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개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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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오웬 개리엇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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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우주 비행사 게임 개발자. 전문 우주비행사가 아니긴 하지만 우주비행을 한 부자라는 희대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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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미국 최초이긴 한데 세계 최초는 아니고, 개리엇 옆의 세르게이 볼코프에 이은 콩라인이다. 우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1] 카자흐 모자를 쓴 위엄 돋는(...) 사진. 볼코프의 옆에 있는 비행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세르게이 볼코프의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볼코프로, 살류트와 미르 시절 소련 우주비행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별명로드 브리티쉬, 우주먹튀
출생1961년 7월 4일 (영국)
소속그런 거 없다
직업우주 비행사
경력2008년 민간인으로서 3번째로 우주에 나감
2001년 엔씨소프트 미국현지법인 엔씨오스틴 개발총괄이사, 타뷸라라사 제작
2000년 데스티네이션 게임즈 설립
1997년 스타크래프트 개발 참여
1982년 ~ 1992년 오리진시스템 공동설립
1980년 게임 아칼라베스 발표

1 전성기

Richard Allen Garriott. 최고의 RPG 시리즈 중 하나인 울티마 시리즈의 개발자로 존 카멕, 시드 마이어, 윌 라이트 등과 함께 90년대까지 서양의 대표적인 천재 게임 개발자로 유명하다. 오너캐로는 울티마의 로드 브리티쉬와 샤미노, 타뷸라 라사의 제네럴 브리티쉬 등이있다.

NASA우주인이었던 아버지 오웬 게리엇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경영학을 전공한 형 로버트 개리엇은 울티마의 첫 시리즈부터 리처드 개리엇과 함께 게임을 개발했으며, 울티마 시리즈의 공략집을 "로버트 경(Lord Robert)"이라는 필명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현재는 엔씨소프트 미국지부 CEO로 근무중이다. 학창 시절 취미로 만들던 D&D 기반 롤플레잉 게임 아칼라베스를 동네 컴퓨터 가게를 통해 팔면서 게임 개발자 인생을 시작한 리처드 게리엇은 울티마 시리즈를 만들면서 본격 프로 게임 개발자로 나서게 되고 1983년부터는 자신의 게임 회사인 오리진 시스템즈사를 창립한다.[2] 특히, 울티마 4가 '최초로 철학을 담은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대박을 치고 거장의 반열에 오른다. 비디오 게임 개척 시대 때의 거장들이 흔히 그렇듯 대표적으로 화장실 갈 때 빼고는 코딩만 하던 존 카멕. 리차드 게리엇 또한 울티마 3 까지 코딩은 물론 기본적인 스크립트 작성까지 직접 했으며, 심지어 도트도 혼자 찍었다고 한다(...) 회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진 후에 발매된 울티마 5까지 직접 프로그래밍을 했다고 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후의 행보가 워낙 먹튀였기에 국내에서는 기존 업적까지 같이 까이곤 있지만, 울티마 시리즈는 게임 역사상 길이 남을, 컴퓨터 RPG의 틀을 확립한 역작이며 명작이다. 나중에 만든 게임이 워낙 졸작이라 까이지만, 울온이나 다른거 다 빼고 울티마 5-7편만 따져도 대단한 게임개발자이다.

재미있는 특징이 있는데, 3D 액션성이 가미된 게임(울티마 8, 9, 타뷸라 라사)은 보통 망작테크를 탔고, 당시 하드웨어 성능이 받쳐주지 못해서 3D 액션을 시도하지 못한 게임들(울티마시리즈 7편까지 및 울온)은 명작소리를 들었다. 이쯤되면 3D 액션을 포기할 법도 하지만, 리얼한 가상현실과 같은 RPG를 만드는 걸 선호하는지라, 여건만 되면 무조건 3D 액션을 시도했다(…). 이런 리차드 개리엇의 이상은 리차드 개리엇 본인의 손을 떠나 엘더스크롤 시리즈에서 완성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

의외로 매직 더 개더링도 즐겨 플레이했던지, 매직 2015 코어 세트에선 아바타의 방패라는 카드의 디자인을 맡았다.

루리웹의 한 이용자는 90년 6탄을 통해 울티마 팬이 되었고, 곧 미국에 가게 되어 그곳에서도 즐기기 위해 국내판 울티마 클래식(1~3편 합본), 4, 5, 6편을 다 구입했다. 그런데 미국 친구들이 가진 해외 원판 패키지는 열악한 국내판과 달리 지도가 진짜 헝겊으로 되어 있고 각종 기념품도 들어 있는 등 고퀄이라 빡친 이 유저는 제대로 된 지도를 받기 위해 직접 리처드 개리엇에게 편지를 보냈고, 리처드 개리엇은 친필 편지와 함께 울티마 VI 헝겊 지도를 보내줬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2000년대. 이 유저의 여동생의 남편이 NC소프트에 다니고 있어 이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 떠나기 이전 로드 브리티쉬로 칭송받던 시절) 6개월 후, 아칼라바스 오리지날 초도 물량[3]를 직접 받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아이템. 베스트 댓글이 스페이스먹튀가 지구인에게 전하는 사랑과 감동의 우주판타지.#

2 몰락

울티마 7-1편 제작 후인 1992년, 오리진 시스템은 EA에 3500만달러라는 헐값에 인수된다. 인수와 동시에 불행은 시작되었다. 리처드 게리엇은 EA와 계약시 저작권을 모두 EA에 갖다 바친다는 계약서에 약관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서명을 했고 그 결과, 인수된 직후 EA의 경영진으로부터 자신의 팀을 지킬 발언권도 얻지 못한다. EA는 자사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게임을 개발하기를 고집했고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던데다가, 자신들이 하고 싶은대로 개발을 하고 게임을 내는 분위기에서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리처드 개리엇의 팀은 시리즈 최대의 망작으로 불리는 울티마 8을 발매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리처드 게리엇은 EA가 부분매각한 저작권 문제에 휘말렸고 울티마의 저작권만이라도 되돌려 받기 위해 여기저기 스탭으로 불려다니며 강제노역을 하는 노예 생활로 세월을 보낸다. 이 일화는 그에게는 불행이겠지만, 후일 거대 기업과 계약하게 되는 게임 개발자들이 약관을 반드시 읽게 되는 효과를 가져왔으니 다행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저작권 문제가 마무리 되자마자 리처드 게리엇은 EA를 퇴사하고 엔씨소프트의 러브콜을 받아 입사한다. 엔씨가 개리엇을 영입한다는 소식이 일으킨 파장은 전세계의 게이머들을 휩쓸기 충분했으며, 이 덕에 리니지 2가 북미에 진출하여 성공적인 궤도를 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게리엇은 엔씨의 이사로 취임한 뒤 타뷸라 라사의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으나, 리처드 개리엇이 생각한 구상과 엔씨 내부의 방침이 달라서 제작 초기부터 여러 번 충돌하였고 서로 견제와 견제를 반복하는 뻘짓 끝에 리처드 게리엇은 게임 산업에 진저리를 내고 엔씨소프트를 퇴사했다. 퇴사 이후, 엔씨소프트가 준 주식을 팔아 120억 가량의 순익을 보고, 엔씨가 사기쳤다면서 2400만 달러 상당의 소송을 걸었다. 관련 기사(영문) 소송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엔씨소프트가 자신을 "해고"했음에도 "자진퇴사"한 것처럼 임의로 꾸며, 결국 엔씨소프트의 주식 가치가 낮은 상황에서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에 금전적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디스이즈게임 관련 뉴스(해고 됐을 경우 스톡옵션 행사는 언제나 가능하지만 자진퇴사는 9개월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1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이에 대해 항소한 상황. 하지만 항소심에서도 개리엇이 승소했다.

이 사건까지 싸잡아서 우주먹튀라 까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엔씨소프트의 병크다. 리처드 개리엇은 그저 자기가 가진 재산을 정리했을 뿐. 정리해고나 권고사직 등을 자진퇴사한 것처럼 속여서 처리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나 일본에서나 통하는 야근제국들의 한심한 관행이고, 실제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소송을 걸 경우 회사가 사원을 상대로 목줄 잡힐 수 있는 몇 가지 병크 중 하나다. 회사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대놓고 무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돼도 회사가 자신의 책상을 치우기 전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냥 사직서 내면 정말 지는 거다. 허나, 저걸 실행할 멘탈이 유리같은 분들은 그저 안타까울 뿐..

리처드 게리엇의 퇴사 후 발매된 타뷸라 라사는 패키지가 아마존에서 하나에 1달러에 팔리는 굴욕을 겪을 정도의 괴작이었고 국내에서 그의 입지는 바닥까지 추락하게 된다.비판적인 견해글 또한, NC를 퇴사한 리처드 개리엇이 우주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세계로부터 "우주먹튀"라는 별명이 붙어 버렸다. 한국에서 게리엇의 먹튀 이미지가 남은 건 우주여행도 우주여행이지만 타뷸라 라사의 제작비가 무려 1000억 원이 넘게 들었다는 점이 클 것이다. 지금이야 GTA 시리즈,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등 대작 게임들의 개발에 제작비가 1억 달러가 넘게 들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오지만 당시에는 게임 하나 개발하는 데 이 정도의 시간과 돈이 든 적이 전무했으니 말이다.

리차드 개리엇이 비록 타뷸라 라사를 쫄딱 말아먹었지만, 이래저래 NC소프트에 공헌을 했다는 우호적인 의견도 있다. 길드 워를 개발한 아레나넷을 인수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미국내 개발사들의 인맥을 활용해 NC의 미국내 입지 확보에 공헌했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가 엔씨소프트를 나가고 난 뒤의 행보로 인해 국내에서의 인식은 우주먹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옛 명성은 언급조차 안 되는 수준.애초에 국내에서 이 양반이 이룬 업적을 제대로 아는 양반은 진짜 골수 겜덕이 아닌 이상 거의 없다

한국에서는 타뷸라 라사의 실패만 언급하지만, 사실 그의 가장 큰 실패작으로는 울티마 8을 꼽는다. 이에 대해 유로게이머와 인터뷰한 것이 있는데, 타뷸라 라사와 울티마 8 실패의 공통점은 모두 회사가 팔린 직후에 만들어졌고, 그 회사들이 하나같이 매우 강한 의견을 갖고 있었다는 공통점을 언급하였다. 울티마 8의 경우, EA는 당시 매년 시즌 직전 발매되는 스포츠 게임들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고, 덕분에 정확한 출시일을 가장 중시했다고 한다. 덕분에 울티마 8은 출시일을 지키기 위해서 미완성작으로 발매되었다. 게임패키지에 주어지던 헝겊지도와 실제 게임상 지도가 아무 관련이 없을 정도(...) 사정이 이렇다보니 울티마 온라인이 성공한 이유는 울티마 7을 울궈먹었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타뷸라 라사의 경우는 엔씨소프트 측에서는 서양의 유저층에 먹힐만한 게임을 원했고 리처드 게리엇은 아시아 시장을 노리는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다고 한다.

엔씨와의 소송전이 마무리된 후에는 Portalarium이라는 회사를 설립, Port Casino Poker와 Port Casino Blackjack이라는 페이스북 도박게임을 만들었고, 이후 Ultimate Collector라는 소셜 네트워크 게임을 만들었지만 보도자료를 찾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성적을 냈다.

이후 14년 10월 출시를 목표로 울티마 세계관은 아니지만 울티마의 계승작을 자처하는 Shroud of the Avatar를 킥스타터에 올려 올드 게이머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장르는 MMORPG. 동년 11월 24일 스팀 얼리 액세스로 발매되어 44.99달러에 판매중이다. 게임에 대한 평가는 스팀 유저 평가 기준으로 복합적으로 특히 최근 평가의 대부분은 부정적인 평가로 매우 나쁜 편. 초기의 울티마 팬덤의 지지가 빠져나간 이후로는 매우 평이 나쁘다. 2016년 8월 시점으로 아직도 얼리 억세스에 머물러있는데, 펀딩 총액이 1천만달러를 돌파했는데, 펀딩을 위한 방법이 아주 멋지다. 아직 얼리 억세스가 끝나지 않은 게임에서 부분과금 아이템의 판매를 시작한 것. 작게는 날림으로 만든 성의없는 날개 장식 아이템을 한정판으로 20달러에 판매하는 것에서 부터 크게는 게임 내의 부동산을 유료 과금으로 판매하는데 100달러에서 시작하는 작은 집에서 부터 무려 12000달러(!)에 달하는 성까지 팔고 있다.

2015년 현재는 무중력 체험 비행 업체인 제로-지의 대표이사이다.

3 우주 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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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어드벤처 社(Space Adventures, Ltd)의 역대 첫 우주 관광객으로 기록된 인물이기도 하다. 우주먹튀 참고로 이소연이 타고 ISS에 도킹했던 소유즈 TMA-12에 탑승해서 귀환했다.[4]

1993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973년 발사된 달 탐사선 루나 21호 및 루노코드 2호를 한화 약 7000만원에 경매받았다. 루나21호 ,루노코드2호

2010년엔 또 이 자기 거라고 주장하는 중. 이상하게 우주와 관련되어서 이런 저런 사건을 만든다. 아버지가 우주인이어서 그런가...[5] 그렇다고 이런 또라이짓이 이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 달과 같은 우주영토는 우주조약으로 특정 국가에 소속되게 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기는 하나, 개인 소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서 달이나 화성에 부동산을 하는 작자들도 있으니 저 정도면 양반일까.

2013년에는 레딧에서 AMA[6]진행하기도 했다. 우주 여행을 통해 삶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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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내용이 궁금하다면 홈페이지를 참조.
  1. 볼코프는 반년 전 이소연이 우주비행을 할 때 처음 올라갔다가 개리엇과 함께 귀환했다.
  2. 울티마 2까지는 다른 회사에게 유통을 맡겼는데 유통사에서 자신이 만든 게임의 로열티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었고 심지어 유통사 직원들이 가로챈 수익의 대부분을 마약 사는 데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직접 회사를 차려 게임을 팔아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3. ebay에서 게임 디스크는 빠진 패키지가 5000달러 정도에 낙찰된 적이 있다. 애초에 50부 정도만 만들어진 물건인지라 풀 패키지의 값어치는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4. 둘의 비행 일정이 겹쳤던 것은 아니고, ISS 엑스퍼디션의 인원 교대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3인이 ISS에 방문하는데 한 사람은 단기체류 목적일 경우 몇 달 전부터 ISS에 있다가 집에 가는 사람들의 다른 소유즈에 타고 돌아오는 식. 러시아만 이러는게 아니고 미국의 우주왕복선 임무에서도 우주정거장 도킹 미션에서는 A가 타고 갔다가 올 때는 B가 타는 일이 흔히 있었다. 우주정거장 시대가 열리면서 우주선의 인원 배정이 복잡해진 예시라 할 수 있다. ISS 엑스퍼디션 16팀과 17팀의 교대 일정에서 ISS에 갔던 이소연은 엑스퍼디션 16팀의 소유즈 TMA-11을 타고 귀환했으며, 개리엇은 17팀과 18팀의 교대 시기에 올라가서 17팀이 타고 온 TMA-12를 타고 돌아왔다.
  5. 아버지 오웬 개리엇아폴로 계획 시절에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었다가 후기 미션이 취소된 뒤 스카이랩 3호 미션에서 활동하였고, 1983년 우주왕복선 미션 STS-9에서도 활동했다. 이 바닥에선 네임드.
  6. Ask Me Anything. 말 그대로 유저들에게 질문을 받는 것으로 빌 게이츠버락 오바마도 한 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