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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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대통령 후보
기호이름기호이름기호이름
1정동영5심대평9전관
2이명박6문국현10금민
3권영길7정근모11이수성
4이인제8허경영12이회창

문국현(文國現, 1949년 1월 1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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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이자 전 국회의원·정치인이다. 서울특별시 출생이며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종교가톨릭이며, 세례명은 그레고리오이다.

1961년 서울 돈암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동성중학교, 1967년 중동고등학교, 1971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했다. 197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5년부터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킴벌리 클라크 동아시아 총괄사장직, 그리고 KT 사외이사직으로 있었으나 모두 사임하고 2007년 8월 23일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선언을 했다. 10월 30일 새로 창조한국당을 창당하고 11월 4일 대선후보로 추대됐고, 유효득표의 5.8%를 득표하여 낙선했다. 하지만 주요 후보들의 소속 정당 및 이름을 가린 Blind Voting에서는 비록 인터넷 이벤트였을지언정 당당하게 1위를 차지, 정책의 경쟁력이 매우 강한 후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참신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가지고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두 딸이 모두 비정규직이라며 약자의 아픔을 안다는 등의 개드립을 쳐댔으나, 막상 두 딸이 증여세를 납부하지 않고 6억 가량의 현금과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그러나 이에 대한 문국현 본인의 대응이 대단히 유치했고, 선거운동본부에서도 "법적으로 문제 없다"는 내로남불식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무조건 쉴드치는 부류를 제외하고 꽤 많은 지지 기반을 상실한다. 참고로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출신의 장유식[1] 변호사가 문국현의 대변인으로서 이런 변명을 했었다(...) 사회정의고 나발이고 우리가 하면 로맨스일 뿐

2008년에 열린 18대 총선에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선거구에 창조한국당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 48,656표(52.02%)를 득표하여 3선 의원인 한나라당이재오 후보를 약 10,492표차로 이기고 당선됐다.[2]

2009년 9월 1일까지 창조한국당자유선진당의 연합 교섭단체인 '선진과 창조의 모임'의 대표를 지냈다.

2009년 10월 22일, 선관위의 지도를 받아 1%의 이자로 발행한 당사랑채권이 시중 금리(당시 5%)보다 낮다는 이유로 4% 차이만큼 당이 잠재적인 금전적인 이익을 얻은 죄를 물어, 당을 처벌할 수 없으니 자연인인 당 대표를 처벌하였다. 대법원 판결에서도 4인의 대법관들이 합의를 보지 못하자 전원합의체로 돌려 9:4로 대법원 전원 합의체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의 형이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리고 이 틈을 타 이재오가 이듬해 보궐선거를 통해 지역구 복귀에 성공했다.

의원직 상실 후 정치계를 떠나 2009년부터 김광수경제연구소 고문을, 2010년 부터 뉴 패러다임 인스티튜트 대표이사를 지내고있다. 2013년부터는 한솔섬유의 사장을 맡고 있다.

2 기타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2007제17대 대통령 선거창조한국당1,375,498 (5.8%)낙선 (4위)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은평 을)창조한국당48,656 (52.0%)당선 (1위)2009. 10. 22 의원직 상실
(정치자금법 위반)
  1.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남편
  2. 이 선거는 계파 갈등과 공천 문제 때문에 친박계가 친이계 후보들의 낙선을 위해 아예 대놓고 야당 후보를 밀어 버린 선거이기도 했다. 이거 때문에 사천에서 강달프가 몰표를 얻은 희대의 대이변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