繪戰師
자세한 내용
손위군 작품의 홍콩 만화. 회전사라는 것은 한자로 그림 회(繪) + 싸울 전(戰) + 스승 사(師)인데 얼핏 한글로만 볼 때는 회 + 전사로 봐서 그림을 그리는 혹은 그림과 관련된 전사로 착각할 수 있으나 정확한 의미는 회+전사가 아니라 회전(繪戰) + 사(師), 즉 전장을 그려서 기록을 남기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는 화가[1]로, 현대식으로 보자면 종군 사진기자 정도의 위치쯤 되겠다. 혼란스러운 시대의 전쟁터에서 숙명적으로 얽히게 되는, 반대 진영의 두 명의 회전사 소년소녀의 만남의 이야기. 전3권으로 1부 완.
'전장을 그리는' 이들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꽤나 현실주의적인 내용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극의 초반에만 해당되는 것이고 그 후에는 사실상 이능력이나 판타지에 관련된 내용으로만 넘어간다. 솔직히 '그림' 그 자체에는 그다지 주제의 비중이 없고 회전사라는 배경은 그냥 판타지물 내지는 이능력 배틀물으로서의 소품.
작가의 화력(畵力)이 절륜하고, 기본적으로 일본만화의 형식을 철저히 따르고 있지만 일본만화의 유려한 그림체와 중국만화의 스케일이 섞인 듯한(특히 전장 씬에서 병사들을 일일히 다 그려넣는 노가다라든지...) 나름 독창적인 화풍을 선보인다. 언뜻 3권 분량에 소화하기 버거워 보이는 장대한 설정과 세계관이지만 줄거리상의 떡밥은 대부분 다 회수가 되고, 이능력 배틀물의 요소가 섞여 들어갔지만 전혀 이능력 배틀물의 진부한 서사구조에 함몰되지 않고, 작가가 펼쳐내고자 한 이야기를 3권에 걸쳐 충분히 담아냈고 또한 인물의 심리적 변화 역시 충분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3권만으로도 대체적으로 완결성을 갖고 있는 이야기지만, 최종화에 신 캐릭터가 갑툭튀하고, 작가가 이후 이야기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기 때문에 일단 1부만 완결된 상태. 하지만 언제 2부가 연재될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다...
1 줄거리
주인공은 도회(陶繪). 이름도 참 직설적으로 그냥 그림(繪)이라는 뜻이다. 이명은 '죽지 않는 회전사'. 뭔가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상 적군의 포화 속에서 잘도 요리조리 피해다니면서 남들은 못 그리는 장소에서 그림을 그려내니까 죽지 않는 회전사. 언제나 무표정하게 별다른 야망도 없이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그리면서 돈을 받아 살아가고, 아군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한껏 드러나게 그리는 다른 회전사와는 달리 무언가 남들이 주목하지 못하는 전쟁의 이면을 그리기에 상부에서 구박이나 받는 주인공. 그렇게 금발에 초록눈의 '야만인'들과의 전장에서 전쟁을 그려가던 어느날, 우연히 동족 회전사를 조우하게 된다.
금발벽안의 회전사의 이름은 빙정(氷婷). 이분의 이름도 못지않게 직설적으로 아름답다, 예쁘다(婷)의 뜻. 다른 유럽인 인물은 다 한스나 폴 같은 이름인데 이분만 왜 한자식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회전사 중에, 아니 전장 자체에 여성이 있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빙정은 도회 같은 평범한 회전사와는 달리 그 환한 미소로 아군에게 천사라고 불리며 거의 여신 급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회전사 그 이상의 상징적인 존재. 그러나 그 해맑은 미소의 이면에는 매일밤마다 전장을 두 눈 뜨고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는 임무에서 비롯되는 격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도회 역시 어렸을 때부터 혹독한 사부에게[2] 회전사로 길러져 자신은 그림 따위 그리고 싶지도 않은데도 시체가 부패하는 전장터에 홀로 내몰려 억지로 그림을 그리도록 강요받으며 자라났기에, 이러한 악몽을 억지로 잊으려 하며 살아가고 그래서 목이 따인 적장이나 적군의 시체 같은 것을 그리기보다는 전쟁의 다른 면을 그리고자 했던 것. 그러나 불가사의한 성물(聖物) 쟁탈전에 휘말리면서 점점 좋지 않은 기억, 그리고 자신에게 숨겨져 있던 이능력에 눈을 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