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예프 공국

러시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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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 공국
Рѹ́сьскаѧ землѧ
국장 어?[1]
[2]
882년 ~ 1283년
위치동유럽
수도키예프
정치체제군주제
국가원수Veliky Knyaz(대 공작)
언어교회 슬라브어
민족슬라브인
종교러시아 정교회
성립 이전루스 카간국
하자르 카간국
멸망 이후노브고로드 공화국
블라디미르-수즈달

1 개요

동(東)슬라브 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로 창시자는 류리크의 아들이자 왕조의 후계자인 올레크 공(公)으로 880년경에 지금의 노브고로드 부근에서 건국하였다. 이후 드니프르강 유역을 정복한뒤 수도를 키예프[3]로 옮겼다.
12개의 부족으로 구성되었던 동슬라브 부족들이 키예프 공국에게 정복되면서 통일이 되었다.

2 전성

슬라브계, 바이킹계 주민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미 올레크의 뒤를 이은 스뱌토슬라프 대에 그 군사력을 입증한 바 있다. [4] 블라디미르 1세때 정교회가 정식으로 국교로 인정되었다. 이후 야로슬로프 1세가 재위하면서 영토가 확장되고 11세기 중반에 최전성기를 이른다. 이때 키예프 공국은 유럽의 중세시대 문화적 패권국인 동로마 제국과의 교류를 통해 서유럽 이상의 문화적 수준을 이룩하였고 프랑스로 결혼간 한 공주는 프랑스를 미개하고 야만스러운 국가라고 고향으로 편지를 쓸 정도였다. 그러나 후설할 몽골의 침략으로 키예프는 화려한 수도에서 20여명이 사는 촌락으로 변할정도로 쇠퇴했고 러시아 제국의 표도르 대제 시기가 되서야 몽골의 통치동안 발전한 서 유럽과의 문화 차이를 회복했다고 한다.

3 쇠퇴


여러 공국으로 분열된 키에프 대공국

12세기 초반부터 흑해에 있던 유목민족과 북쪽의 유목민족이 잦은침략을 해오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분할상속제에 의거하여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었으나. 다시 모노마흐가 재통일 하였으나, 그가 죽자 다시 분열되었다가 12세기 말 사실상 이름만 남은 상태에 이른다. 이후 13세기 중반에 몽골이 침공하면서 처참하게 멸망하였다.

이후 키예프공국의 점령지들은 킵차크 칸국의 중심부가 된다.
  1.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국장은 여기서 따온 듯 하다.
  2. 1000년경의 강역.
  3. 현재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4. 유목 민족이었던 폴로베츠 인들의 어머니들은 그의 이름으로 겁을 주곤 했다. 나폴레옹 사례와 비슷하다. 하지만 결국 그는 정벌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유목 민족인 페네체크 인에게 살해당한다. 당시 페네체크 병사들은 그의 두개골로 물 따위를 마셨다 한다. 흠좀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