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 이씨

全義 李氏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세거하는 성씨.

1 상세

대한민국 세종특별자치시를 본관으로 하는 대한민국성씨 집단. 시조는 고려 초 개국 공신인 이도(李棹)인데, 초명은 치(齒)이며, 시호는 성절(聖節).
본래 공주에 세거했는데 고려 태조 왕건견훤을 정벌하고자 남하하여 금강에 도착했을 때, 강물이 범람하자 태조를 도와 무사히 강을 건너게 했다.
그래서 태조로부터 도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고려통합삼한개국 익찬2등공신(高麗統合三韓開國翊贊二等功臣)에 책록되었으며, 벼슬이 삼중대광태사(三韓三重大匡太師)에 이르고 전산후(全山侯), 성절공에 봉해졌다.

그 후 전의(全義) 이성산(李城山) 아래로 이거(移居)하여 정착 세거하니 후손들은 본관을 전의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시조 이도(李棹)의 묘소는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유천리에 있으며, 묘소는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을 자랑할 정도로 명당이다. 향사일은 음력 3월 3일과 10월 2일이다.

인구는 2015년 통계 기준으로 164,189명으로, 이씨 성을 가진 가문 중에서 중견급에 속한다.

2 분파

전의 이씨는 고려 고종 당시 해전으로 몽고를 격파한 이천 장군의 자손들부터 분파가 갈리게 되는데, 세 아들 중 맏이인 이자원의 자손들을 중심으로 한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와 둘째 혼이 분적하면서 생긴 문장공파(文莊公派), 셋째 이자화의 자손들을 중심으로 한 전서공파(典書公派)로 갈린다. 이중 둘째 문장공파 [대사백]는 후손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없다.
가훈은 가전충효(家傳忠孝) 세수인경(世守仁敬)으로, 이정간 공이 사망하기 직전,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이 직접 집으로 행차하여 직접 붓으로 써서 하사하여 지금은 전의 이씨 가정집에 가면 가훈으로 보존되어 있다. 분파된 파 중에 가장 규모가 큰 파가 셋째 이자화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전서공 파이다. [1]

3 시조 묘소

시조 이도(李棹)의 묘소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에 있으며, 묘소는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을 자랑할 정도로 명당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철도 부설 등으로 인해 묘소가 파헤쳐질 위기에 처해지자 후손들이 진정서를 내어 철도 경로가 변경되었으며, 묘소는 원래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4 항렬

  • 대사성공파
26세 - 口윤(潤), 口민(敏)
27세 - 근(根), 口식(植)
28세 - 희(熙), 口노(魯)
29세 - 교(敎), 口세(世)
30세 - 종(鐘), 口호(鎬)
31세 - 호(浩), 한(漢)
  • 대사성공, 전서공 통합
32세 - 상(相)
33세 - 口섭(燮)
34세 - 기(基)
35세 - 口진(鎭)
36세 - 원(源)
37세 - 口수(秀)
38세 - 용(容)
39세 - 口균(均)
40세 - 석(錫)
41세 - 口영(永)
42세 - 동(東)
43세 - 口환(煥)
44세 - 중(重)
45세 - 口현(鉉)
46세 - 태(泰)
47세 - 口주(柱)

5 인물

6 집성촌

그런데 본래 세거 지역인 전의면에는 종파가 아닌 이상은 찾기 힘들다는 거.

7 특이 사항

이 가문에서는 충청도 관찰사를 무려 11명이나 배출한 집안이며, 영의정도 배출되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경상도 지방에서는 다른 타 지방에 비해서 거의 없다. 단적으로 전북이나 충남 지역에 가장 제일 많이 있다.

근데 이씨 성 가진 사람 중에 누군가가 본관이 어디냐 물었을 때, "전의 이씨"라고 답한다면 상대방의 기분이 어리둥절한 경우가 있다. 대략 난감
  1. 대사성공파의 경우, 문관으로 대대로 내려왔으며, 전서공파는 무관으로 대대로 내려왔다.
  2. 27세손 '根'자 항렬.
  3. 34세손 '基'자 항렬.
  4. 전서공파
  5. 32세손 '相'자 항렬. 전서공파
  6. 32세손 '相'자 항렬. 대사성공파
  7. 전서공파
  8. 30세손 '鐘'자 항렬. 대사성공파
  9. 31세손 '鎬'자 항렬. 전서공파
  10. 32세손 '相'자 항렬.
  11. 33세손 '燮'자 항렬. 대사성공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