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대디 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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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포 랩의 선구자.

미국래퍼모델. 1968년 9월 10일생. 느끼한 중저음의 빠른 랩이 특징. 고급 양복, 특유의 헤어스타일, 황금 장신구, 사치스러워 보이는 뮤비를 트레이드마크로 삼아 흑인은 백인보다 크게 성공할 수 없다, 흑인은 전부 가난하다라는 편견을 깨부수고 가난한 흑인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특히 이스트 코스트답게 작사력이 대단하며,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래퍼이기도 하다.

뉴욕 스타이븐슨에서 랩퍼 겸 프로듀서로 일하다가 그랜드마스터 카즈에서 프리스타일 배틀에 참가해 빠른 플로우를 자랑하여 그곳에서 실력을 가다듬었다.

1986년, 퀸즈브릿지의 얼굴마담 주스 크루에 가입하였고, 1년후 콜드 칠린 레코드와 계약해 'Raw'라는 싱글로 이름을 알린다. 특히 천식을 앓고 있었음에도 비트와 랩핑의 스피디한 스타일은 90년대를 풍미했던 래퍼들 사이에서 유행하게된다.

1988년에 발매된 데뷔앨범 'Long Live the Kane'은 혁신적인 비트와 케인 본인의 작사력이 더해져 80년대 올드 스쿨 힙합을 대변하는 명반으로 칭송받으며 지금까지 화자되고 있다.

1989년 여세를 몰아서 두 번째 앨범 'It's a Big Daddy Thing'도 흥행을 거둔다. 특히 'I Get the Job Done'이 R&B 차트 40위에 등극한다.

1993년까지 전성기를 누려온 그는 갑자기 앨범의 질적 저하를 보이며 이에 굴하지 않으려고 'Looks Like a Job For…'을 발매하나 결국 하락세를 맞이하고 배우의 길을 걷게된다. 다만 영향력은 아직 죽진 않아서 제이지, 올 더티 바스타드 등과 작업하기도 했다. 게다가 마돈나의 책을 만드는데 지원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의 케인은 대세를 따르는 것인지 음악 스타일을 전형적인 뉴욕 스타일의 올드 스쿨 힙합에서 대중적인 경향이 있는 얼터네이티브 힙합으로 바꾸기로 한다. 2003년모치바와 작업하기도 하고, 1년후 싱글 'Warm It Up, Kane'이 GTA의 브금으로 쓰이고, 2005년 'VH1 Hip-Hop Honors'의 DJ를 맡는등 80년대 만큼의 영광은 아니더라도 다시 재기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여담으로 그 라킴과 비프전을 벌이신 몇 안되는 MC. 다만 이때 당시엔 관계가 서먹해진 정도로 그쳤으며 라이벌 구도를 펼쳐나간건 사실이지만 비프전은 그닥 크진 않았고 떡밥을 물은 팬들이나 언론이 마치 엄청난 싸움인 양 부풀려서 과장시킨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화해하고 관계도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