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학

1 중국 철학의 한 갈래

玄學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에 발생하여 성행한 중국 철학의 한 갈래.

흔히 장황하고 어지러워서 뭔 소린지 몰라먹겠는데 좀 있어보이고 현란하긴 하네 할 때 쓰는 현학적이라는 말이 바로 이 현학에서 기원했다. 뭔 소린지 모르겠다, 혹은 그거 더럽게 어렵네 등의 이미지가 대외적이지만 2000년 전의 얘기고, 다른 많은 동양사상의 배경과 토대가 되었기 때문에 현대의 한국인들에겐 다 알 만한 얘기다. 대학교 발표 시간에 제대로 공부 안 해놓고는 현학적이라서 원래 어려운 거라서 저희도 어려웠습니다 하는 친구들아, 거짓말하지 마라!

현학은 노자, 장자, 주역을 중시했는데, 이 세 서적을 묶어 '삼현'이라 했으므로 삼을 연구하는 문이라 현학이다.

후한말 동탁이 황실을 틀어잡고 정권을 농단한 이후 황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지방 군벌들이 날뛰며 안 그래도 웃기던 사회 분위기가 말도 아니게 흉흉해졌다. 곳곳에서 살육이 벌어지고, 전쟁이 범람하며, 전염병과 천재지병이 창궐하기도 했다. 식자층도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 장각과 장로 등으로부터 촉발된 도교가 흥성하기 시작했다. 천자의 꼴이 말이 아니게 된 상황에서 하늘로부터 타고난 천명, 직분 등을 주장하는 유교의 권위 역시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권위가 무너진 유학자들의 대체품으로 저자에는 점차 도사들이 활개치기 시작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우길, 좌자 등으로 대표되는 도사들은 혹세무민하는 헛소리를 지껄이기도 하고,[1] 개인의 건강과 수명의 보존에 관심을 가져 연단술이나 장생법, 의술에 관심을 두기도 했다. 이들은 황노의 학에 그 준거를 두기도 했고, 주역 등 유가의 경전에서도 이론의 근거를 구했다.

중앙정부에서도 유학자들의 대접은 시원치 않았다. 동탁은 유학자들을 우습게 봤고, 조조는 그 정도가 더해 공융, 예형, 양수 등 맘에 들지 않은 선비들 모가지를 시원스럽게 쭉쭉 날렸다. 기세가 죽은 유학자들은 입을 닫고 세속에 관심을 끊고 은거하거나 훼절하여 당대 정권에 굴종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전대의 유교적 권위와 가치, 명분 등에 의구심이 생기게 되었다. 세태가 흉흉하기 그지없고 군벌들이 어지러이 난립했다 스러지는 와중에 천자는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은 숙명적 제왕이다, 천지만물과 인간사는 서로 감응하는 것이니 돌연한 자연적 징조가 인간사에 크게 작용한다는 천인감응설, 경전의 한 글자 한 글자를 따지는 번쇄한 훈고학 따위에 무슨 권위가 설 수 있겠는가.[2]

신진귀족 자제들인 하안과 왕필은 기존의 사상에 등을 돌리고 새로운 정신세계를 펼치게 되었다. 그들은 황로지학에 관심을 기울여 이를 깊이 공부함과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유교적 경전을 해석해 하안을 논어집해를, 왕필은 주역주를 집필했다. 이전까지의 유교 경전이 명분을 중요시한 데 반해 하안과 왕필은 명분 대신 자연스러운 무위의 도를 역설하여, 예컨대 공자의 말 중 공(空)이나 허(虛)를 논한 부분을 도가적으로 해석했다. 이들은 허황된 참위설을 배척하고, 명분에 집착해 억지로 사업을 꾀하는 것을 지양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한 사람의 지혜를 짜내 천하를 다스리려는 행위는 혼자 천 명의 지혜와 대적하는 것과 다름 없으니 허무할 뿐이며, 요순조차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지도자는 고을고을마다 상이한 습속을 억지로 개변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인격을 수양하며 천하는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레 다스리는 것이 낫다 여겼다. 그리 하여 뒤이은 5호 십육국 시대 껄껄껄

삼국이 안정되었으나 유학의 권위는 여전히 흔들렸고 죽림칠현 이전에 조조, 조비 및 공융이나 왕찬과 같은 건안칠자들 태반이 또라이 위진 사회가 부패한 가운데 사치와 향락이 판치자 양생이나 연단 등 개인의 보신이나 영달에 힘을 쏟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지식인들은 양생이나 자연, 미신 등에 관심을 두며 도교를 가까이 했는데, 죽림칠현이 이러한 선비들의 대표격으로 세속의 권위를 대단치 않게 여기며 자연과 청담을 논하고 술과 음악을 즐겼다. 이는 현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당시 세태가 어지럽고 피바람이 부는 것은 사물과 사람의 가치를 재고 구별하던 작위에서 비롯했으므로 복잡스런 예법을 논하며 군자연하느니 술이나 마시고 흐리멍텅하게 살며 좀 멍청하고 둔하더라도 초연히 살아가는 쪽이 세상에 도움될 것이라는 도가적 세계관을 바탕을 둔 행태였다.

하안, 왕필을 거쳐 죽림칠현을 지나 더욱 활발해진 도가 연구로 인해 도교 사상이 한층 발달한다. 도가 특유의 신비주의와 자연관이 한층 세련되게 변했으며, 도가적 무위에 대한 설명도 무조건적으로 행위를 지양하고 소박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본성을 자연스럽게 살리며 겉꾸밈을 지양하는 쪽으로 이동하게 되었으며, 도가적 지혜 및 이를 지닌 도가적 성인상도 이 시기에 한층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일단의 흐름을 현학이라 부른다.

2 라이트노벨 <언젠가는 대마왕>에 나오는 비행항공모함

파일:Attachment/Genkaku.jpg

衒學. 전체 크기가 350M나 되는 제국군의 거대 비행항공모함(근데 외형은 전투순양함에 가깝다.)으로 1개 여단 2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움직이는 비행요새이다.

무장은 갑판 위에 위치해 있는 장거리포와 현학 내부에 대기해 있는 공중전부터 폭격까지 전부 실행할 수 있는 비행형 강화복을 입은 정예 낙하산 부대 2000명으로 그들 한 사람 한사람은 경우에 따라서는 포대로서도 기능한다.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엔진을 가졌으며 그 동력과 마나를 내부에 함께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마나의 살포가 불가능한 지역에 출격할 수 있다.

5권 초중반부에서 마왕 사이 아쿠토와 그의 사역마 흑룡 피터하우젠을 막기 위하여 그들에게 공격을 가했지만 결국 오히려 그들에게 간단히 농락당한 후 5권 중후반부에 아쿠토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1. 당시에는 유교조차 삼국지에서 알 수 있듯, 한은 화기를 타고 났으니 어쩌구, 다음 정권은 목기가 흥성한 어디 땅에서 날 것이다 등 미신적 요소가 다분했다.
  2. 물론 세상을 넓게 볼 줄 아는 식자층 입장에서의 얘기다. 난세인 만큼 평민들의 사회에는 혹세무민의 무리가 기승을 부렸고, 설화나 민담, 신화, 괴담, 뜬소문, 풍물상, 기이한 사건사례 등을 취합한 이른바 소설류(현대의 그것과는 의미가 다르다)도 발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