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흉노의 역대 선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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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6)
남흉노의 초대 선우. 호한야의 손자, 오주류야제의 아들, 이도지아사의 동생, 구부우제, 이벌어려제의 형. 이름은 난제비(欒提比).
13년에 계부 호도이시도고가 즉위하자 우욱건일축왕이 되어 남쪽 변경과 오환을 다스려 8부를 거느리게 되었으며, 원래는 좌현왕이 될 예정이었던 형 이도지아사가 호도이시도고가 부자 계승을 위해 살해하면서 속으로 시기하고 두려운 마음을 품어 정회에 드물게 참석했다.
이 때문에 호도이시도고가 의심해 두 골도후를 파견해 부의 병사들을 감독하고 관리하게 되었으며, 호도이시도고가 죽자 오달제후, 포노 등이 차례로 선우가 되자 원한을 더욱 가져 47년에 곽형을 서하태수에게 파견하면서 귀부를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두 골도후의 보고를 받은 포노가 그를 죽이려 했는데, 동생인 점장왕이 선우의 장막에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알려주자 8부의 병사 4, 5만명을 모아 두 골도후가 오기를 기다려 죽이려고 했지만 골도후들이 도착하고 음모를 알아차리면서 놓치게 되었다.
48년에 8부의 대인들이 논의해 호한야 선우가 삼았으며, 오원의 요새에 사람을 파견해 한나라에 번속이 되기를 요청하면서 울타리 역할을 해 북쪽의 무리들을 막겠다고 해서 한나라에서는 이를 받아들였다. 혜락시축제는 남선우를 자칭하고 겨울 10월에 사신을 보내어 궁궐까지 와서 번속이 되어 한나라의 신하를 칭하겠다고 했으며, 좌현왕인 동생 난제막에게 3만을 주고 포노의 동생 욱건좌현왕을 붙잡았다.
49년 3월에 한나라에 사자를 파견해 궁궐에 와서 공물을 바치면서 사자를 보호해주기를 청하면서 아들을 인질로 보내기로 하고 화친을 맺었으며, 50년에 단침, 왕욱 등이 사신으로 오자 칭신하면서 운중에 들어와 살기로 했으며, 포로로 잡은 좌현왕 욱건좌현왕의 무리, 남부의 다섯 골도후 등 3만여 명이 배반해 선우를 자칭하다가 서로 내분이 일어났다.
가을에 아들을 인질로 파견했고 다양한 물품을 받았고 감독하는 자들이 파견되었으며, 연말이 되면 번번이 사자를 파견해 상주문을 받들고 아들을 인질로 보내 입조했다. 한나라에서는 알자를 파견해 전에 입시했던 아들을 호송해 왕정으로 돌려보냈으며, 혜락시축제를 포함한, 연지, 좌현왕, 우현왕 이하 사람들은 비단 1만필을 하사받았다.
겨울에 북흉노에서 다섯 골도후의 아들들이 남흉노로 귀부하면서 북흉노가 이를 추격하자 맞서 싸우게 했지만 불리했다가 한나라의 도움으로 물러가게 했으며, 52년에 사신을 파견해 말, 가죽옷 등을 바치면서 서역 여러 나라의 손님들을 거느리고 공물을 바치면서 알현하기를 요청했고 한나라에서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각종 물품을 주었다.
56년에 사망해 그의 동생인 난제막이 계승해 구부우제 선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