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가 주체한 고양 행주 문화제 모습. | 잘못된 예. 앞치마와는 다르다, 앞치마와는! |
앞치마와는 다르게 하반신만 덮는 덮치마의 일종으로 부엌에서 사용한다.
행주치마의 어원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때 행주 대첩 당시 관군들이 적들에게 던질 돌을 아녀자들이 치마에 담아 날라줘서 그 치마를 행주치마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낭설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책에도 행주치마라는 단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최초의 기록은 1517년 최세진이 쓴 '사성통해'로, 행주 대첩이 있기 76년 전 이야기다.
행주치마의 어원은 햏자 행자쵸마. 쵸마는 당연히 치마이고, 행자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는데, 1.절에서 식사공양 등을 하는 행자승들이 걸치던 덮치마 라는 것이 하나이고, 2.닦는 헝겊이라는 의미의 '말포抹布'를 의미한다는 것이 또 다른 설.
그럼 반대로 행주치마에서 행주산성이 나온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낭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행주(幸州)라는 지명은 고려초기부터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실 동래성 전투에서 비슷하게 나온다.(정사 내용이다) 정확히는 여인 2명이 기왓장를 던져서 왜군과 싸우는 내용이다. 참고로 송공단에 있는 의녀비들이 바로 2 여인의 기리는 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