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escape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의 캠페인 세팅.
D&D의 캠페인 세팅은 대개 '주물질계'에서 모험이 펼쳐지는데, 이 플레인스케이프는 주물질계가 아닌 다른 플레인에서의 모험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즉, 천국, 지옥 등의 판타지적 이세계에서의 모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캠페인 세팅이다.
스펠잼머에서 D&D의 세계를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기반으로 한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았다면, 플레인스케이프는 다양한 차원계들로 D&D의 우주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스펠잼머는 종교계의 태클 때문에 오리지널 D&D 우주관을 무시하고 잠시 외도한 것이지만 플레인스케이프 쪽은 80년대에 확립된 D&D 오리지널에 가깝다. 그래도 사실 플레인스케이프(1994) 설정과 옛 매뉴얼 오브 더 플레인즈(1987) 책의 설정도 좀 다른 구석이 있긴 하다.
다양한 차원들로 전 우주와 차원이 구성된다는 개념을 그레이트 휠(Great Wheel)이라고 부르는데
- 중앙의 주 물질계(Prime Material Plane)을 둘러싸고
- 각종 원소력과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이너 플레인(Inner Plane)
- 물질계를 둘러싸고 있고 안개같은 에테르로 이루어진 에테리얼 플레인(Etherial Plane)
- 생각과 관념, 정신의 세계이며 죽은 자의 영혼이 일차적으로 가게 되는 아스트랄 플레인 (Astral Plane)
- 신과 악마, 천사 등의 존재가 거주하고 (환생하지 않은 경우) 죽은 자의 영혼이 도달하는 아우터 플레인(Outer Plane)
이러한 차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각 차원에는 하위의 차원이 별도로 있는데 이너 플레인에는 불의 엘리멘탈 차원, 물의 엘리멘탈 차원 등등이, 아우터 플레인에는 각각의 신들의 차원이나 가치관에 따른 차원, 여러가지 지옥과 천국들이 존재한다.
- 그림자의 차원(Plane of Shadow)는 3rd 들어와서 Manual of the Planes에 들어와서 추가된 차원이다. 사실 이전에도 그림자의 준차원이니 뭐니 그런 것은 있었지만 전이계(Transitive Plane) 중 하나로 들어온건 대단히 최근.
원래 차원학 책에서는 물질계도 여러개가 있다고 했는데, 플레인스케이프나 몇몇 세팅에서는 물질계는 단 하나이며 차원의 중심지라고 설정하고 있어서 조금 달라보일지는 모르나 사실, 하나의 주물질계 안에 우주공간이 있고 여러 천체들이 있어서, 그 안에 그레이호크의 오어스, 포릴/카라투어/알카딤/마즈티카의 토릴 등의 행성이 모두 존재하는 것이다. 스펠재머의 재머쉽을 통한 우주여행을 통하면 레이븐로프트(애초에 모든 우주와 연결되어있다)와 다크 선(차원적으로 막혀있다)을 제외하고 거의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다.
플레인스케이프는 이중에서 아우터 플레인의 여러 차원들 간의 가장 중심점인 아웃랜드에 세워진 도시 '시길'(Sigil)을 주 배경으로 하는데, 레이디 오브 페인이라는 강력하고 신적인 존재가 지배하고 있다. 레이디 오브 페인은 시길 안에서는 절대적인 존재지만 시길 밖으로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나가지 못하는건지 나가지 않는 건지는 모름) 정말 신성을 가진 존재인지는 알수 없다. 일단 시길 거주자들은 그녀를 신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는 상황.
레이디는 시길의 균형을 유지할 뿐 시길 거주자들을 통치하지 않는 중립적 존재다 - 물론 그녀의 앞에서 얼쩡거리다가는 단숨에 존재가 지워지거나[1] 미로에 갇히게 되지만.
시길 자체는 아웃랜드 중심부에 세워진 무한대 높이의 뾰죽탑의 꼭대기에 세워진 도시라고 하는데, 사실 아웃랜드 같은 관념적인 차원에서 중심점이란 개념은 있을 수 없고, 무한대 높이라는 것도 그 끝이 없다는 것이니 시길은 물리적인 고정점이나 위치가 없다. 그래서 시길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쳐들어올 수 없는 가장 안전한 요새이자, 자기 마음대로는 절대 나갈 수 없는 가장 단단한 감옥인 셈. 웃기게도 아웃랜드에 들어서면 무한대의 첨탑과 그 끝에 고리처럼 형성돼있는 시길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시길에는 D&D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포탈이란 것이 존재하는데, 포탈은 다른 어떤 차원의 입구나 출구, 경계선이라고 할만한 어떤 곳(문이나 아치나 다리라든가 기타등등)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고 또는 시길의 어느 지점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시길은 물리적으로 위치를 가늠할 수도 없을 뿐더러 다른 모든 차원과 연결돼있으면서, 동시에 한곳에 영구적으로 연결되어있지도 않다.
시길의 거주자들은 아주 다양한 차원에서 온 존재들이며 대부분 외차원의 존재들이지만 머무는 자도 오고가는 자도 수없이 많으며 가끔 무지한 물질계의 존재가 나타나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이런 시길의 거주자나 방문자를 플레이한다.
시길에는 여러가지 팩션이 존재하는데, 팩션은 일종의 신앙이나 믿음, 관념에 대한 추종을 기반으로 한 조직이고 시길의 실질적인 관료체계나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시길 존재하는 총 15개 당파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 Athar: 신은 강력한 존재이지만 숭배받을 만큼 신성한 존재가 아니라고 신을 부정하며, 신의 힘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아웃랜드로 달아난 자들. 현실의 무신론자.
- Believers of the Source: 매번의 생애는 시련이며, 이런 시련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신적인 존재로 거듭난다고 믿는 자들. 즉 윤회론자. 불교나 힌두교에서 이미지를 가져왔다.(갓즈멘)
- Bleak Cabal: 물질적인 법칙은 있어도 정신적인 법칙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어떤 신앙이나 믿음도 거부하는 자들. 니힐리스트.
- Doomguard: 파괴와 엔트로피가 반드시 필요하며 파괴를 통해 균형을 맞추어야 완전함을 이룰수 있다고 믿는다. 종말을 통한 신세계를 이룩한다고 믿는 개념.
- Dustmen: 삶도 죽음도 거짓된 현상일 뿐이며, 모든 것의 끝에 진정한 죽음(True Death)이 존재하여 모든 오욕칠정을 거부하는 것만이 그 진정한 상태로 도달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믿음에 걸맞게 시길의 장례 업무를 전담한다.
- Fated: 힘을 가진 자는 원하는대로 행할 권리가 있으며 고로 지킬 수 없는 것을 가진 자에게 빼앗는 것도 당연하다고 믿는 자들.
- Fraternity of Order: 지식이 곧 힘이며, 자연의 법칙과 사회의 규칙을 익히고 지배하는 자들.[2]
- Free League: 다른 팩션의 독단주의와 교조주의를 거부한 자들. 엄밀히 말해 조직이 갖춰진 팩션은 아니다. 현실의 자유주의자, 자유 의지론자. 흔히 프리 리그라고 하면 팩션 나누기에 싫증이 났거나 별 신경 안쓰는 이들을 의미.
- Harmonium: 평화와 안정은 일관된 지도에 따르는 것에서만 올 수 있으며, 그 일관된 지도는 자신들의 것에 따르는 것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 [3]
- Mercykillers: 정의와 징벌을 극단적으로 지지하고, 자비를 베푸는 것은 정의를 포기하는 행동이니 자비로운 행동 역시 죽여야 한다고 믿는 자들. Mercykiller는 무자비하게 죽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나 타인의) 자비를 죽였다라는 의미에 가깝다.[4]
- Revolutionary League: 사회 질서 같은 인간이 만든 것은 애초부터 오염된 것이니 질서는 파괴해야 하며 다른 것으로 대체해서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무정부주의자.
- Sign of One: 현상의 중심은 자기 자신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이니, 상상을 통해 현실도 왜곡하고 변경시킬 수 있다고 믿는 자들. 유아론자, 자기중심주의자와 유사.
- Society of Sensation: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피하지 않고 느끼는 것으로 개화의 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 부유한 신도들이 많은 만큼 평상시에는 향락을 즐기는 모습이지만, 진정한 신도들은 고통 역시 경험으로 여기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본 가르침.
- Transcendent Order: 차원계의 운율에 자신을 동조하고 순수한 본능과 본질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으로 고차원적인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 자들.
- Xaositects: 오로지 진실은 혼돈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믿고 어리석은 행동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믿어 세속의 통상적인 도덕률을 완전히 무시하는 자들.
이 열 다섯 팩션들은 각자 시길의 특정 구역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으며, 시길에서 어떤 행동을 할때마다 팩션의 자들과 관련되거나 그들의 사상 철학과 대립하게 된다.
AD&D2nd 말기에 레이디 오브 페인이 팩션워- 말그대로 당파싸움이라는 이벤트의 끝에 대다수의 팩션을 시길밖으로 내쫒았기 때문에 AD&D 말기와 3.0 이후에는 시길에서 이런거 알아봤자 하등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이제는 과거의 유산들. 물론 여전히 AD&D식의 팩션에 따른 놀이를 할 수 있다. 그저 당파의 핵심들이 다른 차원으로 옮겨졌을 뿐. 예를 들어 Xaositects는 Limbo의 기스제라이들의 도시에 세들어(?) 살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플레인스케이프를 시길 중심으로 플레이를 하는 경우 일종의 사상 철학적인 배경을 지닌 도시 어드벤처형 캠페인이 되고, 여러 차원계의 정보가 나와있는 자료를 이용해 여러 차원계를 이동하면서 여행하거나 사건을 진행하는 경우 차원 이동 로드 어드벤쳐형 캠페인이 된다. 외차원계의 악마와 천사의 싸움에 끼여든다거나…
플레인스케이프는 침침한 분위기라든가 관념적인 차원계 이야기라든가 대중적인 호감을 사기에는 좀 그런 구석이 많아서 그다지 인기는 없는 컬트적인 세계관인데, 의외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바로 전설적인 PC게임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덕분일 것이다. 플레인스케이프에 등장하는 세계들을 배경으로 해서 이름없는 자의 여행을 그린 작품인데 워낙 완성도 높은 게임이다보니 호평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