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식 부사관도(九五式下士官刀)
1 개요
도검을 패용하도록 규정된 부사관과 병, 즉 대도본분병(帶刀本分兵)에게 지급된 양산형 군도.
2 상세
소화시대에 이르러 군국주의 열풍이 강해지면서 가장 먼저 변화를 맞은 것은 장교도가 아닌 부사관의 양산형 군도였다. 명치32년(1899) 채용된 32식 부사관도는 19세기 최후반/20세기 초반 스타일의 미국/유럽 세이버의 경향을 그대로 가진 세이버 군도였으며, 당대의 경향을 따라 황동 도장구(刀裝具)에서 색칠한 철제 도장구와 칼집으로 바뀐, 겉보기에는 좀 구질구질한 군도였으나, 32년식 을(乙)형의 손잡이가 당시 세태에 맞추어 일본도 형태로 바뀌고, 이것이 소화7년(1932)에 32년식 개(改)로 이어진다.[1] 장교도가 소화9년 즉 1934년에 94식 전도가 채용되면서 비로소 일본도형이 채택되었으니 비록 이전 모델의 개량형이라고는 해도 2년 이상 빨랐던 셈이다.
이 32년식 개(改) 부사관도의 후속기로 채택된 것이 바로 소화10년(1935)에 제식화된 95식 부사관도이다. 장교용 군도가 복식규정의 일환으로써 장식적 목적이 더 강했다면, 95식 군도는 그보다는 무기적인 측면과 양산형으로써의 생산성을 더욱 중시했기 때문에 94식 전도, 98식 전도가 전통 일본도 방식대로 나무를 깎아 칼자루를 만들고 손잡이 끈을 감고 어피를 붙이는 식으로 전통적으로 만들었다면 95식은 일본도 모양만 내면 그만일 뿐 실제로는 황동이나 알루미늄으로 손잡이를 성형하고 내부에 나무 블럭을 끼우고, 칼날과의 결합도 전통적인 대나무못 대신 볼트와 너트로 단단히 결합해 버리는 등 그야말로 실용 그 자체였다. 겉보기에 전통 일본도 비슷하게 만든 것 같기는 한데, 자세히 보면 알루미늄 주물 위에 색칠해서 느낌만 비슷하게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나이롱일본도.
그대신 장교용 군도에서 속출했던 손잡이 파손 문제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으며, 조병창에서 육군도검강(陸軍刀劍鋼)으로 대량 생산한 칼날의 성능도 좋았다. 잠금장치는 단순하기 짝이 없어서 장교용 군도의 버튼식 갈고리 장치가 아니라, 잠금 고리 자체가 칼자루 위에 떡하니 다 드러난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조선 환도에도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비녀장이라고 부르는 식인데, 중기형에서는 이 잠금장치가 측면으로 옯겨진 적도 있었다. 칼집은 그냥 단순한 세이버 칼집으로, 장교용 98식 전도가 칼집은 철제라고 해도 장식은 일본도의 스타일을 가져다 썼다면 이건 그냥 유럽 세이버 칼집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했다.
원래대로라면 대도본분병 모두가 이 95식을 지급받았어야 했지만, 전쟁의 확전으로 조병창의 양산형 칼날생산라인 일부가 장교용으로 전용되면서 실제로는 집에서 들고온 싸제 일본도, 즉 이종군도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여기에 원래는 패도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군조(중사)와 오장(하사&병상)들도 칼을 차고 다녔는데, 이들은 당연히 95식을 지급받지 못했고, 이들도 마찬가지로 이종군도를 사용했다.
3 외장과 칼날
3.1 95식 외장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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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극초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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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초기형은 최초 제식화 이후 약 6000여개가 생산되었는데, 가장 큰 특징은 우선 손잡이가 황동 일체성형이며, 이후 버젼들이 손잡이에 색칠한 것과는 달리 표면에 산화피막을 입혀 마무리한 것이 특징이다. 칼날 고정은 손잡이 끝의 사루테(끈을 다는 고리)구멍으로 들어가는 일자 볼트&너트 1개로 고정. 속이 비어 있으므로 칼날을 고정하고 그 위에 사루테를 끼울 수 있다. 중기형에서부터 나타나는 단순한 원형 쯔바에 비해, 황동으로 멋지게 만들어진 아오이(葵)형 쯔바를 가지고 있다. 사진의 물건은 육군조병창 동경 코쿠라공장 제품. 도신에 새겨진 양산넘버는 4765東이다.
3.1.2 초기형&중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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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형에 들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우선 손잡이의 재질이 황동에서 알루미늄으로 바뀌었다. 사실 황동 일체성형으로 손잡이를 만드는 것은 18세기 유럽에서부터 있어 왔는데, 나무 손잡이는 가볍고 충격을 잘 흡수하지만 가공이 번거롭고 잘 가공하지 않으면 쉽게 불량이 나는 점이 문제였다. 따라서 굳이 손이 많이 가는 나무 손잡이는 장교나 기병의 정규 군도에 적용하고, 보병들에게 대량으로 지급되는 브리큇(Briquet)같은 도검이나, 글라디우스를 본딴 포병도(砲兵刀) 등의 도검의 손잡이를 황동으로 만드는 경우는 쉽게 볼 수 있었다. 일부이지만 부사관용 세이버나 스몰소드가 이런 일체형 손잡이를 적용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금속 손잡이는 높은 생산성을 보장하고 손잡이 파손과 같은 트러블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방지하며, 또 황동 재질이므로 녹이 슬거나 쇠독이 오르는 경우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지만 그대신 손잡이가 무거워지고, 곧 전체 중량 증가에 기여하며, 강철보다 비싼 황동이 대량으로 사용된다는 점이 문제였다.
알루미늄 손잡이로 교체된 것은 그러한 점에서 어느 정도 보완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강철보다 무거운 황동에 비해 강철보다 가벼운 알루미늄은 금속 손잡이의 문제점인 중량의 필요없는 증가를 막아주면서도, 금속 손잡이의 신뢰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또 알루미늄도 황동처럼 쇠독이 오르지 않고, 녹이 슬어도 표면을 살짝 덮는 녹으로써 속까지 진행되지 않으므로 장기적인 수명으로 봐도 유리했다.
표면 처리 면에서는 산화피막을 입히지 않고 진짜 일본도를 흉내내기 위한 색칠이 이루어졌다. 손잡이 양식은 역시 98식 전도와 같이 진타치(陣太刀)양식이지만, 일체 성형이니 94식 전도, 98식 전도와 같은 장식의 이탈이나 손잡이 끈의 밀림, 손잡이 부러짐 문제가 생길 이유가 없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또한 극초기형의 사루테 구멍 나사에 더해 칼자루에 칼날 고정 나사가 1개 더 추가되었으며, 이로써 칼날을 총 2개의 나사가 고정하는 구조가 되어 더욱 튼튼해졌다. 칼집의 경우도 극초기형의 애매모호한 칼집에서 벗어나 정통 세이버 철제 칼집 양식을 따르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말기형까지 이어진다.
중기형부터 쯔바는 비싸고 복잡한 황동제 못코 쯔바에서 단순한 원형의 철제 쯔바로 변경. 생산성을 높였으나, 멋은 한층 추락한 감이 있었다. 중기형 측면잠금식은 나고야 조병창에서 만들어졌는데, 대략적으로 중기형에서 말기형으로 넘어가는 연장선상에 있는 외장으로 추정된다.
중기형까지의 손잡이 길이는 21~22cm. 초기의 타치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길이로 한손으로 쓰다가 필요시 양손으로 잡고 쓰는데 적합한 길이이다.
3.1.3 말기형&최말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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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형에 들어서는 손잡이가 저질 목제로 바뀌고, 미끄럼 방지를 위해 X자로 요철을 파놓았다. 사루테 나사도 폐지되어 자루에 바로 끼우는 나사 2개로 칼날 고정방식이 변화. 보통 일본도처럼 손잡이를 보강하기 위해 철제 후찌(칼자루 앞의 보강링)과 카시라(칼자루 끝의 뚜껑)이 붙었으며, 중기형 측면잠금식에서 처음 나타났던 측면잠금식은 완전히 고착화. 칼날에 있어서는 기존에는 혈조를 팠으나 공정을 줄이기 위해 혈조를 파지 않게 되었고, 최말기형에 이르러서는 물자 부족이 더욱 극심화되어 말기형까지도 유지되던 철제 칼집을 폐지하고, 목제 칼집으로 변경하였다. 잠금장치가 물리고 패용고리가 달리는 칼집 입구 부분만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며, 아무튼 구질구질하다.
자루의 길이는 좀 길어져서 24~25cm정도. 나무 손잡이로 바뀌면서 슴베의 고정구멍을 그대로 활용하지만 금속 카시라에 구멍은 안 내기 위해 목제 부분이 길어져서 이렇다. 국내 박물관 소장품 중에는 이 최말기형에 손잡이 끈을 감은 개인개량품도 있다.
3.1.4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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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초기~ 중기형까지의 칼날은 혈조가 있는 것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강재는 탄소량 1.0~1.1%의 육군도검강(陸軍刀劍鋼)을 사용했으며, 기름 열처리를 하고 기계로 연마를 한다. 서양식 통열처리로 만들어지므로 당연히 하몬은 없으며, 날길이는 67.8cm(하바키 추가시 69.8cm) 휨은 1.5cm정도. 동경, 나고야, 인천 3개의 육군조병창에서 모두 생산했다. 칼자루 쪽의 칼등에는 제조넘버와 공장을 상징하는 각인을 찍는데, 동경조병창의 경우 숫자가 먼저, 문자가 나중에 오고, 나고야 조병창의 경우 문자가 먼저, 숫자가 나중에 쓰여진다. 예를 들자면 동경조병창 제품의 경우 4765東, 나고야 조병창 제품의 경우 関202171 같은 식이며, 또 동경조병창 제품은 사진과 같이 칼날을 아래로 했을 때 읽히도록 찍지만, 나고야 조병창 제품은 칼날을 위로 했을 때 읽히도록 거꾸로 찍는다.
번호는 제조번호로, 공장은 한자로 구분이 가능한데, 한자가 표시하는 제조공장은 다음과 같다.
「東」・"Tō"・・・・육군조병창 동경공장 동경제일육군조병창
「小」・"Ko"・・・・육군조병창 코쿠라공장 - 코쿠라 공장품이라고 해도 동경조병창이 주관했기 때문에 小자 각인은 거의 찍히지 않는다. 말 그대로 희귀품.
「名」・"Mei"・・・육군조병창 나고야공장 나고야육군조병창
「関」・"Seki"・・ 나고야육군조병창 네츠다 병기제조소 세키공장
「仁」・"Jin"・・ 인천육군조병창
「へ」・"He"・・・・인천육군조병창 평양병기제조소 - 육군병기행정본부에서는 「城」자를 썼다. 平이나 壤이 아닌 이유는 불명.
「二」・"Ni"・・・・남만(남만주)육군조병창 제2제조소. 봉천조병창은 남만조병창 관리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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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형부터는 공정을 줄이기 위해 혈조를 파지 않게 되었다. 생산은 나고야와 인천조병창에서만. 그외 제조방식이나 재질은 초기~중기형 칼날과 같다.
4 평가
98식이나 94식이 아름다운 외관으로 전후에도 수집의 대상이 된 것과는 별개로 95식은 말 그대로 양산형인지라 찬밥신세가 되었다. 초기형을 제외하면 외관으로도 좀 우중충해졌고 특히 말기형 이후부터는 별로 가지고 싶지도 않을 정도. 패전 직후에는 무기로 분류되어 대다수가 용광로로 들어가 버렸으면서도 별로 수요가 없어 아직도 해외에 많은 양이 남아 있으나, 정작 일본에서는 무기로 분류되는 터라 칼날을 부러뜨리지 않으면 소지가 안되는 등, 난감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덕택에 일본군 군장 재현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본 내에서는 3만 2천엔 정도의 가격으로 가검이 판매되고 있다. 가검의 외형 재현은 괜찮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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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몬도 없고 고탄소강으로 대량생산된 칼날이라 당연히 현대 일본 미술도검계에서는 칼 취급도 하지 않는다. 하몬이 아름다워야 칼 취급을 하는 문화 때문. 그러나 칼날의 성능만 본다면 오히려 이런 조병창 도검들이 더 낫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후 일본에서 찬밥 취급을 받는 칼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안습.
5 관련 항목
일본군도(日本軍刀)
구군도(旧軍刀)
신군도(新軍刀)
- 육군부사관도(陸軍下士官刀)
- 95식 군도(九五式下士官刀)
- 일본군도의 라이벌 항일대도(抗日大刀)
공업도/실용군도(工業刀/室用軍刀)
- 무라타도(村田刀) - 총기설계자 무라타 소장이 제조한 칼날
- 만철도/흥아일심도(滿鐵刀/興亞一心刀) - 남만주철도공사에서 제조한 칼날
- 미카사도(三笠刀) - 전함 미카사의 파괴된 포신으로 만든 칼날
- 조병도(造兵刀) - 육군조병창에서 생산된 칼날
- 진무도(振武刀) - 금속공학을 통한 타바드강(鋼)으로 만들어진 칼날
- 군수도(群水刀) - 군마수전사의 사장인 미야구치 타케히데가 만든 칼날
- 스테인리스도(耐錆鋼刀) -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칼날
- 일본군도를 사용하는 검술
- ↑ 일본 내에서 91식 부사관도라는 정체불명의 칼이 돌아다니는데, 그 정체는 바로 이 32년식改이다. 91식은 군대 내에서 돌던 명칭으로, 군생활을 제법 오래 했던 사람들의 증언에서 가끔씩 튀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