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연쇄 테러

(노르웨이 테러에서 넘어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이 있습니다.

이 문서에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사고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합니다. 불법적이거나 따라하면 위험한 내용도 포함할 수 있으며, 일부 이용자들이 불쾌할 수 있으니 열람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실제 사건·사고를 설명하므로 충분히 검토 후 사실에 맞게 수정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틀을 적용하시려면 적용한 문서의 최하단에 해당 사건·사고에 맞는 분류도 함께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분류 목록은 분류:사건사고 문서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경고! 이 문서는 충격을 유발하는 내용 혹은 표현이 포함된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사용자에 따라 불쾌감, 혐오감, 공포감을 느낄 수 있는 내용, 이미지, 외부 링크 등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열람에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문서를 열람하여 발생한 피해는 바다위키에서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 문서를 읽고 싶지 않으시면 즉시 닫아주시기 바랍니다.


노르웨이어 : Terrorangrepene i Norge 2011(Norsk bokmål) / Terroråtska 22. juli 2011(Norsk nynorsk)
 

"한 사람이 저토록 큰 증오를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가 함께 했을 때 얼마나 더 큰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 우퇴위아섬 생존자가 CNN과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

 

"테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개방성과 더 많은 인간애다." -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 추도식에서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극우 백색테러.

1 사건 개요

2011년 7월 22일 오후 3시 30분(현지시간) 수도 오슬로의 정부청사에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이 테러로 정부청사 총리실 건물이 크게 파손되었으며 석유부 건물에도 화재가 발생했으며 7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이 테러에 사용된 폭발물은 미국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때 사용된 것과 동일한 비료와 디젤유의 혼합물이라고 한다.# 범인은 농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위장, 폭발물 제조에 필요한 성분이 들어있는 비료를 대량으로 사들여왔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오슬로 북서쪽 30km에 위치한 노르웨이의 집권여당인 노동당 청년캠프 행사장에서 총기난사 테러가 발생했다.

2011072300599_0.jpg

노동당 청년캠프 행사가 열렸던 부스케르 주의 유트외이아(Utøya) 섬

이 섬에서는 노동당이 주최하는 청소년 정치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700명이 넘는 10~20대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한국의 정치캠프와는 개념이 좀 다르다.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정치캠프는 소속 정당이나 정치단체의 지지자들의 모임인 반면 유럽, 특히 북유럽권의 정치캠프는 말 그대로 활발한 사회참여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치토론회적 성격이 짙다. 물론 해당 정당의 정치성향에 가까운 사람들이 주로 참석하지만 반대자도 자유롭게 참여 가능하며 무엇보다도 정치색과 무관하게 정치캠프를 참관하여 정당정치와 정치토론을 직접 경험하는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학생들도 다수 참여한다.

그런데 이 섬에는 다리가 없어서 오직 만으로 이동이 가능해 사람들의 탈출이 어려웠던 데다 이 섬에는 무장을 한 사람이 범인 1명 뿐이었다. 게다가 범인은 경찰복을 입고 있어서 다들 행사진행을 돕는 경찰 정도로 생각하여 의심도 사지 않았다. 하지만 눈썰미가 깊더라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어야 했다. 경찰이나 군인, 소방관처럼 제복을 입는 공무원의 경우, 최소 2인이상이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상상황이 아니라면, 단독으로 미리 예정된 어떤 임무를 공식적으로 혼자 수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2~3명이 같은 제복을 입고 온 것이 아니라 혼자 단독으로 왔다면, 경찰이나 군복무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것이다. 처음에 경찰 제복 차림으로 혼자 강을 건너서 섬에 들어가겠다고 했을때, 경비원은 테러범의 무장에 대해 의심했고, 최초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 탓에 범인은 이들을 대상으로 별 저항도 받지 않고 무차별 총격을 하여 완벽히 고립된 장소에서의 일방적인 학살극이 벌어졌다. 범인은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퍼붓고 쓰러진 사람들을 향해 확인사살까지 하는 악랄함을 보여주었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브레이빅은 경찰복으로 위장하여 섬에 도착한 후 청소년들을 가까이 오라고 유인하고는 총기를 난사했다고 한다. "모두 가까이 오라"후 난사.. 노르웨이 총격 참상.

1차 총격을 피한 청소년들이 건물 안에 숨어있자 범인이 다시 거짓말로 '보트가 구조하러 왔으니 이쪽으로 오라' 고 유도한 후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총알에는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수준의 니코틴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니코틴이 폐를 통한 흡입이 아니고 피를 통해 직접 인체에 들어가면 치사율이 높다고. 아주 적은 양으로도 사망한다. 범인은 니코틴 용액을 인터넷을 통해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섬 남쪽에서 헬리콥터 소리를 듣고 구조헬기인줄 알았던 사람들이 나왔지만, 사실은 방송국 헬리콥터로 촬영을 목적으로 나온것이다. 이때 나온 사람 중 한 명이 허벅지에 총알을 맞아 관통상을 입었지만, 3번의 수술 후 생존했다.

약 1시간 30분 후 급히 출동한 델타부대[1]가 교통체증과 헬기를 구하지 못해 배편으로 섬에 상륙하자 범인은 투항, 테러는 종결되었으나 이미 수십여 명이 죽은 뒤였다.

총리관저 근처에서 폭탄이 터지고 노동당 청소년 정치캠프에 총리가 참석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테러범의 원래 타겟이 전 총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추측이 나왔으며 경찰 수사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범인의 목표는 노르웨이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가진 그로 할렘 브룬틀란 전 총리였다고 한다. 그러나 범인이 도착했을 때 브룬들란은 연설을 끝내고 섬을 떠난 뒤였고 브레이빅은 미래의 노동당원들을 전부 싹을 제거해버리겠다며 총기난사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2011년 7월 26일(현지 시간) 노르웨이 경찰은 사망자 명단 중 일부를 공개했다. 정부청사 폭탄테러로 죽은 사람은 8명이고 우퇴위아섬 총격사건으로 죽은 사람은 68명이라고 한다.

2 범인의 신상

이 문단은 브레이비크(으)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111129094244-inside-the-norway-terror-suspect-s-mind-story-top.jpg
혐짤
범인 체포 이후 크누트 스토르베르제 법무장관은 범인이 '노르웨이인' 이라고 발언하고 노르웨이의 최대 방송매체인 TV2가 "체포된 용의자가 극우 과격주의자들과 연관돼 있다" 고 하면서 이슬람 배후설은 완벽하게 사장되었다. TV2는 용의자의 신원을 노르웨이 동부 극우단체의 회원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Anders Behring Breivik, 32세)라고 밝혔다.

브레이빅은 범행 6일 전에 개설한 트위터에 처음이자 마지막 트윗으로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의 힘은 관심만을 가지는 10만 명의 힘에 맞먹는다"마카로프? 라는 메세지를 남겼다. 이는 존 스튜어트 밀의 "One person with a belief is a social power equal to ninety-nine who have only interests" 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참고로 interests는 이익이 아니라 관심이라고 해석해야 옳다. 말은 지극히 타당한데 이 인간이 말하니깐...

또한 브레이빅은 한국과 일본을 보수주의와 민족주의가 강한 이상적인 국가로 보고 유럽 역시 이 모델로 돌아가야 한다는 정치적 견해를 피력했다고 한다.미친놈아 끌어들이지마.... 좌파정당인 노동당을 타겟으로 한 점이나 범인의 소속 단체 등을 보아 현재로선 왜곡된 기독교 근본주의에 바탕을 둔 극우주의자가 저지른 백색테러로 기울어지는 분위기이다. 최근 유럽에서 불고 있는 극우민족주의의 바람이 결국 불을 지르고 만 것이다. 그나마 노르웨이는 극우민족주의의 세력이 약한 편이었는데... 오히려 극우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이 부족하기에 이런 테러전술을 사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일본의 적군파도 세력이 줄어들자 마지막 발악으로 무력투쟁을 했던것이며, 옴진리교도 선거를 통한 합법적인 일본 지배권 확보를 꾀했으나 당연하게도 실패하자 무력투쟁으로 노선을 바꿨다. 묘하게도 혹은 범인이 알고 있었지도 모르지만 한국과 일본에도 그와 비슷한 테러를 저지른 사람들이 있었다.

용의자는 기독교 근본주의자?하나님이 죄없는 사람들에게 총기난사하라고 하신 적은 없는데... 그런데 "종교는 나약한 자들을 위한 목발이다" 같은 반종교적인 발언을 한 걸 보면 극우인 건 맞지만 기독교 근본주의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출처. rationwiki에 따르면 불가지론자에 가깝다고 하며 기독교는 유럽 백인들을 단결시키는 문화적 도구로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위키피디아 영어판에 따르면 기독교적인 면과 불가지론-무신론적인 면, 토르와 오딘에 대한 신앙 등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정리하자면 인종주의, 민족주의, 가부장주의, 반여성주의가 사상적 근간이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사상과 종교를 근거와 수단으로 끌어 썼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위에 존 스튜어트 밀의 명언을 왜곡해서 거론한 것도 그렇고....

또 범인은 '한국과 일본은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범죄가 없고 잘 발전했다' 라고 했다. 참 남의 떡이 커보이는 법이다. 범죄가 왜 없어? 사실 그의 일기나 선언문에서도 "한국과 일본은(그 외 중국, 대만을 언급한 구석도 있다) 국경도 잘 막고 이민도 잘 막고 엔지니어들도 잘 배출하는데 유럽은 대학에서 히피만 양성한다." 일본 극우들을 무시하는 발언라는 글을 적기도 했다. 이 부분은 입시위주 교육의 쟁점 중에서 긍정론 주장을 참고하자. 상기 링크된 글은 언론사와는 다르게 상당부분 온건하게 브레이빅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미치광이 테러범에게 좋은 소리 들어봤자 하나도 안 뿌듯하다...

연합뉴스는 용의자 브레이빅이 외교관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보도했다. 부모는 브레이빅이 한살 때 이혼을 했다. AFP통신은 1999년에 브레이빅이 우파성향의 진보당에 가입했으며 지역 청년 지부에서도 활동을 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에서 진보(progressive)는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세력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극우성향의 정당에도 쓰일 수 있는 애매한 단어이다. 한국에서 진보라고 칭하는 성향과 정치세력은 외국에서는 그냥 좌파(left)이거나 좀 더 구체적인 이념을 붙여서 표현한다. 한국에서는 좌파라는 것에 부정적 의미가 아직도 매우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좌파 정당이나 세력에서도 진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 왔다. 브레이빅은 근 7년동안 그 정당에서 활동했다가 탈당했다. 탈당한 이유는 진보당이 다문화 반대에 미지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브레이빅의 친구에 따르면 브레이빅은 20대 후반쯤에 우파 성향의 극단주의자로 변했다고 한다.

또한 브레이빅이 작성한 장문의 연설문에는 여러 극우주의 단체의 상징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중에는 영국 내 극우단체들이 사용하는 문양이 있었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노르웨이 테러가 영국 극우단체와 연관이 있는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으며 이들이 영국 내에서 테러행위를 저지르는게 아닌가 불안해하는 여론이 생기고 있다. 그런데 영국 정보부 SIS는 이미 2011년 초부터 브레이빅의 동향을 파악하고 주시하던 중이라고 한다. 대단한 영국 정보부.

노르웨이 테러 용의자, 英 정보국 감시 대상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데 사귀지 못하여 좌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위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있으며 결국 미국으로 가서 성형수술을 하고 돌아왔다.
사실 많은 사회부적응 성향의 범죄자들은 이성관계에 평균보다 높은 관심을 가진데 비해 항상 실패와 좌절을 겪었음을 토로한다.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 상기 글에서 "예쁜 여자아이들부터 죽였다" 라는 보도 역시 범인의 그런 성향을 보여준다.
사실 생각해보면 성향 자체로 일반 동성집단에서 소위 고문관 취급을 받을 정도인데(브레이빅의 경우에도 지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성의 눈에 더더욱 저들이 매력적으로 보일리가 만무하다. 위험분자로 찍히지나 않으면 다행.

또한 브레이빅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의 유저라고 한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소수의 테러범이 자국의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다는 점에서 모던 워페어 2No Russian을 떠올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브레이빅이 범행 전에 인터넷에 공개한 성명서 페이지 1418에는 'WOW를 한다고 해서 준비할 시간을 벌어라' 고 하고 '모던 워페어 2는 훌륭한 모의 훈련을 할 수 있다. 멀티플레이어로는 거의 실제 작전 훈련을 모의할 수 있을 정도다' 라고 써놔서 아주 대차게 욕 좀 먹었다.

브레이빅의 아버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사람을 쏴 죽일바엔 차라리 자살했어야 한다고 비난했다.
노르웨이 테러범 아버지 "아들, 자살했어야"

그런 발언은 부자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며 관련 보도로 아버지는 몇 년 전 아들이 간절히 만나달라고 부탁했으나 매정하게 거절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테러범, 외교관 출신 친아버지에 적개심…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 은 '2083:유럽독립선언' 에서 만나고 싶은 6명의 정치인을 이야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푸틴의 대변인은 이에 대해 "미친 놈의 헛소리" 라고 일축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나토 사령관도 너 싫어하신단다 '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자유당 당수(네덜란드 자유당은 이슬람 반대, 비유럽게 이민 반대, 외국인 추방을 내걸고 있는 극우정당이다. 범인 브레이빅은 네덜란드 자유당을 유럽에서 가장 모범적인 정당으로 찬양했다), '라도반 카라지치'(보스니아 내전 당시 '인종청소' 범죄를 주도한 인물) 전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 등을 만나고 싶다고 기술했다. 해당 내용은 인터넷 선언문(2083:유럽독립선언)에서 1천 407쪽에 등장한다고 한다. # 극우주의자인 범인은 본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과 일본을 보수주의와 민족주의가 강한 이상적인 국가라고 평했다.

2015년 7월, 브레이빅이 오슬로 대학 입학 허가를 받아냈다. #
물론 브레이빅은 교도관들의 엄정한 감시 하에 일반 학생들과는 철저히 격리된 상태[2]로 수업을 받게 될 예정이고 수업이 끝나는 즉시 감옥으로 다시 복귀하는 등 일반 학생과는 전혀 다른 대우를 받게 되지만 그렇다 해도 법정이 흉악범에 대한 교육의 권리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크다. 게다가 오슬로 대학 학생들 중 일부는 테러 희생자의 유족이다.(...)
사실 이는 북유럽 쪽에서는 당연한 처우다. 북유럽 국가들은 형벌을 범죄 행위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교화로 생각하기 때문.

3 재판 진행 과정

범인의 변호사인 예이르 리페스타드(Geir Lippestad)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의뢰인은 '미쳤다' 고 발언하여 심신미약으로 형량 감소를 추구할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저 발언만 놓고 보면 피고인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리페스타드 변호사는 테러의 대상이 된 노르웨이 노동당원인 데다가 오슬로 노르스트란 구의 의장이라고 한다.## 즉, 저 발언은 피고인과 면담 때 광기에 찬 피고인의 언행을 변호사 본인조차 납득할 수 없었기에 나온 말이라는 것이다. 사실 브레이빅이 예이르 리페스타드를 직접 지명한 만큼 리페스타드의 정치적 위치를 몰랐을 리는 없을 것이다. 아마 변호사 지명 자체가 트롤링으로 보인다. 변호사 윤리장전에 의거하여 변호사는 의뢰인의 범죄로 인한 사회적 비난을 의식해서 수임을 거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점을 노리고 지명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2011년 11월 29일 브레이빅을 담당하던 의사는 브레이빅이 정신분열증(망상장애, 편집증)을 가지고 있으며 범행 당시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니라는 소견을 내놓았다. 그걸 근거로 검찰 측은 피고인이 정신분열증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소견을 내놓기도 해 피고인이 교도소행이 아니라 정신병원행이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사실 검찰측이 머리를 썼을 수도 있다. 징역 21년에 법정 최고형이 선고된다고 해도 브레이빅이 석방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하지만 정신병자로 처리된다면 석방은 의사의 고유 권한이니 사실상 무기한 감금이 가능해진다.

참고로 사형무기징역이 없는 노르웨이의 현행법에 따르면 브레이빅에게 선고될 수 있는 법정 최고형은 징역 21년형이다. 노르웨이는 1905년에 스웨덴에서 독립할 때부터 사형제도가 없었고 2002년에는 무기징역마저 폐지했다. 다만 테러 대신 반인륜범죄 혐의로 기소하면 징역 3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고 한다.## 때문에 '왜 흉악범죄자조차 일괄적으로 최고형이 겨우 저 정도냐' 는 의문이 나오는데 저런 형법은 인권적 측면에서 21년 이상의 장기 형량을 일시에 구형하는 걸 금지하고 있을 뿐 21년 복역 이후 무조건 출소하는 게 아니다. 물론 21년 선고를 받았다고 해서 다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방적 구금에 한해 21년이 지난 후 사법부에서 수감자의 죄질과 교화 상태 등을 심사해서 죄값을 충분히 치렀다고 여겨지면 석방하고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5년을 더 복역하게 하며 그 5년 뒤 또다시 5년을 더 연장할지를 다시 심사한다.

요약하면 노르웨이의 최대 형량은 실질적으로 21년이 아니라 예방적 구금이 추가된 (21+5n)년이라는 것. 덧붙여 그런 법리에 따라 이번 테러의 주범인 브레이빅은 21년 후 5년씩 계속 연장되는 형태로 사실상 무기징역형을 받을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참고로 2014년 현재 브레이빅과 같은 예방적 구금 대상자는 도합 20명이다.

그리고 2012년 8월 24일, 오슬로 지법은 브레이빅의 정신상태를 정상으로 보아 법정 최고형인 징역 21년과 예방적 구금을 선고했다. 그리고 브레이빅이 항소하지 않음으로써 형량이 확정되었다.

4 영향

오슬로는 매년 노벨평화상 수상식이 열리는 도시라서 국제적으로도 평화의 상징 같은 이미지가 강했다. 이런 오슬로에서 자국민을 상대로 한 테러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온 세계는 경악하고 있다.

특히 유럽이 큰 충격을 받았으며 극우민족주의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으며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약진한 극우파들이 이번 사건으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때문에 프랑스 백인우월주의 정당인 국민전선 총재였다가 은퇴한 장 마리 르펜은 범인을 이해한다는 개드립을 했다가 바로 국민전선에서 '당신은 입다물라' 는 핀잔을 듣게 되었을 정도.

5 일부 언론과 노르웨이 현지 경찰에 대한 비판

사건 초기에는 이슬람 테러조직 배후설이 제기되었다. 알 카에다는 이미 2005년 영국 런던 지하철-버스 테러와 스페인 마드리드 아또차 역 폭탄테러를 감행한 전례가 있어서 유럽 국가에 대한 추가공격 가능성이 있었고 오사마 빈 라덴 사망에 대한 보복일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이었다.

특히 이스라엘의 외교 소식통은 테러의 배후를 무슬림으로 지목하며 그 가능성을 제기했다. 노르웨이가 리비아를 공격하고 있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회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에 노르웨이 정부는 알카에다의 용의자들을 감옥에 수감하고 있다. 2011년 7월 11일~16일 사이에 노르웨이 검찰은 이라크 출신 성직자 크레카를 기소했다. 크레카가 자신을 추방하면 정치인 등을 살해할 것을 미리 예고했다는 것.#

그러나 이는 성급한 넘겨짚기였다. 노르웨이가 리비아 공격에 제공하는 군사력은 F-16 전투기 6기와 C-130 수송기 2기가 전부로 극히 미약하여 리비아 공격에 대한 보복이라기에는 너무 상징성이 낮았다. 무엇보다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아랍권에서도, 심지어 알 카에다에게도 까이는 지경인데 무슬림 테러단체가 보복을 할 만한 영향력이 없었고 또 다른 가능성인 오사마 빈 라덴의 복수라기에도 역시 상징성이 너무 적었다. 런던 테러나 마드리드 테러의 경우 각각 G7 정상회담과 스페인 총선을 노린 정치적 의미가 컸다. 게다가 두 도시가 2012 올림픽 개최지 후보도시였다는 것도 공교로운 점이었다. 특히 런던은 2012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그 다음 날에 테러가 터졌다. 그러나 이번 테러는 그러한 정치적 행사와 시기적으로 안 맞았다. 결과론적으로 대아랍 강경책의 명분을 얻으려던 이스라엘의 설레발에 불과했다.

결국 나중에 범인의 신상이 밝혀지면서 사건 초기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슬람이 저지른 테러라고 단정지은 언론은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월 스트리트 저널 등 미국 내 보수 언론들과 유럽 내 언론들조차 초기에 범인이 누군지 정확하게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이슬람 세력일 것이라 단정짓고 보도를 했기 때문.노르웨이 학살극, 유럽언론의 '이슬람 죽이기' 결과물 무슬림에 의한 테러가 전체 테러 사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것은 사실이고, 이때문에 거의 모든 테러는 무슬림에 의해 발생한다는 편견어린 인식이 대세인 것 또한 사실이나, 이런 편견이나 배경(무슬림에 의한 테러가 전체 테러 사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에 무관하게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서 객관적인 뉴스를 전달해야할 언론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슬람 측에서 저지른 테러라고 단정지어 오보를 낸 점은 언론윤리 측면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경찰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오슬로 청사 폭탄테러는 둘째치고 우퇴위야섬 총기난사는 경찰이 신속히 출동했다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처음 총기난사가 시작되어 학생들이 미친 듯이 경찰에 전화를 했는데 그 지역 교환원이 한명뿐이라 한명만 통화, 나머지 대기. 그리고 신고해서 통화된 학생 말이 장난인지 알고 여러번 그냥 끊었다고 한다. 학생들이 답답해서 가족에게 전화나 문자로 경찰에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을정도. 그리고 특공대는 총기난사가 시작된지 55분이 지나서야 도착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노르웨이 경찰은 하나뿐인 조종사가 휴가 중이어서 헬리콥터를 구하는 데 문제가 생겨 초동 대응이 늦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노르웨이 경찰이 희생자 숫자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비판이 더해졌다. 이는 억지비판일 수 있다. 갑작스런 사건에서 곧바로 희생자 숫자 파악이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어쨌건 이미 영국 정보부의 경고 등 사전에 조짐이 보였음에도 막지 못하면서 그동안 노르웨이 경찰이 오랜 평화에 젖어 능력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은 특공대를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고 섬에 안 들어가고 기다렸고, 이는 출동한 경찰들은 한 명으로 파악했지만, 델타부대는 현지의 경찰 간부의 딸과 연락하며 범인을 여럿으로 파악해서다[3]. 그리고 델타부대는 디지털 통신체계를 사용했지만, 경찰측은 아날로그에서 교체작업이 진행되던 중 이기 때문에 서로간의 통신도 되지 않았다. 특공대가 오고 나서는 무거운 장비(방탄복이며 총기)를 소지하고 급한 마음에 23명 중 10명이 쪼끄만 경찰보트를 타고 들어가다가 무게 때문에 보트가 점점 가라앉아서 근처에 있던 개인소유의 민간 요트로 중간에 바꿔 타고 섬에 들어갔다. 이런 뻘짓들이 다 찍혔고 후에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다.

6 기타

사상 최악의 참사 시즌 6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또한 브레이빅은 버줌의 팬이었다고 하며, 편지를 보낸적도 있다고 한다. 버줌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서는 항목 참조.
  1. 노르웨이의 대테러부대
  2. 아마 해당 교수들이 브레이빅을 위한 별도의 강의를 진행할 공산이 크다.
  3. 총성이 숲 곳곳에서 울리니 피해자들은 여럿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