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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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 래퍼

전무후무할 랩음악계의 M.V.P.

투팍비기 스몰즈의 동서대전이 시작되는 것에 묻힌감이 있지만 나스를 비롯하여 모든 힙합씬의 쟁쟁한 MC들이 인정하는 그랜드 마스터이며 모두가 그의 단명을 아쉬워하는 천재 랩퍼.

본명은 라몬트 콜먼. 1974년 5월 30일 생. 1999년 2월 15일 사망.

카랑카랑한 하이톤의 랩핑이 특징. 프리스타일 실력도 엄청나다.[1] 당시 막 떠오르던 다음절 라임을 능숙하게 사용했다. 주로 자기 자랑에 대한 가사를 쓴다. 애초에 예명인 빅 엘부터 자신의 본명 라몬트(Lamont)에서 이니셜을 따온 것.

빅 대디 케인의 노래를 듣고 힙합에 입문했다고 한다.[2] 1990년 쓰리 더 하드 웨이라는 그룹에 들어가, "The Devil's Son"이란 트랙으로 사람들에게 "Horror Core" 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랩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서부터 인지도가 더 쌓었고, 그덕에 로드 피네스의 라이브의 오프닝을 불렀다.

1992년 Finesse의 "Return Of The Funkyman"앨범의 싱글 "Yes You May" 의 리믹스에 참여함으로써 공식 데뷔를 하였고, 1992년 말에 쇼비즈 & AG의 앨범 "Runaway Slave"에 "Represent"라는 곡에 참여함으로써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그 후 1993년에 Diggin' In The Crates의 멤버가 되었다.

1995년 데뷔앨범"Lifestyle Of The Poor And Dangerous"가 히트하였으나, 2년후 D.I.T.C.과 콜롬비아 레코드와의 트러블로 콜롬비아 레코드를 떠나게된다. 이 사태가 지난지 2년후에 D.I.T.C.과 함께 인디펜던트 싱글 "Day One','ignifies Soldiers','All Luv','The Enemy"를 발표하는데 이 싱글들중 'The Enemy'가 Dj 프리미어의 작품이란 이유로 호평을 받았다. 1997년엔 자신의 레코드레이블 "Flamboyant"를 설립하고 뉴욕의 "Fat Beats"와 앨범 배급계약을 맺게된다. 마침내 1998년 "Ebonics / Size'em Up" 싱글을 발표하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성공을하였다. 이 싱글은 소스지에서 그해의 "베스트 인디펜던트 앨범"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또한 앨범의 수록곡 Deadly Combination에 2Pac과 콜라보를 하여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형인 리 콜먼의 빚 때문에 갱단들이 리 콜먼을 쫒다가 빅 엘을 리 콜먼으로 오해하고 그 자리에서 총을 쏴 1999년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3] 이때 그는 한참 전성기였고, 대중적으로 빛을 보지 못한 상태로 세상을 떠나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여담으로 그가 죽은 곳은 그의 히트곡 'Put In On'의 뮤직 비디오를 찍었던 거리였다.

2000년에 로커스 레이블이 그의 미발표곡들을 사들여 짜집기해서 사후 앨범 'The Big Picture'를 낸다.

특유의 핸드싸인이 있는데, 검지와 엄지를 펴서 L자를 만든다.
  1. 프리스타일 전문 가수로 불리는 제이지와의 프리스타일 랩배틀에서 탈탈 털어 버릴수준(...) DJ 프리미어는 프리스타일이 끝나고 '이 방송에서 최고의 순간'이라고 칭했다.
  2. 후에 나오는 The Big Picture앨범에서 Platinum Plus에 빅 대디 케인이 참여한다.
  3. 정작 리 콜먼은 동생이 죽었을 때 감옥에 있었는데, 출소한 뒤에 살해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