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진보학생연합

1 개요

90년대 전반에 출범했으며 범PD 진영으로 간주되는 학생운동 조직. 약칭 21세기.
1994년 한겨레신문 등 기사에 영남대에서 열린 21세기 출범식 기사가 등장한다

2 화려한(?) 등장, 활동, 해소

발생계통학(?)적으로는 민중당 학생조직-범진보학생정치조직(3개 단체)-21세기 진보학생연합의 순서를 따랐다. 초기 결성 멤버들은 NL 비주류(주체사상을 따르지 않아 비주사NL로 불림)와 일부 PD 계열 운동가들이 주체가 되었으며 NL/PD 로 분류되는 일반적인 학생운동 구도를 벗어나고자 했다. 정리하자면 1993-1994년 즈음에 진보학생연합+진보정치대학생연합+생활진보대학생연합, 3개 그룹 학생들의 연합체로 NL과 PD 대립을 넘어선 진보 학생운동을 지향하며 출범하였다.

주로 반미, 통일운동에 주력한 NL이나, 노동운동에 집중한 PD와는 달리, 대중성이 떨어진 학생운동의 색채를 바꾸기 위해 90년대 초반에는 지엽적인 활동으로 여겨졌던 이른바 '부문운동'을 강조하며 학생운동조직의 대중성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물론 통일 및 노동운동 역시 병행했지만 다양한 학생자치활동 및 지역연대활동이나 환경운동, 여성주의, 대학개혁, 학내 복지, 기타 사민주의에 가까운 서구 좌파적 활동에 많은 힘을 쏟았다. 21세기는 자신들을 학생운동 정파 또는 학생정치조직이 아니라 NGO에 가까운 대중운동단체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물론 외부에서 볼 때는 다 똑같은 운동권이었지만, 21세기 출신이 총학생회장에 당선될 때 주류 언론도 <온건좌파 학생단체>라는 표현을 썼다. 지금은 학생회 선거에서 "학내복지" 공약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90년대 초중반만 해도 21세기처럼 "학내복지에 신경쓰겠다"는 공약을 내걸면 기존 운동권들로부터 대학생들의 이기주의니, 대중추수주의니 하는 비판을 받았었다.

출범 이후 많은 대학의 학생회를 수권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학생운동세력 내에서 21세기의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 NL과 PD로 크게 갈려 대립하는 구도를 벗어나고자 했던 태생 때문에 이론과 노선이 분명하던 기존 학생운동과는 달리 운동권 내부의 시각으로 볼 때 지향이 애매모호한 점(굳이 따지자면 온건PD 사민주의적 진보운동 추구), 비폭력 직접행동을 내세우는 실천방식으로 기존 조직들에게 개량주의 또는 조합주의라는 비판을 듣거나 일부에서는 '비운동권'으로 취급되었다. 실제로 초기에는 21세기가 수권했던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출범식에 이수성[1] 총장이 참석해 축사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1996년 조직사건으로 핵심 멤버들이 구속되는 사건도 겪었다(5명 기소유예, 6명 집행유예).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의 전성기는 90년대 중-후반 지역 국공립대 및 일부 사립대를 중심으로 30여 개 학교에 조직을 두고 10여 개 학교에서는 총학생회장을 배출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서울대에서는 9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1년 걸러 총학생회장을 배출하는 등 21세기 조직의 코어 역할을 했다.[2] 90년대 후반 들어 NL 계열이 약화되었을 때에는 학생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할 진영 중 하나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말 학생운동이 급격히 몰락할 때 가장 먼저 해소된 주요 계파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 원인으로 학생운동의 고질적인 정파간 다툼에서 기인한 타 계열의 침투 및 잠식을 꼽기도 하나, 이는 지엽적인 이유로 일반적인 해체 원인은 노선이 뚜렷하고 전투적ㆍ조직적인 타 정파에 비해 조직성 및 구심점이 약한 것이 가장 큰 해소 요인이다.
공식적으로는 2004년 여름 서울대 모처에서 진보학생운동 10년을 회고하며 해소총회를 가졌다. 기존의 학생회 수권중심의 학생운동을 지양하고, 당시 소속되었던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활동에 집중하자는 방향이 논의되었다.

3 진보정치 활동

이 외,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은 조직의 시작을 진보정당운동에 두고 있어서인지 90년대 후반에 결성된 많은 진보정당 조직에 관여했다. 대표적인 것이 대선후보로 권영길씨를 내세웠던 국민승리 21에 NL의 사람사랑 계열(현재의 경기동부연합)과 더불어 상당한 인력을 제공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국민승리21을 기간으로 한 민주노동당은 이후 NL잡아먹었장악했다. 안습. 학생회 수권을 내려놓고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활동을 모색했던 멤버들도 NL의 벽을 넘지 못하고...안습.
21세기 출신 활동가들은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진보신당, 정의당 등에 남아서 활동을 계속하기도 하고, 더민주에서 당내 급진파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운동에 진출하거나, 법조인이 된 사람들은 민주노총 법률원이나 민변계 로펌에서 활동한 사람도 많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최근의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과는 전혀 아무런 인적, 조직적 연관도 없다. 한대련은 NL 중에서 민주노동당 초창기부터 참가했던 소위 과거의 노학연대선봉대(약칭 노선대) 그룹이 주도하여 만든 단체이다. 참고로 노선대는 요 몇년간 각광(?)받고 있는 경기동부연합의 학생조직이다. 2000년대 후반기부터는 '자본주의연구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지도부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경찰에 싸그리 잡혀가기도 하고 통진당 NL, 또 2016년 총선의 민중연합당(끈질긴 생명력)이 그들이다.

4 주요 인물

  • 김태권 만화가- 서울대 미학과
  • 박주민 20대 국회의원 은평갑 당선자 (더민주) - 서울대 법대
  • 강병원 20대 국회의원 은평을 당선자 (더민주) -서울대 농경제. 재학시 총학생회장 (1993년11월 당선).
  1. 이수성은 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으로 학생처장과 총장 시절 학생운동에 상당히 유화적이었다. 특히 1980년 서울역회군 당시 학생처장으로 어떻게든 학생들의 피해를 줄이고자 신군부와 협상을 진행해서 시위대 전원 무사귀가와 안전보장을 확약받고 학생들을 설득한 사례도 있다. 이후에도 계속 학생편을 들다가 결국 보안사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해서 허리가 안 좋은 사람이다. 정치적으론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지만, 학생운동에는 유화적이었던 인물. 서울대 총장 시절 조교가 바로 조국 현 서울대 법대 교수다. 당시 조국은 박노해가 주도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조직원이었고, 결국 감옥행...
  2. 94년부터 2002년까지 약 7년여에 걸쳐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는 21세기와 좌파(PD)조직인 대장정이 1년씩 번갈아가며 당선되는 법칙 아닌 법칙이 존재했다. 대장정은 전국학생연대회의를 거쳐 현재 전국학생행진으로 이어지는 계열. 서울대의 경우 전대협-한총련 전환기의 주류세력, 소위 관악자주가 21세기로 결합했던 관계로 특히 법대를 중심으로 21세기의 세가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