服部正重
(1580 ~ 1652)
전국시대와 에도 시대의 인물로 2대 한조인 핫토리 마사나리의 차남이자 3대 한조인 핫토리 마사나리의 동생으로 남동생으로는 승려인 핫토리 마사히로가 있다.
1600년에 세키가하라 전투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진에 술잔치를 하면서 아버지인 마사나리의 활약을 물었다가 다음날에 전투에서 소라 고둥의 신호가 울리기 전에 적진에 혼자서 들어가 침입하여 적의 사무라이 대장의 목을 베서 이에야스에게 보냈다. 하지만 이에야스가 그 경위를 묻자 정직하게 대답했다가 오히려 노여움을 사서 부친은 그런 비겁자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은상을 받지 못하였다.
1615년 오사카 전투 이후 3대 한조인 마사나리의 뒤를 이어 핫토리 한조의 이름을 계승받지만 이미 3대 째에서 이가 닌자 부대의 지휘권을 빼앗겼기 때문에 장인인 오쿠보 나가야스와 함께 사도 킨잔(광산)에 대한 정책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1612년에 혼다 마사노부, 혼다 마사즈미 부자가 나가야스가 광산 개발에서 금은을 착복한다는 의혹을 제기한 오쿠보 나가야스 사건이 일어났으며, 감찰 무사로부터 사도에서 대기하라는 명을 받았다가 사도 섬에 접한 이즈모사키로 감찰 무사를 마중나갔다가 사도에서 대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에야스의 노여움을 사 3천 석을 몰수당하였다.
이후 에치고 국의 무라카미 성주인 무라카미 타다카츠를 섬겼다가 이후 집안의 논쟁이 많다는 이유로 무라카미 가문이 개역되자 새로 무라카미의 번주가 된 호리 나오요리를 섬겼다. 그러나 1642년에 나오요리의 사망으로 호리 가문이 단절되자 5년 후에 형수의 친가의 마츠다이라 사다츠나에게 의탁하여 2천 석을 받아 쿠와나 번의 가로로 지냈다고 하며, 일설에는 여러 지방을 떠돌아 다니다가 객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