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야퐁 피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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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피야퐁 피우온
(ปิยะพงษ์ ผิวอ่อน/Piyapong Pue-on)
생년월일1959년 11월 14일
국적태국
출신지프라추압키리칸
신체 조건178cm
포지션스트라이커
소속팀타이 왕실 공군 FC(1979 - 1984)
럭키금성 황소(1984 - 1986)
파항 FA(1986 - 1989)
타이 왕실 공군 FC(1989 - 1997)
국가대표129경기 103골(비공식)
33경기 15골(공식)

1 소개

태국의 전 축구 선수이며 현 지도자이다. 태국에서 가장 성공한 축구 선수로, 태국 축구의 영웅이다. 포항의 자심, 라데 보그다노비치, 울산의 제파로프와 더불어 K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아시아 용병 선수이기도 하다.

2 클럽

럭키금성의 창단 멤버로 1984년 5월 31일 정식으로 입단을 완료하고 1984 시즌 9월 8일 포항제철 돌핀스와경기부터 출장하여 1986 시즌까지 K리그에서 뛰었다. 원래는 2년 계약이었지만 1986년 6월 1일 계약을 연장하였다. 1985년 럭키금성의 첫 번째 K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개인적으로는 그 해 득점상과 도움상을 최초로 동시 수상한 선수가 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마쳤다. 덧붙여 피아퐁을 스카우트했던 럭키금성의 모기업인 럭키금성 그룹 또한 태국에서 피아퐁의 인기 후광에 힘입어 방콕 최대 백화점인 소보 백화점의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수주를 따내기도 했다.

3 국가대표

1983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아시아 예선에서 피아퐁은 17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올랐다. 특히 북한과의 경기에서 진가를 보여줬는데, 이때 한국사람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1983년 세계 청소년 축구를 앞두고 태국에서 국제 청소년 대회가 열렸는데, 대한민국과 태국이 결승에서 만났다. 당시 한국은 신연호, 김종부를 주축으로 한 멕시코 4강 멤버였는데 이 경기에서 피아퐁이 이끄는 태국에 엄청난 고전을 하고 겨우겨우 이겼다. 이 덕에 피아퐁의 이름은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 확실히 각인되었다.

1984년 LA 올림픽 예선때, 박종환 감독이 83년 맥시코 4강 주역들을 그대로 이끌고 나갔다가 첫 경기 태국전에서 역전골을 얻어맞으면서 태국에게 패했다. 천신만고 끝에 2차 예선에 올라갔지만 결국 사우디에 패하여 탈락하였다[1].
이 대회에서 주목을 받은 피아퐁은 이후 럭키금성에 입단한다. 루머에 따르면 분데스리가의 FC 쾰른이 그를 영입할 의사도 있었다고.
1986년 태국으로 돌아간 직후 피아퐁은 메르데카컵에 출전하여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한 상무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고 상무를 탈락시켰다.

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129경기를 뛰었고, 1997년 3월 2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대한민국과 경기에도 출전했다. 이때 그의 나이가 38세... 전반에 노상래의 선취골로 1:0으로 뒤진 상황에서 후반에 교체되고 3분 만에 동점골을 넣었다! 하지만 이후 하석주최문식의 연속골을 맞고 한국에게 패했다.

4 은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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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모습

현재 타이 공군 대위의 신분으로 타이 왕실 공군 FC의 감독과 타이 U-18 국가대표팀 코치를 겸하는 중.

2007년 K리그 득점왕의 모임인 황금발 클럽의 초청으로 21년 만에 은퇴한 외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초청되어 대한민국을 방문하였으며 친정팀의 후신인 FC 서울의 홈경기 행사에도 참석하였다.

그의 아들인 뽕삐숫 피우온 또한 축구 선수로 활동하였으며 2004년 국내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고 K리그 진출을 모색하기도 하였으나 뽕삐숫은 이후 부상으로 축구 선수의 꿈을 접고 태국에서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다.

2010년 10월 13일 아들과 함께 FC 서울의 훈련장인 GS챔피언스파크를 방문하여 당시 넬로 빙가다 감독 및 선수들과 상견례를 갖고 훈련 시설을 둘러보며 친정팀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5 여담

실력도 좋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모범이 될 정도로 언행도 바르다.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할때만 해도 한국말을 유창하게 했으나, 태국으로 돌아가고 나서는 거의 다 까먹었다고.

2007년 방한에서 회고하길,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할 당시에는 '숙소'라는 말만 들어도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강한 훈련을 견뎌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 경험은 태국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당시 럭키금성 감독이던 박세학 감독을 '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존경하고 있다.
  1. 이 경기는 매우 악명높은 편파판정 경기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