이 목에 밧줄을 매달아 한 쪽 끝은 가로대에 붙들어 맨 채 창문에서 몸이 내던져졌으며, 프란체스코 데 파찌의 옆에서 살라 데이 두에첸토의 창문에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당시 광장에 나왔던 안젤로 폴리지아노의 기록에 따르면 살비아티는 밧줄 아래에서 신음하면서 눈을 희번덕거리며 프렌체스코 데 파치의 벌거벗은 몸뚱아리를 깨물었다고 한다.

어쌔신 크리드에서의 프란체스코 살비아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