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5세

역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하인리히 5세로타르 3세

1086. 8. 11 ~ 1125. 3. 23
독일 왕위 : 1099 ~ 1125. 3. 23.
제위 : 1111 ~ 1125. 3. 23.

신성 로마 제국황제. 잘리어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다. 아버지는 하인리히 4세이며 어머니는 베르타이다. 하인리히 5세의 치세는 서임권 투쟁의 마지막 시기였다.

1099년 1월 6일에 하인리히 4세는 반란을 일으킨 콘라트를 대신해 아헨에서 그에게 독일 왕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는 아버지의 치세 동안 제국의 일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나 하인리히 4세의 적들은 1104년에 그가 반란을 일으키도록 유도했다. 교황 파스칼 2세의 맹세로 안전하게 된 다음이었다. 몇 명의 제후들은 1105년 1월 마인츠에서 그에게 존경을 표시했다. 반란 세력이 초기에 차질을 빚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인리히 4세는 퇴위해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독일의 질서는 빠르게 회복되었고 쾰른의 시민들은 벌금형을 받았다. 그리고 플랑드르 백작 로베르트 2세에 대항한 원정은 이 반역자들을 그의 무릎 앞에 꿇게 만들었다.

1107년에 하인리히 5세는 보헤미아의 공작 보리보주 2세를 복권시키기 위해 군사 원정을 실시했으며 불완전하게 성공했다. 그는 보리보주 공작을 붙잡고 있던 스바토플루크 사자공을 소환했다. 보리보주는 황제의 명령에 의해 석방되었으며 스바토플루크의 아들의 대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바토플루크가 보헤미아로 돌아오자, 그는 왕위를 맡게 되었다. 1108년에는 알모스 왕자를 대신하여 헝가리의 왕 콜로만과 전쟁을 했다. 폴란드의 왕 볼레수아프 3세가 공격해 왔고, 스바토플루크와 보리보주가 하인리히 5세에게 군사 작전을 그만두도록 압력을 넣었다. 대신에 하인리히 5세는 공물을 바치도록 하기 위해 폴란드를 침공했으나 글로고브와 헌스펠드에서 패배했다. 1110년에는 보헤미아 공작의 지위를 안전하게 물려받았다.

하인리히 5세의 치세에서 주요 관심사항은 아버지 때에 심각한 논란이 벌어졌던 서임권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하인리히를 지원하는 교황 세력은 그가 파스칼 2세가 갱신한 칙령을 승인하길 원했다. 그러나 하인리히는 주교를 계속 임명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황이 독일에서 열리는 회의에 오는 것을 원했다. 파스칼 2세는 망설이다가 트와에서 열린 회의에서 서임식이 금지된 다음에는 독일보다 프랑스를 더 선호했다. 문제는 황제와 교황의 협상이 실패한 1110년까지 해결되지 않았고 파스칼 2세는 칙령을 새로 발표했으며 하인리히 5세는 이탈리아를 대규모의 군대로 침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