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랄 3세 하르드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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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aldr harðráði
(1015년경 ~ 1066년 9월 25일)

노르웨이의 하랄 호르파게르 왕조의 제11대 왕.

노르웨이의 왕인 이복형 울라프 하랄손이 정적들에게 살해당하고 그 전투에서 부상당해 먼 지방의 농가로 갔다가 스웨덴으로 달아났으며, 키예프 공국의 야로슬라프를 섬겨 폴란드의 피아스트 왕조와의 전투에 여러 차례 참전했다. 부하들과 함께 남하해 비잔틴 제국의 용병으로 활약해 바랑 인 근위대장이 되었으며, 그리스, 시칠리아를 비롯한 비잔틴 제국에 대항하는 세력을 공격해 여러 차례 약탈했다.

시칠리아를 공격할 때 여러 차례 머리를 써서 성벽이 매우 단단하자 새들을 여러 머리 잡아 전나무의 대팻밥을 새의 등에 얹어놓고 불이 잘 붙는 왁스, 유황 등을 발라뒀다가 대팻밥에 불을 붙였으며, 이로 인해 새들이 성의 처마 밑으로 날아들면서 성벽이 불이 붙여 시칠리아의 주민들을 항복시켰다.

또 성을 포위하다가 자신의 영채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것으로 자신이 아픈 척 가장하며, 사절단을 보내 자신이 죽은 척 슬퍼하게 하면서 협상을 요청해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리게 했다. 사절단들이 성 밑에 하랄의 유골을 매장하겠다고 하자 주민들은 이를 받아들였으며, 하랄의 부하들이 장례 행렬을 갖추고 성에 들어가면서 하랄의 관을 문턱에 올려놓아 성문이 닫히지 않도록 했다.

하랄의 부하들은 성에 들어가자 공격해 성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으며, 하랄은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 근위 대장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노르웨이에서 조카 마그누스 울라프손이 왕위에 오른 것을 알고 돌아가려고 했다가 조에 황후로 인해 황제 몫의 전리품을 내놓지 않고 챙겼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다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감옥을 탈출했다.

부하들을 이끌고 미카일 4세를 공격해 두 눈알을 뽑았고 조에의 조카 마리아를 납치했으며, 보스포루스 해협의 거대한 쇠 그물이 있는 것을 알고 바이킹 선의 후미를 최대한 낮추고 노꾼들에게 힘껏 노를 젓게 해 선수를 높이 들어 쇠 그물 위를 통과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자 마리아를 놓아줬다.

키예프 공국으로 가서 엘리자베트와 결혼할 것을 요청하고 스웨덴으로 들어가 처남인 스베인 울프손과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었으며, 마그누스를 압박해 노르웨이의 공동 왕이 되었고 1047년에 마그누스가 사망하자 단독 왕이 되었다. 정적들에게 평화 협상이라 속여내서 불러내 살해했고 1062년에는 스베인 울프손과 싸워 해전으로 승리를 거뒀고 1064년에 협상을 했다.

1066년 1월에 잉글랜드의 웨식스 왕조의 왕인 참회왕 에드워드가 사망한 것으로 해럴드 2세가 계승하면서 노르망디의 윌리엄(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를 공격하자 하랄은 해럴드의 동생인 토스티그의 사주를 받아 잉글랜드를 공격했다. 그러나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해럴드의 군대의 기습을 받아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