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대학살

Massacres de Septembre

프랑스 혁명의 사건.

1792년 9월 2일, 프로이센군이 베르됭을 함락시키고 이 소식이 파리에 전해지자 파리 시민들은 분노와 공포에 휩싸였다. 이런 가운데 파리에는 프로이센군이 이미 파리 근교까지 진출했다는 유언비어가 퍼졌고 혁명을 붕괴시키려는 왕당파와 반혁명 세력의 음모가 있다는 소문도 퍼졌다.

결국 격분한 파리 시민들은 9월 2일부터 9월 7일까지 엿새동안 감옥을 습격해 왕당파와 반혁명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중이던 죄수들을 끌어내 그들을 재판도 없이 살해했다. 이를 "9월 대학살" 사건이라 칭한다.

이런 대학살 사건의 이면에는 파리 코뮌 정부가 있었다. 장 폴 마라조르주 당통을 비롯한 코뮌 정부의 각료들과 지도자들은 반혁명 세력의 숙청을 주장 혹은 수수방관하며 이런 대학살을 부추겼다. 코뮌 지도자들은 파리뿐만 아니라 프랑스 각처로 서신을 보내 각처의 감옥에 수감되어있는 반혁명세력들이 혁명정부를 붕괴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이들의 숙청을 권고했고 각처에서 파리에서와 같은 학살극이 벌어졌다.

엿새동안의 학살로 파리에서만 1200명의 사람들이 살해된것으로 알려졌다. 9월 대학살은 프랑스 혁명의 과격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며 이후 국민공회의 공포정치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