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오사카 생매장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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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에 일본에서 발생한 보복 살인 사건. 간단히 서술하면 평범한 대학생들이 사이코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사이코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예상외의 결과를 내고는 자신까지 법적으로 인실좆을 당한 사건. 법 밖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게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1 배경

2006년 6월 16일. 히가시오사카 대학에 다니던 21세의 도쿠미츠 유타는 후지모토 쇼지의 애인에게 휴대폰 메일을 보냈다는 이유[1]로 후지모토 본인과 다른 가해자들에게 친구 사토 유키와 함께[2]심한 구타를 당하고, 폭력단까지 거론하며 50만 엔을 위자료로 내놓으라는 협박까지 받았다. 이에 겁을 집어먹은 도쿠미츠의 친구는 당시 조폭 활동을 하던 자신의 동갑내기 친구 고바야시 류지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고바야시 류지는 그 두 명을 미야마 공원[3]으로 유인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한다.

2 진행

고바야시 류지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후지모토 쇼지 등 두 명을 살해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짓고 같이 활동하던 동창생 겸 조폭인 히로히타 토모노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토모노리는 한 명은 그냥 죽이되 또 한 명은 돈을 뜯어내고 풀어주자고 했고, 상부에 보고하여 허락을 받고 미성년자 1명을 포함해 7명의 조직원을 동원했다. 한편 도쿠미츠 유타 등은 이 사실을 모르고 후지모토 일행을 유인했는데, 이외 한 명의 회사원이 동행했다.[4]

6월 19일. 범행 현장인 미야마 공원에서 고바야시 류지와 히로히타 토모나리 등 9명이 세 명을 습격해 구타한 뒤, 오카야마시 야산으로 끌고 가 후지모토 쇼지를 그 자리에서 산 채로 생매장했고, 또 다른 한 명을 끌어다가 돈을 뜯어내려 했다. 그러나 본인에게 돈이 없고 또 다른 친구들에게 그의 명의로 돈을 빌리려 해도 여의치 않자 결국 그 역시 생매장했다.[5]

다만 회사원이던 청년은 살해하지는 않고 50만 엔을 내놓는 조건으로 풀어줬는데, 그가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사건이 발각되었다.

3 검거 및 재판 결과

6월 24일부터 28일 사이에 4명이 자수했고, 수사 과정에서 5명이 추가로 체포되었다.

이들 전원이 구속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는데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식들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고 그저 가해자 사형만 요구하던 피해자 유족들의 뻔뻔한 태도[6]가 일본 언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고바야시 류지의 발언도 도마에 올랐는데, 매우 중2병스러웠다고 한다.[7]

그러나 처벌은 피해자들의 요구와는 무관하게 진행되었고, 2011년에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 주범 고바야시 류지 : 사형
  • 공범 히로하타 토모노리 : 무기징역
  • 공범 A(히로하타와 함께 범행) : 징역 18년
  • 공범 B(포크레인 조작. 미성년자) : 징역 15년[8]
  • 공범 C(피해자 1명 살해를 지시한 조폭 간부) : 징역 17년
  • 공범 도쿠미츠 유타 : 징역 11년.
  • 공범 사토 유키(도쿠미츠 유타의 친구이자 사건의 원인제공자) : 징역 9년
  • 공범 E, F(미야마 공원에서 합류한 미성년 범죄자들) : 가정재판소 송치.
고바야시 류지는 사형수로 구치소에 수감 중이고, 나머지 범인들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단 사건으로부터 10년이 지난 2015년 5월 현재 사건 가담의 정도가 가벼운 몇 명은 만기 혹은 가석방 등으로 출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구타 동기도 황당한데, 애인과 잘 풀리지 않으니까 메일 보낸 놈을 때려잡고 싶어졌다고 한다.
  2. 불려나올 당시 친구와 동행하고 있었다.
  3. 오카야마시 부근. 고바야시가 일하던 건설회사의 자재 보관소가 있었다.
  4. 실제로 경찰에 신고하려고도 했던 모양인데, 고바야시의 지시로 철회했다고 한다. 살해하려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으로, 법정에서도 이 점이 인정되었다.
  5. 단 도쿠미츠와 그의 친구 및 망을 본 범인은 후지모토 쇼지 살해 당시에만 현장에 있었고, 범행 자체에도 소극적이었다.
  6. 일반적인 살인사건과 달리 이 경우는 피해자들이 범행 동기를 직접적으로 제공한 점. 조폭까지 언급한 점. 공원에서 집단 폭행을 한 점에서 책임이 컸다.
  7. 친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정의를 실천했다는 헛소리를 했다.
  8. 사형이 검토되었으나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당시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