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코스트너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올리버 스톤
(플래툰)(1987)
(7월 4일생)(1990)
케빈 코스트너
(늑대와 춤을)(1991)
조나단 드미
(양들의 침묵)(1992)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이름케빈 코스트너
KEVIN COSTNER
분야영화
입성날짜2003년 8월 11일
위치6845 Hollywood Bl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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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시절에 주연을 맡은 영화 《보디가드》에서.

최근모습. 나이든 모습이지만 그래도 멋있다.

Kevin Costner(본명: Kevin Michael Costner)

한국에서는 코빈 케스트너라고 말하는 어른들도 많다.

1 개요

1955년 1월 18일 출생의 미국 배우. 《늑대와 춤을》 제작 당시 스스로 밝히길 아메리카 원주민계 혼혈이라고 한다. 물론 먼 조상 이야기이긴 하지만. 케빈 코스트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린우드에서 전기기사 윌리엄 코스트너와 사회복지사 샤론 라에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1] 독일인, 아일랜드인, 체로키족 혈통을 가지고 있는데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난 할아버지가 체로키족 혼혈이었다. 케빈 코스트너는 침례교를 믿었으며 가난해서 침례교회 성가대를 하며, 피아노를 배우고 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고등학교 졸업 후 경영대학인 California State University, Fullerton 재정학과 마케팅학을 전공했다.

2 배우 경력

마케팅학을 전공했지만 대학 때 연기에 관심이 생겨 연기 수업을 듣다가 후에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던 중 유명 배우 리처드 버턴을 만나 조언을 듣고는 전문적인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80년대 여러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물론 초기에는 여러 단역을 거쳤는데 1983년작인 《빅 칠》에서 극중 죽은 시체로 말없이 누운 시체(...) 역할로 장례식 장면에서 잠깐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 영화 감독인 로런스 캐스던[2] 눈에 띄게되어 1985년 1월 개봉작이자 케빈 레이놀즈가 감독한 서부물 《판당고》로 첫 주연을 맡게 되었다. 사실 Sizzle Beach, U.S.A라는 1981년 에로틱 코미디 영화에 주연으로 나오기도 했는데 바로 트로마가 공동 배급한 영화였다. 흥행이나 자세한 정보는 거의 묻혀진 걸 보면 그에게도 거론하기 싫은 경력인 듯?

1987년 브라이언 드 팔마가 감독한 《언터처블》(The Untouchables)이라는 형사물에서 주연을 맡아 흥행하면서 미국에서 어느 정도 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한국에서는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노 웨이 아웃》이 서울관객 19만을 기록하며 당시에는 대박을 거둬 그가 알려지게 된다.

점점 상승세를 타던 코스트너는 서부극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에서 주연과 감독, 제작을 맡아 2200만 달러의 제작비로 월드와이드 4억 24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리며 대박을 터뜨렸고, 그 해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휩쓸며 할리우드 최고의 인기 배우 중 하나로 부상하게 된다. 1991년에는 《로빈 후드》와 올리버 스톤 감독의 《JFK》와 같은 성공작에서 주연을 맡았고 이듬해 《보디가드》는 비록 평론가들 평은 갈려도 흥행으로는 세계적인 대박을 터뜨리며 많은 여성 팬을 확보한 미남 배우가 되었으며 93년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퍼펙트 월드》에서는 뛰어난 연기로 상당한 호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94년작인 로런스 캐스던이 감독한 《와이어트 어프》(Wyatt Earp)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조금씩 불안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이 무렵 본인의 외도로 인한 이혼을 하면서 막대한 이혼료[3]를 부인 신디[4]에게 지불하고, 형 다니엘과 함께 사업을 운영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성지를 개발하려는 시도로 《늑대와 춤을》 대박 및 스스로 원주민계 피가 흐른다고 하여 사이좋던 원주민들과 마찰을 빚은 걸 비롯해 잇따른 스캔들로 이미지에도 타격을 받더니 1995년 1억 7천 2백만 달러의 막대한 제작비[5]를 들인 영화 《워터월드》가 북미에서 8800만 달러에 불과한 흥행 성적을 거둬들였고, 비록 영화 자체는 해외 흥행과 극장 이외 수익 창구의 호조로 손익분기점은 맞췄으나 당시 상대적으로 접하기 쉬운 북미 흥행 위주의 정보가 주로 퍼져서 이미지는 하락했다. 코스트너와 친구이자 《로빈 후드》 감독으로 대박을 거둔 케빈 레이놀즈가 감독한 《워터월드》는 제작 당시 둘이 다툼이 많았고, 케빈 레이놀즈가 후반 작업을 때려쳐 버리고 코스트너에게 맡기며 떠났다는 보도도 나왔었다.

이듬해 골프 영화 《틴 컵》(Tin Cup)에서의 연기가 꽤 호평을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1997년에 제작과 감독, 주연을 모두 맡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 《포스트맨》이 8000만 달러의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1763만 달러의 처참한 흥행성적을 거둬들이면서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설상가상으로 《포스트맨》은 《늑대와 춤을》의 재탕이라는 등 엄청난 악평 속에서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배우, 감독, 영화, 음악 상 등을 수상해 버린다.[6] 참고로 《포스트맨》의 촬영을 시작할 무렵 《에어 포스 원》에서 원래 주연으로 캐스팅되었지만 본인이 이 영화를 선택하고 해리슨 포드에게 주연을 넘겨 버렸다. 본인이 엄청나게 후회할 만한 선택이었다.

몇 년간 암흑기를 보내며 골든 라즈베리상에서 난타(...)당하던 코스트너는 비디오용 저예산 호러물까지 나오며 팬들에게 불안감을 보여주는가 했지만 2003년 서부 영화 오픈 레인지에서 다시 감독, 주연을 맡아 흥행과 비평 면에서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예전만은 못하더라도 여러 출연작에서 연기로 호평 받으며 2012년에는 방영한 히스토리 채널의 햇필드 앤 맥코이(Hatfields & McCoys)라는 미니 시리즈[7]에서 좋은 연기 덕분에 에미상 등 수 십개의 상을 탄 바 있으며 2013년엔 맨 오브 스틸의 조너선 켄트로 나오기도 했다.[8]

몇 년 만에 최고 흥행배우 자리에서 밀려난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할리우드 배우들처럼 망언, 범죄, 마약 중독 등으로 이미지를 크게 깎아 먹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다만 본인의 외도 문제와 아메리카 인디언 성지 개발 문제는 흑역사이지만 아직도 이 배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고 나이 60 넘어서도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는 걸 보면 그렇게 큰 흑역사는 아닌 듯 하다.

2012년 갑자기 세상을 떠난 휘트니 휴스턴장례식 추모사를 맡았다. 20년 전인 1992년 영화 보디가드에서 남녀 주연으로 출연한 인연으로 추모사를 맡았는데[9] 휘트니 휴스턴의 유족들로부터 참석을 바란다는 정중한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케빈 코스트너가 휘트니 휴스턴의 유족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어 주고 여러가지로 지원해 줬다고 한다. 그는 추모사에서 '눈물을 닦고 슬픔을 멈추고 가능하면 오랫동안 휘트니가 남긴 달콤한 기적을 기억합시다. 나는 한때 당신의 보디가드였지만 당신은 너무 빨리 가버렸습니다. 하지만 천국으로 가는 길에는 천사들이 보디가드가 되어 줄 것이며 신 앞에서 노래할 때도 당신은 충분히 잘할 것입니다.'라는 자못 감동적인 추모사를 남겼다.

전 부인 신디 실바(1956~)였으며 현재 부인 크리스틴 바움가트너(1976~)[10]이다. 자녀는 두 부인, 한 애인 [11]사이에서 4남 3녀가 있는데 신디와의 사이에서는 1남 2녀(릴리, 애니, 조[12] ), 크리스틴과의 사이에서는 2남 1녀(그레이스, 케이든, 헤이즈), 브리짓과의 사이에서 1남(리암)이 있다. 나이가 가장 많은 자식은 1984년생 애니, 나이가 가장 적은 자식은 2009년생(...) 헤이든이다. 케빈과 신디는 무명시절 때 결혼하여 함께 성공을 이룩했지만 케빈이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후 잦은 스캔들과 잦은 영화 촬영으로 가족들과의 사이가 소원해 지면서 1994년 이혼했다.

한국에서는 양지운, 김관철, 일본에서는 츠카다 마사아키전담 성우이다.

2.1 주요 작품들

연도제목제작비미국 흥행전세계 흥행국내관객수흥행
1985판당고4백만달러91,666달러91,666달러미개봉실패
1985실버라도2천 3백만달러32,192,570달러자료없음서울 73,617명실패
1985아메리칸 플라이어8백 5십만달러1,420,355달러1,420,355달러미개봉실패
1987언터쳐블2천 4백만달러76,270,454달러76,270,454달러자료없음성공
1987노 웨이 아웃1천 5백만달러35,509,515달러35,509,515달러서울 198,966명[13]성공
198819번째 남자[14]7백만달러50,888,729달러50,888,729달러서울 25,200명성공
1989꿈의 구장[15]1천 5백만달러64,431,625달러84,431,625달러서울 87,179명성공
1990늑대와 춤을2천 2백만달러184,208,848달러424,208,848달러서울관객 984,978명성공
1990리벤지2천만달러15,645,616달러15,645,616달러서울 10만명실패
1991로빈후드4천 8백만달러165,493,908달러390,493,908달러서울관객 475,528명성공
1991JFK4천만달러70,405,498달러205,405,498달러서울 21만명성공
1992보디가드2천 5백만달러122,006,740달러411,006,740달러서울 747,238명성공
1993퍼펙트 월드3천만 달러31,130,999달러135,130,999달러서울 289,329명성공
1994와이어트 어프6천 3백만달러25,052,000달러25,052,000달러서울 39,464명실패
1994작은 전쟁3천 4백만달러16,928,556달러16,928,556달러서울 13,131명실패
1995워터 월드1억 7천 5백만달러88,246,220달러264,218,220달러서울 284,256명본전치기[16]
1996틴 컵4천 5백만달러53,854,588달러75,854,588달러서울 46,281명본전치기
1997포스트맨8천만달러17,626,234달러17,626,234달러서울 24,910명실패
1999병 속에 담긴 편지8천만달러52,880,016달러118,880,016달러서울 78,176명실패
1999사랑을 위하여8천만달러35,188,640달러46,112,640달러서울 24,025명실패
2000D-138천만달러34,592,089달러66,579,890달러서울 52,856명실패
20013000 마일6천 2백만달러15,749,959달러18,720,175달러서울 76,168명실패
2002드래곤플라이6천만달러30,323,400달러52,323,400달러미개봉실패
2003오픈 레인지2천 2백만달러58,331,254달러68,296,293달러미개봉성공
2005미스언더스탠드1천 2백만달러18,761,993달러28,237,190달러6,990명성공
2005그녀가 모르는 그녀에 관한 소문7천만달러43,000,262달러88,933,562달러미개봉본전치기
2006가디언8천만달러55,011,732달러94,973,540달러164,067명실패
2007미스터 브룩스2천만달러28,549,298달러48,121,900달러129,544명성공
2008스윙 보트2천 1백만달러16,289,867달러17,634,313달러자료없음실패
2011컴퍼니 맨1천 5백만달러4,441,272달러4,882,577달러자료없음실패
2013맨 오브 스틸2억 2천 5백만달러291,045,518달러668,045,518달러210만명성공
2014잭 라이언6천만달러50,577,412달러135,511,030달러327,591명성공
2014쓰리 데이즈 투 킬2천 8백만달러30,697,999달러52,597,999달러229,644명성공
2014드래프트 데이2천 5백만달러28,842,237달러29,462,046달러10,119명실패
2015블랙 오어 화이트9백만달러21,554,234달러21,554,234달러자료없음성공
2015맥팔란드 USA1천 7백만 달러43,227,999달러43,227,999달러자료없음성공
  1. 큰형은 다니엘, 작은형은 마크인데 마크는 케빈보다 2년 전에 태어났지만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죽었다. 공교롭게도 케빈이 태어난 1월 18일은 마크가 죽은 날이다.
  2. 스타워즈 시리즈 각본 및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각본으로 유명하며 바로 《보디가드》 공동 제작 겸 각본도 그가 썼다. 감독으로서도 작품성도 인정받고 흥행성으로도 인정받는 감독,제작자,각본가
  3. 당시 재산의 절반인 무려 8천만 달러였다.
  4. 조강지처인데 케빈 코스트너가 가난하고 무명 배우 시절 때부터 함께 성공할 때까지 살았던 아내이다. 한 때 가난했던 케빈 대신 호텔 대실비도 내줬을 정도였다고 한다. 케빈과 이혼 후에는 재혼하지 않고 살고 있는 듯 하다.
  5. 당시에 가장 돈을 많이 들인 영화였다. 게다가 이 1억 7200만 달러라는 수치는 인플레이션을 계산하면 2014년 현재 2억 6600만 달러로 아바타보다도 돈을 많이 들였다!
  6. 다만 최악의 배우는 최초 수상이 아닌 3번째 수상이다. 그 이유는 1991년에 개봉하여 흥행만은 좋았던 《로빈 후드》에서 최초로 최악의 배우상을 수상했고 그 다음은 1994년에 나온 《와이어트 어프》에서 두번째로 최악의 배우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북미권 흥행 성적 위주로만 알려져 악명이 생긴 《워터 월드》도 수상하지는 않았으나 후보에 있었으며 흥행과 작품성이 좋았던 《보디 가드》도 있었고 1999년에 출연했었던 《사랑을 위하여》와 《병 속에 담긴 편지》 두 편 전부 후보에 있었고 마지막으로 《3000 마일》에 후보에 오른 이후로 더 이상 라즈베리 시장식 후보명단에 오르지 않고 있다#
  7. 위에서 해고당했다는 친구 케빈 레이놀즈가 연출을 맡은걸로 봐서는 앞의 해고 건으로도 사이가 틀어지지 않았거나 다시 회복된 것으로 보임.
  8. 평가가 극과 극인 맨 오브 스틸이지만 케빈 코스트너의 조너선 켄트는 다이안 레인의 마사 켄트와 함께 좋은 평가를 받았다.
  9. 영화 촬영 당시에는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10. 모델로 2004년 재혼했다.
  11. 재벌가의 상속녀로 알려진 브리짓 루니로 1996년 아들 리암을 낳았다. 이 후 케빈이 2004년 결혼하자 결별하고 2005년 빌 코치라는 사람과 결혼했다.
  12. 1996년 아버지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틴 컵에 나온 적이 있다.
  13. 첫 국내 개봉 흥행작이다. 비디오 잡지 출시 광고에서는 서울관객 35만으로 기재했었는데 당시 듣보잡이던 케빈 코스트너를 생각하면 당시 이 정도 서울관객은 대박이었다.
  14. 원제 <Bull Durham>. 오로지 메이저리그 승격만을 보고 살아가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성공과 좌절을 다룬 영화이다. 야구에 관심있다면 볼만하다.
  15. 1919년 메이저리그 승부조작 사건인 블랙삭스 스캔들에 휘말린 선수들에 관한 영화이다. 야구팬이라면 추천한다.
  16. 그나마 해외 흥행 및 2차 시장 수익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