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견환전/등장인물

중국 드라마 후궁견환전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항목. 드라마로 유명해진 만큼 드라마를 기준으로 설명이 되어있으므로 원작내용은 따로 각주나 문단을 나뉘어서 설명한다.

1 주요등장인물




견환심미장안릉용

이 셋의 등장과 함께 극이 시작된다.

대표명칭드라마본명원작본명
옹정제애신각라 윤진현 릉
과군왕(과친왕) 17왕야애신각라 윤례현 청
화비연 세란모용 세란
황후오라나랍 의수주의수
온실초

2 후비들

2.1 드라마

후궁은 한군기, 만군기, 몽군기에서 고루 뽑는다. 일단 귀인의 숫자를 맞추려는 것으로 보아서는 적어도 쿼터제인 것 같아 보이는데 이에도 불구하고 작중에서 등장하는 후궁들은 한족[1][2]이 대다수이다. 이건 당연하다. 원작의 후궁들은 모두 한족이니까.

확실히 한족으로 밝혀진 것이 주인공 트리오인 견환, 안릉용, 심미장부터 시작하여 이름을 보면 경빈 풍씨(풍약소), 양빈 조금묵, 화비 연세란, 녕빈 섭란의, 묘음낭자 여앵에 영귀인 채빈, 상재 하동춘까지 다 한족 이름이다. 물론 제비도 한족 출신이다. 모티브인 제비 이씨가 한족인데다, 황후가 "하긴 견환도 자네처럼 한군기 출신이니..."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황후가 기귀인에게 "너와 나, 그리고 부찰 귀인만 만군기고 나머지는 모두 한군기다."[3]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그냥 대부분 한군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반면 만군기는 황후가 직접 소수라는 말도 했고 실제로 소수이다. 황후야 정궁이니 제외하고, 확실히 밝혀진 만군기는 부찰씨인 부찰귀인과 과이가씨인 기귀인, 순상재[4], 뉴호록씨인 희귀비 정도이다. 게다가 몽군기는 한 명 뿐이다. 사실 몽골은 청나라 대대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여서, 실제로는 몽군기 출신 황후와 후궁이 상당히 많았다. 특히나 청 초기는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져서 청태종의 황후와 최고위 후궁 4명이 모두 몽골 출신이었고, 순치제의 정궁 황후들 역시 순치제의 총애와는 관계없이 모두 코르친 몽골 출신이었다.

드라마의 배경은 옹정제 재위 시기이니, 어쩌면 몽군기의 위상이 그 전에 비해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일단 극중에서도 견환이 처음 간택될 때 몽군 양홍기의 박이제길특씨가 귀인으로 간택되어 종수궁에 배치되었다는 언급은 있고, 경사방의 패에서도 박이제길특 귀인의 패가 가끔 보였으니, 황궁 어딘가에서 한때 존재하긴 했던 것 같다.[5] 어쩌면 '친정이 멀리 떨어져 있다'라는 말을 한 흔상재가 몽군기 출신일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이니 제외하고.

후궁의 품계 일람
1품2품3품4품5품6품7품그외
황귀비귀비귀인[6]상재답응관여자[7]궁녀
1명2명4명6명인원수 제한없음

후궁입갤을 할 때 품계는 황제가 마음에 들면 처음부터 높은 품계(귀인)으로 시작할 수 있으나, 그래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버지의 관직이 얼마나 높느냐이다. 품계에 따라 녹봉이나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시녀의 수는 물론, 머리에 붙이는 장신구나 호갑, 소매 넓이 등에서 단계마다 차이가 난다.[8] 호갑투나 연회에서 주로 입는 길복은 귀인부터 사용이 가능한 듯 하다. 안릉용이 안상재 시절 길복을 입지 안았고 강상재도 견환의 회궁때 다른 후궁들이 길복을 입은 것에 비해서 강상재는 입지 않음. 또한 상재나 답응, 관여자가 호갑투를 낀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귀인부터 실질적인 후궁이고 그 밑은 승은상궁 같은 취급이기 때문.[9] 같은 서열이라도 봉호를 받았으면 더 윗전으로 취급한다.[10]

설사 서열이 밑이라도 궁에 더 오래 있는 선배라면 친밀도와는 상관없이 "언니"라고 불러주는 것이 관례인 듯하다. 물론 말놓는 것은 품계가 높은 쪽이 먼저 해야 한다...[11] 단계를 건너뛰거나 할 수 없다고 방약 상궁은 말했으나 실제로 2계급 특진의 예로 섭란의와 단비, 송지가 있어서(...)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화비도 비 직위에서 귀비를 건너뛰고 황귀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실제로 청나라에서 황제가 법도 그까짓거 무시하고 몇 계급 올려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건륭제의 후궁 중에 귀인에서 비가 된 사례도 있다. 2계급 강등은 가능한 것 같다.[12]

후궁을 둘 수 있는 숫자는, 귀인 이하는 제한 없이 둘 수 있어서 태후의 말대로 그냥 "널려 있으나", 빈부터는 정해진 숫자가 있다. 빈이 여섯, 비가 넷이고, 귀비가 둘, 황귀비가 하나이다. 또한 빈 이상의 후궁은 한 궁의 최고 책임자이기도 하다. 전자(모자같은 것)를 쓸 수 있는 것이나[13] 정식 양육권이 있는 것도 빈 이상부터이며, 마마라는 존칭으로 불릴 수 있는 것도 빈부터이니 [14] 이렇게 귀인과 빈 사이에는 넘사벽의 구분이 존재한다. 구...군대

황후와 공주, 빈 이상의 품계를 지닌 후궁의 1인칭은 본궁(本宮)이다. 견환은 태후가 되었을 때, 의수는 자신이 태후라고 주장할 때 애가(哀家)라는 1인칭을 썼다. 본궁은 한 궁의 궁주이기 때문에 쓰는 표현이고, 한 궁의 궁주가 아닌 낮은 신분의 후궁들은 "본 소주"라고 표현한다.[15] 애가는 남편이 죽어(남편인 황제가 죽어야 태후가 된다.) 슬픈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는 표현. 후궁들의 경우 황제황후 앞에서는 황후비빈 구분없이 신첩이고,[16], 자기보다 품계가 높은 황후 아래 후궁에게 말할 때는 빈첩이라고 한다.근데 2화 황후가 아침문안 받을때 여빈이 나가면서 '빈첩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라고 했다 태후, 황제, 황후 앞에선 황제, 황후, 후궁, 황손 모두 아신(儿臣)이라 칭한다.

후궁은 겉보기에는 화려하나 사실 헬게이트나 다름없는 곳이다. 견환이 첫 입궁하여 완벽과 유주와 더불어 자금성을 보고 진짜 예쁘다, 다들 여기에 오고 싶어하는 이유를 알겠다며 감탄하지만 이후에 희귀비가 된 그녀는 이 곳을 "어디보다도 답답한 곳", "죽음이 최고의 해탈인 곳"으로 묘사한다. 게다가 비빈의 자살은 큰 죄라 가족들까지 끔살당하기에 그 죽음마저 자기 원하는 대로 받을 수 없다. 그 와중에 꿋꿋이 자살한 제비와 안릉용에게 리스펙트[17] 내명부의 후궁들은 견환이나 태후가 말했듯이 같아서 하나가 지면 또 하나가 피는 존재이다. 화비도 "심미장을 몰아냈더니 견환이 오고, 견환을 몰아냈더니 또 안릉용이냐!"라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이를 인증했다. 언제나 죽어나가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후궁이 또 다시 들어와, 결코 부족한 일이 없다. 이들은 궁녀보다 신분이 존귀하지만 그래도 황제 부처의 여러가지 이유에 의해[18] 소모품처럼 소모되는 존재인 듯하다. 실제로 극 전반에 걸쳐 열 명이 훌쩍 넘는 후궁들이 리타이어한다. 하상재, 여답응, 여빈, 순상재, 부찰귀인, 화비와 지답응, 조귀인, 기귀인, 심미장, 제비, 안릉용, 영귀인, 손답응, 섭란의의 순서이다. 그리고 후궁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마지막에 황후 그녀 자신도.

아래 목록은 서열이 워낙 휙휙 바뀌는 후궁견환전 특성상, 등장순서대로 정리하고 등장순서가 겹칠시 최초등장시 서열이 높은 쪽을 먼저 쓴다.
문서 제목은 본명이 아니라 최초등장시의 서열로 통일한다.(예: 조금묵 x 양빈 x 조귀인 o)

순원황후하상재단비제비여빈경빈조귀인
오라나랍씨하동춘불명이씨불명풍씨조금묵
주유칙하월청제월빈탕정언불명풍약소조금묵
흔상재부찰귀인순상재여답응지답응기귀인녕귀인영귀인
불명부찰 의흔순아여앵아교송지과이가 문원섭란의채빈
여영풍두패균방순의여앵아교씨관문원섭란의강심수

방귀인
한 때 쇄옥헌의 주인이었던 여인. 딸을 유산하고 너무 상심하는 바람에 황제의 기분을 해치고 책임을 화비에게 덮어씌우려다 노여움을 사 냉궁으로 쫓겨나게 된다. 견환이 입궁했을 때는 이미 냉궁에 있었는데, 의외의 장면에서 다시 등장한다. 미장이 견환에게 냉궁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데려갔을 때 미친 여빈의 옆에서 제 몸의 를 잡아먹는 모습으로 나온다. 방은 봉호인지 성인지 몰라도 방에 직책이 귀인이라 한국 한정으로는 은근히 웃긴 이름이다.(...) 방귀

정빈 & 강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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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상재 옆의 두 명. 오른쪽에 화려한 대랍시를 한 여인이 정빈 왼쪽에 흔귀인과 비교해서 가자두가 빈약한 여인이 강상재이다. 비중이 너무 없기 때문에 같이 설명한다. 강상재의 거주지는 아마 연희궁으로 추정된다.[19] 정빈은 불명. 견환이 희비로 환궁한 뒤 등장하는 두 후궁으로 견환이 출궁했을 때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황제는 수녀간택은 한 번 (견환과 안릉용, 심미장이 들어온 그 때)만 딱 하고 다시는 안 하겠다고 분명히 천명했는데 어떻게 충원된 것인지는 불명이나 기귀인처럼 공신의 이거나 영귀인처럼 왕부에서 (돈친왕, 항친왕 등 많으니까) 뽑아올린 여자들인 것으로 추정. 허나 진실은 저 너머에...[20]
견환이 희비로 입궁하는 장면에서 이를 맞이하며 "저 사람이 희비라며?", "옛날엔 완빈이었다는데...", "폐하께서 희비라면 희비인거지 뭐"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으로 첫선을 보이며 별달리 세력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조연이다. 후궁들이 대숙청(...)당한 후 조회에 등장하는 후궁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그냥 의자를 채우는 역할 정도로 보는 것이 좋다. 비중도 없고 총애도 없다.[21]
작중행적을 보면 긍정적인 면모는 하나도 없고 네편내편 가리지 않고 마구 깽판치고 다니다가 방법당하기만 한다(...). 근석과 소배성 연애 스캔들이 터진 이후 기빈과 같이 견환 뒷담화를 까는 걸 보면 기빈과는 잘 노는 걸로 보이고, 안릉용이 목소리를 잃어 냉대 받을 때 처소에 쳐들어가 부적을 붙이는 등 구박했으며 질낮은 탄을 주다가 황후의 심복 전추에게 걸려 벌을 받았다. 6황자 홍염의 친자확인 사건 때 은근슬쩍 견환을 비방하다가 6개월 감봉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안릉용도 괴롭히는 걸로 봐선 딱히 황후나 기빈 (기귀인)의 편이라기 보다 그때그때 유리한 쪽에 붙는것 같다. 투기가 심하며 (안릉용이 빙희를 하는 걸 보고 "불여우"라고 한 마디 흘린다) 성질이 더럽다[22] 특히 강상재의 경우 멍청하기까지 하다. 강상재는 68화에서 릉용의 아이가 황제의 실수로 유산했고 황제가 슬퍼하던 참에 꽃단장하고 와서 황제를 화나게 만들었다.[23] 다만 정빈은 의외로 똑똑할지도 모른다. 황후는 견환이 감로사로 간 직후 안릉용과 기귀인을 빈으로 추천해서 빈으로 올렸고 황후 성격상 자기 편이 아닌 다른 후궁이 빈으로 승격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리가 없기 때문이며 릉용의 아이가 죽었을 때도 정빈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기빈은 미인이기라도 하지 이 둘은 그렇지도 않다. 그냥 못생긴 기빈기빈 열화 버전이 두 개 복제되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듯.(...)
이후 황제가 죽은 후 사지멀쩡하게 등장한 후궁이 단황귀비, 경귀비, 흔빈 뿐이라는 것을 보면 이 둘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일단 모든 후사가 없는 후궁들이 그랬듯이 후사도 없는데다가 후궁견환전의 멍청하고 성질만 더러운 악역의 말로 법칙을 보자면 비구니가 되어 궁에서 쫓겨났을 걸로 예상이 된다.[24] 심지어 장례식 씬에서도 단비가 황귀비니까 맨 앞에, 그 뒤에 귀비인 견환과 경귀비가 서고 경귀비 바로 뒤에 흔빈이 서 있는데, 그 뒤에 정빈이나 강상재는 보이지 않고 바로 옥요가 있다. 아마 이 때부터 출궁당했던 것 같다.
여담으로 정빈의 봉호는 '곧을 정'자인데 이 봉호가 후궁견환전 원작 소설의 등장인물들 중 가장 선량한 사람인 서연의의 봉호이기 때문에 원작으로 후궁견환전을 먼저 접한 팬들이 황당해 했다.

손답응
견환이 희귀비가 되고 나서 과군왕이 변방으로 쫓겨나고 3년이 흐르는데 아마 그 사이에 충원된 것 같아 보이는 후궁이다. 지위가 낮은 걸로 보아 아마 왕부의 시녀 출신인 듯 싶다. 사실 등장인물이라고 소개해놨지만 등장하지는 않는다.(...) 견환과 경귀비, 단황귀비의 대화에서 잠깐 언급될 뿐이다. 시위와 사통하는 것을 경귀비가 잡았는데 그 때 마침 손답응의 빨간 속옷이 시위의 허리띠에 걸려 있어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고(...). 황제는 이 소식을 견환을 통해 전해듣는데, 아마 견환이 자기 재량에서 처리할 수 있음에도 황제의 병세를 더 불릴심산으로 흘렸다. 황제는 매우 빡쳐서 병상에 누운 와중에도 둘 다 능지처참하라고 한다. 원작에선 견환이 황명을 날조하여 폐서인으로 강등하고 출궁시켰다.
어떻게 보면 황제가 후궁들의 배신에 매우 민감하다는 사실을 견환에게 일깨워준 여자. 황제는 어린 시절 자기 어머니가 황제 (아버지)를 배신하고 사통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고, 손답응의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한 것. 견환은 황제를 가장 빡치게 하는 소재를 얻었고 황제가 임종할 때 그 소재 이야기, 즉 심미장과 자신의 사통을 폭로해 황제가 눈도 못 감고 죽게 만든다.
추측이지만, 황제가 병상에 눕기 전에 두 답응을 양옆에 끼고 앉아 수수께끼 놀이를 하다 피를 토하는데, 그 때 있던 두 답응 중 한 명이 손답응일 가능성이 있다.

2.2 원작

후궁 품계 일람
정1품종1품정2품종2품정3품종3품정4품종4품정5품종5품정6품종6품정7품종7품정8품종8품
귀비
숙비
현비
덕비
부인 2명비 3명소의
소원
소용
숙의
숙원
숙용
수의
수원
수용
귀빈 5명[25]첩여용화완의
방의
분의
덕의
순의
소의
소원
양원
양제
귀인재인
미인
상재
낭자
선시채녀경의

귀인, 빈, 귀빈, 비, 부인은 봉호를 받으나 비 아래의 후궁은 출신에 따라 받지 못하기도 한다. 종종 상재나 낭자도 봉호를 받는 경우가 있다. 정1품의 귀숙현덕 중 귀비만이 원래의 봉호를 유지할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가장 높다. 그러나 나중에 견환이 부황후의 대우를 받는 황귀비에 오르면서 최고 품계는 황귀비가 된다.

본래라면 처음부터 높은 품계로 봉해질 수 있었으나 덕비와 현비 사건 이후에는 신분이 높아도 입궁시 낮은 품계로 봉해지며 빈이 마지노선이다.

  • 현비 감씨 & 덕비 묘씨
주유칙이 황후가 된 후 들어온 후궁들이다. 총애를 받는 순원황후를 질투해 불손하게 굴었고 의수의 이간질과 부추김으로 더 심해졌다. 결국 폭발한 순원황후가 2시진(4시간) 꿇어앉는 벌을 내렸고 회임 중인 감씨가 유산하여 충격 받은 순원황후는 쓰러졌다. 현릉은 두 사람을 폭우 속에서 무릎 꿇고 있도록 했고, 순원황후는 자기 때문에 감씨가 유산했다며 괴로워했지만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둘을 용서해달라는 말은 안했다. 현릉은 순원황후가 죽은 후에 이들을 순장시켰고 앞으로도 영원히 추존받지 못하게 했다.
  • 사이운
종6품 사미인 -> 정6품 강(康)귀인 -> 종5품 사양제 -> 정5품 강빈
견환과 함께 당리궁을 쓴 후궁 중 하나로 순원황후의 코와 닮아 현릉의 총애를 받았으나 곧 잊혀졌다. 드라마에선 흔상재가 여씨에게 해코지를 당하나 원작은 사미인이다. 마지막엔 같은 궁에 사는 왕미인의 회임 소식을 알리러 현릉에게 갔다가 왕미인이 사통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대신 분풀이 당했다. 견환은 남에게 빌붙는 그녀의 태도를 좋아하지 않아 아무 죄가 없음에도 현릉의 건강을 망쳤다는 죄목으로 왕미인과 궁주인 조선혜와 함께 궁에 봉쇄시켰다.
  • 호온용
정6품 창(昌)귀인 -> 정5품 창빈 -> 종4품 호덕의 -> 정4품 호용화 -> 정3품 창귀빈 -> 종2품 호소의 -> 정2품 민(敏)비[26] -> 종1품 장민부인(莊敏夫人) -> 정1품 현비 -> 종6품 호재인
후반부의 주역으로 무양대장공주의 외손녀이자 진강옹주의 딸. 진강옹주 주씨가 태후의 사촌 여동생이라 온용은 황후자매와도 친척이다. 이름은 미인을 상징하는 부용에서 따왔고 이름답게 상당한 미인으로 묘사된다. 한 손을 못폈는데 현릉이 만지자 만세영창(万世永昌)이라 새겨진 옥돌이 나왔고 현릉에게 봉호 창(昌)을 받는다. 현릉과 6촌 지간이라 표매(表妹)-표가(表哥)라고 부른다. 공주의 후손인 자신만이 황후가 될 자격이 있다고 믿어 오만하나[27] 이런 종류의 다른 후궁들과 달리 두뇌 회전 속도가 빠르다.
아버지가 죄인이고 호씨 가문이 몰락해 이것이 약점으로 황후가 되려는 것은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의수가 주씨 가문 세 번째 첩의 딸이라며 무시하나 의수에 의해 화목제희를 낳고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후 의수를 적대하며 환궁한 견환과 손잡았다. 의수가 연금된 후 자신과 달리 황손이 많은 견환이 황후가 될 것을 걱정해 견환을 적대하고 견환이 키우는 심미장의 아들 여윤을 자신의 양자로 삼으려 했으며 현청과 견환의 관계를 눈치 채 현릉에게 알렸다. 견환은 현청이 죽은 후 숙비안이 적힌 편지를 현릉에게 보낸 게 온용임을 알고 그녀를 증오하게 된다. 롱월공주에 의해 옥돌의 일이 거짓인 게 밝혀진 후 재인으로 강등당한다. 결국 견환이 천식을 이용해[28] 온용을 죽였고, 화목제희는 서연의가 키운다.
머리가 워낙 좋아 견환도 고전한 상대. 동맹관계였을 때조차 서로 견제하고 경계했다. 여담으로, 원작에서 릉용을 보고 불여우라고 한 건 이 여자다. 캐릭터성이 화비와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오만하며 현릉에게 애교를 잘 부린다. 작중인물들도 화비와 닮았다고 말한다. 황후는 직접 "너 예전의 모용세란처럼 철딱서니 없구나."라고 말했다. 때문에 화비와 마찬가지로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편이다. 비판받는 이유도 화비와 비슷하게 오만해서이다. 화비 팬들에게도 화비 짝퉁이라는 식으로 욕먹는다. 그래도 인기는 많아서 드라마에 등장하지 못하자 중국 현지에서 드라마 상상도나 팬아트가 쏟아졌다.
  • 서연의
정8품 서채녀 -> 종6품 서재인 -> 정6품 서귀인 -> 정5품 서빈 -> 종4품 서완의 -> 정4품 서용화 -> 종3품 서첩여 -> 정3품 정(貞)귀빈[29] -> 종2품 서숙용 -> 정2품 정비 -> 종1품 정일부인(貞一夫人) -> 정이태비(貞怡太妃)
견환이 환궁한 후 등장한 인물로[30] 현릉은 연의를 총애하진 않아도 중병에 걸릴 때 그녀가 정성껏 간호해 주었기에 존중해주고 을 읽는 모습이 견환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종종 찾았다고 한다. 외모는 결코 예쁘지 않고[31] 갸냘프며 왼쪽 눈 아래에 눈물점 같은 사마귀가 나있지만 눈은 영롱하다고 묘사된다. 책을 좋아하며 고요한 성정을 가졌으며 오로지 현릉만을 사랑하는 여자로 현릉이 견환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 견환을 돕고 견환은 2황자 여패를 회임한 연의를 지켜준다. 드라마 후반부에 단비의 행보는 대부분 서연의의 행보이다.[32] 견환은 연의가 현릉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기에 현릉에게 복수하면서 연의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원작에서 친자 확인 때 피검사를 받은 황자는 견환의 아들인 여함이 아니라 서연의의 아들인 여패다. 당시에 서연의는 내전에 있다가 암투를 못 견뎌해 자기 궁으로 돌아갔고, 잠시 후 완벽이 독단으로 여함과 여패를 바꿔치기 해 여패가 친자확인을 받는다. 처음 검사할 땐 황후가 백반을 넣어 온실초의 피와 섞였고 견환이 발견하자 다시 검사를 했는데 이번엔 현릉의 피와 직접 섞었고 견환이 호갑에 백반을 숨겨 물에 타 피가 섞였다.
연회에서 야생곰이 날뛸 때 홀로 몸을 바쳐 현릉을 지키려고 했고 현릉은 연의의 마음을 깨달아 정일부인으로 봉한다. 인기가 많은 캐릭터라 드라마에서 나오지 않아 원작 팬덤의 아쉬움을 샀다. 안티없이 인기 많은 캐릭터는 서연의와 섭란의가 유이하다.
  • 부여음
종5품 부소의 -> 종4품 부완의 -> 종3품 부첩여
견환이 출궁할 당시에 들어온 후궁. 순원황후도 약간 닮았지만 견환을 더 닮았고 견환의 대역으로서 가장 총애받은 후궁이었다. 그러나 머리가 비었고 오만하여 다른 후궁들의 어그로를 샀다. 부여음이 안릉용의 종용으로 오석산을 현릉에게 썼고 이것이 들통나 태후에 의해 사사된다.
  • 영적작
종8품 영경의 -> 종7품 영선시 -> 정7품 여용(余容)[33]낭자 -> 정6품 여용귀인 -> 정5품 영빈
서연의의 시녀로 화비를 닮은 외모 때문에 현릉의 눈에 띄여 후궁이 되었다. 사실은 화비의 여동생인 모용세작[34]으로 가문이 망한 후 노비가 되었다가 궁녀가 되었다. 견환과 현릉은 화비와 관련있다는 걸 진작에 눈치 챘으나 현릉은 화비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 모르는 척했다. 후궁이 된 후 견환을 모함하는 일을 일삼다 견환을 독살하려하나 실패하고 사사된다.
  • 조선혜
정5품 운(韵)빈 -> 정4품 조용화 -> 종3품 조첩여 -> 정3품 운귀빈
황후파 후궁 중 한명으로 견환에게 늙었다고 디스하며 어그로를 끌었다. 의수가 몰락한 후에는 호온용에게 붙었으나 호온용마저 몰락하고, 견환이 왕미인의 사통을 꼬투리 삼아 궁주로서의 책임을 물어 궁 자체를 봉쇄해 냉궁으로 만들어 버렸다.
  • 유령한
종5품 유양원 -> 정5품 신(慎)빈 -> 정4품 유용화 -> 정3품 신귀빈
견환과는 입궁 동기로 초중반 이후에 총애를 잃고 조용히 산다. 온유한 성격으로 황후에 의해 연금된 서연의를 도와주고, 견환과 우호적으로 지낸다.
  • 주패
정6품 경(慶)귀인 -> 정5품 경빈 -> 정4품 주용화 -> 정3품 경귀빈 -> 정2품 경비 -> 경공태비(慶恭太妃)
견환이 출궁한 이후에 들어온 후궁. 견환이 환궁할 때까지 총애를 받았으며 당시 귀빈으로 있던 관문원과 궁을 함께 쓰고 있었으나 관문원이 자신을 멸시하자 견환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한다. 이후 관문원이 빈으로 강등되는 빌미를 만들어 궁의 주인이 되며 이후 견환이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드라마판 흔상재의 2부 행적이 바로 원작의 주패의 행적이다. 매우 예쁘다고 한다. 첫대면에 견환이 현릉의 안목에 감탄할 정도.
  • 두패균
정6품 염(恬)귀인 -> 종5품 두양제 -> 정5품 염빈 -> 정2품 염비
드라마에 나오는 부찰귀인의 원형이 되는 캐릭터 중 한 명으로 임신을 했으나 각비 탕정언에 의해 유산되고, 현릉의 총애도 잃어버렸다. 이후 현릉의 생일 날을 기념하는 연회에서 섭란의가 표범을 이용하여 현릉을 죽이려고 할 때, 현릉에 의해 모귀인 이씨[35]와 함께 고기방패가 되어버린다. 이로 인해 죽게 되고, 사후에 추존되어 비가 된다.

3 심복들

남자로는 태감(고자), 시위(고자 x)가 있으며, 여자는 궁녀들이다. 특기는 "죽여주시옵소서!"라고 외치며 셀프 싸대기를 때리는 것이다
친정에서 데려온 시녀들은 "소저"라고 불리우며 나름 특별한 대접을 받는 듯하나[36] 일반 양산형(...) 궁녀들은 대부분 소모품으로 취급된다. 걸핏하면 싸닥션을 맞고,[37]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여기서 우리는 청나라의 귀족소녀들은 뻑하면 얻어터지는 동네북(...)임을 알수 있었습니다.

후궁견환전의 시녀들의 특징이 있다면, 절대적으로 충성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배신을 자주 때리거나 해서 지독히도 도움이 안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수석 시녀들은 대체로 자기 주인의 성격을 닮았다.[38] 시녀들이 자주 보이는 모습은 녹봉 등 필요한 물품을 내무부에 수령하려 다녀오거나, 소주의 팔을 잡거나 해서 높은 굽을 신었을 때도 넘어지지 않게 부축해주거나, 여름이면 부채 셔틀 or 인간 선풍기로 봉사하거나(...) 하는 모습이다. 특히 여름에 회합이 있거나 할 때는 인간 선풍기로 화한 궁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또 한 주인을 모시는 쪽수가 좀 많아지면 옷색깔을 한 색깔로 통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궁녀들의 경우 일반 평민과 비교한다면 정말로 신분이 낮은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전부 기인(旗人)들로, 일반 민인(民人)들과는 달리 국가로부터 여러 혜택을 받는 특권 계층 출신들이다. 특히 태후나 황후처럼 궁중에서도 높은 사람들을 모시는 궁녀들은 팔기 중에서도 상3기에 속한 사람들로만 뽑았다고 한다. 즉 궁녀들도 미장이나 견환, 하다못해 안릉용처럼 팔기라는 특권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었지만, 다만 이들은 일반 팔기 귀족 출신의 후궁들과는 달리 내무부 포의(包衣) 3기 소속이 대부분인데다, 황제의 눈에 들지 못했기 때문에 궁녀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궁에서 일하는 사람을 아무나 뽑아 쓸 수는 없는데다가 황제의 후궁이나 황족의 복진을 충원할 필요성도 있었으므로, 청 황실은 정기적으로 수녀선발을 통해 청나라의 특권계층인 팔기의 여성들 중 일정 인원을 뽑았다. 이들 중 황제의 눈에 들거나, 혹은 그 중에서도 문벌이 좋을 경우[39]에는 후궁이나 황족의 복진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궁녀로 일하다가 결혼할 나이가 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출궁한다.[40] 이렇게 출궁한 궁녀들은 궁중의 품위와 예법을 배웠다는 이유로 평판이 좋은 편이었고, 또 궁중에서 일하면서 상류층 사람들과 연이 닿는 경우가 많아 좋은 혼처를 구하기가 조금 더 쉬워진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래서 가난한 기인들 중에서는 이참에 딸이 돈도 벌어오고, 결혼도 잘하도록 입궁을 바라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한다.

단 태감들은 전부 신분이 낮은 일반 한족 출신이다. 고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팔기에 속해 있는 귀족들은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한족을 데려와서 쓰는 것이다.[41] 이외에 우리나라의 무수리처럼 허드렛일을 하는 여자일꾼들은 전부 한족으로 이들은 궁녀들과 생활하는 곳도 다르고 그곳에서 그들 마음대로 결혼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이들은 내관들과 살림을 차려 궁밖에서 출퇴근 하기도 했으며 이들이 몰려사는 동네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이 점은 우리나라의 내시들도 거의 비슷했다. 다만 궁녀들과 태감들이 사통하는 것은 엄금하였는데, 명나라 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지면서 환관들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졌기 때문이었다.[42]

모시는 주인들의 최종 신분이 높은 순서대로 정렬한다.

3.1 황제의 심복들

  • 하예
의외로 첫등장은 상당히 초반이다. 온실초의 처방을 훔친 강씨 태의 형제를 처치하는 일을 황명으로 하며 첫선을 보인다. 물론 비밀부대인만큼 강도로 위장한다. 나름 능력있는 듯 황제가 "네가 이끄는 혈적자 부대가 좋더구나"라는 말도 한다. 그 이후 꽤 오랜 시간 동안 공기로 있다가 갑툭튀하며 견환을 여러 번 엿먹인다. 첫째는 자금성에 온 마격 칸이 희귀비 견환에게 "참으로 대단하시구려, 황제의 동생이랑 사통이라니!"라며 시작한 대화를 엿들어서 황제에게 꼰지른 것이고, 둘째는 과군왕부를 감시하여 과군왕이 견환의 가마를 따라가는지를 확인하여 과군왕이 변방으로 쫓겨나는 데 일조한 것이다. 극후반부에 소배성이 최근석과의 혼인으로 궁밖에 나가게 되자[43] 그가 황제의 수족이 되는데 홍염이 자신의 핏줄이 맞는지 의심을 하던 황제가 그에게 홍염의 피를 채취하라 명하였고, 이후에 홍염의 발가락에서 피를 빼내는 것을 녕귀인에게 들켰다. 견환이 소윤자에게 명을 내렸고, 소윤자의 손에 의해 죽는다.
  • 소하자
황제를 직접 보필하는 내관. 여답응과는 복수하고 복수당하는 관계로, 결국 여답응을 목졸라 죽인 것은 그이다. 소배성이 근석과의 스캔들이 터져서 신형사로 끌려갔을 때, 소배성 대신 황제의 시중을 들었지만 차 온도도 못맞춰서 황제는 굉장히 못마땅했다. 사실 여기저기에서 황제와 후궁 사이의 연락셔틀 역할로 많이 등장하기에 자주 보인다.

3.2 견환의 심복들

  • 비문
희비 뉴호록씨로 돌아온 견환의 밑에서 일하게 된 시녀이다. 견환이 쌍둥이를 출산한 뒤, 비문이 문을 열어둔 탓에 기침을 하자 황제가 따귀 20대를 때리라는 명령을 내렸고 소윤자는 스스로 따귀를 때리라고 지시한다. 나중에 황후가 견환과 황제를 만났다가 나왔을 때 비문을 보고 전추에게 지시를 내려 회유한다. 이후 견환을 계속 감시한 모양인지, 온실초와 견환이 같이 있는 것을 보고 잠시 놀라고 급히 나가는 묘사가 나오는데 이 때 황후에게 꼰질러버린 듯하고 황후는 이걸 소재로 썼다.(...) 하지만 헛다리였다.
이후 후궁견환전의 시녀들답게 홍염친자확인 사건때 견환을 배신 때리고 모함을 했다. 하지만 홍염친자확인 사건이 견환에게 누명을 씌울려고 한 기 귀인과 감로사의 정백의 거짓이였음이 들통나자 분노한 견환이 처형하라고 명령을 해서 결국 궁인들에게 끌려가 처형당했다. 처음에 기세등등할때 희비마마 밑에서 일하기 싫다[44]는 싸가지 없는 말을 했지만 모함이 거짓으로 들통나자 견환에게 잘못했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말하는걸 보면 엄청난 소인배에 찌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좀 멍청한 듯하여 일단 온실초x견환은 헛다리였을 뿐 아니라 견환과 근석의 낚시에 걸려서 비웃음당하기도 했다.[45]
  • 품아
완빈 시절까지 견환을 모신 궁녀. 이후 견환이 출궁하자 그녀의 명으로 경비에게 간다.
  • 소윤자
견환이 황제의 시침을 피하느라 후궁을 대접을 못 받을 무렵, 다른 시녀와 환관은 다 떠났으나 끝까지 남아 견환에게 충성을 다한다. 소윤자의 형이 아픈데도 궁을 떠날 수 없어 슬퍼하고 있을 때, 견환이 흔쾌히 보내줬을 뿐 아니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결초보은의 좋은 예. 참고로 이후에 견환에게 다짐한 충성의 맹세가 은근히 웃기다.
처음에는 어리버리하고 어리숙해 보이지만 숨은 인재였다. 여답응, 여빈, 안릉용은 얘가 없었으면 못 깼다. 첫째, 무공이 뛰어나다. 여답응의 사주를 받아 독약을 주고받던 태감이나 지르러 온 숙희를 때려잡는 건 기본이고, 나중에 가면 황제가 운영하는 비밀부대 혈적자를 이끄는 하예를 때려잡아 버릴 정도이다(!).[46] 둘째, 손재주 역시 제법 좋다. 먼저 완상재 시절 견환과 완벽을 닮은 종이조각을 만들었다. 이것은 견환이 소원을 빌기 위해 의매원 매화 가지에 끼웠고, 과군왕의 손에 들어갔으며, 그가 견환을 그리워하기 위한 증표로 지니고 있다가 완벽의 계략으로 과군왕과 완벽이 혼인하게 되는 빌미가 되었다. 엄청난 나비효과 아이템. 뿐만 아니라 희귀비 시절에는 홍염과 학을 접는다는 묘사도 나왔다. 손재주가 좋기에 무언가를 슬쩍하는 것도 잘 하는 듯, 견환이 안릉용을 몰락시킨 것은 소윤자가 안릉용의 창고에서 몰래 집어온 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셋째, 안릉용이 해 준 귀신분장을 하고 여빈을 실성하게 만든 전적도 있는 걸로 보아 연기도 출중하다.
견환이 출궁했던 당시에는 심미장의 태감으로 일하다가, 돌아온 뒤에는 심미장이 기꺼이 보내주어 다시 견환을 섬기면서, 끝까지 살아남아 황태후가 된 견환 곁에 남아 있는다.
견환과 황후의 마지막 독대에서 견환을 가드하던 사람도 소윤자다.

3.3 태후의 심복들

  • 방약 상궁
견환과 릉용이 입궁하기 전 예법을 가르친 상궁이다. 견환이 완벽을 이용하여 화비를 낚았던 사건 당시 몰래 심미장과 만나도록 도와주었고, 이후 견환이 롱월을 임신한 채로 연금되었을 때도 쇄옥헌에 드나들며 잘해준다. 이후에도 황제가 집무를 보는 양심전에서 일하고 있었으나 견환이 총애를 잃으면서 태후궁으로 옮겨간다. 견환이 황제의 총애를 잃었을 때 지나치게 엄하게 가르친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며 견환에게 잘해준다.
참고로 한때 순원황후를 모셨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순원황후가 잘 사용했다는 원산대 기법으로 눈썹을 그릴 줄 안다고. 심미장의 거짓 회임 사건 때 견환은 방약상궁에게 페르시아 눈썹먹을 줘서 그걸로 눈썹을 그리게 해 황제에게 말을 좀 잘 해 달라고 부탁한다. 심미장의 이름은 중국어로 '눈썹을 짙게 화장하다' 라고도 들리는 것을 이용한 것으로[47], 국내 팬들은 뭔 소린지 잘 모르는 부분. 원작에선 견환에게 화비의 환의향이 같은 궁을 쓴 다른 후궁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혔음을 알려준다.
  • 죽식 상궁
태후의 심복이다. 성은 손씨. 사실 황후를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고 황후의 악행도 모두 알고 있지만 태후를 위로하기 위해 모든 것을 태후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다.[48] 또한 화비의 불임에 대해서도 진상을 알고 있었고 이 진상에 대해 입조심할 것을 외부에서 화비를 진찰하러 온 사제 의사에게 경고한다.

이후 황후의 악행이 밝혀졌을 때 나타나 미리 태후가 사망 전 황후를 보호하기 위해 작성해둔 교지를 공개한다. 이게 마지막 등장이었는데, 이 때 "소인이 태후를 따라가지 않은 것은 이 교지 때문입니다"라는 대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이 이후 임무를 다한 것으로 보고 자살한 듯하다. 비록 상궁의 신분이지만 상당히 존중을 받고 있는 듯하여 황제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정황상 태후가 입궁할 때 데려온 시녀인 듯. 융과다와 태후의 일도 다 알고 있는 눈치.

3.4 황후의 심복들

  • 전추 / 양개순役
황후의 심복 상궁으로, 사실상 웬만한 비빈보다 실세. 사이드테일을 연상케 하는 한쪽으로 치우친 머리스타일이 특징이다. 황후처럼 겉으로는 자애로운 척 하면서 뒤에서 온갖 악행을 도모하여 견환을 공격한다. 견환 친자확인 사건의 증인 궁녀인 비문을 날조한 장본인. 황후가 견환의 계략에 휘말려 연금되자 앙심을 품고 학정홍으로 견환과 6황자를 독살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오히려 황후가 순원황후의 죽음에 연관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몰락하는 계기를 만든다. 독살에 실패한 이후엔 신형사로 끌려간다. 충성심 하나는 대단했던 것이 황후가 받는 모욕조차 자신이 무능해서 이런 일이 생긴거라 생각하며, 독살에 실패한 이후, 자살조차도 실패하자 왜 황후마마를 믿지 않냐고 황제를 탓하면서 견환을 저주하였고, 신형사의 고문을 받으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경세황비에서 아주 코믹한 캐릭터로 등장했던 터라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경세황비에서는 살을 상당히 찌워 등장한데다 캐릭터가 너무 달라 잘 못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 강복해
황후의 심복으로 경인궁의 수령 태감이다. 신형사에서 같이 고문받았는데 전추는 끝까지 입을 다문 반면 이 양반은 줄줄 불었다.(...) 고문을 받다가 황후가 순원황후를 죽였다는 것을 줄줄 불어서 황후에게 막타를 날린 장본인이다. 그래서 전추만큼 충성스럽지는 않은 듯하지만 그래도 전추가 견환을 죽이기 위해 극약(학정홍)을 부탁할 때 실패하면 본인까지 죽을 줄 알면서도 극약을 구해 주었다는 점에서 아예 충성심이 없는 것도 아닌 듯하다.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은근히 사람 속을 잘 긁는 말을 웃는 낯으로 부드러운 말투로 잘도 한다는 것이다. 화비의 속을 긁을 때 특히 돋보였다. "마마, 안귀인은 피부도 백옥 같고 미소는 천사 같답니다~ 왜 이러시는지요, 땀이 나시네요ㅋㅋ ^^" 이러는 등. 또한 화비에게 연갱요의 몰락 소식을 전해 주면서 비꼬고 속을 긁을 때도 더할 나위 없었다!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화비는 임신이 안 되자 태의가 아니라 일반 의사를 궁밖에서 데려오는데, 그 의사를 궁에서 안내한 것이 바로 강복해이다. 주녕해가 아니라.
  • 회춘
황후의 시녀로, 전추 말고 이름이 밝혀진 시녀는 얘가 유일하다. 친자 확인 사건 때 황후가 견환을 몰락시키려 물에다 백반을 탄 것이 발각되자,[49] 회춘이 자진해서 나서서 백반이 섞인 것은 황후의 지시가 아니라 자기 실수라고 고백해서 황후에게 결정타가 가는 것을 막고(전추도 그렇고 참 충성스럽다.) 대신 자신은 신형사에 끌려가게 되어서 리타이어. 나름 네임드 시녀였는지 이름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황제가 안다. 사실 이 사건 말고도 몇 번 불린 일이 있긴 하지만 그냥 지나가는 역할. 사실 1화부터 꾸준히 지나가는 역할로 나오고 있었다.

3.5 화비의 심복들

화비를 모시는 익곤궁의 사람들. 이래저래 화비의 주변에는 제대로된 사람은 없지만 충성심만은 강한 사람들이 꽤 있는 것을 알 수있다. 화비도 이를 알고 있기에 고문받는 주녕해의 비명을 들으며 "주녕해가 자백하더라도 책망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바 있으며, 끝까지 자신을 따르는 송지에게는 "네가 고생이 많구나"라는 지극히 화비답지 않은 말을 했다.(물론 이 뒤에 송지는 "어려서부터 소주를 모셨는데 당연히 끝까지 따라가야죠"라고 대답한다.)

  • 주녕해
강일명 役. 익곤궁 태감. 젊고 비교적 잘생긴 남자이다. 특징이라면 한쪽 발을 절뚝거리는 절음걸이이다.(이 걸음걸이 때문에 한 번은 급히 들어오다가 문턱에 걸려 콰당 넘어졌고 화비는 그걸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물론 그 다음에 그가 전한 소식이 황제가 온다는 소식이어서 기뻐했지만) 본래 화비 집안 사람인데 신체적인 한계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들자 내관으로 입궁했다. 나름 무공도 뛰어난 듯 온갖 몸을 쓰는 일(?)은 전담한다. 길상을 발길질한다던가, 복자를 죽인다던가, 순 상재를 물에 빠뜨려 죽인다던가 하는 일들은 모두 그가 한 일이다. 이걸 봐서는 태감(고자)인데도 시위(일반 남성)보다 힘이 센 듯 하다. 위의 소윤자처럼 무공에 뛰어난 케이스일지도. 평소에는 궂은 일도 마다 않는 화비의 충실한 심복으로 있다가 화비가 마지막에 위기에 몰릴 때 조언도 해주고 화비를 달래주었다. 너무 늦어 화비의 말로를 바꿀 수는 없었지만 작중 유일하게 화비가 자신은 뒤로 물러서고 남을 앞세우게 만들었다.
나중에 화비의 악행이 조귀인에 의해 까발려져서 두 번 혼절하는 등 심한 고문을 겪었다. 화비의 말로를 생각하면 이쪽도 죽었다고 생각하면 무방한 듯.
  • 숙희
주녕해가 죽은 후(혹은 리타이어한 후) 숙희가 새 익곤궁 태감으로서 바톤 터치를 한다. 이 양반의 행적이라면 쇄옥헌 방화사건의 주모자라는 것. 이미 연갱요도 세력을 잃고 화비도 답응으로 강등되어 더 이상 희망이 없음에도 화비를 위해 일을 저질렀다.
다만 원작에 의하면 단비가 몰래 준비한 사람(暗中安排的人), 즉 스파이라고 한다.
  • 영지
송지가 없을 때 화비를 모신다. 화비판 회춘이라고 보면 될 듯.
  • 복자
1화에 등장하여 짧고 굵은 존재감을 어필한 궁녀.(...) 황후가 화비에게 내려주었다. 후일 강복해의 말에 따르면 내무부에서 뽑은 지 며칠밖에 안 된 뉴비였다고. 그러나 화비는 황후가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서 보낸 스파이 정도로 여겼으며, 여기에 더해 황제가 익곤궁에 들었을 때 그녀를 눈여겨보면서 나이를 묻고 예쁘다고 칭찬하자 분노 MAX 상태가 되었다. 결국 화비의 머리카락을 빗다가 화비가 발끈하며 고개를 돌린 서슬에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버려서 임계점 돌파. 화비의 심중을 헤아린 송지가 불꽃싸대기와 함께 무언의 명령을 내려, 주녕해가 끌고 가서 기절시킨 뒤 어화원의 우물에 빠뜨려 죽인다. 그녀의 시신은 몇 화 뒤 어화원을 관리하던 태감과 궁녀들에게 발견되고, 정줄을 놓은 그들을 이상하게 여긴 견환이 직접 우물을 들여다보고는 목격하고 만다. 바로 직전의 하상재 일장홍 사건과 함께 견환에게그리고 팬들에게 후궁이라는 잔혹한 세계를 뼈져리게 알려주었다.
황후는 복자의 죽음을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지시하여 황제에게 알렸으나, 황제는 한창 승승장구하는 연갱요때문에 결국 진상을 묻어버리고 말았다. 참고로 복자가 죽었을 때 나이는 겨우 17세로, 견환과 동갑(...).

3.6 안릉용의 심복들

  • 보견
안릉용의 심복. 시녀를 하나밖에 거느릴 수 없는 답응 신분이었던 안릉용의 첫 시녀이다.(안릉용은 렙 1답응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답응은 시녀를 한 사람만 가질 수 있다.) 배신이 판을 치는 후궁견환전에서 친정에서 데려온 시녀가 아니였기에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부정적으로 곡해된 발언을 자주 하여 릉용의 의심과 열등감을 부추겨서 흑화시키고 릉용이 화비를 저주한 걸 황후에게 귀뜸을 하는 바람에 황후에게 약점을 잡히고 결국 황후 편에 속하게 되어 견환과 척을 지게 만든다. 나중엔 기귀인이 보내온 목소리 잃는 약을 안릉용에게 먹이기까지 한다. 다른 후궁들처럼 악의는 없었지만 본성이 시커먼 해서 완벽, 순상재와 더불어 안릉용을 몰락시킨 장본인 중 하나다.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았으나 결국 제 한몸 몸보신 못하고 안릉용이 연희궁에 유폐되었을 때 참수당한다. 배우가 원래 황후의 첩자라 말했다 카더라.[50]
  • 보작
안릉용은 보작을 시켜 미장에게 "6황자가 온실초의 아들이라 의심받고있다"는 말을 전해줘서 미장을 위험하게 만든다.(친자의혹소식만 들었지만, 그 말을 듣고 미장이 경인궁으로 오는 바람에, 온실초의 셀프고자라니 소식을 직접 듣게 되고 충격으로 쓰러져 난산.) 이후 자기가 그러지 않은 척 하고 보작을 매정하게 쥐어팬다. 여기까지라면 불쌍한 시녀의 모습...이었겠지만 그 이후 황제가 들어와서 하는 말이 절정이고 후궁견환전, 아니 궁정에서 시녀의 위치를 잘 보여준다. 황제 가라사대 궁녀가 잘못했으면 소란 피울 것 없이 조용한 데로 끌고가서 죽이면 된다.(...) 물론 릉용도 자신이 사주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보작을 처리해버렸다.
  • 국청
원래 견환의 시녀였으나, 힘든 궁생활 초창기였던 안릉용은 직접 모시는 시녀가 보견 한 명 뿐이고, 나머지 2명도 14살로 어려서 무엇을 시켜야 좋을지 모를 정도라 이를 딱하게 여긴 견환이 안릉용에게 보내 준다. 이 때 견환은 선의였으나, 나중에 견환과 안릉용의 사이가 틀어지게 됨에 따라 안릉용이 국청을 견환의 스파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결국 견환이 출궁하게 된 도중, 안빈에게 독살당해 죽게 된다. 패아가 국청의 시신에서 그녀가 독살당하게 된 것을 신분세탁을 하여 다시 입궁한 견환에게 알려주게 된다.
후에 안릉용이 유폐된 후 측근 시녀들이 모두 사형당했으니, 그녀와 함께있는 이상 이래저래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듯 안습.
  • 소귀자
쇄옥헌에 임신한 채로 갇혀 있던 견환에게 견원도 및 친정 가족들의 몰락을 전해주어서 견환에게 충격을 받게 했다. 견환이 조산한 이유를 만든 일등공신(...). 또 견원도가 갇혔던 감옥에 페스트 걸린 를 푼 것도 이 사람이다. 물론 안릉용이 시킨 일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거들먹거리는 성격을 지닌 듯.

3.7 기타 심복들

  • 길상
단비의 심복. 그런데 단비 시녀가 얘 하나밖에 없는지라 수석 상궁인데도 혼자 별 잡일을 다한다. 단비를 미워한 화비의 횡포로 다른 하인들은 다 내보내고 궁녀가 길상밖에 없었다. 게다가 빨래도 해주지 말라고 화비가 지시했으나 혼자 빨래, 청소 등등을 다 소화하고 있었을 듯.(...) 후궁이 사는 궁궐들은 벽은 물론이고 바닥까지 기본적으로 진흙으로 구워 만든 벽돌로 되어 있어 먼지가 아주 잘 붙는다고 한다. 궁녀들은 매일하나하나씩 다 닦았어야 했는데 길상은 비의 궁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전부 했어야 했다.
단비의 처소를 방문한 (화풀이하러 온) 화비에게 발로 차이는 등 수모를 겪는다. 황제나 태후가 몰랐을 리 없는데 화비 때문에 어의도 보내지 않고 이것도 그냥 눈감아 준 듯하다.
  • 아진
과군왕의 심복. 상당히 솔직한 성격이라고 견환이 평했다. 초반에는 투덜거리는 역할로 연갱요가 과군왕을 무시하거나 완벽이 어려운 일을 부탁하러 왔을 때 궁시렁거려 과군왕이 달래거나 면박을 주거나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견환의 첫 회임 때 화비에게 벌을 받자 완벽이 태후의 처소로 달려와 구명을 요청하는데, 수강궁의 시위들은 윽박지르며 내쳤지만 때마침 아진이 과군왕과 연결해줌으로서 견환을 구하는 데에 일익을 담당했다. 견환이 출궁한 후 열이 많이 올랐을 때 과군왕이 청량대로 옮겨온 후 눈밭과 견환을 오가며 안아가며 열을 내려준걸 견환에게 일러바치며 상사병에 걸렸다고 말해버린다. 이후 황제의 병 때문에 과군왕이 궁중에서 나오지 못하자 과군왕과 견환이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중간에서 배달부 역할을 한다. 과친왕이 된 과군왕이 독살당할 때까지 꾸준히 등장한다. 그 이후 행적은 불명.
완벽에게 툴툴거리긴 했지만 실은 마음이 있었던 모양으로, 과군왕이 견환을 설득하는 시기에 완벽에게 아진과 결혼하는게 어떻냐고 제안했을 때 그다지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완벽이 딱 잘라 거절한다(...). 그 후로도 완벽이 부탁하니까 여러 고전 서적들을 구해다주는 등 꽤나 잘해주었지만...아진까지 감안하면 과군왕과 완벽의 결혼은 더블 네토라레. 아진의 경우엔 애초에 맺어진 건 아니었지만.
  • 황규전/강충민
황실의 살림을 담당하는 내무부의 총관들이다.
황규전은 목소리의 억양이 간드러지는 게 아주 독특하다. 그 덕분에 더 간사하게 보이기도(...). 화비와 친척이어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선물용 금박 종이 같은 황실에서 상용하는 물건들을 화비가 지나치게 요구하는 바람에 곤란해하기도 한다. 송지가 금박을 입힌 종이를 달라고 요구했을 때, 황규전이 살짝 난색을 표하니깐 "황총관, 새 직장을 구하고 싶으신가봐요? 우리 화비마마 덕분에 그 자리에 있는 거 잊으셨나요?"라는 말에 한 마디도 대꾸 못하고 벌벌 기는걸 보면.
권력따라 이리붙고 저리붙는 성격으로, 견환과 릉용이 총애를 못 받을 무렵에는 질 나쁜 일용품을 보내줬지만 견환이 유례 없는 총애를 받게 되자 기겁해서 견환에게 굽실거리고 화비에게 뇌물을 바치는 등 자리보전하려고 애쓴다. 거짓회임사건으로 심미장이 연금당한 뒤에는 심미장의 파벌, 즉 견환과 릉용의 궁에 시들어빠진 석류화를 보내거나 고급 가구를 빼버리면서 또 다시 박대한다. 견환이 초조한 마음을 참아가면서 증거를 찾아낼 때까지 미장의 구명을 미루고 황제를 잘 모신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황제가 석류화를 보고 분노. 황규전을 신형사로 보내버렸다.
화비는 못마땅해했지만 이후 부총관 강충민이 뒤를 이었다. 이쪽은 사리분별이 있어 후궁들이 모두 탐내는 페르시아먹이 적게 조공되어 오자 황제에게 분배를 상주할 정도였으며, 견환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했는지 견환이 유산 후 황제에게 총애를 잃었을 때에도 견환에게 생활용품을 넉넉하게 보내주었다. 그러나 황후가 순원황후 예복사건으로 견환을 몰락시킴과 동시에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웠고 결국 황제의 명에 의해 맞아죽었다(...). 황후로서는 견환을 내침과 동시에 견환의 편이었던 총관도 죽였으니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겠다. 화비가 몰락했어도 최소한 목숨은 보전한 황규전으로서는 불행 중 다행일지도(...).
  • 서진량
내무부 내관. 황제가 잠자리에 들 때, 시침 들 후궁을 정하도록 후궁의 이름이 적혀진 패를 바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초중반에는 정무에 몰두하거나 후궁의 일로 마음이 상하거나 해서 황제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안 가시려면 말든가' 하고 물릴 수 있는 군번도 아니라서 인간 받침대가 되어 언제까지나 패를 들게 되는 불쌍한 역할. 니가 고생이 참 많다.
  • 여의
경빈의 시녀. 비중은 공기.(...) 한 일이 있다면 1부에서 화비가 한월각(심미장이 연금된 곳)에 난입해서 난리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황제에게 알린 것, 2부에서는 3황자가 영귀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를 인터셉트한 것 정도?
  • 채성, 채월
심미장이 친정에서부터 데려온 심복. 쌍둥이 혹은 자매로 추정된다. 정말 의외지만 아직 안릉용이 흑화하지도 않았던 4화에서 안릉용의 뒷담을 깐다(...).[51] 주인 안 닮은 듯.
  • 소시
심미장을 모시는 환관. 아마 수령 태감으로 추정. 비중은 공기.
  • 취과
제비의 심복. 황실에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더러운 일을 많이 했지만(견환에게 협죽도 을 가져다 주고, 녕귀인을 불임으로 만든 대추탕을 가져다 주는 등) 심성 자체는 착한 듯 싶다. 너무 착한 나머지 벌을 받는 견환 앞에서 제비마마가 원래 이런 분이 아닌데;; 하면서 제비의 실드를 친다. 부찰귀인과 제비가 완빈의 따귀를 때리라고 했을 때도 한참 주저하다가 신형사로 보낼거라고 하자 겨우 때리고야 근데 너무 쎄 한 시진을 꿇어 있으라는 명을 받았을 때 제비가 떠나가자 비밀을 지켜줄 테니 일어나라고 말했고, 이 때 견환은 넌 착하니 복을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이게 생존 플래그가 될 거라고 생각했으나 제비가 자살한 뒤에 황후가 입막음을 위해 살해한다.
  • 강록해
원래는 단비를 모시고 있었다. 극초반에 견환이 쇄옥헌에 있었을 시기의 태감이었는데 생긴 것도 그렇고 확실히 탐욕스러운 인상. 갓 궁에 들어온 견환이 온갖 못볼 꼴들을 다 보게 되어 2달간 드러눕게 되어 황제의 총애를 얻지 못하자 다른 궁의 내관들과 시녀들이 강록해를 우습게 여겼고, 특히 자신보다 낮은 소유자가 자신과 형제지간이 되자고 하자 단단히 열받아서 그대로 자신을 따르는 내관들과 시녀들을 이끌고 견환을 배신하고 여빈을 새로운 주인으로 모셨다. 가기 싫은 척 징징거려서 견환에게 은자까지 받아내는 처세술을 선보였다(...). 하지만 견환은 강록해가 소인배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견환 뿐 아니라 조귀인도 그 본성을 알고 있는지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간단히 평한다(...).
견환이 귀인이 되고 황제의 엄청난 총애를 받자 견환에게 다시 충성을 맹세하려 했지만 당연히 거절당한다. 이걸 여빈에게 들켜서 경을 치를 뻔했으나 견환이 좋은 말로 여빈을 달랜 덕분에 당장의 목숨은 붙어 있게 되었다. 어쨌든 견환도 받아주지 않고 여빈에게도 밉보였으니 앞날이 깜깜한 것은 당연지사(...).
그의 제자 중 소인자는 스승이 그런 신세가 되고 자신도 끈 떨어진 두레박 꼴이 나자, 여빈의 명령에 의해 여답응을 모시고 그녀의 사주를 받아 견환에게 먹일 독을 전달하는 일을 했다. 물론 들켜서 소윤자에게 떡이 되도록 맞고, 종국에는 처형.
  • 아록
녕귀인의 시녀. 홍염친자확인 사건 때 녕귀인의 명령으로 영수궁에 있는 완벽과 옥요에게 사정을 알려준다. 그리고 녕귀인에게 푸른색 계통의 옷 말고 붉은색 계통의 옷도 잘 어울릴거라고 입으라고 권유하지만 녕귀인은 매번 씹었다.(...)
  • 패아
원래 견환의 시녀였다. 극 초반부터 등장하며 방귀인이 쇄옥헌에 거주하던 시절 누군가가 묻어둔 사향 단지를 발견한다. 견환이 출궁한 후 저수궁 (기귀인과 흔상재의 처소)으로 보내진다. 그 중 흔상재(흔귀인)을 시중 들었고, 흔상재를 섬기면서도 견환에게 여전히 충성해 스파이 역할을 하며 흔귀인이 정말 견환의 편인지 아닌지 밝혀내는 데 일조했다. 저수궁의 주인이 기귀인[52]이었고 기귀인은 견환을 미워했으므로 매일 견환의 전 시녀였던 패아를 두들겨패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그래서 좀 여윈 것을 견환도 눈치챘다. 아무튼 그래도 죽지는 않았고, 흔상재가 궁의 주인이 된 이후로 좀 삶이 나아졌으리라 보인다. 참고로 패아도 극초반에 견환의 시녀였을 당시에 견환이 황제의 총애를 얻지 못하여 내관들과 시녀들 모두 농땡이나 피워서 유주에게 갈굼받다가 오히려 대드는 등의 무개념한 행태를 보인 적이 있었다. 기귀인을 만나서 허구헌 날 얻어터지는 것도 이 날의 응보
  • 상아
부찰귀인의 시녀인데, 엄청나게 무능하다+멍청하다. 부찰귀인 본인은 "우리 상아가 얼마나 총명한 아이라구요"라면서 높이 평가하는 모양이지만...현실은 시궁창. 이 시녀가 대사를 치는 장면이 딱 두 번 있는데, 첫 번째는 견환의 귀신소동에 감쪽같이 속아넘어가서 분명히 서늘함과 썩은 냄새가 느껴졌다며 귀신이 맞다고 공포에 떨면서 증언하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견환이 들려준 사람돼지 고사 때문에 정신이 나가버린 부찰귀인을 문병온 제비가 얘 왜 이러냐고 묻는 장면이다. 이 때 견환이 들려준 고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될 것을, 고작 한다는 말이 "조귀인과 완빈과 함께 담소뭐?를 나누다가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이러니 제비가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제비에게 이 말만 전해도 적어도 견환을 관광까진 아니더라도 타격을 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53] 쌍으로 무능한 주인과 그 시녀심지어 귀신이 나타났을 때는 주인인 부찰귀인을 버려두고 귀신이야~~를 외치며 자기가 먼저 부리나케 도망가버렸다(...). 충성심도 제로 수준인 듯.
  • 분아
견씨 가문의 시녀였던 여자지만, 견원도가 영고탑으로 유배가며 견부가 망하자 남편과 더불어 기귀인 집안으로 팔려간다. 6황자 친자확인사건 때 기 귀인이 내세워 견환이 간택 이전 온실초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았다는 증언을 한다. 이후 사통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남편을 죽이겠다는 기 귀인의 협박 때문에 거짓 증언을 했다고 자백하며 자기도 얻어맞은 상처를 보여주고 원래부터 온실초와 견환은 왕래하는 사이였을 뿐 결백하다고 증언하여 목숨을 건진다.[54] 이후, 완벽이 과군왕의 측복진으로 들어가자 그녀의 전속 시녀가 된다. 사실 잘 보면 1화에서부터 등장하고 있으며, 나중에 견원도와 희귀비가 된 견환이 재회할 때 뒤에 있거나, 완벽이 시집간 뒤 과군왕부 등에서 간혹 보인다.
  • 우아
순상재의 친정 시녀. 그런데 정작 순상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전혀 비중이 없다가 그녀가 죽은 후에야 그녀를 위해 지전을 태우는 모습을 완빈과 근석이 보게 되며 첫등장한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견환은 순상재가 죽은 것이 발이 미끄러진 단순 사고사인 줄 알았으나...그녀가 말하길 순상재는 살해당한 것이라고. 순상재는 물가에서 자라 물장구를 치며 놀기도 했으니 익사할 리가 없다고(조귀인이 사람을 시켜보낸 것) 말하자 진실을 알게 된 견환은 순 상재의 죽음이 화비의 짓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 화수
여답응을 모신 시녀. 어화원에서 여답응과 완상재 견환이 처음 마주칠 때 첫등장을 한다. 여답응처럼 의기양양하는 기질이 있어 견환을 보고 넌 누구인데 우리 소주에게 인사를 올리지 않느냐고(...) 다만 완상재를 보고 저분이 소주(여답응)보다 높은 상재라고 알려주는 등 여답응보다는 나름 개념이 박혀 있는 걸로 나왔다. 이후 여씨가 관여자로 강등되어 쫓겨났을 때 여씨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 마구 꼬집히다가, 여빈의 언급에 의하면 결국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한 여씨가 쫓아낸 듯(...). 그러자 귀인으로 올라온 견환의 시녀로 편입되어 주방을 담당한다. 견환을 중독시키려고 뚜껑에 독약을 삶아낸 약탕기를 사용한 주범이다. 일이 발각되자 줄줄 분 후 처형당한다.

4 황실 사람들

4.1 서태비

원작에서의 이름은 완언연. 본명은 이광. 과군왕의 생모이자 강희제가 생전에 가장 총애했던 후궁. 극중 설정에서 강희제는 그녀를 각별히 사랑하여, 그가 가장 아끼는 행궁인 창춘원에 동화대[55]라는 화려한 궁[56]을 지어주었고, 그녀가 좋아하는 꽃이자 부부의 금슬을 상징하는 자귀꽃을 동화대의 창문마다 새겨넣었다. 또 그녀가 입궁했을 때는 장상사(長相思)라는 금과 장상수(長相守)라는 피리[57]를 하사했는데, 그녀의 회상에 따르면 본인은 금을 타고 강희제는 피리를 불면서 함께 합주를 하곤 했다고 한다. 후일 안릉용이 노래를 부르고 상으로 받은 금루의 역시 본래는 강희제가 서태비에게 선물한 옷으로, 세상에 단 두 벌 뿐인 것을 서태비가 출가하면서 한 벌 가져가고 남은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출연하는 것은 견환 출궁 시점. 선황 사후에는 출가하여 충정이라는 법명으로 감로사(정확히 말하면 감로사 근처 안서관)에서 지내다가, 나무를 해오다 물 한 잔 얻어마시려고 우연히 방문한 견환(당시 막수)과 만나게 된다. 견환이 옹정제의 후궁이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들인 과군왕과 사랑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대인배.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서 3일간 식음을 전폐했을 정도로 아들을 사랑했다. 과군왕이 생사불명 상태일 때 환궁하려는 견환에게 배신하는 거냐고 화를 내기도 했으나, 황제에게 복수하고 아이와 가문을 지키려하는 견환의 굳은 각오를 보자 결국 막지 못한다. 견환의 뱃속 아이가 과군왕의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파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결국 아들에게 사실을 밝히지 못한다. [58] 원작에선 견환이 환궁하기 직전에 태후의 사통을 견환에게 알려준다.

적운이라는 하녀를 데리고 다닌다.

원작에선 파이족 출신 노비였다가 입궁 후 후궁이 되었으나 황후와 태후의 견제로 궁 밖에서 지냈다. 태후가 죽고 황후가 폐위된 후 환궁하였다. 후궁 시절 임비 주성벽과 친했으나 사실은 주성벽이 그녀를 이용한 것 뿐이었다. 견환이 서태비를 만났을 때의 외모 묘사에 따르면 나이는 들었지만 매우 아름답다고 한다. 사후 소서태후로 높여지고 선제와 합장되었다.

4.2 항친왕 윤기

옹정제의 이복동생이자 강희제의 5번째 아들. 어머니는 의비 곽락라씨로, 화비가 사는 익곤궁의 이전 주인이었다. 황후가 화비의 속을 긁기 위해 의비는 아들이 많아 총애를 독차지했다며 언급한 바로 그 인물이다. 이 말을 듣고 화비는 나오면서 "아들이 많으면 뭐해? 자식농사를 잘못 짓는 바람에 아들내미가 반역을 하고 의비 본인까지 연루되었는데."라며 성질을 부렸다. 당연히 반역했다는 의비의 자식은 윤기의 친형제, 바로 9황자 윤당이다. 그런데 형제 중에서 반역했다면 자기도 무사하지 못해야 정상아닌가? 극중에서는 돈친왕이 이 의비를 태후로 모시고 8황자 윤사를 황제로 추대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항친왕 본인은 동생과 달리 특별히 황위 쟁탈전에 끼어들지 않아 목숨을 부지한 듯.

실제 역사 속에서는 강희제에게 심성이 착하고 순후하다는 평을 들은 인물이고, 극중에서도 패아의 말에 따르면 궁녀들에게 종종 농담도 걸 만큼 쾌활하고 좋은 사람이라고는 하는데...견환과는 그야말로 상극이다.

견환이 경홍무를 추게 되었을 때는 "여자는 재주가 없는 게 덕인데 경홍무는 무슨? 그냥 얼굴만 예쁘면 되지ㅉ"라고 말했고, 견환의 환궁 때는 신료들과 함께 "폐비의 재입궁은 말도 안 된다. 게다가 견환 때문에 처소를 이렇게 사치스럽게 꾸민다니 걘 내명부의 화근이 틀림없다."고 주장하며 견환의 환궁을 반대했다.[59] 후일 연회에서, 과군왕의 종이공예가 떨어져 과군왕과 견환이 위기에 빠졌을 때는 "어머어머 그 종이공예는 꼭 희귀비같이 생겼넹?"이라며 눈치 없이 한 술 더 보탬으로써 분위기를 더 쎄하게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옹정제 사후에도 "희귀비는 황자의 생모이니 후계 논의에 끼어들 수 없다. 보나마나 6황자를 황위에 올리자고 할 텐데 어린애가 등극하면 누가 따르나? 지금 순치제 때처럼 도르곤이 있냐, 강희제 때처럼 오배가 있냐?"며 견환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 때 견환은 "미안하지만 내 말 끝까지 듣고 얘기하시지, 선제께서는 4황자 홍력을 후계로 정하셨거든."이라고 응수했는데, 끝까지 "보위에 관한 일인데 희귀비 말만 믿을 수는 없음"이라며 태클을 건다.(...)

견환의 적들 대부분은 결국 안습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 그리고 항친왕이 태클을 건 바로 그 4황자가 결국 옹정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미래가 심히 걱정되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망했어요 다만 실제 역사에서 항친왕은 옹정제보다 먼저 사망했다.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복진과 사이가 꽤 좋아보인다. 항친왕보다 상당히 젊어보이고(...) 붉은 꽃으로 장식한 대랍시를 쓰고 있는데, 13화에서 견환의 말에 따르면 측복진이라고 한다. 적복진이 일찍 사망해서 측복진만 남은 것일지도. 아무튼 이 측복진을 거의 항상 연회에 데리고 다니고, 언뜻언뜻 지나가는 장면들에서 함께 마주보며 환하게 웃고 건배를 하는 등 꽤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돈친왕과 좀 비슷한 면이 있는 듯 머리를 쓰는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마격 칸이 옥환을 풀라고 가져오자 펄쩍 뛰면서 저리 치우라고(...)

4.3 돈친왕 윤아

豚친왕 원작에선 여남왕 현제. 옹정제의 이복동생이자 강희제의 10번째 아들. 어머니가 강희제의 두 번째 황후 효소인황후의 친동생인 온희귀비 뉴호록씨로[60], 생모가 만주족 명문가 출신인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온희귀비의 할아버지 액역도(額亦都)는 누르하치의 최측근이자 청나라의 개국공신이었고, 온희귀비의 아버지 알필륭(遏必隆)은 그 액역도와 누르하치의 친딸 사이에서 난 아들이자 순치제가 직접 임명한 보정대신이었다. 한족 혈통에, 따지고 보자면 원래는 포의(包衣) 출신에 불과했던 화비도 엄청난 오만함을 자랑하는 걸 생각하면 돈친왕의 부심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면도 있다.(...) 이에 반해 극중에서 옹정제의 생모인 태후는 한때 효소인황후의 시녀였던 것으로 나온다. 안습. 이런 까닭에 옹정제에게도 상당히 무례하고 오만한 태도를 취한다. 게다가 역사적으로도 돈친왕은 원래 8황자 윤사, 9황자 윤당, 14황자 윤정과 친했다. 옹정제와는 원래부터 반대편이다. 과군왕에게는 너네 엄마가 한인이라서 너한테 쓸데없는 거나 가르쳤나 보지?라는 헛소리를 날리고, 조회에 무장을 하고 들어왔다가 어사가 자신을 탄핵하자 그 어사를 두드려패서 기절시키기도 한다. 심지어 연갱요와 붙어서, 자기 어머니의 품계를 올려 달라는 등 온갖 오만방자한 짓을 행하다가 훗날 분노한 황제에 의해 아내와 아들, 딸과 같이 평민으로 강등당한다. 그래도 황족인지라 돈친왕부에서 계속 사는 것 정도는 봐준 듯. 황제가 돈친왕을 방법하는 과정에서 견환과 안릉용이 냉궁 Mk.2로 여겨지는 봉래주로 가기도 한다.[61]

의외의 면모도 있다. 무골인데다가 멧돼지같은 외모에 비해(...) 의외로 순정남인지라, 아내도 하나만 들이고 첩 하나 없이 그 아내만을 끔찍이 여기는 애처가이다. 돈친왕의 아내(복진)은 견환 생일파티에 유행하는 화장인 '교리장'(황제가 견환 이마에 배꽃을 그려 준 화장)을 하고 온 모습으로 첫선을 보였는데 이 때 몸이 안 좋아 견환의 도움을 받았고,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유산 후 슬퍼하다가 황제에게 냉대받는 견환을 문병와줄 정도로 착한 데다가[62] 남편의 막나가는 행동에 태클을 걸어주는 상식인이다.마누라가 혀차면서 눈 흘기면 입다무는 돈친왕 귀요미

극중에선 자식으로 1남 1녀가 있는 설정이다. 딸이 첫째고 아들이 둘째. 딸은 경성군주에서 화석공정공주로 렙업했다가 폐서인되었고, 아들 홍훤은 패자의 작위를 받았으나 폐서인되었다가 견환이 황제에게 부탁하여 다시 작위를 받았다. 착한 돈친왕 복진을 위해서였다고.

견환이 희귀비로 환궁했을 때 신분세탁을 거치면서 새로 얻은 성이 바로 돈친왕의 친어머니의 성인 뉴호록씨인데 만약 이 사실을 돈친왕이 알았다면 그야말로 속이 뒤집혀졌을 것이다. 견환은 만주족이 아니라 한족이기 때문에 그런 영예로운 성씨를 얻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니...

4.4 신패륵, 신군왕 윤희

원작에서의 이름은 현분(玄汾). 황제과군왕의 이복동생. 어머니는 희태빈인데 후궁이 되기 전에는 신분이 낮은 침모였다고 한다.[63] 살기 위해 한량인 척 몸을 사리는 과군왕에 비해 있는 모습 그대로는 보이는 솔직하고 순수한 성격이다. [64] 게다가 의외로 근성가이이다. 겨울에도 의지가 약해지지 않기 위해 옷을 얇게 입는다니 이 무슨 김화백 캐릭터.

황제나 과군왕처럼 예술에 조예가 있는데 그의 경우에는 그림의 주요 타깃. 그림을 인연으로 하여 견환의 동생인 옥요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적복진으로 들인다. 훗날 두 사람 사이에 딸 한명밖에 태어나지 않아 과군왕이 측복진 맹정한과 사이에서 본 아들 원철을 양자로 들인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견환이 6황자 홍염을 과군왕의 양자(사실은 친자)로 보내는 아주 좋은 구실을 만들어준다.

견환이 쌍둥이를 낳은 직후에 홍염이 황제의 친자가 맞는가에 대한 스캔들이 터지자 옥요가 우리 언니를 구해야한다능...라고 울음을 터트리자 옥요가 걱정이 되어 황제에게 견환을 변호해준다. "나중에 홍염이 자라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가지겠어요? 홍염에 대한 기대가 크다면 친자 확인은 옳지 않아요!"라고 말이다.

나중에 과군왕이 견환을 위해 준가르의 왕 마격을 상대로 군사를 일으켜서 과친왕으로 신분이 상승될 때, 신패륵 또한 신군왕으로 신분이 상승하였다. 옹정제의 장례식 때 항친왕 뒤에서 등장하는데, 4황자를 옹립하려는 견환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며 바람을 잡아주었다.

연기자인 강복진(康福震)은 87년생으로 88년생인 3황자 홍시 역의 우입붕이나 4황자 홍력 역의 왕문걸보다 고작 1살 더 많다(...)실제 역사에서 홍력과 윤희가 동갑이라는걸 생각하면 묘하게 적절한 고증이다

원작에선 드라마보다 성격이 강한 편. 생모의 출신 때문에 무시당하고 자랐기 때문이다. 현청이 돌봐주지 않았다면 비뚤어졌을 거라고.

4.5 3황자 홍시

성격도 이름처럼 물러터졌다
원작에서의 이름은 여리(予漓). 황제와 제비의 아들. 중화궁에 거주하고 있으며 1황자와 2황자가 죽었기 때문에 사실상 황제의 장자이며 궁정에서 자란 유일한 황자에다가, 1부 시점에서는 자식들 중 유일하게 장성한 자식이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자질이 부족한데다가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늘 황제의 냉대를 받는다. 황제 왈 황자는 활기차야 좋은데 홍시는 짐만 보면 움츠러들어서 별로라고...그래도 황제가 아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홍시가 자질이 부족하나 짐의 장자(맏아들)요. 어찌 냉대하겠소?"라는 말도 한다. 실제로 아끼던 여자인 영귀인을 요단강 익스프레스태우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다. 옹정제 스스로가 형제들을 다 쳐내면서 즉위했고 그 때문에 연갱요 등의 공신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아들에게는 확고한 황권의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듯했다.

이후 주로 활약하는 것은 견환 환궁 이후의 2부인데, 이 때 제비가 죽고 황후에게 양육되면서 태자가 될 뻔했다. 허나 청앵이랑 하라는 결혼은 안하고 엉뚱한 영귀인에게 반했다. 정말 반했는지 영귀인과 만난 이후 황제에게 결혼을 연기시켜 달라 탄원한다. 이후 그녀에게 연서를 보낸 사실이 발각된데다 4황자 홍력의 꼬드김에 넘어가 황제가 가장 증오하여 금기어나 다름없는 8황숙과 14황숙의 구명을 주청하는 초특급 병크를 터트리다가 신나게 까이고, 황실 족보에서 제명당한다. 단순히 8황숙과 14황숙의 이야기만 꺼낸 것도 아니고 이미 황후가 3황자를 태자로 만드려는 입김을 불어넣는 데 대해 경계심이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65] + 황제가 자신의 황위에 대해 도전이나 의심받는 것을 매우 언짢아 한다는 것조차 망각하고 동생들과 본처를 감금하시니 태후의 혼이 어떻게 편히 쉬고 백성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라는 소릴 해서 황제의 자존심과 의심병을 벅벅 긁어버린다.

엄마를 닮아 상당히 귀가 얇다. 엄마인 제비가 부찰귀인의 충동질에 홀딱 넘어가고, 황후의 충동질에도 홀딱 넘어가는 팔랑귀였던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리고 이 점은 자기의 몰락에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영귀인에게 러브레터를 보낸다는 아이디어도 자기 시종 중 한 사람이 제공한 것이었고(...) 거기에 헐ㅋ 그런 방법이 있었냐능ㅋ 님 좀 짱이라능ㅋ 이러면서 바로 넘어갔고, 무엇보다 8숙을 가엾게 여기는 게 좋겠다는 것도 4황자가 충동질한 것이었는데 거기 또 넘어간다(...). 팔랑귀도 이 정도라면 심하다. 만약 제위에 올랐다면 신하들의 충동질에 줏대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황제가 되었을 듯.[66] [67]

이렇게 엄마를 닮아 어리버리하긴 했어도 그래도 엄마만큼 소인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실제로 황제도 성실하고 착하다는 평을 했다. 친모인 제비에게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효자이며, 제비의 사후에 황후의 아들이 되면서 황후에게 제비에게 했던 이상으로 지극정성을 다한다. 예를 들어 황후가 경인궁에 연금되자 구명을 청했다던가...[68] 누구를 미워하거나 음모를 꾸미지 못할 정도로 착한 성정으로 실제로 롱월 같은 어린애들도 아주 귀여워한다. 다만 황후가 4황자를 칭찬하자 표정이 썩는다거나, 자신이 더 잘한다며 으쓱거리거나, 영귀인에게 "아바마마는 늙으셨다" 라면서 친아버지까지 디스하면서 들러붙는 걸 보면 찌질하긴 찌질하다(...)

공부는 정말 열심히 한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견환이 그렇게밖에 잠을 안 자냐고 황당해했을 정도.[69][70] ~~ 그렇게 애를 쓰건만 학업 성취도는 낮다. 황제가 홍시의 공부에 대해 실망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다섯 살에 이미 상서방에 들어 공부를 시작했다는데, 이런 조기교육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차라리 황실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착한 심성으로 그럭저럭 행복하게 지냈을지도 모를 인물.

실제 역사에서도 홍시는 황제의 노여움을 사 8황숙의 아들로 들어가고 24세에 요절했다. 게다가 어머니인 제비 이씨도 총애를 잃고 냉대를 받아 직위만 유지한채로 간간히 살아갔다고 한다. 여러모로 불쌍한 인생이다.

여담으로 원채 볼품없는 역할이라 다들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주연배우인 우입붕(鄔立鵬) 은 특유의 부정교합은 어쩔 수 없지만 실물이 생각보다 굉장히 훈훈하게 생겼다.

4.6 1황자, 2황자, 5황자

1황자는 홍휘, 살아 있었다면 적자이고 장자여서 누구보다 고귀할 아들이 되겠다. 이 부분은 조금 복잡하긴 한데, 만주족은 본래 적서의 구분이 없이 능력있는 자를 후계자로 삼지만 청나라가 강희제 이후로 유교를 숭상하는 나라가 되면서 장자 승계 원칙을 중시하게 됐기에 적장자 라는 것은 상당한 어드벤티지가 된다.(홍시를 중시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당시 왕부의 측복진이었던 오라나랍 의수의 아들인데 총명해 두 살 때부터 글자를 배웠다는 언급이 나온다. 하지만 몸이 약해 곧 죽었고[71], 이 때 의수는 매우 슬퍼하나 황제는 복진인 순원의 임신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원작의 외전에서 자세히 나오는데 황제는 의수의 아이가 죽을 때 얼굴도 안비치다가 순원황후의 회임을 기뻐하면서 의수에게 당신의 아이가 죽은 대신 당신 언니가 아이를 가졌으니 그 애는 당신의 아이라고 말해 의수는 언니 뱃속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고 받아들여 흑화하였다. 또한 원래는 황자를 낳으면 의수를 적복진으로 올려주겠다고 했으나 순원이 적복진으로 오는 바람에 없던 이야기가 돼버리기도 했고. 그가 비오는 날 죽었기 때문에 황후는 비 오는 날만 되면 히스테리성 두통에 시달리게 된다.

2황자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내지는 사산된 순원의 아들이다. 의수가 교묘하게 약을 먹여서 산모와 태아를 동시에 죽였는데 그 희생자이다. 온몸이 푸른 점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어의는 숨이 부족해서 그리 된 것이라고 진단했지만 몰래 시신을 엿본 단비의 눈에는 수상해보일 수밖에 없었다.

5황자는 등장하지는 않지만 있다고는 언급된다. 초반 부분에 왜 5황자는 안왔냐 물으니 감기에 걸려서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었다. 후반부에서 황제가 태자를 정하려고 신하들과 이야기할 때, 4황자, 5황자, 6황자 아들 셋 뿐인데[72] 이 둘 중 2명이 다 희귀비의 자식이고 5황자는 방탕하여 차기 황제의 그릇이 아니라고 말한 점으로 보아 출생이 미천해 흑역사 취급받은 4황자보다 더 황제에게 천대받고 있을 수도 있겠다. 궁에서 자란 아들은 3황자 뿐이라고 제비가 말했는데, 당시 6황자는 태어나기 전이었고 4황자는 태생이 미천해 그랬다지만 5황자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일단 병약하다는 언급은 곧잘 나오는 것을 봐서 몸이 상당히 부실한 듯. 생모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극중 시점에서 등장하는 후궁 중에는 없다. 미장과 견환이 냉궁으로 갔을 때 거기에는 여섯 명 정도의 여자가 마당에 있었는데, 마당에 그만큼 있었으면 건물 안에는 얼마나 있었을까? 그녀들 중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만 4황자가 "5황자는 어머니가 있지만 난 없어요."라는 말을 했으니, 일단 생모가 살아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다.

4.7 6황자 홍염

원작에서의 이름은 여함(予涵). 과군왕과 견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그러나 견환의 계략으로 공식적으로는 황제의 친자인 6황자가 된다. 친자확인 사건에 휘말렸을 때에도 과군왕의 아들이란 사실이 발각되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았으나, 의심을 거두지 않았던 황제가 직접 친자확인을 해보려고 하예를 시켜 몰래 홍염의 피를 채취하는 바람에 녕빈이 황제를 독살하는 계기가 되었다.

찌질한 3황자나 실수로 생긴 4황자와는 달리,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견환에게서 태어난 건강하고 똘똘한 황자이기 때문에 유달리 황제의 총애를 듬뿍 받았고, 황제가 늘 태자로 세울 뜻을 내비쳤었다. 그러나 견환은 홍염이 장난이 심하다는 구실을 대어 어떻게든 막으려고 한다. 황제가 되면 필연적으로 궁중 암투에 휘말릴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드라마판 기준으로는 마지막 황후와의 대면에서 왜 자기 애를 황제로 만들지 않았냐는 황후의 질문에 대해 "황후 같은 여자를 만나 대가 끊길까 두렵다"고 쏘아붙였다.

그래서 과군왕의 사후 양자로 들어가 사실상 친아버지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도 과군왕 일가가 전멸하고 과군왕부라고 할 것이 남아있지 않아서인지 응휘당에 머물고 있었으며, 응휘당을 찾아온 견환에게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훌륭했다는 17황숙'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시점에서 이미 패륵의 칭호를 받아 6패륵이라고 불리우고 있었다. 열심히 책을 읽는 모습으로 나왔으니 이쪽도 똑똑할 듯. 실제로 4황자가 칭찬하기도 했고...

중국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는 '환주격격(한국명 황제의 딸)'에 나오는 청아 공주[73]가 바로 홍염의 딸인 것이 아닐까 하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견환의 미래 모습인 부처님(태후)이 청아를 유독 아낀 데는 그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것. 다만 설정 상 청아는 유친왕의 딸로 나오므로 과공군왕인 홍염의 딸일 수는 없다(...). 일단 청아는 가상인물이기도 하고.

참고로 황제의 말에 따르면 이마와 턱이 견환을 닮았고, 피부도 견환을 닮아 하얗고 부드럽다고 한다. 다만 자라서 사냥과 말타기를 즐기다 보면 피부가 점차 상할지도(...)

실제 역사에서의 홍염은 옹정제와 후궁 겸비 유씨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며 2살때 옹정제가 죽고 5살 때 과군왕의 양자로 편입되었다. 기록에는 손버릇이 안좋아 물건을 훔치고 몰래 팔다가 형인 건륭제에게 들켜 혼나고 시름시름 앓다가 33세에 요절했다고 한다.

4.8 온의공주

원작에서의 아명은 양옥(良玉). 황제와 조귀인의 딸. 황손이 적은 탓에[74] 황제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화비가 황제의 환심을 살 생각으로 많이 이용한다. 친모랑 떨어져서 화비에게 맡겨졌다가 수면제를 먹여진다든가, 마니옥 죽을 먹고 배앓이를 한다든가...
게다가 화비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어머니 조귀인의 옆에 있다가 화비가 격노하는 것을 보고 울어버려서 손찌검을 당하고, 직후에 자신에게 이런 아이가 있었으면 황제가 이렇게 박대하진 않았을 거라고 펑펑 우는 화비에게 부둥켜안기기도 했다. 지켜보면서 혼비백산한 조귀인의 표정이 백미.
심지어 화비가 죽고 나서도 고난이 끝나지 않아서(...) 견환이 출궁했을 때 미장이 견환을 만나기 위해 온의에게 약을 먹여 아프게 해서 온의의 건강을 위해 급사한 비빈들의 위패를 자신이 감로사로 옮긴다는 핑계로 이용되기까지...이래저래 고생이 많은 공주. 조귀인이 죽은 뒤엔 단비가 키운다. 특징이라면 낯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 한 번도 안 봤을 단비에게 잘 뽀뽀해주고 하는 걸 봐서.

4.9 롱월공주

황제와 견환의 딸. 총애하는 첩 견환에게서 태어난 첫 딸로 다른 공주들보다 더 귀여움을 받는다.[75] 태어난 직후 이름을 내려주고 너무 기뻐서 완빈을 완비로 올려주려고 했을 정도.

하지만 롱월이 태어나자마자 생모 견환이 출궁하여 자식이 없던 경비 손에 키워졌고, 또 경비도 친자식 이상으로 지극정성으로 길렀기 때문에, 경비를 친모로 알고 자랐다. 견환은 자신이 출궁한 후 롱월이 박대당하지 않도록, 롱월에게 순원황후와 비슷한 아명인 완완이라는 아명을 지어주고 선물로 순원황후가 예물로 해왔던 목걸이와 비슷한 목걸이를 선물로 보내주는 등 황제가 롱월을 더 눈여겨보도록 안배했다. 그러나 아직 어린 롱월이 그 마음씀을 알 리가 없고, 생모 견환이 희비라는 신분으로 신분세탁해서 환궁하자, 자기가 경비 품을 떠나 견환에게 가서 살아야하는 상황을 이해 못 해서 경비에게 울며불며 매달려 견환의 마음에 대못을 박았다.[76]

롱월의 양육문제로 경비와 견환 사이에 틈이 생기면서, 소배성과 근석이 고초를 당한다. 다행히 이 일이 잘 수습되어 견환이 경비를 용서하고 롱월의 양육을 경비에게 맡긴 이후, 차차 견환을 따르게 된다. 경비는 견환에게 고마운 마음에 롱월에게 언제나 ' 희귀비마마가 위험에 처하면 도와야한다.'고 세뇌교육을 시키다시피 한다. 그래도 경비를 첫번째로 여기는 효심은 변치 않았기 때문에 '희귀비마마에겐 아바마마가 계시니까, 저는 어머니(경비)랑 있을게요.'라고 말한다.

견환의 외모를 빼닮은 듯하다. 황제 왈 공주가 크면 클수록 견환과 비슷해진다고. 백옥같은 피부도 그렇고, 입과 턱은 특히 견환을 닮았다고 한다. 외모 뿐 아니라재치와 능력도 견환을 빼닮아 영특하고 말도 잘 한다. 견환도 황자들보다 롱월이 더 뛰어나다는 칭찬을 하기도 한다.

어린 나이에 말 한 마디로 황후를 경인궁에 유폐시키고, 황제를 은근히 조롱하던 마격 칸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전자의 경우 견환이 황후의 손을 부여잡고 말싸움을 하다가 황후가 손을 뺄 때 스스로 넘어지면서 아이를 유산했는데 이때 황제가 일의 전모를 알기 위해 후궁들을 불러 쪼인트(...)를 까고 있었다. 그때 롱월이 울면서 "엉엉 나는 아무 것도 몰라요! 아무 것도 못봤다고요!" 하고 울자 황후가 롱월을 불러 다독거리고 있는데, "황후마마가 희귀비마마를 밀쳤어요!"라고 증언한다. 이때 황후의 표정이 가히 압권...[77] 고작 여섯 살 짜리가 위증(...)을 한 것이다. 롱월, 무서운 아이.[78] 후자의 경우, 마격 칸이 황제를 골탕먹이기 위해 '청나라엔 현자가 많으니 이것 쯤 풀 수 있지?' 하면서 준 연환옥쇄를 단번에 땅바닥에 집어던져 깨놓고는 득의양양. 황제는 롱월이 최고라며 아주 좋아했다.딸바보 준가르의 보물을 함부로 대했다며 노기등등한 칸에게 다가가 ' 본 공주의 똑똑함을 봤죠? 별거 아닌 옥쇄 가지고 그렇게 화 낼꺼야?'하면서 적반하장을 시전했다.(나이 어린 게 벼슬이냐;;) 그 뒤 견환과 경비가 어떻게든 좋게 좋게 수습해서 마무리.
이후 견환이 마격 칸의 요구로 준가르에 하가하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는데, 롱월이 황제에게 군자유삼락을 줄줄 외우며 황제의 마음 흔들기를 실시하기도 했다.

원작 번외편에선 화친갔다고 한다. 안습.

롱월공주의 아역을 연기한 어린이가 2명이다. 아기일때 제외하면 견환의 회궁 이후에 중간에 롱월이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바뀐다. 두명 가운데서 먼저 나온 더 어린 롱월 시절은 견환이 낳아준 엄마라는 것을 너무 어리고 낯설어서 그런지 인식하지 못하고 경계하던 시절, 두번째로 나온 더 큰 롱월은 견환과 사이가 좋아지고 경비는 키워준 엄마, 견환은 낳아준 엄마라는 인식이 생겼다. 후자의 롱월은 전자의 롱월과는 달리 일자로 앞머리를 만들었다.

참고로 원작에선 견환이 자신은 해당화를 좋아하는 데 너는 무슨 꽃을 좋아하냐고 묻자 해당화를 싫어하고 살구꽃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견환은 역시 나와 현릉의 아이라며 씁쓸해 했다.

후궁견환전 드라마의 스핀오프격인 소설 '후궁여의전'에서도 나오며 드라마의 내용과 약간 연관성이 있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4.10 령서공주

원작에서의 아명은 온환(韫欢). 과군왕과 견환 사이에서 태어난 딸. 6황자 홍염과는 쌍둥이 남매이고, 눈매가 특히 견환을 닮았다고 한다. 친자확인 사건에 휘말린 홍염과는 달리 딱히 큰 비중은 없다. 홍염 이름을 황제가 짓고, 령서의 이름은 견환이 지었는데, 시구에서 따서 지었다. 참고로 이 시는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무제(無題)>이다.

순원황후와 현 황후(의수) 자매의 비밀을 밝혀내는 데, 정확히는 안릉용의 유언을 해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견환, 단비, 경비가 한 자리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한담을 나눌 때 몇 살 많은 언니들이 쫓고 쫓기며 장난치는 것을 보고 "언니(온의공주)가 언니(롱월공주)를 쫓네!"라는 말을 한다. 물론 어린 아이가 별뜻없이 한 말이지만, 견환은 그 말을 듣고 안릉용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안릉용이 한 "황후가 황후를 죽였다"는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말 속에 나아는 두 황후가 동일인물이 아님을 비로소 깨닫게되어, 현래의 황후가 순원황후를 죽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걸 알게 된다.

후에 견환과 산책 중에 꽃이야기를 하다가 친부인 과친왕을 만난다.

원작에선 자라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게 하필이면 이복오빠이자 과군왕의 아들인 원철. 그러나 어머니 견환은 당연히 두 사람 사이를 반대했고, 나중에 원철이 죽자 그 일로 충격을 받아 시집을 가지 않은 채 다시는 어머니를 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4.11 정화공주

온실초와 심미장 사이에서 태어난 딸. 술에 취해 온실초와 하룻밤을 지내는 바람에 생긴 아이로,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미장이 다시 황제를 받아들인 척 하여 황제의 아이라고 속인다. 난산 끝에 태어지만 미장은 죽고, 견환이 대신 키우게 된다. 원래 태후가 이름을 지어주려 했으나[79] 미장의 유언으로 견환이 이름을 붙여준다.

원작에서는 아들, 즉 황자로 나오며 황제가 죽자 황위를 이어받아 차기 황제가 된다.

4.12 원철

원작에서의 이름은 여철(予澈). 과군왕과 맹정한의 아들.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 때문에 어린 나이에 친모, 친부, 계모 전부를 잃고 혼자 남은 불쌍한 아이다. 부모가 죽은 뒤에 신군왕 부부가 맡아 키우다가 아예 신군왕의 양자로 들어간다.

그런데 공식적으로는 사촌이지만 실제로는 이복형제인 홍염과 외모가 너무 닮아서, 황제가 홍염의 출생을 다시 의심하는 계기가 된다. 홍염과 매우 닮았다는 설정 때문인지 3년 전 홍염과 배우가 같다.

원작에서의 여철은 사촌지간인 령서공주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사실 두 사람은 이복남매 사이이기 때문에 견환이 둘 사이를 반대했다. 여철이 죽고 령서가 시집가지 않았다는 정도만 나오고 자세한 것은 나오지 않는다.

5 태의들

  • 강 태의 형제
형은 강성, 동생은 강신이다. 화비가 뒤를 봐주는 의사들로, 화비의 주치의를 맡고 있고 그 중 동생 강신은 조 귀인과 온의공주 역시 담당하고 있다. 둘 다 부인과 전문이다. 화비의 환의향에 대한 비밀을 알지만 입을 다물고 있다. 등장은 꽤 일러서, 심미장의 거짓 회임 사건 때 심미장에게 월경을 일정하게 하는 약을 처방했다는 것을 황제에게 말했고 그녀가 회임이 아니라는 최종진단에 쐐기를 박은 사람이다.
유분이 잡혀와 화비가 핀치에 몰리자 목이 달아날 위기에 처했으나, 조귀인의 책략에 따라 이 둘은 온실초의 역병 처방을 훔쳐와 공을 세운다. 그러나 둘 다 인성은 별로였던 듯, 돈을 내는 사람들을 먼저 치료하다가 시기가 늦어 죽는 사람이 생기는 등 각종 병크를 터뜨리고 견환이 그 처방이 원래 온 어의 것이었다고 황제에게 밝혀, 분노한 황제에 의해 하예에게 암살당한다.
이복형제라고 한다. 한때 심미장은 강 태의 형제는 어머니끼리 사이가 좋지 않아 형제 사이 역시 나쁘다고 믿었으나(...) 후새드.
  • 유분
심미장이 처음 입궁해 총애를 받았을 때 그녀의 주치의를 맡았다. 제주 사투리를 써서 심미장은 자기와 동향인인 줄 알고 순진하게 모든 것을 밑고 맡겼으나, 사실 모든 것이 페이크라는 복선은 꽤 예전부터 있었다. 심미장이 제주의 을 하사했을 때 그 떡집은 오래전에 문을 닫았는데도 아직 영업중이라는 뉘앙스로 말한 것.
심미장의 거짓 회임이 밝혀지자 바로 처소에서 몸을 감춘다. 사실은 화비의 지시로 심미장을 올가미로 빠뜨리는 데 일조를 한 사람으로, 심미장에게 약을 써 월경을 늦추고 속을 메스껍게 하는 등의 착각을 일으키고 결정적으로 임신 진단을 내렸다. 처소에서 사라진 그는 화비의 사람에게 약속된 돈을 받는데, 화비의 사람은 그를 아예 죽여 입막음을 하려 했으나 유분은 오히려 칼을 들고 덤벼든 자객을 옆에 있던 대나무 장대(!)로 쥐어패어 제압하는 비범함을 보이고 도주한다!
결국 심미장과 견환의 친정이 수색한 결과[80] 잡았다. 잡아서 황제 앞에서 화비의 음모에 대해 줄줄 분 후 처형당한다.
참고로 돈 씀씀이가 꽤 컸던 듯, 엄청난 돈을 화비의 사람에게서 보수로 받고도 이 정도 가지고는 반년밖에 못 쓰겠다며 투덜거린다.
  • 장 태의
이름은 장미(...). 환갑이 넘은 아주 늙은 태의로 근석이 그의 실력을 인정하는 발언이 나왔고, 연갱요가 태의들을 사사로이 데려간 사건에서 "고명한 의사가 필요하다"라며 장 태의를 다시 불러들이는 걸로 봐서 고명한 축에 끼는 듯하다. 역병 창궐 시점에서 내의원 수장이었다.
이후 화비가 민간에서 의사를 불러왔을 때 그 의사(이름은 진 의원)에게 화비의 진료 기록을 보여주는 걸로 봐서는 이쪽도 강씨 형제와 마찬가지로 화비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하다. 하긴 화비는 내의원에서 20명 넘는 의원들이 진맥했으니 수장인 장태의가 모르는 게 이상하지만(...) 이후 견환이 완빈 시절 첫 임신했을 때 견환의 주치의를 맡는다. 견환의 주치의는 온실초였으나 이 때 온실초는 강씨 태의 형제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역병을 총괄하느라 도저히 짬이 안 났고 게다가 기우제를 지내는 황제를 따라갔기 때문에 견환을 돌봐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견환은 장태의의 처방전을 꼬박꼬박 온실초에게 보이는 등 경계를 아끼지 않는다. 사향 증세를 알아차리지 못한 걸로 보아 실력은 온실초보다 떨어지지만 악의는 없었던 듯 견환에게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다.
화비에게 견환이 안정기에 들어서 1시진 꿇어앉는 건 괜찮다고 하거나 견환이 유산하자 갑작스럽게 사직하고 고향으로 간 걸 봐선 황후가 매수해서 방관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후 안릉용이 리비가 되었을 때 그녀의 주치의를 맡는 의사는 다른 인물인 허 태의다. 둘 다 늙어서 구분이 좀 어렵다
  • 위림
온실초의 제자. 온실초가 고자가 된 이후 견환의 주치의를 담당한다. 견환 뿐 아니라 황제의 건강도 돌보는 듯하다. 녕귀인이 쓰는 주사에 대해 다른 어의들은 모르지만 위림만 아는 부분도 있고. 의술 뿐 아니라 상당히 지혜로워 견환의 눈치를 잘 살핀다. 실력은 괜찮긴 하지만 스승을 못 따라가는 듯. 영귀인이 3황자의 일로 죽은 이후에 견환이 아이를 임신했는데(결국 유산되는 아이) GG를 치고 온실초에게 SOS를 친다. 어차피 아이가 너무 약해서 온태의도 이 아이를 살리지 못했다.
초반부 온태의가 자주 해결해내던 후궁 내의 각종 약이나 향 관련 미스터리(...)를 푼다. 안릉용이 쓰는 일랑일랑(최음제)을 알아차린 것 [81], 견환의 묵인 아래 녕빈에게 계속 주사를 갖다 준 것도[82] 이 사람이다.

6 감로사 사람들

  • 정암
감로사의 비록 명목상 1인자지만 일은 대부분 정백에게 맡기고 있다. 견환에게 법명이라는 이유로 막수라는 이름을 지었다. 막은 (제자들이 쓰는) 돌림자 같은 거고 수는 미간에 근심이 있다고 수자를 썼다.
견환이 희비로 환궁할 때 마지막에 별 터치 안하고 오히려 경전 두 권을 준 걸로 봐서 공기지만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닌 걸로 보인다. 정백을 끝까지 구명하려 드는 것도 그랬고. 다만 마음이 너무 약하고 주관이 없을 뿐.
  • 정백
감로사의 비구니로 겉으로는 인자한 스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쪽도 한 성깔하는 사람이며 실질적인 감로사의 실세이기도 하다. 감로사로 거처를 옮긴 견환을 심하게 괴롭힌다. 견환을 괴롭히는 건 본인의 의지가 아닌 기귀인의 사주를 받은 것인데 이후 이 기귀인과의 관계가 자신의 목을 조르게 되는 날이 오고 만다.
폐비라지만 엄연한 전 후궁인데도 불구하고 처소를 엉망인 곳으로 배정하고 견환에게만 숯을 주지 않는 등 학대하는데, 견환에게 한겨울에 땔감을 구하게 하거나 땔감을 구하자 마자 절 청소 및 엄청난 노동을 바로 시키고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견환에게 윽박질러 보는 사람 입장에서 욕이 나올 정도로 괴롭힌다. 게다가 견환은 롱월을 낳자마자 바로 감로사에 왔는데 산후조리도 안된 산모에게 그런 험한 짓을 다 시킨 것이다. 그 괴롭힘은 절정에 견환이 폐병에 걸렸다는 거짓말로 전염병환자로 만들어 감로사에 쫓아내려다가 과군왕에게 제비집을 얻은걸로 도둑질 누명을 씌워 감로사에서 쫓겨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심미장이 찾아왔을 때는 견환한테 못 가게 하려다가 심증을 잡은 심미장에 의해 혼자서 눈 치우는 벌을 받기도.
결국 견환이 희비 뉴호록씨로 환궁하게 되자 곤장 20대를 맞는다. 그러나 반성을 하긴 커녕 홍염친자사건 때 또 다시 기귀인의 사주를 받아 온실초와 사통했다는 거짓 증언 및 견환이 오만방자하여 제대로 일을 안했다는 거짓말을 하였지만 끝내 녕귀인에게 역공당한다. 녕귀인은 정백에게 절에 시주하여 등을 밝히는데 얼마냐고 물었는데 정백은 그녀가 귀인인 걸 대번에 알아보고 그녀의 신분에 상응하는 값을 이야기했고 녕귀인은 이것을 토대로 정백이 궁안의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고 이 일을 꾸몄다는 걸 알아냈다. 2년간 절에만 있는 스님이라면 당연히 후궁들 신분을 몰라야 정상이지만 정백은 처음 보는 녕귀인의 신분을 알고 있었으니 의심하는 것은 당연. 결국 녕귀인이 부른 막언 스님의 증언과 홍염이 온실초의 소생이라는 주장이 완전히 거짓이라는 게 탄로나자 궁인들에게 끌려가 혀를 잘린다. 이는 안릉용이 제안한 것으로, 안릉용도 그때 견환을 입돌리기식으로 모함했지만 음모가 실패하자 후환이 두려워 그걸 알고 있는 정백을 제거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사람은 혀를 잘라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견환의 명령으로 처형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사이다 해냈다! 복수성공! 인과응보, 자업자득, 뿌린대로 거둔다
성격이 더럽고 오만방자하며 약자를 괴롭히면 반드시 안 좋은 꼴을 맞이하는 후궁견환전 악역답게 그 본보기로 처형당한 사람.
  • 막언
감로사의 비구니로 겉으론 무뚝뚝하고 까칠해보이지만 사실은 츤데레성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견환이 정백에 의해 엄청난 고생을 할때 산후조리를 위한 설탕을 가져다주는 등 여러모로 도와주기도 했다. 견환이 폐병이 들었다는 누명을 써 감로사에서 쫓겨날 때 끝까지 혼자 견환을 감싸기도 했다. 이후 견환이 희비가 되어 재입궁할 때, 감로사의 모든 일를 맡게 된다.
홍염친자확인 사건 때 견환에게 엄청나게 유리한 증언을 말했다. 즉 정백이 견환에게 험한 일을 시켜 하지 않으면 때리고, 제비집을 훔쳤다는 누명을 씌워 능운봉으로 내쫓아내는 바람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고, 능운봉은 외지고 들고양이가 자주 출몰해서 온실초와 정말로 사통했으면 도망을 갔지 왜 거기서 고생하겠냐고 말한다.[83] 그래서 정백과 기귀인을 몰락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다.
참고로 남자혐오증이 있는 듯하다. 견환에게 "그딴 남자의 아이를 왜 낳아줌?"그딴 남자는 황젠데과군왕에게 "남자는 믿을 수 없소."라는 대사를 한 것으로 보아서 알 수 있다. 이는 원작 설정 때문인 듯한데 원작에선 아들을 못 낳고 딸만 둘 있다는 이유로 남편이 둘째딸은 물에 던져 죽여버리고 새장가를 들었다. 그래서 큰딸과 함께 출가한 것. 더군다나 큰딸은 여자의 몸으로 뱃사공 일을 하다 집단 강간까지 당했다.[84] 이쯤 되면 남자혐오증이 생길 만도. 나중에 그 딸은 견환이 자기 시녀로 데려간다. 충격적인 설정이기도 하고 분량상의 문제도 있어서 잘린 듯.

7 그 외

  • 운신라
견환의 어머니. 드라마에서 큰 비중은 없다. 원작에선 순원황후 회임 축연에 참여하여 자신이 순원황후를 닮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 견환이 후궁이 되자 견환이 순원황후를 닮아 총애받고 있음을 알고 입궁을 되도록 하지 않으며 현릉과의 만남을 피했다. 견씨가 몰락한 후 견원도와 서로 공경하기만 할 뿐인 관계에서 서로 의지하는 부부로 발전했다. 사실 완벽이 견원도의 사생아임을 알고 있다. 드라마에선 불명.
  1. 정확히 말하면 한족 중에서도 한군 팔기. 청나라가 한족의 문화를 받아들인 이후 황제들은 대개 만주족보다 한족 여자를 더 총애했는데, 한족 여자들이 기본적으로 지식이 많고 똑똑하여 황제의 말상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만주족은 굳이 글자를 배우지 않아도 잘 살았기 때문에 여자들도 굳이 배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2. 드라마판에서는 태후가 황손을 번창케 하기 위해서 수녀선발을 해야한다고 하도 황제를 갈궈대서 결국 황제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럼 이번 수녀선발을 끝으로 다시는 이런 거 하지 마요, 엄마. 그리고 이번 후궁 간택은 만주족과 한족 두 인종 간의 화합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족 여자애들을 최우선적으로 뽑을 테니까 이 이상 토달지 마세요."라는 이유로 한족 후궁들이 다수가 된 것.
  3. 이 발언으로 보아, 만군기임이 밝혀지진 않았으나 만군기 가능성이 있는 것이 기귀인 이전에 리타이어한 여빈과, 기귀인 이후에 등장한 강상재와 정빈 정도이다.
  4. 순상재는 2화의 수녀 명부에서 만군기라고 적혀있기도 하고 만몽이 먼저 한족은 후 라는 법도에 따라 견환보다 먼저 입궁하기도 했으므로 확실히 만주족이다. 다만 수녀 선발 후 오로지 견환 만이 봉호를 받았다는 말에 의하면 순상재의 성은 순인데, 딱히 만주족 같지 않을 뿐더러 가끔 견환이 순아 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하다(보통 이름 뒤에 兒를 붙인다.).
  5. 사실 박이제길특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있다. 연회에서 한 후궁이 대사도 없이 미장 옆에 앉아있고 황제가 중병에 걸려 누워 있을 때도 동일 인물이 있다. 항상 귀인의 자리에 있는데, 중국에선 이 사람이 박이제길특 귀인으로 결론이 났다.
  6. 뉴비가 받을 수 있는 최고 품계. 실제 청나라 후궁들 중에는 뉴비인데도 빈이나 비가 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특히 청 초기. 중후기에도 드물지만 존재한다.) 극중에서는 뉴비로서 귀인 위가 된 경우는 없다. 그러나 있을 수도 있었던 것이, 임신한 견환과 꽁냥대던 황제가, 니 동생 (옥요)가 글케 이쁘다니 내 후궁으로 들일까? 품계는 뭘로 할까? 귀인? 빈? 아니면 한번에 비로 들일까? 라는 말로 봐서는...
  7. 여기부터 시침을 들 수 있다.
  8. 예를 들어 대랍시에 드리우는 술이 한개나 두개냐의 차이.
  9. 어떻게 보면 빈부터 실질적인 후궁일지도 모른다. 죄를 지은 "궁녀(및 상궁)"가 가는 신형사에 귀인까지 갈 수 있는 걸로 본다면. 흔상재는 실제로 신형사에 끌려가기도 했고, 조귀인이 완빈에게 "부찰귀인이 죄를 지었으면 신형사에 보내시면 될 것을 ㅉㅉ" 이러는 걸로 보아 귀인까지 신형사에 갈 수 있는 듯.
  10. 안릉용과 기귀인이 둘 다 귀인, 빈일 때 기빈이 좀 더 윗자리에 앉았는데 이는 안릉용이 봉호가 없어서 그랬다. 참고로 기빈이 귀인으로 강등당한 뒤로는 당연히 안릉용이 더 윗자리에 앉게 되었다. 황후-안릉용-기빈 세명이 모인 상황에서 볼 수 있다. 또한 봉호를 박탈당한 연세란은 "난 이제 제비, 단비보다도 아래인데 무슨 낯으로 나다니냐"라는 말도 했다.
  11. 완빈과 조귀인이 이런 관계였다.
  12. 심미장의 가짜회임사건이 연세란의 짓이라는 걸 안 황제가 화비-> 연귀인으로 강등시키려다가 빈으로 참았다. 물론 처방을 화비가 구해와서 말짱 없었던 일이 되지만
  13. 근데 조귀인은 양빈이 되기 전에 연회에서 쓴 적이 있다.공주의 생모라 특별히 쓴 듯.
  14. 그 외는 그냥 작은 주인이라는 뜻의 "소주"로 불린다. 하지만 엄격히 말해 궁의 주인은 황제 부처와 태후 이렇게 3명밖에 없으므로 마마로 불리울 수 있는건 황후와 태후 뿐이고 원래 후궁들은 전부 그냥 소주라고 방약 상궁이 1편에서 견환들에게 가르쳐준다. 빈 이상이라도 마마라고 부르는건 그냥 높여 불러주는 것 뿐이다.
  15. 예를 들어 여답응은 견환 앞에서 본 소주라고 스스로를 지칭했다.
  16. 단 실제 역사상에서는 쓰인 적이 없는 말이라고 한다. 소첩 혹은 첩, 첩신 등으로 표현하였으며 신첩이라는 것은 틀린 표현이지만 중국 역사학자들까지도 많이 쓰이고 있다고.
  17. 이 둘이 자살을 한 것도 이미 가문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제비의 경우 부친이 뇌물수수로 강희제(선대 황제) 때 이미 유배를 갔으며, 안릉용이 자살할 때도 이미 안비괴는 감옥에서 자살했다.
  18. 정치적 이유에서건, 얀데레적 이유에서건...
  19. 안릉용을 갈구면서 킥킥거리던 강상재를 보고 안릉용은 "연희궁의 윗전으로서 명령한다!"라고 말한다.
  20. 아마 공신의 딸일 가능성이 높다. 왕부 시녀 출신 여자들은 "답응"으로 커리어를 시작한다. 이 둘은 별 총애도 못 받는데 답응에서 빈까지 올라가는 긴 여정을 그렇게 단시간에 달성할 리가 없다. 공신의 딸이면 단번에 귀인, 상재로 시작하니까 비교적 가능성이 있다.
  21. 총애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이 둘의 후배인 영귀인이 승진할 때 이 둘은 승진을 못한다.(...)
  22. 안릉용은 강상재보다 2단계가 높은 빈 직책이고, 정빈보다도 먼저 궁에 들어온 엄연한 선배인데 한국으로 비유하면 일개 이등병이 상사와 병장에게 반말 쓰면서 시비거는 것과 똑같다.
  23. 다만 이 상황 전에 전추와 황후가 릉용이 쓸모 없어졌다며 이제 다른 사람을 써야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 것으로 봐서 아마 그게 강상재였던 듯 하다.
  24. 중국과 조선은 후사가 없는 후궁은 궁을 비우고 절로 출가를 해야 했으며 자식이 있는 후궁은 자식의 거주궁에서 살아야 했다. 경귀비와 흔빈, 단황귀비는 견환의 편이자 측근들이며 경귀비와 단황귀비는 자신들이 직접 낳은 아이는 없지만 롱월공주와 온의공주를 양녀로 들였으므로 자식이 있다고 보면 되겠다. 흔빈은 밝혀진 바가 없다. 추측이지만, 어쩌면 령서공주나 정화공주 둘 중 하나를 흔빈에게 양녀로 맡겼을지도? 쫓겨나면 불쌍하니까. 사실 이 제도는 엄청 무시무시한 뒷배경이 있는데, 원래는 선황이 죽으면 자식이 없는 선황의 후궁은 전부 순장이다. 다만 시대가 흐르면서 지나치게 잔인하다 하여 절에서 내세의 덕을 쌓는 것으로 배려하게 된 것. 자식이 있는 선황의 후궁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식의 왕부 (자식이 성년이 될 즈음 왕이 되므로)로 가서 태비(태복진이라고도 한다)가 된다. 다만 극 중 과군왕의 어머니 서태비의 경우 황태후가 좋게 여기지 않아 눈치껏 자진해서 도닦으러 출가한 케이스.
  25. 이때부터 궁주이며 주자나 마마라고 불릴 수 있게 된다.
  26. 현릉이 다시 비로 봉하려고 하자 호온용의 야심(황후)을 경계한 견환이 창이란 봉호는 너무 거창하니 바꾸자고 제안하고, 현릉은 온용이 총명하니 민(敏)이라는 봉호를 내리겠다고 해 민비로 봉해진다.
  27. 황후의 상징인 봉황이 새겨진 옷을 입었다. 안릉용이 황후에게 밀고하여 강등될 뻔했으나 서연의의 말빨(봉황이 아닌 신조 발명(發明)이다)로 창비 책봉식이 백지가 되어버린 대신에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신조 발명은 귀비의 상징이기 때문에 이 일로 견환이 그녀를 경계하게 된다. 숙비인 견환의 상징은 서방 신조 숙상(鷫䴂).
  28. 상림원에서 버들개지를 썼다. 현릉은 섭란의의 위협으로 다쳐 쓰러졌고 견환이 권력을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대놓고 죽였다.
  29. 처음에는 순(順), 공(恭), 진(珍) 자가 올려졌고, 견환이 진(珍)으로 하는 게 어떻냐고 하자 현릉은 연의가 자신에게 황자를 낳아줬지만 내 마음의 보배는 아니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이에 견환이 곧을 정(貞)자를 제안하고 현릉이 이를 받아들인다.
  30. 다만 견환이 출궁하기 전 서채녀가 지나가듯이 언급된다. 본격적으로 언급되는 건 출궁이후고 견환이 직접 대면한 건 환궁 이후다.
  31. 추녀는 아니고 중상 정도로 묘사된다.
  32. 근석의 스캔들 때 맹자를 인용해 도와주거나, 드라마 최종회에서 황제의 죽음에 슬퍼하느라 몸져누웠다는 언급 등
  33. 작약의 다른 이름
  34. 화비가 좋아하는 꽃인 작약에서 따온 이름이다.
  35. 이 때, 팔이 짤려 위로 차원으로 첩여에 봉해진다.
  36. 밑에 서술되듯 궁녀들이라도 팔기 출신으로 엄격하게 신분을 고려하여 뽑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친정에서 몸종을 데리고 입궁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중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완벽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사실 왜곡인 듯.
  37. 다만 실제로는 아무리 궁녀라도 얼굴은 가급적 때리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하지만 얼굴 외의 부위는 그냥 마구 팼다고.음?
  38. 전추는 황후의 자애로운 가면을, 송지는 화비의 거만함을, 길상은 단비의 돌부처같은 생존력을, 상아는 부찰귀인의 멍청함을, 조귀인의 시녀는 자기 주인의 영악함을, 안릉용의 시녀 보견은 제 주인보다 더한 곡해력을, 기귀인 시녀는 자기 주인의 싸가지를 닮는 등...채월-심미장처럼 좀 애매한 경우도 있고 취과-제비처럼 전혀 안 닮은 경우도 없는 건 아니다
  39. 특히 가족 중 이미 황족의 복진이나 후궁이 있을 경우, 혹은 부친이 높은 벼슬을 지낼 경우에는 선발의 우선 대상이 되었다.
  40. 보보경심에 보면 주인공인 약희가 4황자와 8황자 때문에 다행히 간택은 되지 않았지만 궁녀로 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약희는 8황자의 처제이자, 정 2품 총병을 지내고 있는 만주족 귀족의 딸로, 상당히 높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궁녀로 일하고 있다. 또한 근석이 말하길 25살이 넘은 궁녀들은 출궁할 수 있다고.
  41. 단 입궁 후 태감이 되면 팔기에 소속되었다.
  42. 명나라 때 환관만 최대 10만명에 달했다고 하며, 명나라의 정치 자체가 대신세력과 환관세력의 대립으로 해석되기도 한다(후기로 가면 환관이 왕을 좌지우지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드라마 중에서도 황후가 이 일을 언급하며 청 왕조에서는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한다.
  43. 그러나 드라마 기준에는 소배성은 최근석과 혼인했어도 끝까지 황제의 곁을 지킨다. 황제의 장례식에서 주례(?)를 맡는 장면에까지 얼굴을 비춘다.
  44. 드라마에서는 "어느 궁, 어느 소주를 섬기더라도 충심을 다할 것입니다"라는 대사로 순화되었다.
  45. "옥 화병은 닦고 나왔나?" "네" "ㅋㅋㅋ 아닌데? 옥 화병이 아니라 유리 화병인데?" "아 잊을 수도 있죠"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영수궁에는 화병이 있던 적이 없다!" "..."
  46. 하지만 이는 견환의 힘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황제가 쓰러져 사실상 궁의 거의 모든 부분을 장악한 견환이기에 견환이 심복인 소윤자의 말에 따라 내관들이 궁을 수색해서 하예를 잡는 건 일도 아니었을 듯.
  47. 심미장의 이름을 암시 + 순원황후 카드 + (견환)날 생각해서 좀 봐주세요의 콤보를 날린 것이다. 이 때 견환은 순원왕후에 대해 잘 몰랐지만 방약이 마침 원산대를 그릴 줄 알았기에 나비효과가 된 것. 원산대가 나이 많은 사람에게 어울리거나 흔한 화장기법은 아닌지, 황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48. 태후가 의수를 세운 것을 후회하자 태후께서 타일러도 안 듣는 걸 어쩌겠냐고 발언
  49. 물에 백반이 섞이면 생판 남이라도 피가 섞여 혈육 관계로 오해받을 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친자확인검사는 같은 혈액형끼리 섞일 수도 있기 때문에 사극에서만 통하는 검사법. 다시 말해서 정확한 검사법이 아니다.
  50. 릉용이 결정적으로 황후에게 약점을 잡힌 상황에서 황후가 너와 자매같은 사람에게 들었다는 의뭉스러운 말을 한다. 릉용은 그것이 당연히 견환이라 생각하는데, 견환은 확실히 아니었으므로 남는 사람은 보견 뿐이다.
  51. 원문 대사: 황제폐하는 소주를 정말 총애하세요 (중략) 어떤 답응은 시침도 못 들었는데 (후략)
  52. 당시 흔상재는 귀인이었고 기귀인은 빈이었다.
  53. 아마 오고 간 고사의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 (한나라 때의 이야기) 그렇다고 해도 멍청한 건 마찬가지.
  54. 다른 증인이었던 비문과 정백은 순전히 사심으로 한 짓이라 자비를 베풀 필요도 없이 바로 죽였다.
  55. 동화=오동나무 꽃, 근석에 따르면 오동나무는 사랑과 정절을 뜻한다고 한다.
  56. 태후는 동화대를 싫어했기 때문에, 결국 강희제 사후에는 황량해지고 말았다고 한다.
  57. 후일 장상수 피리는 과군왕의 소유가 되었고 장상사 금은 견환의 소유가 되었다.
  58. 원작에서는 태후에게 아들을 뺏기고 쫓겨난 것이나 다름없기에 '우리 모자의 자리를 앗아가 누린 대신 내 아들의 핏줄로 네 아들의 대를 이어라' 하는 심정도 섞여있을 수 있다.
  59. 사실 이 때는 황후의 선동도 한 몫했다. 황후는 견환의 명망을 떨어뜨리기 위해 영수궁을 지나치게 사치스럽게 수리하고, 조정의 여론을 조장했다.
  60. 화비처럼 성격이 오만하고 더러웠는데 화비랑 똑같이 온화하고 정숙하다는 의미인 온희라는 시호로 추존되어 태후가 어이없어하는 장면이 있다.
  61. 견환은 안전을 위해 보내 준 것이고, 안릉용은 황후가 견환을 감시하기 위해 우정의 명목 아래 자원하도록 시켰다.
  62. 이 덕분에 적들에게 무방비이던 견환이 마음을 다잡는다.
  63. 옥요와 결혼할 때, 황제가 명을 내려 희태비로 품계를 올려준다.
  64. 하긴 과군왕만큼 선황제의 엄청난 총애를 받은 것도 아니고 형제들과의 나이 차이도 많이 나서 지금의 황제가 형제들과 권력투쟁을 벌일 당시에는 어린 아이라 싸움에 낄 일도 없었을테니, 과군왕과는 달리 황제의 의심이나 견제를 받지 않아서 있는 모습 그대로 사는 게 가능했던 것인지도.
  65. 홍시 자신은 진짜로 몰랐다. 황제가 이 이야기를 하자 깜짝 놀란다. 바보 아닌가
  66. 3황자를 단 한 번도 미워하거나 무시한 적 없는 견환조차 명군은 고사하고 성을 지키는 성주가 되기도 힘든 수준이라고 평했을 정도.
  67. 정작 견환이 3황자를 함부로 대한 적은 없기 때문인지 롱월과도 사이가 좋았을 뿐더러 황후가 복진감을 고르라며 데려다 놓았을 때 견환이 오자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68. 물론 황제에게 그런 방법이 통할 리 없다는 걸 아는 황후는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오히려 언짢아했다.
  69. 야밤에 옹정제에게 학업성취도를 검사받고, 황후에게 또 검사를 받는데, 그러고 나서 곧바로 인시 삼각, 즉 새벽 3시 45분에 또 수업이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 고3보다 더하다(...). 잠이 너무 부족해서 능률이 안 오른 것 같다
  70. 물론 홍시만 특별히 열심히 한 것은 아니고, 과거에는 인시가 대부분 하루의 시작 시간이었긴 하다. 하늘이 자시에 열리고, 땅이 축시에 생기고, 사람이 인시에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
  71. 풍질(風疾)에 걸렸다고 한다. 열이 펄펄 끓어오르고는 손쓰지 못하는 사이에 죽었다고.
  72. 당시 3황자는 제명되었다.
  73. 황제의 딸 2에서 제비와 자미를 많이 감싸주고 이강과 묘한 분위기가 흘렀던 바로 그 청아 공주.
  74. 온의가 아기였을 무렵엔 3황자와 4황자, 그리고 궁궐 밖에서 자라고 있었던 5황자를 제외하면 황제의 자식이 온의밖에 없었다. 다만 온의 외에 흔상재가 낳은 공주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원명원에서 심미장이 견환에게 조 귀인과 흔 상재에게 공주가 있기 때문에 황제가 그들을 찾는다는 말을 한다.) 정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75. 경비 왈 롱월이 먼저 태어난 온의보다 더 귀여움을 받는다고
  76. 사실 당연한 반응이다. 롱월은 그때까지 경비를 친어머니로 알고 자랐는데, 갑자기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가서 살라니 겁먹고 당황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친모에 대해서 누가 이야기를 했다하면 아버지인 황제가 그 사람을 요절내버리니 경비를 포함해 그 누구도 롱월에게 친모 이야기를 해줄 수 없었다.
  77. 그리고 황후는 "이런 조작쟁이들! 니들이 다 짜고 조작한 거지!?"라며 견환과 경비...두 롱월엄마에게 소리를 지르지만 결국 금족령을 선사받았다. 아이 씽나
  78. 원작에선 확실하게 나온다.
  79. 홍염, 영서의 이름을 각각 황제와 견환이 지었다는 걸 안 태후가 당시 임신한 미장의 아이 이름은 자기가 짓겠다고 함.
  80. 안릉용의 친정에는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안릉용과는 친했긴 했는데 안릉용 집은 가난해서 별 도움이 안 되었다.
  81. 견환이 최음향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 위림을 불렀는데, 손바닥에 올려놓고 물에 개서 향을 맡자마자 뿅 간 표정이 압권, 이상함을 눈치 챈 견환이 근석을 통해 방비를 해서 위급상황을 모면했다...
  82. 견환은 '필요하면 알아서 구해 쓰겠지'라고 말하며 수수방관. 결국 '필요하면 어떻게든 구하고 말테니 그냥 줘라'라는 말이었다.
  83. 그래도 정백이 말한 건 부분적으론 사실이다.(본인은 모르겠지만) 다만 견환이 고생하다 동상이 심하게 걸려(롱월 임신 중 연금 때부터 걸려있긴 했다) 겨울마다 재발하는 걸 알고 안부차 물어본 덕분에 황제가 막언의 말을 한 방에 믿었다.
  84. 견환이 관아에 신고 해봤냐고 묻자 셀 수 없이 많아서 못 했다고 한다.