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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파르 니메이리(Gaafar Mohamed el-Nimeiri)
1930. 1. 1 ∼ 2009.5.30
수단 공화국의 독재자. 그러나 마찬가지로 뒤에 들어온 아프리카에서 최악으로 손꼽히는 독재자인 오마르 알 바시르 때문에 묻혔다.
2 생애
니메이리는 1930년 수단의 옴두르만 와드누바위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에서 복무했고 남부 반란군 진압 전투를 지휘했다. 1966년에는 미국 캔자스주에 있는 미국 육군대학을 이수했다. 그러다가 1969년 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잡았다. 니메이리는 민간 정부를 무너뜨리고 소장으로 진급하였으며 총리 겸 혁명위원회 의장이 되었다. 1970년 일어난 우익 반란을 진압하였으나 1971년 친 소련파의 쿠데타로 실각했다가 같은 해인 1971년 9월 선거에서 98.6%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수단 대통령에 당선됐다.
취임 후에 니메이리는 혁명평의회를 해산시키고, 1972년 단일 정당으로서 수단 사회주의자연합(SSU)을 창설하여 당수가 되었다. 다만 친 소련파 쿠데타 관련자들의 처형 문제로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니메이리는 수단 대통령에 취임한 후 수단사회주의자연합(SSU)을 창설해 사회주의 경제 정책을 시행했고, 수단을 식량 생산국으로 만들기 위해 자본주의 농업 쪽으로 노선을 바꿨으며, 결국 1981년 세계 제일의 제당공장인 키나나 설탕 프로젝트가 완공되었지만 이러한 개발 계획은 수단의 경제위기를 초래했다. 니메이리는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의 중동 평화교섭에 동의한 최초의 이슬람 지도자였으며, 1983년에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통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려고 했다. 한편 이슬람교법을 시행하려던 그의 구상은 그리스도교가 우세한 남부 지역에서 반발을 사게 되었다.
1983년에는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니메이리는 1985년 4월 이집트에 체류하는 동안 국방장관이였던 오마르 알 바시르의 쿠데타로 인해 수단 대통령에서 축출되었고, 이후 이집트에 망명했다가 14년 만인 1999년 5월 수단으로 돌아가 정계 복귀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인민노동세력동맹”이라는 정당 결성 허가를 받아 그를 새 정당의 총수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으나 2009년 그가 사망하면서 그냥 흐지부지 끝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