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픽션


1 정의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지칭하는 단어. 처음에는 하드 SF로서 시작되었으며, 원래 의미도 그것이었다.[1]

현재까지도 SF의 정의에 대해서는 SF 관련 종사자들 간의 의견이 분분한데, 가장 널리 알려진 SF와 비 SF를 분류하는 방법은, 캐나다의 저명한 SF 작가인 로버트 J. 소여가 말했던 '현재에는 없을지라도 인간의 인식이 닿을 수 있는 부분을 다루는 장르'로 분류하는 것이 대부분이다.[2]

유명 SF 작가 데이먼 나이트(Damon Knight)가 말한 바에 따르면, "과학 소설이란 내가 손을 들어 '이것이 바로 과학 소설이다'라고 가리키는 것이다" 라고 정의했다.[3] SF 정의는 모호한 어떤 것이 아니라, 자신이 SF라고 가리키는 것에 대한 실체가 명확하게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1.1 잘못된 정의

SF라는 용어는 한국에선 간간이 SFX(특수효과물) 등과 혼용되어 사용될 때가 종종 있다. 《디 워》를 'SF'라고 홍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이건 뭐 논란의 여지가 없다.[4]

과거 나우누리 시절, SF 게시판에서 한 사용자가 (SF란) 'Super Fantasy'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저 정의(定義)를 뛰어넘는 명문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Space Fantasy의 줄임말로 아는 사람도 있지만, 이 또한 잘못된 말이다. 스페이스 판타지는 장르가 아니라, 독자들이 SF도 아니고 다른 소설로 부르기도 모호한 소설들에 붙인 이름이다.

S.F.는 두 단어의 줄임말이라, sf라고 소문자로 쓰면 안 되고, 될 수 있으면 S.F.라고 부호를 찍거나, SF라고 대문자로 쓰는 편이 옳다.[5]

도라에몽》의 작가 후지코 후지오는 "내게 SF는 Science Fiction이 아니라 조금 신기한(Sukoshi Fushigi)의 줄임말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1.2 Sci-Fi

1954년, 미국 SF 팬덤계의 거물 포레스트 J. 애커맨은, 저예산의 B급 SF 영화와 펄프 SF 소설을 Sci-Fi라고 지칭했으며, 이는 1970년대에는 쌈마이 SF를 경멸적으로 일컫는 용어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경멸적인 뉘앙스보다는, '진지한 하드 SF가 아닌 모든 것'을 일컫는 말로 주로 쓰이고 있다.[6]

어차피 Science Fiction이든 Sci-Fi든 약어는 모두 SF라, 하드 SF든 쌈마이 SF든 그냥 SF라고 쓰면 다 통하는 게 이 용어의 장점이다.

그런데 지금은 SF 장르를 다룬 영화를 나타내는 말로 Sci-Fi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일부에선 정통 SF 쪽에선 그렇게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고, 《스타워즈》 등의 스페이스 오페라를 부를 때 쓴다고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SF라 칭하지 않고 전부 Sci-Fi로 표기한다. SF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더 많거나, San Francisco의 약자인줄 안다. 1970년대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은 Science Fiction의 약자는 Sci-Fi로 거의 굳어진 듯하다. 위키피디아에서도 Science Fiction의 약자를 Sci-Fi로 표기하고 있으며 ("Sci Fi", "Scifi", and "Sci-Fi" redirect here. For other uses, see Scifi (disambiguation).) SF라고 키워드를 쳤을 때 어떤 목록이 뜨는지 확인해 보라. 구글에서도 SF라 검색했을 때 뜨는 건 San Francisco이고, Sci-Fi라 검색했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Science Fiction이 검색된다.

1.3 사변소설 논쟁

사변소설 역시 SF(Speculative fiction)로 약칭된다. 하지만 사변 소설은 SF만이 아니라 판타지호러 등 사실주의에 기반을 두지 않은 여러 장르를 포괄한 개념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는 SF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와 별개로, 장르적인 영역에서 판타지 소설 진영과 과학 소설 진영의 논쟁은 상당히 첨예하다. 판타지 소설 진영에서는 비경험적, 비현실적인 부분을 과장하여 스페이스 판타지로 분류하여 판타지 일부에 넣으려고 하고, 과학 소설 진영에서는 문학적, 시장적으로 선진적인 위치를 점해왔던 과학 소설 팬덤 틀 안에서 판타지 소설이 태어났다는 역사적인 경위를 들어, 판타지를 과학 소설의 일개 분파로 보려는 시각이 존재한다.

어떤 쪽의 의견의 손을 들어주든, 과학 소설과 판타지 소설의 경계가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사실 이런 소재적인 논쟁은 그 성과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소재에 대한 논쟁은 다람쥐 쳇바퀴 돌기이며, 주의해서 봐야 할 점은 그 장르에 대한 팬덤이 확실히 나누어지는지에 대한 여부이다. 적어도 판타지 소설 팬덤과 과학 소설 팬덤은 위의 대립에서도 보이듯 경계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SF를 공상적이라고 몰아붙일 필요도 없고, 판타지를 사생아라고 깔볼 필요도 없다. 그런 점에서 더욱 주의해서 봐야 할 점은, 지금 한국에서 판타지소설과 SF 같은 장르 소설이 그 장르를 누리는 팬덤들 안에서 어떤 특징을 보이느냐는 점이다. 장르는 공상적이라거나 죽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장르란 자연 발생적인 어떤 현상으로, 그 장르의 팬덤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를 확인하고, 그 장르 팬덤의 특징을 정리하는 식으로 공시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북미와 유럽지역의 과학 소설 팬덤은 아직 건재하다고 봐야 하겠다. 80년대의 사이버펑크를 넘어 나노기술을 다루는 나노펑크, 생물학을 다루는 리보펑크를 통해 비현실적, 비경험적인 소재를 계속 다루고 있다. 다만, 해외의 팬덤들은 현재의 휴고상, 네뷸러상 수상작의 추이에서 보이듯, 판타지소설, 과학소설의 경계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을 SF로 받아들이고 있음은 부언(附言)해 두자.

1.4 SF의 명칭 번역

일단 국내에서는 공상 과학 소설이라는 명칭이 주로 쓰여 왔는데, 이에 대해 국내 팬덤에서는 잘못된 번역의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즉 미국의 SF 잡지인 Fantasy & Science Fiction의 명칭이 일본을 거쳐 잘못 번역된 결과라는 것이다. Fiction이라는 단어가 허구라는 뜻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이걸 고려해서 정확히 번역하면 과학소설이라는 것이다.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조어는 판타지 소설과 과학 소설의 정의가 중첩된다고 하며, 판타지 소설과 과학 소설의 접점에 대해서는 언제나 논쟁거리였으나, 적어도 "Science Fiction에 대한 번역은 '과학 소설'이라는 간단한 번역이 더욱 알맞다 하겠다" 라는 것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Science Fiction이라는 영어단어에는 창작물(Fiction)에 과학(Science)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쪽에 가깝지, 공상 속의 과학(기술이라면 모를까)이라는 뉘앙스를 가진 '공상 과학'이라는 말과는 완전히 딴판의 의미이다.

하지만 과학소설 속 설정 중 상당수는 "공상 과학"이라든가, 아이들이 보는 무언가라 치부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면이 분명히 있다. 타임머신, 창조신 역할을 하는 컴퓨터, 시공간인과율을 주무르는 초인, 열역학 법칙 무시… 그렇지 않은가? 수많은 "~했다 치고", "~있다고 가정하고" 식의 설정은 결국 마법과도 그리 다르지 않다. 과학보다는 유사과학에 가깝다.[7]

이러다 보니 일부SF가 오히려 비과학, 사이비 과학과 연관지어지며, "애들이나 보는, 과학을 왜곡하고, 허황한 상상력만 부추기는 저급한 장르"라는 편견이 생긴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공상 과학을 뛰어넘어, 아예 가짜 과학, 거짓 과학이라며 SF를 비하하고, "SF 믿지 마세요~" 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실제로 발견된다. 다만 이에 대해서 구세대적인, 이른바 공상이라는 말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하적 생각이나 팬덤 층의 공상이라는 말이 가지는 뉘앙스에 대한 비선호와 혐오에 대한 견지도 있으니, 이 부분에서는 읽는 위키러의 판단에 맡긴다.[8] (1, 2)

전체적인 의견은 공상과학이란 번역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나, 용어 자체의 번역으로서도 SF의 의미를 나타내는 용어로서도 적합하지 않으며, 과학소설이 낫지 않겠냐는 쪽에 가깝다. 다만 과학소설이라는 번역에도 비판이 있는데, 일단 소설 아닌 물건은 과학소설이라 부를 수 없으며, '과학 소설'이라고 이야기하면 어째 소설의 탈을 쓴 과학교과서 같은 딱딱한 느낌이 나서, 오히려 SF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용어가 좀 길어지는 걸 감수하자면, '과학적 창작물'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나, 아직 만족할 만한 대체어는 발견되지 않았기에 보통은 그냥 SF로 통일하는 분위기다.

2 분류

과학 기술에 중심을 둔 SF는 하드 SF, 사회성이나 인물에 치중한 SF는 소프트 SF라고 부른다. 전자는 대체로 아서 C. 클라크와 같은 작가들이 대표하고, 후자는 60년대에 흥했던 뉴웨이브 SF들이 대표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스페이스 오페라소프트 SF에 포함된다.

사실, 1950년대까지는 과학기술을 다룬 것이 SF였지만, 너무 정형화되고 딱딱하게 되어가자 인문, 사회, 과학에도 영역을 넓히게 되는데,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대표로 꼽을 수 있다. 또한 《크리스탈 월드》 같이 '어느 날 갑자기 전 지구의 사물이 크리스탈화 되어가기 시작했다!' 는 내용으로, 과학적 사실성보다는 상상력과 판타지에 중심적인 기반을 둔 소설들도 나오기 시작했다.[9]

1960년대 중반쯤에 히피 문화와 함께 등장한 이러한 경향을 뉴웨이브라고 하며, 대표작가로는 로저 젤라즈니, 어슐러 K. 르 귄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장르의 역사가 긴 만큼 그 안의 서브 장르 역시 상당히 많다. 하드 SF와 스페이스 오페라의 단순한 구분을 넘어, 사이버펑크, 스팀펑크, 나노펑크, 리보펑크 같은 현대적 서브 장르뿐만 아니라 밀리터리 SF, 대체역사물, 포스트 아포칼립스 역시 SF의 서브 장르로 취급된다. 또한 1980년대 테크노 스릴러 장르의 소설이 톰 클랜시에 의해 개발되어 널리 퍼졌다.

말 그대로 과학을 기반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생물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생물학 계열도 SF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팬덤 밖에서 보통 SF에 대한 인식은 《스타워즈》, 《Warhammer 40,000》, 《스타크래프트》, 《헤일로 시리즈》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쪽에 많이 치중되어 있는 편이다.

사실 SF 팬덤 안에서는 스페이스 오페라 쪽의 팬덤의 영향력이 강한 편이라고는 볼 수 없고, 팬덤 안쪽과 바깥쪽의 괴리가 어느 정도 존재한다. 이런 차이는 타 장르와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판타지 팬덤에서는 《스타워즈》와 《》 같은 작품을 판타지의 서브 장르인 사이언스 판타지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개별 작품이 여러 장르에서 함께 소비되는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개별 작품이 특정 팬덤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가일 것이다. 실제 판타지 팬덤들이 《스타워즈》나 《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소비하는지에 대한 여부에 대해서 자문해야 할 것이다.

3 과학자들과의 관계

SF에 대한 또 다른 오해로는, "과학자들은 SF를 혐오한다" 는 생각을 들 수 있다. 이는 과학이 현실을 탐구하는 학문인 반면, SF는 꿈과 상상력을 뻗어가는 장르기 때문에 과학자들 입장에서는 SF가 굉장히 모욕적이지 않겠냐는 이유인 듯한데 사실 그렇지만도 않다. 심지어 현업 과학자가 SF를 쓴 경우도 부지기수다.[10]

이유야 어쨌든, 과학자마다 다르긴 하지만 사실 많은 과학자들은 SF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의 길에 뛰어든 계기가 SF의 매력이었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이는 비록 이론과 소설이라는 다른 결과로 나타날지언정, 과학과 SF 모두 과학적 상상력에 기반한다는 사실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많은 SF 개념들은 SF 작가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 과학자들의 가설이었다.[11] 이에 대해 스티븐 호킹은 "한때 SF(science fiction)에 지나지 않던 상상 속의 산물들이 과학적 사실(scientific fact: SF)로 판명됨을 생각하면, 현재 기술력의 한계일 뿐 이론적으로 명백히 가능한 것은 많다" 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이렇게 과학자들도 SF라는 장르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SF 팬들이나 SF라는 장르의 질이 점점 내려가고, SF의 탈만 쓴 오락 창작물이 늘어나는 점은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이러다 보니 점점 SF라는 장르 자체에 대해, "허황된 과학을 지어내어 과학을 왜곡하고, 참된 과학적 궁금증이 아닌, '멋진 것'을 쫓는 사람을 늘게 만든다"며 "SF 믿지 말라" 는 비하의 목소리가 커지게 된 것이다. 물론 SF가 오락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12] 저런 주장에는 다소 부심이 들어간 면도 없지 않지만, 과격한 혐오처럼 오버스러운 감정 없이, 건설적인 비판만 가한다면 SF의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할 수 있다.

4 한국의 SF

SF 자체는 세계적인 인기 장르 중 하나지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그저 그런 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인기 있는 경우도 있으나, 이것이 SF 장르의 인기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과거 정권의 문화규제 때문에 성장하지 못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13]

한국 SF 팬덤의 역사도 짧지는 않다. 학원사나 삼성출판사에서 일본 중역판의 청소년 취향의 SF 전집이 나오기도 했으며, 《스트레인저》, 《솔라리스》, 《유년기의 끝》 같은 장편들과 몇몇 SF 단편집을 통해서 근근이 존재해 왔다.

70년대에는 일본의 《마징가Z》를 베끼긴 했지만, 김청기의 《로보트 태권 V》를 시작으로, 해마다 극장판 로봇이나 SF 애니메이션이 나왔다.[14] 제5공화국 시절의 경우, 당시에 《UFO로보 그렌다이저》가 한국에 수입되었는데, 이걸 전두환 전 대통령 영부인 이순자 여사가 보고, 허무맹랑하고 폭력적인 로봇 애니메이션을 수입하지 말라는 뉘앙스의 일장연설을 했다는 카더라가 있다. 실제로 《UFO로보 그렌다이저》는 16화에서 방송 중단되었으며, 그 후 5공화국 시절 동안 티비에선 일본제 로봇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TV에서 방영되지 않았을 뿐, 로봇물 자체는 당시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유선방송과 비디오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해졌고, 극장용으로 여러 한국산 로봇 애니메이션과 SF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타임머신》이나 《V》를 비롯한 여러 SF 소재 미국 드라마들이 방송을 탔으며, 이 또한 SF 쪽 팬층이 생겨나는 바탕이 되었다. 이 외에도 《우주선장 율리시즈》나 《우주전함 야마토》, 《렌즈맨》, 《캡틴 퓨처》, 《미미의 컴퓨터 여행》 등의 SF적인 내용을 담은 애니메이션은 많이 공중파를 통해 가정에 전해졌으며, 김형배와 고유성 같은 작가들은 SF성향이 가미된 만화들로 인기 작가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5공화국 시절 동안, SF 장르는 어린이에서 청소년 계층에 걸쳐서 나름대로 인기를 얻으며 자리를 잡게 된다. 거기다 당시 어린이 도서의 붐 속에, 아이디어 회관 문고로 대표되는, 좀 더 어린 독자층이 보게 편역된 SF 소설들이 쏟아졌으며, 이런 소설들 역시 SF 팬덤의 확대에 일조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렇게 생겨난 SF 관련 팬층은 어렸을 때 그런 거 좀 봤지 정도에 그치고 만다. 어린 시절에 이런 부류를 즐겼던 이들이 나이 먹어가면서도 계속 즐기게 할 작품이 부족했고, 결국 SF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란 편견이 굳어져 가게 된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부터 SF 빅3라고 하는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A. 하인라인, 아서 클라크의 주요 작품들이 번역되면서 SF인기에 불을 지폈다.[15] 이외에 프랭크 허버트의 《듄 시리즈》도 출판되었고, 대중적인 작품을 잘 쓰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작품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오만가지 장르를 모두 취급하던 고려원이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과 《듄 시리즈》, 《라마 시리즈》를 출판하면서 아주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16] 당시 교보문고, 영풍문고 같은 대형서점에는 SF만을 진열하는 서가(書架)가 생길 정도였다.[17] 이렇듯 하나의 명확한 장르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면서, SF만을 찾는 독자층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5년부터 시공사그리폰 북스라는 SF 전집이 출판되고, 마침 활성화되기 시작한 PC통신과 맞물리면서 국내SF의 도약이 이루어진다. 해외의 명작들이 속속들이 번역출판되고, PC통신을 통해서 자체적인 정보교환이 가능해지자, 국내에도 확실한 SF 팬덤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PC통신에 기반한 팬덤의 바탕 위에서, 1990년대 내내 엄청난 양의 창작 SF들이 쏟아졌다. 90년대는 그야말로 한국 SF 창작의 전성기였다. 출간 자체도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구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급진적인 학생운동의 쇠퇴로 갈 길을 잃은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이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헤맸는데, 그중에 하나가 SF였던 것이다.[18] 대표적인 예가 들녘 출판사.[19]

1990년대 내내 국내에서 SF의 붐을 일으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바로 SF전문번역가 김상훈박상준이다. 이 두 명은 고려원을 비롯해서 수많은 출판사들을 통해 SF작품을 번역출판해 왔으며, 무엇보다 시공사의 그리폰 북스 시리즈를 공동기획하였다. 그 외에도 다양한 활동으로 SF를 대중들에게 소개하였다.

하지만 2000년을 전후로, 아마추어 창작의 장이던 PC통신 연재소설의 주류가 판타지 소설이 되고,[20] 이들이 열풍을 일으키자 SF 관련 팬층은 더욱 사그라지게 된다. 무엇보다도 판타지는 이우혁의 《퇴마록》과 이영도의 《드래곤라자》라는 창작판타지가 초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대중화에 성공한 반면에, 국내의 창작SF는 결국 히트작을 내는 데 실패한 것이 절대적이었다. 그나마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가 비평과 판매량 모두에서 성공했지만, 《퇴마록》이나 《드래곤라자》에 비하면…. 결국 90년대에 출현했던 숱한 한국 SF 작가들은 복거일, 듀나 같은 몇몇 드문 예를 제외하고는, 거의 창작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21]

따라서 2000년 전후부터 최근의 신진 작가들의 대두 이전까지, SF는 거의 사멸상태에 가까웠고, 대부분 게임이나 영화 같은 (주로) 외국에서 제작된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향유되거나, SF 분류로 놓을지 과학교육동화로 부르는 것이 좋을지 미묘한 몇몇 소설들이 이따금 나타나는 식이었다.[22]

그 외에 박민규, 백민석, 이영도 같은 작가들이 SF적으로 슬립스트림을 시도해 왔고, 근래 SF 소설가를 표방한 몇몇 작가가 월간지나 무크지에 단편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독창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며, 외국 SF를 조금씩 변형한 수준에 그쳤다고 봐야 한다.

문학계에선 SF는 아예 논외다. SF 장르의 집필에는 일정치 이상의 '과학에 관련된 배경지식'과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이공계 천대 문화가 만연한 한국문학계 내에서는 걸출한 SF 작가가 나오기 힘든 게 현실이다. 실제로 'SF의 인기는 그 사회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의 수준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굳이 SF소설이 아니라 대중용 입문서, 개론 시장을 봐도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으로는 필력 있는 학자들도 많고 베스트셀러도 잘 나오지만, 이과 계열은 찾기 힘들다.[23] 기성 문인들도 SF는 허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고 비평가들도 마찬가지다.[24][25]

또한, 이공계는 이공계대로 인문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인문학적 소양이 낮은 것 또한 하나의 원인이다. 딱딱한 논문은 잘 쓰는데 일반인이 읽기 쉬운 부드러운 글은 못 쓰거나, 팩트는 감칠맛 나게 늘어놓는데, 그걸 내러티브로 만들 줄 모른다거나. 쉽게 말해 머리는 똑똑한데 재밌는 얘기를 만드는 법은 모르고 관심도 없다. 또한 SF를 허무맹랑한 글이라 생각하여 전공자가 쓰면 주변에서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국내 SF 팬덤의 많은 이들이 "보고 싶은 SF 소설이 정발되면 무조건 사고 봐라 라고 충고하는데, 실제로 국내 출판사에서는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10년이 넘어서야 재판을 한다거나, 아예 재간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서, 인기 있는 작품의 경우는 중고 책에 높은 프리미엄이 붙기도 한다.[26] 그나마 영화화 등으로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SF 작품들의 경우는 옳다구나 하며 정발해준다.

물론, 탄압이니 편견이니 하는 것이 사실 SF 팬덤의 지나친 피해의식일 수도 있다.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SF가 순수문학만큼 인정받는 주류 문화는 아니다. 걔네들도 SF가 차별받고 있다는 소리 맨날 하고, SF 문학 좋아하면 오타쿠 취급 받긴 매한가지다. 할리우드에서 SF 영화가 많이 나온다고들 하지만, 정말 진지한 SF 영화는 거기서도 드물다. 지구를 지켜라》를 할리우드가 만들었다고 대박칠 것 같진 않잖아? 무엇보다 SF가 보급되는 데는 영화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한국에서 SF 블록버스터에 과감히 도전했다가 혹평과 함께 적자만 보고 말아먹은 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안습 그나마 《설국열차》가 흥행에 성공하긴 했지만, 이건 원작이 외국 작품인데다 장르 영화라기보다는 아트 영화에 가까워서 SF 팬덤에서는 잘 이야기되지 않고 있다. 《열한시》는 저예산으로 도전했지만 SF보단 스릴러 영화에 더 가깝다는 평과 함께 흥행에 실패했으며, 《로봇, 소리》는 평이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시장의 문제로 귀결된다. 분야는 다르지만 《파레포리》의 작가는, "이런 만화를 그리는 데도 먹고 살 만큼은 돈을 버는 일본이라서 다행입니다" 라는 말도 했다. 다시 말해 한국은 온갖 종류의 작품을 수용할 만한 내수시장 규모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2013년 SBS에서 제작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도 제작 전에 이런 부분이 문제가 되었는데, 작가 박지은이 본작의 《설희》 표절 문제에 대한 걸로 부산일보와 나눈 인터뷰에서, 'SF가 강한 소재라 섣불리 시작할 수 없어 미뤄왔다'고 밝혔다. 이렇듯 한국에서는 SF가 얽히면 특수효과 등등으로 제작비가 더 들어가서 그런지 기획 단계에서부터 통과시키기 힘들어지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이래저래 어려움이 많다. 또한 나무위키에 등록된 《별에서 온 그대》 항목에 들어가 보면, 스릴러니 이능력자니 하는 말은 있지만 SF라는 설명은 한 줄도 없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한국에서 SF 영화가 성공하려면 대자본과 특수효과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

5 SF 작품

5.1 세계 3대 SF 프랜차이즈

5.2 SF 영화

시리즈, 리부트는 한 번만 표시합니다.

5.3 SF 소설/목록

SF 소설/목록 참조.

5.4 SF 만화

6 관련 문서

7 참고 문서

  1. 과학적 지식이 없으면 제대로 쓸 수 없는 탓에, 유명 SF 작가들 중엔 실제 박사 학위 받은 사람들이 많다. 물론 대학교도 못 나온 사람들도 있고, 대학교 중퇴하고 학사학위 하나 받은 필립 K. 딕 같은 사람도 있지만….
  2. 이 때문에 가까운 미래의 경우에는 테크노 스릴러로 분류하기도 한다.
  3. 이 말에 감명을 받은 건지, 아서 클라크도 자신의 단편집 서문에서 이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4. SF에 관한 그 어떤 정의를 들이대더라도, 《디 워》는 SF 장르에 포함되지 않는다. 작중 나오는 괴물들이 사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인공생명체라면 모를까….
  5. 듀나는 아예 그냥 SF라고만 부르자고 제안한 적도 있다.
  6. 예를 들어 IMDB 같은 영화 사이트의 장르 구분 항목에는, "Science Fiction"은 아예 없고 "Sci-Fi"만 존재한다.
  7. 이런 측면에서 판타지 문학과의 경계선이 뚜렷하지 않다는 측면이 부각되기도 한다. 앞에서 지적한 문제들은 판타지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실제 SF와 판타지 양쪽에 걸쳐있는 작가들이 대단히 많다.
  8. 다만 이걸 SF라는 명칭의 번역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류다. 저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SF의 번역이 공상과학으로 나타나서가 아니라, SF를 표방하는 소설 중에 심각한 과학적 오류가 있거나 사실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의외로 흔하고, 심지어는 유사과학을 주장하는 이들이 SF를 표방한, 말 그대로 사이비 과학소설을 내놓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하드 SF 영역에서 크게 동떨어진 이런 소설들은 SF라 부르면 안 될 테지만, 안타깝게도 소설을 읽기 전에 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기도 하고, 도서관이나 서점 등에서 이들을 SF가 아닌 걸로 따로 분리하지도 않으니, 저런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9. 1960년대, 구소련 권에서 유행한 SF소설 《솔라리스》 역시 그런 맥락이다. 솔라리스의 경우는, 우주기지, 행성 탐험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지만, 솔라리스라는 과학적인 상상력보다는 지성 그 자체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내용이다.
  10. 대표적인 예로, 3대 SF 거장인 아이작 아시모프가 있다.
  11. 그 유명한 워프만 해도 다른 사람도 아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생각이었고, 실제로 현재 기술로는 무리지만, 이론상 분명히 가능하다고 학계에서 인정받은 학설이다.
  12. 애초에 SF 작품의 발흥에 오락목적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으며, 오락적 목적이 전혀 없다면, SF를 향유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과학논문을 읽는 게 나을 수도 있다.
  13. 1959년에 연재한 김산호의 순수 창작 만화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는 작품 속 적을 실제와 똑같이 그렸단 이유만으로 연재가 중단되기도 했다고 한다. 훗날 작가가 검증을 포기한 망상에 빠진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14. 저 위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가 그러한 비극을 당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애니메이션으로 나왔을 것에서, 시대적 여건 등은 논외로 한다면, 해당 정권이 가진 모순에 실소를 금치 못하는 이들이 많다.
  15. 실제 SF전문번역가 박상준은 훗날 "우리는 모두 아시모프의 아이들 아니냐"는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후술하는 SF팬덤 상당수가 1990년대 초반, '현대정보문화사'에서 출판한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와 《파운데이션 시리즈》로 SF에 입문한 것이 사실이긴 하다.
  16. 고려원은 심지어 《스타워즈》의 확장 세계관을 다룬 《쓰론 트릴로지》 3부작과 《스타트렉》 소설들까지 출판했다. SF에 대한 깊은 관심이라기보다는, 무조건 손에 잡히는 대로 일단 내고 본다는 고려원의 영업전략의 일환이었지만, 정상적인 경로라면 거의 출판될 수 없는 작품들이긴 했다. 현재도 이 작품들은 중고책 시장에서 부르는 게 값인 정도로 거래되고 있다. 다만 부연하자면 번역의 질은 보장할 수 없다….
  17. 2010년 이후 대형서점을 가보면, SF소설들은 추리소설이나 판타지소설이 전시된 서가 한 귀퉁이에 마구잡이로 전시되어있다. SF만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다는 방증(傍證)이다.
  18. 여담으로 이쪽 인력들이 호구지책을 찾아서 떠난 곳들 중에 하나가 바로 충무로라고 일컬어지는 한국영화계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 영화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급성장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영화계에 좌파들이 많다는 얘기가 나오는 데에는 이러한 연유도 있을 것이다.
  19.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헤매던 들녘 출판사는, 결국 《퇴마록》과 《로도스도 전기》라는 공전절후의 대박을 터뜨리면서, 지금까지도 잘 먹고 잘살고 있다. 두 작품으로 국내에 판타지 붐을 일으키면서, 출판계와 대중문화 그리고 서브컬처에 한 획을 그은 것은 덤.
  20. 그 영향인지, 전자책이 화두가 된 2000년대 후반을 보면, 장르소설 하위 카테고리로 SF와 판타지가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21. 그러나 복거일의 경우는 작가 자신의 이념이 너무 강해서, SF적 아이디어를 제대로 못 살린다는 평을 듣고, 그나마 듀나가 꿋꿋이 좋은 평을 받고 있으나, 이쪽도 권을 거듭해도 글의 발전이 없고, 결국 뛰어난 외국 SF를 먼저 알아보고는 그 아이디어를 소개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2. 후자 같은 경우는 주로 '모모 교수나 학자가 쓴 SF 소설' 같은 슬로건으로 어중간한 과학원리 설교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거나, 대충 외계인-피라미드-안드로메다 같은 SF 소설 문외한이 어디서 들어본 몇몇 양산형 키워드를 조합해서 일단 써봤다 싶은 느낌이 나는 출판작도 많았다.
  23. 어느 정도 팔리는 책을 꾸준히 쓰는 이공계 쪽 인사로는 정재승 정도가 유일하다.
  24. 이런 측면에서 복거일은 상당히 이례적인 존재이다.
  25. 아이러니하게도 필립 K. 딕의 장, 단편 선집을 낸 폴라북스는 기성 문학 중심의 잡지/출판사인 현대문학의 하위 브랜드다. 그것도 1950년대까지 올라가는 권위 있는 출판사.
  26. 그 덕에 애초에 한국 출판사에 대한 기대를 때려치우고, 원서를 보기 위해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27. 이 항목에서 유일하게 영국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