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주요 축구리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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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클래식 | V.리그 | 최상급축구련맹전 | 사우디 프로페셔널리그 | 아라비안 걸프 리그 | 우즈벡 프로리그 | 이란 프로리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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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슈퍼 리그 | J1리그 | 중국 슈퍼 리그 | 카타르 스타즈 리그 | 태국 프리미어 리그 | A-리그 |
대한민국 4대 프로 스포츠 | |||
농구 | 배구 | 야구 | 축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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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 V-리그 | KBO 리그 | K리그 |
대한민국의 축구 리그 | ||
구분 | 명칭 | |
프로 | 1군 | K리그 1부 - K리그 클래식 2부 - K리그 챌린지 |
2군 | R리그 A조 / B조 | |
실업 | 3부 - 내셔널리그 | |
아마추어 | K3리그 4부 - K3리그 어드밴스 5부 - K3리그 베이직 | |
대학 | U리그 | |
혼합 | 대한축구협회 FA컵 | |
유소년 | 고등 | 전국 고등 축구리그 K리그 주니어 / 지역리그 |
중등 | 전국 중등 축구리그 | |
초등 | 전국 초등 축구리그 | |
유소년 클럽 리그 | ||
여자부 | WK리그 |
K리그 | ||
정식 명칭 | K리그 | |
영문 명칭 | K League | |
창설 연도 | 1983년 (K리그 클래식) 2013년 (K리그 챌린지) | |
연맹 총재 | 권오갑 | |
리그 구성 | 1부 리그 K리그 클래식 2부 리그 K리그 챌린지[1] | |
리그 주관 | 한국프로축구연맹 | |
참가 팀 수 | 23개 팀 | |
홈페이지 | | width=20]] | width=20]] | width=20]] | width=20]] | > |
목차
1 개요
한국 축구의 힘[2]
대한민국의 프로축구 리그, 대한민국 축구의 뿌리.
2개 디비전으로 이루어진 리그로서 1부 리그는 'K리그 클래식', 2부 리그는 'K리그 챌린지'이다. 즉 K리그라는 명칭은 대한민국의 프로 축구 리그 전체를 통칭하는 명칭이다. 1983년 창설된 '슈퍼리그(창설 당시에는 수퍼리그라고 했다. 현재 외래어표기법 기준으로는 잘못된 표기)'를 기원으로 한다.[3] 처음 시작이 허술하긴 했지만, 프로 축구 리그의 출범으로 인해 한국 축구가 한층 발전하게 되었고, 이후 월드컵 본선 진출(1986년 부터 현재까지)에 성공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4]
현재까지 국제축구연맹이나 타 공신력 있는 기관이 공식적으로 각 나라의 프로 리그를 랭킹화 시킨 자료는 없고 수많은 변수로 인해 랭킹화 시키기 또한 어렵지만 각 리그에 속한 클럽들이 각자의 대륙대회에서 거둔 성적을 바탕으로 집계한 포인트를 놓고 비교했을 때 꾸준히 20위 권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 J리그와 중국의 슈퍼리그 등 K리그와 아시아 내에서 경쟁하는 타 리그들이 30위~50위 권에 위치하는 것에 비해 상당히 고무적이다.
또한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중 23개 구단으로 가장 많은 구단이 참여하는 리그이기도 하다.[5] 야구나 농구 하는 지역에서 축구 안 하는 곳은 없을 정도.[6]
1.1 명칭에 대해서
K리그의 K는 물론 Korea(n)를 의미하는 것. 'K리그' 명칭이 한국 프로 축구 리그의 공식적인 네이밍으로 채택된 것은 1998년부터였는데, 이는 일본 리그가 J리그란 이름으로 출범한 1993년 이후였기 때문에 "J리그를 따라했다"라는 식으로 비판을 받곤 한다.
단순히 K리그라는 명칭이 만들어진 것이 J리그 명칭의 모방에 불과한가, 하면 그건 아니다. J리그라는 이름은 일본 리그 시스템의 최상부 디비전에 대한 공식명칭이 아니다. 이 공식명칭은 日本プロサッカーリーグ(Japan Professional Football League)이고 Jリーグ(J League)는 어디까지나 이에 대한 약칭이다. 이러한 정의는 J리그 출범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물론 "J리그를 따라했다는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인가?" 라고 한다면 아래의 내용을 보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렇다면 K리그로 줄여지기 전에 한국 리그의 공식 명칭은 무엇이었나? 바로 "코리안 리그(Korean League)"였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대략 1995~6년)부터 한국 리그 이름을 연맹에서 공식으로 정한 코리안 리그나 프로 축구 대회가 아닌 K리그라고 하는 기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7] 이는 J리그의 영향이겠지만 한편으로 코리안 리그에 대한 약칭으로 볼 수도 있으므로 한국 리그의 전통과 무관하게 돌출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통칭에 불과했던 이 이름을 받아들여 1998년에 '98 현대컵 K-리그[8]라는 이름으로 리그를 치른 것이다. 그리고 이후 한국 리그 이름은 K리그도 공식 명칭으로 굳어지게 됐다. K리그가 "기존의 코리안 리그를 대체한 것"이라든가 "코리안 리그라는 공식 명칭을 유지하되 약칭은 K리그로 정한다."는 일체의 설명도 없었다. 그렇기에 팬들에게 코리안 리그와 K리그라는 명칭이 공존하다가 2003년도 이후로 K리그라는 명칭이 정착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K리그라는 명칭이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부 올드팬[9]들은 옛날 명칭인 '코리안 리그'로 쓰자는 의견들이 종종 나오며 연맹에서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아 아직까지 이러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전까지는 'K-리그'가 정식 표기였으나 2010년부터 한글 표기 시에는 'K리그'라고 쓰는 것으로 연맹에서 방침을 정했다.
그리고 2013 시즌부터 승강제가 도입되면서 1부 리그를 K리그 클래식 2부 리그는 K리그로 명칭이 정해졌었다.[10] 그러나 2부 리그 명칭이 혼란을 준다는 지적을 연맹에서 받아들여 개막전 전까지 2부 리그 명칭을 다시 개명하겠다고 발표했다.[11]
그리고 2013년 3월 11일, 1부 리그 명칭은 K리그 클래식 2부 리그 명칭이 K리그 챌린지로 결정되었다. 대신 기존의 구단 U-18 클럽 리그인 챌린지 리그는 2014년에 다른 명칭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팬들의 투표 결과 챌린지 리그는 K리그 주니어로 결정되었다.
2 참가 구단의 변동
1983년에 리그가 창설될 때 프로 팀 2개(유공, 할렐루야)와 실업 팀 3개(대우, 포항제철, 국민은행)를 묶어서 5개 팀으로 시작[12]해서 꾸준히 신생팀의 참가가 이어져 2012년도까지 16개 팀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2개 디비전 체제로 2014 시즌부터 1부 리그에 12팀, 2부 리그에 10~12팀 체제로 가게 된다.[13] 특히 2002년 월드컵 이후로 5개 팀(상주 상무를 포함하면 6개)이 새로 창단되어 급속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이들 전부가 지자체구단으로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시민구단#s3.1.2 문서 참조.
대전 시티즌이 창단하기 전까지는 10개 팀이 안 되면 FIFA에서 정식 프로 리그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신빙성 있게 돌았으나, 사실이 아니다. FIFA에서는 각국의 리그 운영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도 이를 믿는 사람들이 많은지 대한축구협회에서도 홈페이지의 FAQ에 이 부분을 넣었다.
3 소속 구단
4 상금 규모
'리그 | 분류 | 부문 | 상금 | 비고 |
K리그 클래식 2016 | 단체상 | 우승 | 5억 원 | ' |
준우승 | 2억 원 | ' | ||
페어 플레이 | 1000만 원 | 벌점이 가장 낮은 팀에게 수여 | ||
개인상 | 득점왕 | 500만 원 | [15] | |
도움왕 | 300만 원 | |||
K리그 챌린지 2016 | 단체상 | 우승 | 1억 원 | ' |
개인상 | 득점왕 | 300만 원 | [16] | |
도움왕 | 150만 원 |
2011 시즌까지 K리그 우승 상금은 3억 원이었으나 2012 시즌부터 5억 원으로 67% 인상되었다. 준우승 상금도 1억 5천만 원에서 2억 원으로 인상되었다. 이것은 2006 시즌에 2억 원에서 3억 원으로 인상되고 난 후 6년 만의 인상이다. 참고로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 상금은 3억원이다.
옆나라 일본의 J리그의 우승상금은 2016 시즌까지 1억 엔 (한화 약 10억 7천만 원)으로 이미 K리그 클래식 우승 상금과 2배 이상의 차이가 있었으나 2017 시즌부터는 10배 인상하여 J리그 챔피언 결정전 우승팀에게 10억 엔의 우승 상금이 주어질 것이라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최근 영국 기업과의 중계권 협상에서 10년간 2조 5천억 원이 넘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비록 리그 예산 규모에서 J리그에 막대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고는 하나,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J리그와의 리그 경쟁력에서 더욱 열세를 보일 것이라는 점은 불보듯 뻔하다.
덧붙여 중동의 석유머니, 중국의 축구굴기가 한창 기승인 이적시장에서 현실적으로 K리그 클래식의 우승 상금만 놓고 보자면 크게 메리트 있는 액수는 아니다. 더군다나 5억 원의 우승 상금은 승강제를 구축하면서 2016 시즌까지 강등팀에게 5억 원씩 지원하기로 하면서 강등팀하고 우승팀이 받는 돈이 어떻게 같을 수 있냐며 까인 적이 있을 정도.
대륙컵인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는 2016 시즌부터 우승 상금이 2배로 뛰어 올라 종전의 150만 달러에서 2배가 오른 300만 달러(약 36억 원)를 우승팀에게 수여하기로 하였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리그 3위 수성만 가능하다면 K리그 클래식보단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올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5 우승 트로피
300px | |
K리그 클래식 우승 트로피 | K리그 챌린지 우승 트로피 |
그동안의 K리그의 우승컵들은 동네 체육사에서 파는 저가에 급조된 느낌의 우승컵들이었고 그나마도 거의 매년 바뀌어서 우승컵의 위엄과 전통을 나타낼 수 없었다. 2006, 2007 시즌 우승컵 그러나 2008년, K리그 25주년을 맞아 리그의 정통성과 통일성을 확립하기 위해 2007년부터 1년여에 걸친 기획 끝에 현재의 우승 트로피가 완성되었다. 재질은 24K 도금에 높이 50cm, 무게 7kg으로 되어있다.
2013 시즌, K리그가 K리그 클래식으로 개편되고 기존 K리그를 계승하기에 우승 트로피를 그대로 사용한다.
시즌 우승팀은 우승트로피 하단에 우승 시즌, 클럽명이 새겨지며 1년간 보관, 관리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 다음 시즌 우승팀이 결정되면 진품은 반납하고 동일한 크기의 황동 복제 우승 트로피가 주어진다. 연속 우승의 경우에는 진품 반납을 하지 않고 전시즌 우승에 대한 복제 우승트로피를 또 수여받는다. 우승 트로피가 바뀐 뒤 첫 시즌이었던 2008 시즌 새 우승컵의 주인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였으며, 2015 시즌 전북 현대 모터스가 드디어 K리그 클래식 2연패를 달성하였다.
2012년 승강제의 시행으로 2013년부터 K리그가 1부와 2부로 나뉘게 되자 우승 트로피 또한 관심 대상이 되었다. 1부 리그인 K리그 클래식은 승강제 도입 전의 K리그를 그대로 승계한 관계로 기존의 우승 트로피를 그대로 쓰고,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는 우승 트로피를 새로 만들었다. 우승팀이 승격하게 되는 리그의 특성상 챌린지의 우승팀은 공식적으로 위너라고 부른다.
6 패치
파일:/image/413/2013/02/14/SK002 20130214 580501 59 20130214151225.jpg | ||
2013 시즌 패치 | ||
200px | 200px | 200px |
2014 시즌 패치 | ||
2015~2016 시즌 패치[17] |
한국프로축구연맹 주관 대회에 참가한 모든 팀이 동일한 자격을 갖췄음을 상징하는 리그 고유의 상징물로서, 선수 유니폼 소매 상단 부분에 K리그 패치를 부착한다. www.spomon.com에서 공식적으로 제작/판매하고 있다.
황금색 패치는 클래식 전 시즌 우승팀이 사용하는 패치로 우승한 다음 시즌 1년 동안 계속 사용하게 되며 챌린지 우승팀에게 따로 수여되는 패치는 없다.
7 공인구
[18]
2012 시즌부터 아디다스 국제 공인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2019년까지 계약이 되어있는 상태라 그 때까지는 J리그, 분데스리가, 리그앙, MLS, UEFA 유로파 리그 등에서 사용하는 공과 같은 것을 쓴다.
8 시즌별 일람
9 리그 연혁
9.1 역대 K리그 클래식 우승팀
우승횟수 | ||||
팀 | 우승 | 준우승 | 우승 연도 | 준우승 연도 |
성남 FC | 7회 | 3회 | 1993, 1994, 1995, 2001, 2002, 2003, 2006 | 1992, 2007, 2009 |
FC 서울 | 5회 | 5회 | 1985, 1990, 2000, 2010, 2012 | 1986, 1989, 1993, 2001, 2008 |
포항 스틸러스 | 5회 | 4회 | 1986, 1988, 1992, 2007, 2013 | 1985, 1987, 1995, 2004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4회 | 4회 | 1998, 1999, 2004, 2008 | 1996, 2006, 2014, 2015 |
부산 아이파크 | 4회 | 3회 | 1984, 1987, 1991, 1997 | 1983, 1990, 1999 |
전북 현대 모터스 | 4회 | 1회 | 2009, 2011, 2014, 2015 | 2012 |
울산 현대 | 2회 | 7회 | 1996, 2005 | 1988, 1991, 1998, 2002, 2003, 2011, 2013 |
제주 유나이티드 | 1회 | 4회 | 1989 | 1984, 1994, 2000, 2010 |
할렐루야 독수리 | 1회 | - | 1983 | - |
전남 드래곤즈 | - | 1회 | - | 1997 |
인천 유나이티드 | - | 1회 | - | 2005 |
9.2 역대 K리그 챌린지 우승팀
연도 | 우승팀 | 준우승팀 | 리그방식 |
2013 | 상주 상무 | 경찰 축구단 | 단일 리그 |
2014 | 대전 시티즌 | 광주 FC | |
2015 | 상주 상무 | 수원 FC | |
2016 | 안산 무궁화 FC | 대구 FC |
우승횟수 | ||||
팀 | 우승 | 준우승 | 우승 연도 | 준우승 연도 |
상주 상무 | 2회 | - | 2013, 2015 | - |
대전 시티즌 | 1회 | - | 2014 | - |
안산 무궁화 FC | 1회 | 1회 | 2016 | 2013 |
광주 FC | - | 1회 | - | 2014 |
수원 FC | - | 1회 | - | 2015 |
대구 FC | - | 1뢰 | - | 2016 |
10 역대 개인상
K리그/개인상 문서 참조
11 역대 스폰서
한국 프로 스포츠 중 최초로 타이틀 스폰서 제도를 도입했다. 1994년 '하이트배 코리안리그'가 시초. 컵 대회를 포함하면 1992년 리그컵 스폰서로 참여한 아디다스배 프로 축구 컵 대회까지거슬러 올라간다. 아디다스는 이후 2003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컵 대회 스폰을 담당하게 된다.
년도 | 스폰서 | 리그명 | 금액 |
1994년 | 하이트맥주 | 하이트배 코리안리그 | 4억 |
1995년 | |||
1996년 | 삼성물산 | 라피도컵 프로축구대회 | 추가바람 |
1997년 | |||
1998년 | 현대중공업 | 현대컵 K-리그 | 추가바람 |
1999년 | 현대증권 | 바이코리아컵 K-리그 | 15억 |
2000년 | 삼성전자 | 삼성디지털 K-리그 | 18억 |
2001년 | 포스코 | 포스코 K-리그 | 20억 |
2002년 | 삼성전자 | 삼성 파브 K-리그 | 27억 |
2003년 | 삼성 하우젠 K-리그 | 35억 8천만원 | |
2004년 | 32억 | ||
2005년 | 34억 | ||
2006년 | |||
2007년 | 33억 | ||
2008년 | |||
2009년 | 없음[19][20] | K-리그 | 없음 |
2010년 | 현대자동차 | 쏘나타 K리그 | 23억원 |
2011년 | 현대오일뱅크 | 현대오일뱅크 K리그 | 30억원 |
2012년 | 35억원(추정) | ||
2013년 |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 챌린지 | ||
2014년 | |||
2015년 | |||
2016년 |
11.1 역대 스폰서 엠블럼
1994~1996 스폰서 엠블럼 | ||
250px | 1997 스폰서 엠블럼 | |
250px | 1998 스폰서 엠블럼 | |
250px | 1999 스폰서 엠블럼 | |
2000 스폰서 엠블럼 | ||
250px | 2001 스폰서 엠블럼 | |
250px | 2002 스폰서 엠블럼 | |
2003~2007 스폰서 엠블럼 | ||
2008 스폰서 엠블럼 | ||
250px | 2010 스폰서 엠블럼 | |
2011~2012 스폰서 엠블럼 | ||
2013 스폰서 엠블럼 | ||
230px | 2014 스폰서 엠블럼 | |
230px | 2015 스폰서 엠블럼 | |
230px | 2016 스폰서 엠블럼 |
12 외국인 선수
- 참조 항목 : 외국인 선수/역대 프로축구
프로 리그 창설 시즌인 1983년부터 외국인 선수는 허용되어 있었고 포항제철이 당시 원료 공급사였던 브라질의 Companhia Vale do Rio Doce, (약자로 CVRD) 소속의 세르지오,호세를 임대 영입하면서 K리그의 외국인 선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1984년부터 다른 팀들도 앞다투어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 시작했고 이 외국인 선수들은 K리그 수준 향상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외국인 선수는 기본적으로 3+1명 보유, 3+1명 출전(아시아 쿼터제 포함), 북한 출신 선수는 내국인 선수로 간주, 골키퍼 용병은 금지다. 이유는 신의손(귀화 전에는 사리체프), 샤샤 등 초창기 외국인 골키퍼 용병들이 너무 잘해서. 단, 경기 도중에 골키퍼가 퇴장당해서(...) 외국인 필드 플레이어를 골키퍼로 대신 세우는 것은 허용된다. 또한 3명 이외에 아시아 용병 선수를 한 명 넣을 수 있는 아시아 쿼터제가 도입되었다. 수원의 리웨이펑, 강원의 마사 등 일본, 중국 선수들이 진출하기도 한 상태. 이에 따라 중국에선 편하게 뛰고 돈도 제때 받을 수 있는 K리그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모양...이었으나 CSL의 성장으로 다들 엄청난 몸값 거품이 끼며 중국선수 보기 힘들어졌다. 유럽조차 군소 리그에선 임금 체불이 흔하며 빅 리그에도 경영 파탄으로 돈 못 주는 팀들이 간혹 있다. K리그는 액수는 차이가 있어도 돈을 떼먹진 않는다. 밀리는 경우는 가끔 있어도 전북의 레오나르도 또한 원 소속팀인 POAK의 파산 및 임금체불로 인해 헐값에 전북으로 넘어온 케이스이다.(...) 다만 에이전트가 사기쳐서 용병의 돈을 먹고 나르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호주가 AFC로 들어온 덕분에 2009 시즌을 앞두고 성남에서는 사샤 오그레노브스키, 인천에서는 호주 국가대표인 제이드 노스를 영입하여 아시아 쿼터제의 수혜를 입기도 하였다. 다만 잘 적응해서 성남의 수비라인의 한 축이 된 사샤와는 달리 큰 기대를 안고 입단한 노스는 팀내 적응 문제 등으로 인해 한 시즌만에 유럽 군소 리그로 이적했다. 이후 많은 호주 선수들이 케이리그에 도전했으나 개박살을 연달아 시전했고 그나마 15시즌까지 활약한 전북의 알렉스 윌킨슨과 최근 중국으로 이적한 제주의 알렉스 정도가 활약다운 활약을 펼쳤다. 호주 A리그가 아챔에선 항상 다크호스 노릇을 톡톡히 하지만 개인 기량에서의 차이는 아직까지 극복하기 힘든 차이로 보인다.
역대 한국에서 활약하고 인기를 끈 용병을 꼽자면 피아퐁(럭키금성), 라데(포항), 샤샤, 마니치(마니산), 데니스(이성남), 싸빅(이싸빅), 산드로, 신의손(사리체프), 마토(수원), 에두(수원 전북), 데얀(서울), 아디(서울) 등이 있다.
가끔 알파이 외잘란 같은 먹튀도 많다. 한 때, EPL 블랙번 로버스에서 활약했던 호주의 브렛 에머튼의 경우 부산으로 입단이 확정되고 계약까지 다 하려고 하는 찰나, 본인이 거부를 해버렸다. 이후 8년간 블랙번에서 활약하다가 자국리그인 시드니 FC로 이적하고 2014년에 은퇴했다. 보통 아시아 리그라고 만만히 봤다가 분데스리가에 필적한다고 자부하는 압박에 고전하다가 떠나는 것이 대부분.
2008년에는 FC 서울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와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서 두루 활약한 무삼파를 전격적으로 영입했지만, 2개월 동안 5경기 출전의 초라한 성적만 남긴채 퇴출됐다.
13 더비 매치
K리그/더비 매치 참조.
14 쟁점
K리그/쟁점 항목 참조.
15 올스타전
K리그 올스타전 문서 참조.
16 특색
- 1983년도부터 1986년까지 각 구단들이 연고지 내에서 홈 경기를 가지지 않고 각 도시를 돌아다니며 투어 형식으로 리그를 운영했기 때문에 연고제가 자리잡을 수가 없었다. 1987년부터 광역연고제가 시행되어 각 구단이 유공은 인천/경기, 포철은 대구/경북, 현대는 강원, 럭키금성은 충청 이렇게 자신의 연고지에서 홈 경기를 개최하였으며 그나마 1988년부터 30년 넘게[21] 경상북도 포항시를 지역 연고도 아닌 도시 연고[22]로 가지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가 연고 정착이 잘 된 케이스. 이후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위시하여 대도시보다는 프로야구 연고지와 안 겹치는 중소도시 위주 연고지를 공략하는 틈새전략을 펼쳤으며 기사링크 국내축구 마케팅 현황 및 발전방향 - 월간축구 1998년 12월호 이때 이후 여러 신생팀이 생기고 또 10년 넘게 시간이 흐르면서 서울, 수원, 대전, 전북, 전남 등 연고 개념이 확실히 잡히면서 많은 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 정부 주도 이전의 프로화 움직임때 승강제까지 갖추고 프로화하자는 안건이 진지하게 논의된 적도 있었지만 구단들의 반발과 정부의 개입으로 졸속으로 급하게 프로화 되어[23][24] 2012년까지는 승강제가 없었으며, 해외에서 본다면 상당히 기묘하게 생각될 시스템을 가진 군 소속의 상주 상무와 안산 무궁화 경찰청 축구단이 뛰고 있다. 물론 찾아보면 타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꽤 있긴 하지만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러시아의 CSKA 모스크바와 같은 군팀 출신의 프로팀은 전세계에 고루 존재하나 현재는 어엿한 프로구단이다.
- 한국의 프로스포츠들이 그럿듯이 기업구단들은 대기업이 운영하고 있는데, 이 점에서 기업명이 하나도 안들어간 J리그의 팀들을 예로 들며 K리그를 까는 사람들도 있다. 애초에 외국 팀들은 기업명이 안들어갔다는 주장 자체가 잘못되었으며[25] 게다가 J리그도 이름만 그렇지, 사실은 기업 구단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세계적인 유수 클럽들 중에서도 순수 시민구단은 상당히 드물다. 사람들이 기업이 구단을 운영하는 걸 까는 이유는 아무래도 유럽 대다수의 구단들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설립하거나, 종교적 이유, 또는 노동자들이 모여 스스로 구단을 창설한 경우가 많다는 걸 이제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26] 그리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같은 일부 기업구단들도 기업소유에서 벗어나 독립법인화하여 자체적으로 법인을 설립하여 프로팀을 운영하기 때문에, 일단 법적으로는 기업으로부터 독립해 있는 모습이다. 물론 스폰서라는 명목으로 모기업에서 지원을 해 주지만 이전보다 여러가지 절차가 까다로워진건 사실이다.
- 또한 기업명이 들어간다고 비아냥 되는 일부 축구팬들도 있는데 기업들이 적자덩어리인 축구단을 운영하는 이유가 홍보와 세금감면등의 이유인 것을 생각해볼때 축구판에서 전혀 득될것이 없는 논란거리이다.
기업명 떼자는 사람들은 기업구단들이 시민구단 돼바야 정신 차리지세계적인 추세로도 레드불 그룹과 같은 스포츠 자본 그룹의 활성화로 축구의 기업화가 심화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 K리그의 안좋은 특색으로는 시도민구단같은 지자체구단들이 많은데, 모두 재정난과 낙하산 인사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 경남 FC는 잘 운영되던 시기도 있었고 특히 인천 유나이티드는 흑자를 내서 코스닥 상장까지 노리던 때도 있었지만 지자체장이 바뀌고 구단 윗선이 바뀌자 그대로 맛이 가버린 사례(...)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지속적으로 지자체와 접촉해[27] 시민구단을 늘려나갔으나 이후 시민구단들의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언론들에 노출되면서 일단 정체된 상태다.
- 출범 당시에는, 유럽과 같은 자유계약제도를 채택하였지만 1987년 시즌부터 축구에는 어울리지 않는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되었다. 일명 김종부 법때문인데, 당시 한참 주가를 올리던 김종부를 잡기 위해 현대 구단[28]이 김종부가 재학중인 고려대에 상당한 지원을 했고, 결국 김종부는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학교측 설득으로 현대에 입단하기로 가계약한다. 하지만 김종부는 대우 로얄스행을 원했기 때문에 이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고려대 축구부에서 제명되고 축구협회의 선수등록을 말소당하는 우여곡절 겪는다. 그러나 1986년 월드컵 활약 후 축구협회가 현행 선수등록 규정을 개정해주면서 가까스로 대우에 입단할 길이 트였다. 그러자 격분한 현대 구단이 팀해체 선언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고, 결국 제3의 구단인 포항제철에 입단하기로 타협함으로써 흔히 말하는 김종부 파동은 일단락되었다.
- 결국 이로 인해, K리그에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되고 만다. 그 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개최가 확정되자 K리그에 드래프트 같은 구시대적인 제도의 철폐 여론이 불었고, 결국 2001년 다시 자유계약 제도로 바뀌었다. 그러나 2005년 박주영 파동으로 다시 드래프트제 도입, 2012년 현재까지도 드래프트 제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2013년부터 부분 자유계약제 도입을 시작으로 2016 시즌부터 드래프트가 폐지되었다.
덕분에 서울 이랜드는 상당히 신인선수 수급에 피를 보고 시작했다.
-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인프라가 크게 확충되었고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4개 팀이 새로 창단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체적인 리그 모습을 봐도 2010년 시점에서, 10년전인 2000년의 리그 모습과 지금의 리그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 그러나 단기간에 그러한 발전을 보였음에도 주변의 J리그등과 비교했을 때 아직까지 미흡한 점이 여러가지로 많으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해외축구를 손쉽게 접하게 되면서 정작 K리그의 발전상은 많이 가려진 측면도 없지않아 있다. 한마디로, 빠르게 많이 발전하긴 했는데 사람들 성에 안찬다는 이야기다. 어찌보면 국민들이 옛날보다 눈높이가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 2012년 이후로는 암운이 드리워졌다. 브라질 경제만으로 운운하기엔 새로 영입해오는 외국인 선수들의 수준도 많이 떨어졌고, 뭣보다 연봉공개와 각 팀의 예산삭감 그리고 아시아쿼터 제도의 도입으로 극심한 선수유출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중동 국가와 돈으로 경쟁할 수 없게 되었으니 유망주를 키워 파는 리그로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연맹이 행정처리를 잘 해 주길 기대해야 겠지만 삽질만 하고 있는 편.
- 프로토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좀 꺼리는 리그이기도 하다. 강팀과 약팀의 차이가 확실한 다른 리그에 비해서, K리그는 비교적 팀별 전력이 평준화한 편이라 경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5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총 6시즌 동안 같은 팀이 우승한 적이 없다. 심지어 2009 시즌 우승팀인 전북 현대 모터스는 창단 후 첫 리그 우승이었다.
- 유럽축구에 익숙한 사람들은 K리그에 이렇다 할 빅클럽이 없고, 다 특색없는 고만고만한 팀들만 있다며 까는 경향이 많다. 물론 K리그가 타 리그에 비해 어느정도 평준화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런 예측 불가한 순위결과가 스포츠의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무조건 까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지만 전북이 독주를 하기 시작했다.이젠 한팀만 독주한다고 재미없다며 까겠지결국은 매북현대가 되었다.
- K리그도 30여년 역사가 흘러 어느정도 성숙기에 이르다보니, 리그를 주도하는 대여섯 팀들이 서서히 정착되어가기 시작하고 있다. 서울, 수원, 포항,
성남함정 발견, 전북, 울산 등의 팀들은 K리그의 '빅6'라 불리며 국내 축구팬들 뿐 아니라 아시아권에서도 명문클럽의 위상을 인정받고 있는 분위기이다. 두 구단은 워낙 빅클럽이고 다른 네 팀도 최근의 아챔 우승으로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포항의 경우 모기업인 포스코의 철강사업으로 인해 뜬금없는 그리스에 유명세가 상당하다. 재정박살 전 그리스가 조선 산업이 발달해 이쪽 분야의 교류가 컸던 영향으로 파악된다.
- 스토리가 없다고 까이는 리그지만, 찾아보면 다양한 팀들이 나름의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K리그/더비 매치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팀별로 여러 경기들이 많으며 잘 찾아봐야 한다. 모든 리그가 그렇지만 중립적으로 보면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응원할 팀을 정해 놓고 그 팀을 중심으로 리그를 봐야 그 안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응원팀이 확실하다면 동네 조기 축구나 학교 체육 대회조차 미칠듯한 감정이입과 열정을 느낄수 있는 것이 축구의 묘미이기도 하다.[29]
- 물론 축구를 중립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K리그의 경기스타일이 조금 뻑뻑해보일 수는 있는 것이 사실이다. J리그나 라 리가처럼 세련되고 매끄러운 패스위주의 경기가 아니라, 강력한 압박과 몸싸움으로 상대의 장점을 지워버리는 식의 게임이 많기 때문에 해외축구에 익숙해진 라이트한 축구팬이 즐기기에는 K리그 특유의 투박하고 뚝뚝 끊어지는 경기진행을 못견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또한 축구스타일의 하나일 뿐이고 그렇게 투박하다고 까는 한국축구가 어째서 수십년간 아시아의 최정상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겠는가. 일단 축구는 이기는 것이 우선이지 무턱대고 스타일을 바꾼다고 그게 쉽게 바꿔지는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축구문화에는 오랜 세월 정착된 맥락과 역사가 있으므로 그것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 2013년부터 만 23세 이하 국내선수 의무 등록에 대한 규정이 신설되었다.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유소년 육성 클럽 시스템을 한층 강화시키기 위하여 연맹이 신설한 제도이다. 23세 이하 국내 선수는 출전 선수 명단에 최소 1명 이상 포함되어야 한다. 만일, 23세 이하 국내 선수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경우, 해당 인원만큼 출전 선수 명단에서 제외한다. 2013년에는 1명이었고, 2014년 시즌은 2명으로 늘어났으며 2015년에는 2명 등록 및 1명 출전 의무화로 확대 될 예정이다. 단, 군경 팀은 적용받지 않으며 군경 팀과 경기시 그 상대 팀도 위 사항에 한시적으로 적용받지 아니한다. 군경 팀 선수는 9월 전역일 이후 원소속 팀을 상대로 경기 출전이 가능하다.
- 또한, 23세 이하의 국내 선수가 각급 대표 팀 선수로 선발될 경우, 소집 기간에 개최되는 경기에서 해당 클럽과 그 상대팀은 차출된 선수의 인원 수만큼 엔트리 의무 등록 규정에 적용받지 아니한다. 차출된 선수가 동일하지 않을 경우 많을 팀을 기준으로 한다.
17 여담
2007년 4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서울과 수원간의 리그 경기에서는 관중 5만 5397명이 입장하면서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한 경기 5만 관중 시대를 열었고 2010년 5월 5일에 역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성남간의 경기는 6만 747명이 입장하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한국 프로 스포츠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한편, 2010년 4월 4일에 있었던 서울과 수원 간의 경기에서는 역대 4번째 최다 관중 기록인 4만 8558명이 입장했고 12월 5일 있었던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선 5만 6759명이 입장하면서 역대 플레이오프 최다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2008년 5월 18일 K리그 10라운드 부산과 성남 간의 경기에서는 '일부러 골을 먹게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전반 37분 부산의 김태영이 쓰러지자 부산은 치료를 위해 공을 밖으로 내보냈고 성남은 페어 플레이 정신에 입각해 부산에 공을 돌려줬다. 그런데 공을 내준 성남의 두두가 공을 내주자마자 곧바로 달려들었고 공을 받은 부산의 김유진은 두두가 달려오는 것을 모르고 등을 돌린 채 방향을 바꾸다가 두두에게 공을 뺏겼다. 결국 조동건의 패스를 받은 최성국이 그것을 득점으로 연결하자 부산 측에서 항의했고 결국 성남의 김학범 감독은 선수들에게 한 골을 주라고 지시, 부산의 안정환이 아무도 막지 않는 상태에서 공을 몰고 가 득점을 했다. 당시 대표 팀 승선을 앞두고 있던 안정환의 시즌 연속 2호골이었다(...). 경기는 원정 팀 성남이 3-1로 승리.
과거에도 위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1997년 4월 26일 울산과 부천의 경기에서 부천의 윤정환이 하프 라인에서 울산의 김병지에게 공을 돌려주려고 찼다가 힘 조절에 실패, 김병지의 키를 넘겨 골을 넣었다. 당시 부천 감독인 니폼니시 감독은 2008년의 김학범 감독처럼 울산에게 한 골을 내주라고 지시했고, 부천의 골키퍼 샤샤는 이것을 미처 듣지 못하고 연달아 슈팅을 막다가 나중에서야 골을 내줬다.
2008년 11월경 K리그 통산 10000번째 골이 가까워지자 K리그 측에서 이벤트를 준비했으나, 하필이면 부산의 김태영이 자책골(...)로 10000번째 골을 넣으면서 모든 게 흐지부지. 10000번째 골을 자책골로 넣으려고 일부러 작정하고 넣기도 힘들텐데...[30]
2010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K리그 4개 구단이 J리그, CSL, A리그 팀들을 전부 격파하고 동아시아에 배정된 8강 티켓 4장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4팀 중 성남과 전북은 리그에서도 잘 했지만 포항(12위)과 수원(15위)이 리그에서 크게 부진했던 팀이라는 걸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
2012년 울산 현대가 ACL 우승 컵을 들어올리고 2013년 FC 서울이 결승에 진출하면서, 2009 시즌부터 K리그 클럽이 5회 연속 결승에 진출해서 3회 우승, 2회 준우승의 성과를 거두는 초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18 관련 항목
18.1 대회/규정
18.2 역사
18.3 TV 프로그램
- ↑ 공교롭게도 1부와 2부의 영문 약칭이 KLC로 똑같다. 분류를 위해 1부는 KLC, 2부는 KLC2로 구분하기도 한다.
- ↑ JTBC3 FOX Sports의 k리그 케치프라이즈이다.
- ↑ 리그 포맷 자체는 잉글랜드의 풋볼 리그(2016/17시즌 부터 잉글랜드 풋볼 리그로 변경)를 벤치 마킹한 것으로 추정.(풋볼 리그 챔피언십 - 풋볼 리그 1 - 풋볼 리그 2).
- ↑ 그러나, 국가대표는 확실한 인기를 끌고 있지만 K리그 중계는 야구 등 다른 종목 중계에 비해 많이 밀려난 편이다. 그나마 승강제를 구축하면서 최소한 인터넷 중계는 확보한 상태다. K리그/쟁점의 중계 문제 참조.
- ↑ 1부 리그 12팀, 2부 리그 11팀으로 총 23팀이 참여한다. 기업구단만 따지면 10개로 다른 프로스포츠와 큰 차이가 없으나 시립구단 10개 팀이 참가하고 있다. 그 외에 군경구단 2개 팀, 사실상 종교구단 1개팀이 참여 중.
- ↑ 배구 하면서 축구 안 하는 데는 있다. 구미와 천안은 프로축구단이 없다.
- ↑ 이걸 부채질한 개쌍놈이 신문선이다. 1980년대에는 슈퍼 리그, 1997년 이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코리안 리그'라는 이름이 있는 한국 프로축구를 중계석에 나와서 계속 K리그라고 나발 불어던 것. 이 인간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본 축구의 100년지 대계 운운하며 협회 관계자들을 번번히 깠는데, 정작 협회에서 진행중인 유소년 계획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 ↑ 당시에는 K와 리그 사이에 -가 들어가야 했다
- ↑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유입된 국내축구 팬들을 말한다.
- ↑ 당시 J리그를 따라했다느니 하는 소리를 많이 들은 K리그라는 명칭을 가져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 의견을 취합했는데 K리그 자체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나가는 차원에서 K리그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많아서 K리그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 ↑ 사실 2부 리그에 옛 1부 리그의 명칭을 붙이는 방식은 의외로 흔한 방식 중 하나이다. 몇몇 나라에서 1부 리그라는 이름이 붙은 리그가 실은 2부 리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가지 예로, 터키 프로 축구 리그의 명칭은 2000-01 시즌까지는 'TFF 1. 리그'였다가 2001-02 시즌부터 리그 체계를 개편하면서 1부 리그를 '쉬페르리그'로 개칭하고 'TFF 1. 리그'라는 이름은 2부 리그로 넘겼다.
- ↑ 원년 팀 중 원래 연고지와 모기업을 가진 팀은 포항밖에 없다. 포항도 정확하게는 원년에는 대구/경북 연고지로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처럼 대구를 주연고지로 출범하고 1987년도 대부분 홈경기를 대구에서 개최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연고 개념이 광역연고제였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었고, 결론적으로 광역연고제때나 도시연고제때나 같은 지역인건 포항밖에 없다. 그리고 유공은 이리저리 떠돌다가 공동화 정책으로 부천에 정착할만 하니까 제주도로 연고이전/대우는 모기업 해체크리/할렐루야도 해체(현재의 고양 Hi FC 항목에도 있지만 이 할렐루야와는 완전한 별개의 팀이다.)/국민은행은 실업으로 다시 돌아갔다가 해체. 선수단 중 일부가 FC 안양으로 이적.
- ↑ 한국 프로 축구의 규모가 커지면 1부와 2부 팀의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국 축구의 발전을 상징하는 제도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3부, 4부, 5부... 신생 팀이 하부 리그에서 계속 우승하고 올라와도 1부로 올라가는 데 10년이 걸리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 ↑ 전신인 전북 버팔로는 1994년 참가했지만 해체 후 인수 과정을 통해 전북 현대가 되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다른팀 취급이다.
- ↑ 승강 PO의 성적은 제외한다.
- ↑ 승강 PO의 성적은 제외한다.
- ↑ 2017년에도 사용할 경우 수정할 것.
- ↑ 2016시즌 공인구 에레조타 캐치프레이즈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 '너와 나, 우리의 K리그'
- ↑ 다만 챔피언십부터 현대자동차 SONATA가 스폰서.
- ↑
스폰서가 없어진 사연이 좀 황당한데 2008년 국정감사에서 삼성이 너무 오래 스폰서를 한다는 이유로 태클이 들어와서(…) 삼성에서 스폰서 연장 계약을 안했기 때문.이건 2005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상관 없고 2008년 세계적인 경기불황으로 삼성전자가 스포츠 관련 스폰서를 대폭 철수하면서 생긴 일이다. 프로야구도 이때문에 마구마구에게 이전보다 적은 금액으로 스폰서를 받았다. - ↑ 출범 전 아마 시절부터 따지면 1973년으로 2013년 창단 40주년을 맞이했다. K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축구 구단. 단, 내셔널과 아마까지 확장하면 대전 코레일이 더 오래되었다.(1943년 창단)
- ↑ 초창기에는 대구, 경북 연고였으나 경기와 인기가 포항에 집중되다 보니 거의 80년대 후반부터 도시 연고가 가장 먼저 정착되었다. 포항 팬들의 원조 축구 수도라는 자부심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 ↑ 사실 KBO리그보다 먼저 만들어질수도 있었다. 1981년 5월에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국민정서와 여가선용을 위한 3S정책의 일환으로 프로 스포츠 창설지시가 떨어졌고, 비서관은 야구협회와 축구협회에 프로화 검토를 의뢰하게 되었는데, 대한축구협회에서는 운동장 야간조명 설치 등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고 한 반면, 대한야구협회 전무를 지낸 이용일과 운영부장 출신 이호헌이 가세하여 수립한 야구 프로화 계획서는 정부의 지원금 한푼 없이도(=대기업을 등쳐먹으면 된다) 프로화가 가능하다는 골자의 내용이 주목받으며 우선 프로야구 부터 출범시키기로 낙착을 지었기 때문이다.
- ↑ 여담으로 이후 이용일과 함께 프로야구리그를 준비했던 이진희 MBC 사장이 한국프로야구 준비 보고서를 전두환에게 제출했는데 전두환이 깜짝 놀랬다고. 이진희 사장이 "각하 뭐가 잘못됐습니까?"라고 물어보자 전두환 曰 "뭐야, 야구야? 난 축구인줄 알았지."
진성 축빠 전두환 - ↑ 바이엘 레버쿠젠, PSV 아인트호벤, 뉴욕 레드불스
- ↑ 예를들면 스코틀랜드의 명문 셀틱 FC 같은 경우엔 아일랜드 이민자들을 종교적으로 위로하자는 의미에서 '수사(修士)'가 창설했다.
- ↑ K리그에 만들겠다는 기업이 없으니 지자체로 타겟을 바꾼것이다.
- ↑ 당시엔 울산 연고가 아니었다. 1990년이 돼야 울산광역시로 연고이전해 지금에 이르렀다.
- ↑ 단, 여기에는 상기했다시피 특징 선수나 클럽에 대한 애정 혹은 관심을 가질 것과, 그렇지 않을 경우 최소 인터넷으로 봐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문제는 대부분의 프로 축구 팀은 지역 연고가 약하며, 텔레비전 중계의 수준이 해외 축구에 비해 떨어지고, 그나마도 그 저질 중계마저 보기가 어렵다는 것.
- ↑ 그리고 이 장면은 2013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UCL 통산 6천호 골이 터졌는데 그 골이 바로 세르히오 라모스의 자책골이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